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4일 오후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3차 규탄 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photo 남강호 조선일보 기자
지난 5월 4일 오후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3차 규탄 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photo 남강호 조선일보 기자

‘정치신인 황교안’은 사실상 추대에 의해 제1야당의 대표가 됐다. 하지만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에게 절대적 지지를 보내는 당내 우군은 많지 않은 편이다. 흔히들 황 대표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와 비교한다. 두 사람은 경기고 출신의 법조인이자 비영남 출신이다. 황 대표는 서울, 이 전 총재는 충남이 고향이다. 여기에 국무총리까지 지내고 정치권으로 뛰어든 이력까지 비슷하다. 하지만 결정적 차이가 있다. 충청권 한 한국당 의원의 말이다.

“이회창 전 대표는 정치권에 뛰어들자마자 그를 중심으로 의원들이 뭉쳤다. 이 전 총재가 YS(김영삼 전 대통령)를 등에 업고 정치에 입문했기 때문이다. 황교안 대표는 다르다. 의원들이 전폭적 지지를 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니다. 분명한 것은 ‘간만 본다’는 거다. 그가 박근혜 정권에서 국무총리를 해서 친박의 지원을 받고 있긴 하지만, 그건 일종의 전략적 동거다. 게다가 박 전 대통령이 황교안 대표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둘이 비슷하다고 하지만 여기에 결정적 차이가 있다. 이회창 전 대표는 당에서 거의 제왕적 권력을 누렸음에도 3번의 대선에서 패배했다.”

황교안과 이회창의 차이

정치는 세력 싸움이다. 아무리 대중적 지지도가 높은 인물이 나와도 정치권 안에서 ‘세(勢)’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소멸된다. 그런 전례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황 대표는 당대표나 국회의원을 하기 위해 정치권에 뛰어든 사람이 아니다. 대통령을 꿈꾸고 정치를 하고 있다. 그런 그가 2022년에 있을 대통령선거에서 자유한국당 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내년 총선이 중요하다. 총선 승리를 이끌어내야 함은 물론이고 이른바 ‘친황(親黃)’이라 불릴 만한 세력을 만들어야 한다.

현재 시점에서 황 대표의 당내 지지세력은 친박계 의원들이다. 당의 살림을 책임지는 한선교 사무총장이나 당의 입인 민경욱 대변인 등이 모두 친박 인사다. 친박의 지원을 받고 원내대표가 된 나경원 의원은 황 대표와는 경쟁관계에 가깝다. 하지만 친박만으로는 내년 총선 승리가 어렵다. 어떻게든 중도층을 끌어안아야 한다. 하지만 친박과 중도가 한데 묶이는 일은 쉽지 않다. 결국 여기서 확장성의 문제가 발생한다. 친박의 지원을 받고 있는 현실과 중도를 끌어안아야 하는 이상 사이에 황 대표가 서 있는 셈이다.

사실 지난 100일간 황교안 체제에 대한 평가는 나쁘지 않다. 현 정권의 실정에 날카로운 각을 세우는 일로 보수층의 지지를 결집했다. 문재인 정부를 향한 선명한 메시지를 보여주면서 한국당의 야성 회복을 이끄는 데도 한몫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당대회를 통해 지도부가 들어서면 어느 정도 당 지지율이 오를 것이란 전망은 많았지만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지지율이 올랐던 데에는 의외로 황 대표의 대중 메시지 전달력이 한몫했다는 평가가 많다.

황 대표는 평생을 공무원으로 살았다. 법무부 장관이나 총리 시절 TV카메라에 비치는 그의 모습은 언제나 정돈된 외모 그리고 차분한 목소리가 전부였다. 당대표 취임 후 연단에 올라 연설을 하는 그의 모습은 전혀 달랐다.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올리고 주먹을 내지르며 고함을 치는 황 대표의 모습은 정치신인답지 않았다. 황 대표의 한 경기고 동문은 “연설 때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다”며 “학교에서 목소리 컸던 것으로 유명했다”고 말했다. 그는 “황 대표는 경기고에 다니면서 학도호국단 학생연대장을 했는데 전교생 열병식 때 황 대표 목소리가 하도 커서 운동장에 쩌렁쩌렁 울렸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잇달아 불거진 당 의원들의 막말논란과 친박 일부 의원들의 탈당설은 다시금 한국당의 지지율을 깎아먹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30%를 무난히 넘겼던 한국당 지지율은 상승세가 꺾였다. 20% 후반까지 떨어진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순항하던 황 대표 체제의 첫 위기인 셈이다. 문제는 지지율 하락의 원인인 막말논란과 탈당설이 결국 친박과의 관계설정과 무관치 않다는 점이다.

지지율 깎아먹는 막말논란과 탈당설

황 대표 체제의 한계는 이미 그가 자유한국당 당대표 선거에 나와서 당선됐을 때부터 제기된 문제다. 당시 그의 역할과 한계에 대한 당 안팎의 전망은 거의 비슷했다. ‘현 시점에서 보수를 결합하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지만, 확장성에 한계가 뚜렷하다.’

황 대표 역시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가 당대표 취임 일성으로 통합을 내세웠고, 지금도 통합 내지 외연확장이란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황 대표는 지난 2월 28일 취임 후 가진 첫 최고위원회의에서 ‘통합’을 강조했다. 황 대표는 “통합이 가장 중요하고, 선행돼야 한다”며 “당의 통합은 물론 나아가 넓은 통합까지 확실히 이뤄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황 대표는 지난 6월 5일 국회 사랑재에서 청년세대를 겨냥한 ‘황교안×2040 미래찾기 토크콘서트’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그가 이 자리에서 “30%의 콘크리트 지지층만으로는 이길 수 없다”며 “중도층 속으로 스며들어가야 한다”는 목표를 제시한 것도 같은 이유다.

황 대표가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세대로 따지면 젊은층, 이념적으로는 중도를 끌어안아야 한다. 문제는 황 대표의 바람과 현실은 전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다. 황 대표가 지난 6월 5일 국회에서 젊은층을 불러다가 토크콘서트를 한 것은 그런 현실적 고민 끝에 나온 자리다. 자유한국당 한 관계자는 “황 대표가 청년 세대를 모아놓고 토크콘서트를 가진 이유도 중도나 젊은층으로 외연을 확대하는 데 한계를 많이 느꼈기 때문”이라며 “최근 벌였던 민생 대장정에서 60~70대 여성들에게는 그야말로 방탄소년단급 호응을 받았지만, 젊은층에게는 ‘레알 극혐’(진짜로 싫다는 의미)이란 말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보수정당이 젊은 세대를 끌어안는 것은 어려운 이야기다. 그나마 이명박 전 대통령이 참여정부의 경제실정을 파고들어 젊은층의 지지를 끌어낸 바 있다. 황 대표에게 이것은 여전히 어려운 문제다.

“공천혁명 해야 중도 끌어안는다”

그런데 현재 시점에서 황 대표에게 더 어려운 것은 어떻게 중도세력을 통합할지의 문제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나 보좌관들은 “현재 자유한국당 지지자 중에 중도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고 말할 정도다. 사실상 보수 내지 친박계 지지자들이 당을 장악하고 있단 의미다. 한국당 관계자들은 중도층이 자유한국당에서 지지를 철회한 시점을 2016년 20대 총선 공천 파동 당시로 본다. 친박계가 공천권을 휘두르는 데 반발해 김무성 전 대표가 이른바 ‘도장파동’까지 벌이는 것을 본 중도층은 2016년 총선에서 민주당과 국민의당에 표를 몰아줬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사태로 이어졌다.

당시 공천이 정당했는지에 대한 문제는 한국당을 포함한 보수세력 내부에서 아직까지 결론 내리지 못했다. 섣불리 꺼내기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다. 이미 지난 2월 당대표 선거에서 이 문제가 거론됐었다. 한국당 친박 지지자들이나 대한애국당 등은 당시 공천파동의 원인이 김무성 전 대표,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 등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다만 한국당 내 친박 의원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말을 아낀다. 반면 한국당의 비박계 의원이나 중도세력은 공천파동의 원인을 박근혜 청와대와 친박계 의원들 사이에서 찾는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이른바 태극기 세력과 중도의 물리적 결합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것은 곧 황교안 대표가 풀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황 대표는 당대표 선거에 나갈 때부터 지금까지 이 문제에 이렇다 할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사실 답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한국당 젊은 당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내년 총선에서 한국당이 승리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혁명 수준의 공천을 꼽는다. 친박과 비박을 가리지 않고 지난 대선 패배 내지 탄핵의 원인이 있는 중진들을 쳐내지 않으면 선거에서 이기기 어렵다는 것이다. PK지역 의원의 한 보좌관은 “내년 총선과 같이 집권 4년 차로 넘어가는 시점에 치러진 총선으로는 2000년 총선이 있는데 당시 이회창 총재가 김윤환·이기택 등 거물 정치인들을 공천에서 대거 탈락시켜 중도층의 지지를 이끌어냈다”며 “내년 총선도 비슷한 결단을 하지 않는 한 중도층을 통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황 대표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당 신정치혁신특별위원회 신상진 위원장이 지난 6월 9일 한 발언을 보면 이를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회의에서 “지난 20대 공천은 ‘막장 공천’이라 불리는 비공감 공천 문제로 홍역을 치렀다”며 “(이번 21대 총선에서는) 특정 사람 심기나 계파 갈등에 의한 공천이 아닌 룰에 입각한 공천이 될 수 있도록 작업해왔다”라고 말했다. 사실상 공천파동의 원인을 공천을 주도했던 사람들에게 돌리는 듯한 뉘앙스의 발언이다.

물갈이에 대한 TK와 친박의 반발

이런 당 지도부의 분위기는 당내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친박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홍문종 한국당 의원은 지난 6월 8일 애국당이 서울 광화문에서 주최한 태극기집회에 참석해 “참을 만큼 참았다.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며 “조금 있으면 한국당의 기천명(幾千名) 평당원들이 여러분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기 위해 탈당 선언을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당내에서 강성 친박으로 평가되는 김진태 의원은 지난 6월 12일 기자간담회에서 “우파들 사이에서 대표가 (막말에 대한) 사과를 너무 자주한다는 우려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황 대표의 리더십에 대해 말이 많이 나오느냐는 질문에 “상당수 있는 걸로 알고 있다”며 “좀 더 화끈하게 해줬으면 하는 바람들이 있다”고 불만을 전했다. 김 의원은 부인하고 있지만 그는 정태옥 의원과 함께 탈당 가능성이 높은 의원 명단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신 위원장의 발언은 중앙정치 무대를 넘어 자유한국당의 정치적 기반인 TK 지역마저 흔들고 있다. 주간조선이 신 위원장의 발언 이후 대구 서문시장과 칠성시장 등의 민심을 취재해본 결과 이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즉 누가 나와도 당선이 되는 이 지역의 민심을 이용해 친박계가 주류인 TK지역 의원들을 교체하겠다는 것은 일종의 역차별이란 것이다.

황 대표의 고민을 깊게 만드는 또 다른 요인은 대한애국당과의 통합 여부다. 황 대표 입장에서 내년 총선이 2000년 총선과 다른 점이 있다면 대한애국당이란 현실정치 세력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2000년 총선은 한나라당이 133석, 새천년민주당이 115석을 갈라먹었고, 자민련이 제3당으로 17석을 가져갔다. 지역 구도가 확실한 선거였다. 하지만 현재 정치구도는 지역 구도의 색채가 옅어졌다. 오히려 이념적 구도가 강해진 양상이다. 보수정치권의 경우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정당이 외부에 존재하고, 이들이 갖고 있는 잠재력이 만만치 않다. 어버이연합 등을 모태로 한 대한애국당이 갈수록 세력을 키워가고 있다.

이미 대한애국당은 지난 4·3 창원성산 재보궐 선거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 선거에서 여영국 정의당 의원이 한국당 강기윤 후보를 500여표 차로 앞서 당선됐는데, 대한애국당 진순정 후보가 약 900여표를 받았다. 당시 한국당 관계자는 “대한애국당이 지금처럼 덩치가 커지면 내년 총선에서 창원성산과 같은 지역구가 최소 6~7곳 정도는 생길 것”이라며 “이는 의석 차로 따지면 2배의 효과가 난다”고 말했다.

만약 황 대표가 일부 친박계 의원들이나 중진들을 물갈이 대상으로 올린다면 대한애국당과 합쳐져 친박 신당의 출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럴 경우 친박의 지지를 받고 정치권에 입문한 황 대표의 입장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애국당 커지면 전국이 창원성산 꼴”

대한애국당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느긋한 입장이다. 현재 대한애국당은 한국당과의 통합 전제조건으로 두 가지를 내걸고 있다. 지난 6월 11일 광화문 집회 현장에서 주간조선과 만난 대한애국당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 탄핵이 기획된 ‘사기 탄핵’이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국민에게 알릴 것, 그리고 탄핵에 찬성했던 의원들을 내보내야 통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황 대표 역시 이 문제에 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취임 100일 동안 강경 투쟁으로 일관했던 황 대표가 수권정당, 정책정당으로서의 모습을 어떻게 보여줄지도 관건이다. 이미 당내에서는 국회 복귀 타이밍이 늦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장제원 의원은 지난 6월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제왕적 대통령제’를 비판하고 있는 한국당이 정작 제왕적 당대표제와 원내대표제를 운영하고 있다”며 “당내에 건강한 비판이 사라진 지 오래”라고 비판했다. 그는 국회가 올스톱된 상태에서 당 지도부가 ‘이미지 정치’와 ‘말싸움’에만 매몰하고 있다고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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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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