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 아베 총리가 2017년 7월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photo 백악관
문재인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 아베 총리가 2017년 7월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photo 백악관

애치슨라인(Acheson line)은 딘 구더햄 애치슨 미국 국무장관이 1950년 1월 12일 전미신문기자협회의 ‘아시아에서의 위기’라는 연설에서 발표한 미국의 극동 방위선을 말한다. 당시 애치슨 장관은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영토적 야심을 저지하기 위해 태평양에서 미국의 방위선을 알류샨열도-일본-오키나와-필리핀을 연결하는 선으로 정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한국과 대만, 인도차이나 반도가 미국의 방위선에서 사실상 제외됐다. 그 결과 김일성이 1950년 6·25전쟁을 일으켰다. 미국은 당시 한반도를 전략적으로 중요하지 않다고 인식했기 때문에 애치슨 장관이 한국을 미국의 방위선에서 제외하게 됐다는 것이 후일의 평가다.

팜벨트와 트럼프의 분노

최근 들어 자칫하면 ‘제2의 애치슨라인’이 그어질 가능성이 높고, 한국이 여기서 제외될 수 있다는 말이 외교·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이런 전망이 나오는 것은 무엇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면서 철저하게 자국의 핵심이익만을 챙기려는 정책을 추진해왔다. 대표적 사례가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이고 핵심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벌이고 있는 중국과의 무역전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9월 1일부터 30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10%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전격 선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결정은 지난 7월 30~31일 상하이에서 열린 미국과 중국 고위급 무역협상에서 아무런 성과가 없는 것에 따른 것이다. 미국 정부는 지금까지 25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중국 정부가 무역협상에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나머지 3000억달러 규모 제품에 대해서도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해왔다.

그런데 정작 트럼프 대통령이 격노한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표밭인 이른바 팜벨트(Farm Belt·농업 지역)에서 승리하기 위해 중국 정부가 농산물을 대거 수입하기를 희망해왔다. 중국 정부는 상하이 고위급 무역협상에 앞서 미국 정부에 농산물을 대거 수입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하지만 중국 고위급 대표단은 상하이 협상에서 농산물 수입 확대 의사를 표시하기는 했지만 구체적인 수입 규모 등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협상 내용을 보고받은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중국이 미국 농산물을 대규모로 사들이기로 합의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글을 올리면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불평을 털어놓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6월 29일 일본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별도로 시 주석과 미·중 정상회담을 했을 때도 시 주석이 미국산 농산물 구매를 약속했다는 것이다. 팜벨트 지역은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의 텃밭이다. 이 지역의 주요 농산물은 대두(콩)이다. 미국의 콩 생산량 비중은 전 세계의 35%를 차지한다. 팜벨트 지역에서 생산된 대두는 미국 전체의 95%에 달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에서 일리노이와 미네소타를 제외한 팜벨트 지역 8개 주에서 승리하면서 대권을 거머쥘 수 있었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재선을 위해 중국과의 휴전을 깨고 무역전쟁을 다시 벌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딘 구더햄 애치슨 전 미국 국무장관
딘 구더햄 애치슨 전 미국 국무장관

‘매파’ 볼튼까지 돌아섰나

북한의 비핵화 문제도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입만 열면 “북한에서 핵실험이 없었고, 장거리 탄도미사일 시험도 없었다. 미군 유해도 가져왔고 인질들도 송환했다”고 말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김정은에 대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아왔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정권의 잇단 단거리 탄도미사일 도발에 대해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서 사실상 ‘면죄부’를 주고 있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은 작은 미사일 실험을 했을 뿐이고, 많은 국가들이 실험하는 것”이라면서 북한 정권을 비호하기까지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도를 넘어서는 북한 감싸기는 2020년 대선을 앞두고 북한 문제가 재선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 때문이다. 다시 말해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재선에 악영향을 주지 않도록 하기 위해 북한의 위협을 평가절하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자신의 유일한 외교 치적인 북한 비핵화 협상에 대한 회의론을 불식시키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 문제는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이 미국의 동맹인 한국의 안보에 치명적인 위협이라는 점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이 이번 미사일 발사가 미국에 대한 경고가 아니라고 말했다”면서 “그들(남북한)은 아주 오랫동안 분쟁을 겪고 있다”고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미국을 타깃으로 한 것이 아니라면 한국 등 동맹국이 위협을 받아도 괜찮다는 것이라는 의미다.

북한과 핵 협상을 총괄하고 있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도 “6월 30일 판문점에서 미·북 정상이 만났을 당시 김정은이 핵실험을 하지 않고, 중거리 미사일과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도 계속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고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의 이런 발언은 단거리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는 김정은이 약속을 위반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많은 나라들이 협상을 준비하면서 지렛대를 만들려고 한다”고 사실상 북한 정권의 입장을 대변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충성파’라는 말을 듣고 있는 폼페이오 장관의 이런 입장은 동맹국인 한국에 대한 안보 위협을 완전히 무시한 채 오로지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겠다는 의도라고 해석할 수 있다.

심지어 대북 강경파인 존 볼턴 백악관 안보담당 보좌관도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는 김정은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약속을 위반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트럼프 정부에서 대표적인 ‘수퍼 매파’로 꼽히는 볼턴 보좌관의 이런 발언은 지난 5월 북한의 이스칸데르급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때와는 대비된다. 당시 볼턴 보좌관은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위반한 탄도미사일 발사”라고 규정했다. 볼턴 보좌관의 입장 변화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강경파인 댄 코츠 국가정보국(DNI) 국장을 전격 경질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코츠 전 국장은 “앞으로 북핵 협상은 아무 의미가 없으며, 북한 정권은 ‘체제보장론’을 내세워 계속 핵과 미사일을 증강해 한국의 안보를 인질로 삼을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애치슨라인. 한반도가 선 바깥쪽으로 배제돼 있다.
애치슨라인. 한반도가 선 바깥쪽으로 배제돼 있다.

‘안보 무임승차론’에 위협받는 주한미군

미국 정부는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문제를 논의한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도 강경한 입장을 보이지 않았다. 영국·프랑스·독일 등 3국은 지난 8월 1일 안보리 회의 이후 북한의 최근 탄도미사일 발사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위반이라고 비난하며 북한에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미국 정부는 3국의 공동성명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재선을 위해서 중국과의 무역전쟁도 불사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이 미국 본토를 ICBM으로 위협하지만 않는다면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주한미군의 철수 가능성도 상정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한국에 ‘안보 무임승차론’을 제기하면서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올릴 것을 요구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가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북한 단거리 탄도미사일의 사거리에 있는 주한미군의 안전을 명분으로 내세워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도 있다. 미국 정부는 이미 문재인 정부가 2022년까지 주한미군의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을 환수하겠다는 입장에 따라 주한미군의 역할과 기능을 재검토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방위비 분담금도 많이 내지 않는 한국의 안보를 위해 주한미군을 주둔시킬 필요가 없다고 오판할 수도 있다.

제2의 애치슨라인이 그어질 수 있는 또 다른 요인은 동맹보다 민족을 앞세우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나친 친북 행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9월 평양 방문에서 판문점선언 부속서인 남북 군사분야 합의서를 체결하는가 하면, 북한의 비핵화가 전혀 진전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적극 추진해왔다. 심지어 문 대통령은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가 ‘지상·해상·공중 등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출동의 근원인 일체의 적대 행위를 전면 중지한다’는 내용의 남북 군사분야 합의서를 명백히 위반했는데도 북한 정권에 항의조차 못 하고 있다. 북한의 이스칸데르급 단거리 탄도미사일은 한국 전체를 타격할 수 있는 만큼 자칫하면 엄청난 안보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유엔 안보리의 제재 조치를 받을 것을 우려해 북한의 미사일은 ‘단거리 탄도미사일’이라고 분명하게 규정조차 하지 않았다. 김정은이 “오지랖 넓은 중재자·촉진자 행세”라는 등 문 대통령을 조롱하고 훈계해도, 문 대통령은 모욕감·굴욕감을 드러낸 적이 없다.

게다가 문 대통령은 중국 정부를 의식해 미국 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 참여 요청을 거부해왔다. 실제로 미국 정부가 남중국해와 인도양 등에서 실시해온 연합 군사훈련에 한국군은 한 번도 동참한 적이 없다. 미국 정부는 일본·호주·인도 등 4개국(QUAD)을 중심으로 인도·태평양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이런 전략은 중국에 대항할 수 있는 국가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동맹 체제를 구축하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 국방부는 지난 6월 1일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에서 한·미 동맹에 대해선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린치핀(linchpin)”으로 표현했지만, 일본에 대해선 “인도·태평양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코너스톤(cornerstone)”으로 명시했다. 한·미 동맹은 동북아에 국한된 국지적인 동맹으로, 미·일 동맹은 인도·태평양 전체로 의미를 확대한 셈이다.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남중국해와 인도양은 에너지와 수출입 상품의 가장 중요한 통로다.

한·미·일의 이지스함들이 2016년 6월 사상 처음으로 미사일 경보 훈련을 실시했다. ⓒphoto 미 해군
한·미·일의 이지스함들이 2016년 6월 사상 처음으로 미사일 경보 훈련을 실시했다. ⓒphoto 미 해군

린치핀과 코너스톤의 차이

문 대통령은 미국 정부의 중국 통신장비 업체인 화웨이 제재 동참 요구에 대해서도 “기업이 알아서 할 일”이라면서 사실상 거부했다. 문 대통령은 사드배치에 대한 중국 정부의 보복 조치에도 제대로 항의조차 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오히려 중국 정부에 추가 사드배치를 하지 않고, 미국의 탄도미사일방어체제(MD)에 참여하지 않고, 한·미·일 안보협력을 진행하지 않겠다는 이른바 ‘3불(不)’을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중국 정부가 북한의 핵무기 폐기는커녕 뒤로는 북한 정권의 생존을 돕는 이중 플레이를 하고 있는데도 시진핑 국가주석에 쓴소리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이런 입장들 때문에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 중 상당수는 한국이 미국이 지켜주어야 할 동맹인지 여부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제2의 애치슨라인이 그어질 수 있는 세 번째 요인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야심이다. 아베 총리의 목표는 평화헌법을 개정해 일본을 전쟁할 수 있고 중국과 패권을 다툴 수 있는 국가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이를 위해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해 인도·태평양 전략을 추진하도록 했고 미·일 군사동맹을 강화해왔다. 아베 총리는 미국이 역내 주둔 군대를 감축하거나 철수할 경우 그 빈자리를 이어받아 중국과의 패권 경쟁에 나서기 위해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적극 추진해왔다. 아베 총리의 이런 전략은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미국 조야의 지지까지 받고 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과거사에 지나치게 집착하면서 철저하게 반일(反日) 노선을 추진해왔다. 문 대통령 취임 이후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과 위안부 재단 해산, 초계기 갈등으로 한·일 관계가 역대 최악으로 치달았다. 문 대통령은 2017년 9월 유엔 총회에 참석했을 당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와 가진 한·미·일 정상 오찬에서 “미국은 우리의 동맹이지만 일본은 우리의 동맹이 아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후 아베 총리는 지난해 연두 시정연설에서 한국에 대해 사용해온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이라는 기존 표현을 삭제했고, 올해엔 한국을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아베 총리는 지난 8월 2일 한국을 우호 국가들을 지칭하는 백색국가 명단(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했다. 한국의 주력산업인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에 필수 소재인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 등에 대한 수출 규제에 이은 이번 조치는 더 이상 한국과는 ‘동맹’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앞으로 아베 총리는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한국을 배제한 채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 만들기에 적극 나설 것이 분명하다. 아베 총리가 문 대통령의 반일·친북·친중 노선을 빌미로 한·미·일 협력 체제를 아예 외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아무튼 6·25전쟁 당시 한국은 미국 등 유엔군의 후방기지 역할을 했던 일본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한·미·일 협력 체제의 기반인 한·일 정보보호협정(GSOMIA) 폐기를 검토하고 있다. 독일의 철혈(鐵血)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지혜로운 자는 역사에서 배운다”고 강조했다. 과거사를 좋아하는 문 대통령은 애치슨라인 제외라는 쓰라린 역사의 교훈부터 철저하게 배울 필요가 있다.

키워드

#이슈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