지난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미·북 정상회담. ⓒphoto 뉴시스
지난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미·북 정상회담. ⓒphoto 뉴시스

지난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미·북 정상회담이 열린 지도 2주일이 지났다. 미국과 북한의 정상이 만났다는 것이 너무나도 기이하고 비현실적(surreal)인 일이었기 때문인지 몰라도 이 회담의 결과를 둘러싸고는 정반대의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이 회담은 역사적인 회담이라고 불리기에 족하다. 미국과 북한의 정상이 만났다는 사실 그 자체가 역사의 한순간이 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상회담의 결과에 대해서는 아주 다양한 평가와 해석이 존재한다. 우선 미국의 주류 언론들은 거의 모두가 트럼프가 싱가포르에서 양보만 하고 얻은 것이 없다고 비난하고 있다. 이는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미국의 주류 언론들은 대통령선거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트럼프의 모든 것을 거의 무조건적으로, 그리고 감정적으로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주류 언론은 트럼프의 정책이 아니라 트럼프가 대표하고 있는 보수적·전통적·미국적인 가치를 반대한다.

리버럴(Liberal)이라고 지칭되는 미국의 주류 언론은 미국의 정체성(Identity)을 놓고 트럼프와 대립 중이다. 트럼프가 대북 강경책을 구사할 당시 미국의 주류 언론들은 모두 트럼프야말로 핵전쟁을 초래하고야 말 인간이라고 비난했었다. 이번 정상회담 이후에는 트럼프가 너무 양보를 많이 했다, 김정은의 인권문제를 비난하지 않았다, 구체적이지 못하다, 시간이 명기되지 않았다, 얻은 것은 없고 주기만 했다 등등 별의별 이유를 제시하며 트럼프를 비판하고 있다. “왜 인권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느냐?”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트럼프의 대답이 명쾌하다. “당신들이 북한의 핵폭탄에 의해 죽는 것을 막는 것이 더 급하기 때문이야.” 트럼프는 ‘만약 오바마가 북한과 자신이 이번 얻어낸 수준의 협의를 북한으로부터 얻어냈다면 언론은 오바마를 영웅으로 취급했을 것’이라는 트윗도 날렸다. 트럼프는 폭스뉴스의 션 해니티(Sean Hannity) 기자와의 대담에서 자신은 레토릭(Rhetoric)을 사용하는 것을 싫어하고, 그럴 때 때로 바보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할 수 없이 그래야 할 때가 있다며 자신이 김정은을 치켜세운 사실을 인정하고 변호했다. 미국 상·하 양원 의원들은 6·12 회담에 대해 조심성 있는 지지를 보내고 있다.

미·북 정상회담은 트럼프의 전략적 승리

한국에서의 트럼프에 대한 비난은 소위 ‘보수우파 진영’에 속하는 사람들로부터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들은 트럼프에게 속았다고, 트럼프가 한국을 배반했다고 말한다. 트럼프가 회담장을 박차고 나오지 않았다고 분노하며, 김정은을 치켜세웠다고 분노하고, 앞으로도 북한을 폭격하지 않을 것 같아서 화가 난다고 말한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공동선언이 모호하고 별 볼 일 없다고도 비난한다. 어떤 보수 신문은 ‘트럼프 완패’라는 제목을 달기도 했다. 며칠이 지난 후에는 미국의 북한 비핵화의 시간 계획이 점점 늘어지고 있다고 비판하며 마치 북한의 비핵화가 물 건너간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

답답한 일이며 틀린 일이다. 우선 이들은 트럼프가 한국의 대통령이 아니라 미국의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혼동하는 것 같다. 트럼프는 싸움을 하기 위해 싱가포르에 간 것이 아니라 김정은을 설득하러 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공동발표문이 허접하다고 말하려면 우선 공동발표문을 정밀분석해 보아야 한다. 트럼프가 잘했는지 못했는지를 알려면 트럼프의 협상 행태에 관한 공부를 보다 진지하게 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어떤 경우라도 강대국이 약소국과 협상을 해서 완패하는 경우란 있을 수 없다는 국제정치의 현실을 부정하면 안 된다. 강대국이 약소국과의 협상에서 완패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 협상이 폐기되는 데까지 도대체 며칠이나 필요하겠는가? 완패했다고 생각한다면 강대국이 그 협상의 결과를 존중하겠는가?

필자는 이번 회담을 트럼프의 기가 막힌 전략적 승리라고 본다. 미국의 대(對)북한 전략의 기초에 의거할 때, 그리고 작금 형성된 전략 상황을 고려할 때 트럼프는 결정적 승기를 포착한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회담이 준비되는 과정에서 트럼프는 평소 자신이 말했던 협상의 원칙과 기술을 그대로 지켰다. 우선 회담이 열리는 과정에서 김정은은 트럼프의 페이스에 말려들었다. 5월 10일 정상회담을 약속한 후 약 1주일 지났을 때 북한은 어깃장을 놓기 시작했다. 5월 16일 김계관의 언급, 5월 17일 리선권의 언급, 그리고 5월 24일 최선희의 언급은 트럼프를 분노하게 만들었고 트럼프는 공식적으로 회담이 없을 것임을 선언했다.

놀랍게도 북한이 오히려 대화를 하자고 졸랐다. 5월 하순 트럼프는 북한에 대해 막말을 수없이 해댔다. 대화에 응할 경우 트럼프는 김정은이 권좌에 지속적으로 앉아 있는 것을 허락(allow)하고 적당한 보호(adequate protection)를 제공해주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만약 대화에 응하지 않을 경우 북한 정권을 완전하게 파멸(total decimation)시키겠다고 협박했다.

트럼프가 직접 사용한 언어들은 외교에서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조폭세계에서나 가능한 말들을 막 해댔다. 6월 1일 회담이 다시 확정되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5일 후인 6월 6일 트럼프의 변호사인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은 김정은이 ‘무릎 꿇고 싹싹 빌어서(begged on his hands and knees)’ 회담이 열리게 되었다며 북한을 모욕했다. 북한은 이때도 별 말이 없었다. 결국 북한 측은 중국이 소유한 미국제 비행기 보잉747기를 빌려 타고 싱가포르 회담에 참석했다. 호텔비도 없어서 누가 김정은 협상팀의 호텔 비용을 지불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말이 많았다.

트럼프는 단독회담에서 정상적인 경우 할 수 없는 행동과 말을 했다. ‘두 지도자와 하나의 운명(Two Leaders One Destiny)’이라는 비디오를 보여주며 김정은을 가르치고 설득했다. 북한이 제공한 것이라고 의심되는 화학탄으로 시리아의 아사드 대통령이 자국 국민들을 무참하게 살해한 사실을 언급하며 트럼프 자신은 토마호크 미사일 58발을 쏴서 그를 응징했다는 말까지 했다. 단 한 발도 명중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고 부연설명도 해주었다.

미국의 대전략은 중국을 노린다

미국에 북한은 적국(敵國)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 정도 수준의 국력을 가진 나라를 적수(敵手·rival)로 보지는 않는다. 그래서 미국의 대(對)북한 전략은 더 큰 대전략(grand strategy) 혹은 세계 전략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 현재 미국의 세계 전략에서 미국이 전략적 위협(strategic threat)으로 간주하는 나라는 북한이 아니라 중국이다. 북한과 같은 허약하고 망해가는 나라가 미국의 전략적 위협이 될 수는 없다. 물론 북한은 국력상 약소국이기는 하지만 미국에도 핵을 가지고 말썽 부리는 짜증 나는 존재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북한 그 자체가 미국의 대전략의 직접적 표적 혹은 상대는 아니다. 북한의 핵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핵, 러시아의 핵 등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핵이 수천 발 이상 존재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것인지 사실 여부조차 불분명한 북한 핵 문제를 놓고 사단을 벌이고 있는 일의 본질을 잘 이해해야 한다.

미국은 모든 나라의 핵을 막지 않는다. 미국은 친구 나라들인 영국, 프랑스, 인도, 이스라엘의 핵은 사실상 방치했다. 미국이 막은 핵은 이란, 리비아, 그리고 북한의 핵이다. 이들은 미국에 의해 ‘양아치(rogue)’로 분류되는 나라들이다. 미국은 이들 나라의 핵을 막을 뿐이지 친구의 핵은 뭐라 하지 않는다. 그리고 미국식 국제정치 이론에 의하면 양아치는 언제라도 미국의 친구가 될 수 있다. 이미 200여년 전, 조지 워싱턴 대통령은 고별사에서 미국에는 결코 영원한 적과 영원한 친구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미국은 핵폭탄까지 투하해가며 싸운 적국인 일본과 지금 세계 최상의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다.

그래서 미국이 북한 핵을 처리하는 과정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대전략과 미국 외교의 기본정신을 이해해야 한다. 미국의 대전략은 미국의 패권을 앞으로도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이다.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의 대전략에 직접적인 위협요인이 되는 나라는 중국이다. 즉 미국의 대북한 핵정책은 미국의 대중국 패권 유지 전략의 맥락에서 보면 더 잘 보인다는 말이다. 지금 미국은 북한 핵을 통해 미국이 이루려는 대전략의 단계를 하나씩 진행해가고 있다. 북한의 핵을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북한과 직접 거래할 수 있는 상황을 마련했고 동시에 중국을 경제적, 심지어 군사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열리기 직전 미국은 남중국해에 미국의 항공모함, B-52 폭격기, 그리고 북한은 물론 중국도 대단히 두려워하는 F-22 스텔스 전투기 등 무려 14대를 일본에 전개시키고 있었다. 미국은 일석이조(一石二鳥)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중이다. 중국과 북한을 동시에 미국 외교의 주요 대상으로 삼아 일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여기서 트럼프의 능청은 대단하다. 트럼프는 자신의 아주 좋은 친구 시진핑 덕분에 북한과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며 시진핑을 치켜세운다. 그러면서 동시에 시진핑과 피를 말리는 무역전쟁을 진행하는 중이다. 트럼프의 대전략은 김정은을 시진핑으로부터 떼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그 같은 놀라운 상황이 나타나고 있는 중이다.

이번 미·북 정상회담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기획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최고로 신임하는 폼페이오와 존 볼턴 두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 폼페이오는 중앙정보국 국장을 역임하고 현재 국무장관직에 있고 볼턴은 국가안보 보좌관이다. 두 사람 중 미·북 정상회담은 존 볼턴이 계획한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지난해 여름 존 볼턴은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최선의 방법은 북한이 한국에 의해 통일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다른 말로 한다면 한반도 전체를 미국이 장악하는 것, 혹은 미국의 영향권 아래 두는 것이 미국의 전략적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번 미·북 정상회담은 미국이 북한을 중국으로부터 떼어내는 전략의 일환이다.

공은 김정은에게 넘어갔다

트럼프는 김정은에게 협박은 물론 집요한 회유도 병행했다. 전통적인 포함외교(Gunboat Diplomacy)의 술책이 동원되었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군사력이 동원되지 않는 외교는 마치 악기가 동원되지 않는 음악회와 같다’라고 말한 바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완전한 파멸이냐, 미국이 보장해주는 정권 유지냐,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강요했다. 각종 최신무기를 북한과 남중국해 부근에 동원해놓고 말이다.

공산주의자들이 회의를 할 때 가장 먼저 따지는 세팅(setting)에서부터 김정은은 밀리고 들어간 것이다. 트럼프는 회담 전 김정은에게 핵을 포기하면 북한을 ‘위대한 경제 및 금융국가(great economic and financial power)’로 만들어주겠다고 말했다. 김정은이 회담하며 하룻밤 머문 장소는 트럼프가 말한 위대한 금융국가의 전형(典型)인 싱가포르였다.

김정은은 일단 트럼프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지만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트럼프만큼 김정은의 마음을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 보아야 하는 상황이다. 두 사람이야말로 김정은과 1 대 1로 몇 시간 이상 이야기한 사람들 아닌가.

그동안 반미(反美)주의를 정권이 존재하는 정당성의 가장 큰 근거로 삼아왔던 김정은 정권이 더 이상 반미를 부르짖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미국이 한국과의 군사훈련을 중지한다고 말한 것은 북한에 조건을 건 것이다. 북한은 한·미 연합훈련을 격렬히 반대해왔지만 그것 때문에 북한 주민들을 달달 볶고 억압할 수도 있었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믿을 수 없기에 핵을 만들 수밖에 없다며 여기까지 왔다.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은 70년 이상 지속되어온 북한의 행보를 멈추거나 바꾸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 물론 북한이 국가의 진로를 바꿀 수 있느냐의 여부를 지금 당장 판정할 수는 없다. 북한이 행로를 바꿀 경우 북한은 중국 진영에서 미국 진영으로 국가 대전략을 바꾸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을 속이고 핵무기를 지속적으로 보유 개발하려 한다면 길어도 수개월 이내에 한반도 상황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런 경우가 온다면 트럼프는 북한을 고사(枯死) 혹은 폭사(爆死)시키는 방법을 강구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 가장 머리가 복잡한 사람은 김정은일 것이다. 트럼프는 김정은의 나라가 부유한 금융국가가 될 수 있다고 했지만 김정은이 그런 나라의 지도자로 남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지는 김정은이 판단할 몫이다. 역사는 그런 경우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김정은이 원하는 ‘체제유지’는 사실상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체제안전’은 어느 경우라도 각국 스스로가 하는 일이다. 어떻게 남의 나라가 주권국의 체제안전 보장을 해줄 수 있단 말인가? 미국이 북한의 체제안전을 보장해준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미국이 김정은 체제의 안전을 정말로 보장해주려면, 미군이 북한 지역에 진주하여 반(反)김정은 쿠데타가 일어나면 진압해주고 중국·러시아·일본 혹은 한국 등이 쳐들어오면 막아주면 된다. 그것이 체제안전 보장이다. 즉 주석궁을 미국 해병대가 지켜주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 외에 북한에 대한 체제안전 보장이란 결국 미국이 북한을 군사적으로 공격하지 않는다는 보장을 해주는 것뿐이다. 그런데 그런 체제보장은 2000년 미·북 공동선언에서부터 9·19 공동성명에 이르기까지 이미 미국이 여러 차례 북한 정권에 보장해준 것이다. ‘미국은 핵무기 또는 재래식 무기로 북한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구체적인 조항까지 명문화되어 있다. 이제 공은 김정은에게로 넘어갔다.

이춘근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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