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무안군의 무안국제공항. ⓒphoto 이동훈
전남 무안군의 무안국제공항. ⓒphoto 이동훈

소위 ‘국가균형발전프로젝트’라고 불리는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대상에 포함된 새만금국제공항은 2020년 정부 예산안에 ‘신설 사업’으로 분류돼 40억원의 설계비가 책정됐다. 기획재정부는 새만금국제공항 조성에 총 8000억원의 사업비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한다. 지난 1월 새만금국제공항이 예타면제사업에 포함됐을 때, 전북 지역 정치권은 일제히 환영 입장을 냈다. 송하진 전북지사(더불어민주당)는 “50년 숙원인 새만금국제공항 건설이 확정됐다”고 반겼다.

하지만 새만금국제공항 건설에 시동이 걸리면서 직격탄을 맞은 곳은 전남 무안국제공항이다. 지난 9월 3일, 광주송정역에서 무안공항으로 향하는 무안광주고속도로는 ‘한국판 아우토반’이란 별명이 무색지 않을 만큼 텅 비어 있었다. 이 고속도로는 무안공항 활성화를 위해 약 600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2007년 개통한 도로다. 광주송정역에서 무안광주 고속도로를 타면 40분 만에 무안공항에 도착한다. 광주 향토기업인 금호고속에서 광주 시내와 무안공항 간 공항버스를 운행하는데, 이날 45인석 공항버스에 탄 승객은 기자 단 한 명이었다.

무안광주고속도로를 질주해 도착한 무안공항 1·2층 도착층과 출발층은 모두 텅 비어 있었다. 운항 스케줄을 확인해 보니 이날 출발하는 비행기는 5편, 도착하는 비행기는 6편에 불과했다. 오전 10시20분 베트남 다낭행 비행기가 뜬 후 저녁 8시10분 필리핀 세부행 비행기가 뜨기까지 10시간 동안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다. 도착장 안을 들여다보니 전기비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듯 완전 소등한 상태였다. 낮 시간 텅 빈 공항에 유일하게 붐비는 곳은 출발층 2층에 있는 직원식당용 한식당밖에 없었다.

무안공항은 1993년 아시아나항공 목포 추락사고 후 목포공항(현 목포비행장)을 폐쇄하면서 옮겨온 공항이다. 광주공항을 합쳐 서남권 거점공항으로 쓸 요량으로 큼직하게 지어놨다. 하지만 무안공항 개항 시 국제선과 국내선을 모두 옮겨오기로 한 광주공항이 국제선만 옮겨오고 국내선 이전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출범 초부터 삐걱대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연간 519만명의 여객을 수용할 수 있는 무안공항의 지난해 이용객은 54만명에 그쳤다. 그나마 개항 초부터 줄곧 10만명 선을 오가던 것에서 5배나 급증한 것이 이 정도다.

2007년 무안공항 개항 후 무안공항 활성화를 위해 지금까지 거의 ‘심폐소생술’을 방불케 하는 정책적 지원이 이어졌다. 우선 1883대를 주차할 수 있는 널찍한 공항 주차장은 연중 무료로 개방한다. 내년 착공 예정인 호남고속철 2단계(광주송정~목포) 역시 무안공항을 경유하는 노선으로 바뀌었다. 나라 살림을 책임지는 기획재정부는 당초 사업비를 아끼기 위해 광주송정에서 목포까지 기존선을 개량한 뒤 무안공항을 지선으로 연결하는 방안을 내놨다.

기재부안대로 하더라도 약 1조3427억원의 사업비가 호남고속철 2단계 사업에 필요했다. 하지만 호남을 주요 지지기반으로 하는 더불어민주당과 옛 국민의당(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으로 분당)이 소위 ‘호남선 KTX 공동정책협의회’라는 것을 꾸려서 호남고속철의 무안공항 경유를 합의하며 기재부를 압박했다. 결국 호남고속철 2단계 사업은 무안공항을 경유하면서 기재부안보다 약 1조원이 추가된 2조4731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이로 인해 호남고속철 2단계 사업은 직선에 가까운 정도를 나타내는 최소곡선반경이 경부고속선(7000m)은 물론 호남고속선(5000m)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미달의 선형이 됐다. 고속선이라고 부르기 부끄러울 정도로, 최고시속 300㎞로 달려야 할 고속철이 제 속도를 못 내는 것은 물론이다. 무안공항을 살리려고 고속선이 희생된 셈이다. 무안공항은 대형기 취항을 위해 기존 2800m의 활주로를 3200m로 연장하는 방안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로 무안공항은 승객들이 조금씩 늘면서 지난해 처음으로 공항이용객이 50만명을 돌파했다. 광주시와 전남도의 합의에 따라 오는 2021년쯤 광주공항의 국내선까지 무안공항으로 이전하고, 오는 2025년 무안공항을 경유하는 호남고속철 2단계 사업이 완공되면 그나마 본궤도에 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데 무안공항과 가까운 새만금에 또 하나의 국제공항이 들어서면 그간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

무안공항 137억 적자, 지방공항 중 최대

현재 새만금국제공항으로 거론되는 곳은 전북 군산공항 옆의 새만금 기본계획상 공항 부지다. 기재부는 지난 1월 새만금공항을 예타면제 대상에 포함시키며 “군산공항을 새만금 내 공항 부지로 이전 확정”이라고 못 박았다. 이곳에 기존 군산공항 활주로와 나란히 3200m의 활주로를 조성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결국 군산공항의 신장개업인데 아무리 긴 활주로를 깔아도 새만금공항은 제주를 제외한 내륙노선 운항이 불가능한 반쪽짜리 공항이 될 확률이 크다. 지금도 군산공항에서는 이스타항공과 대한항공이 군산~제주 간을 하루 3편씩 오가는 데 그친다.

오는 2025년 호남고속철 2단계(광주송정~목포)까지 개통하면 전북 익산이나 정읍에서 무안공항까지는 채 1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결국 새만금국제공항은 지극히 한정된 서남권 국제선 수요를 무안공항과 함께 남북으로 나눠 가져야 한다. 한국공항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무안공항은 137억원의 적자를 내 한국공항공사가 운영하는 14개 공항 중 적자가 제일 컸다. 여수공항(-135억원), 광주공항(-34억원), 군산공항(-29억원) 등 호남권 공항은 모두 적자다.

새만금공항까지 들어서면 서남권 공항의 추가 부실마저 염려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결정한 예타면제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는 없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모두 새만금국제공항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심지어 당장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이는 무안공항을 둔 전남도 역시 마찬가지다. 김영록 전남지사(더불어민주당) 역시 새만금공항 예타면제 결정 당시 “전남북 상생 차원에서 반대할 의사가 추호도 없다”고 밝혔다.

이날 무안공항에서 광주송정역으로 돌아오는 금호고속의 45인승 공항버스는 갈 때와 마찬가지로 역시 기자 한 명만을 태우고 광주로 왔다. 버스기사는 “그래도 갈 때는 좀 있었는데 낮 시간대 일본행 비행기가 취소돼서 승객이 없는 것 같다”며 “지난번에는 2명을 태우고 간 적도 있다”고 말했다. 한·일 관계 악화로 무안~오이타, 무안~기타큐슈는 중단됐고, 무안~나리타, 무안~오사카 노선은 감편됐다. 활주로에서 고추를 말리는 일이 다시 벌어질 수도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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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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