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8일 청와대 본관 집현실에서 열린 공정사회를 향한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참석해 윤석열 검찰총장과 악수를 하는 문재인 대통령. ⓒphoto 뉴시스
지난해 11월 8일 청와대 본관 집현실에서 열린 공정사회를 향한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참석해 윤석열 검찰총장과 악수를 하는 문재인 대통령. ⓒphoto 뉴시스

문재인 정권의 ‘1·8 검찰 대학살’은 대한민국이 과연 제대로 된 법치국가인가 하는 근본적 의문을 던져주었다.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 그것도 민주주의의 꽃인 공명선거를 짓밟고 민의를 왜곡한 정치공작 의혹에 대한 수사는 인사를 빙자한 노골적 방해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였다. 우리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돼 있지만, 무도한 정권은 반(反)헌법적 인사를 통해 자신들을 향한 수사의 무력화를 기도하였다. 워터게이트 사건 수사 검사를 잘라 사법방해죄로 탄핵 위기에 몰려 사임한 미국 제37대 대통령 닉슨이 새삼 2020년 대한민국에 소환되었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자신의 명을 거역한 것이라고 몰아붙였다. 그러나 대다수 법조인들은 검찰총장의 의견을 필수적으로 듣게 되어 있는 검찰청법 제34조를 추미애 장관이 위반한 것이라고 반박한다. 검찰총장 ‘패싱’ 인사는 분명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폭거였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절차적 문제를 넘어 보다 근본적 문제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 첫 질문은 “검찰은 사법인가, 행정인가”이다. 사법고시에 합격해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검사가 왜 행정부 소속으로 일해야 하는지, 명쾌한 답을 준 법조인을 필자는 아직 보지 못했다. 정부조직법 제32조(법무부) 2항은 “검사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법무부 장관 소속으로 검찰청을 둔다”고 하고 있다. 고로 검찰청의 법적 지위는 행정부의 일원인 법무부의 외청이다.

하지만 검찰은 법원과 더불어 사법의 양축이다. 검찰청 건물은 법원 건물과 크기가 같다. 동일한 수준의 기능을 한다는 공간학적 표현인 것이다. 하나 현실은 영 다르다. 법원은 삼권분립의 한 축인 반면, 검찰은 행정부의 일개 외청에 불과하다. 도대체 이 같은 기괴한 불균형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답은 옆 나라 일본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의 검찰청도 내각의 한 부처인 법무성의 외청이다. 앞선 서유럽 근대화의 문물과 제도는 그 상당 부분이 일본을 통해 한국에 수입되었다. 오리지널은 유럽 것인데 일본식으로 변형된 것이 많다. 검찰 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의 기괴한 시스템은 일본 제도를 모방한 결과다. 주지하듯이 한국과 일본은 대륙법 계열 국가다. 그런데 정작 대륙법의 원조인 프랑스와 독일의 제도는 일본, 한국과 상당히 다르다. 다름의 핵심은 최고권력자의 검찰 인사권이다. 한국의 경우 검사의 임명과 보직은 법무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한다고 되어 있는데, 프랑스의 대통령이나 독일의 총리에게는 검찰 인사권이 없다.

검찰 제도가 최초로 생긴 프랑스에서는 검사를 판사와 더불어 사법관이라 부른다. 사법관에 대한 인사는 ‘최고사법평의회’에서 한다. 최고사법평의회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 제정된 제4공화국 헌법에서 사법권 독립을 위한 헌법상 독립기구로 도입되어 대통령이 의장, 법무부 장관이 부의장을 맡았다. 그러나 2008년 헌법 개정으로 대통령의 의장직은 폐지되었다. 총 15명의 위원은 사법관 7명, 외부위원 8명으로 구성된다. 대통령은 외부위원 2명을 지명할 수 있을 뿐이다. 검찰 인사의 경우 법무부 제청에 대해 위원들이 적격, 부적격 판정을 내린다.

독일은 연방제 국가여서 검찰 역시 연방 검찰과 주 검찰로 이원화되어 있는데, 주 검찰에 대한 연방 검찰의 지휘·감독권이 없다. 연방 검찰총장(종신제)과 연방 검사는 연방 법무부 장관의 제청과 연방 상원의 동의를 거쳐 연방 대통령이 임명한다. 하원의 의석수에 따라 정권이 결정되는 내각책임제 국가에서 상원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이다. 주 검찰청의 인사는 16개 각 주의 개별적 권한인데, 지검장은 주 의회의 동의를 얻어 주지사가 임명하고, 검사는 주 법무부 간부회의의 추천으로 주 법무부 장관이 임명하는 경우가 많다. 독일은 검찰 인사를 법관법에 의거해 실시하는데 법관인사위원회에서 선출하는 주도 있다. 독일의 최고권력자인 연방 총리는 검찰 인사권을 전혀 행사하지 못한다.

마피아 및 그들과 결탁한 정·관계 인사 등 거악 척결 수사를 하는 이탈리아 검사의 경우도 최고권력자인 총리로부터 인사권이 철저히 독립되어 있다. 특히 본인이 원하면 한 곳에서 계속 근무할 수 있는 ‘부동성(不動性)의 원칙’이 적용된다. 이런 신분보장이 있었기에 1992년 안토니오 드 피에트로 검사가 주도해 마피아와 결탁한 정·관계 인사들을 법의 심판대에 세우는 ‘마니폴리테’ 운동이 가능하였던 것이다. 정치권력이 마피아 수사 검사를 길들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검사에 대한 경찰의 경호를 중지시키는 것이다.

이런 법치 선진국들과 달리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후발주자인 동유럽의 풍경은 완전 다르다. 2015년 총선에서 과반수를 얻은 폴란드 집권여당은 2017년 7월 정부 여당이 대법원 소속 판사 인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2018년에는 판사 선발권을 지닌 국가사법위원회 위원을 하원이 지명할 수 있도록 했다. 2010년 총선에서 3분의 2 이상 의석을 차지한 헝가리 집권여당은 개헌을 통해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정부가 해임할 수 있고 친여 인사만 헌법재판관에 임명할 수 있게 하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월 14일 신년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의 검찰 인사권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2년 대선 후보 시절, 대통령이 되면 검찰총장을 비롯해 검찰 인사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한 약속과 180도 달라졌다. 아마도 문 대통령은 한국의 검찰 제도가 일본 모방품이라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군국주의 일본은 서유럽의 제도를 수입하면서 중앙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사법기관인 검찰을 행정부에 배속시켰다. 준(準)사법기관이라는 궁색한 용어도 사법부에 속할 검찰을 행정부에 배속시킨 결과의 산물이다. 반일(反日) ‘죽창가’ 정권이 이래도 되는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이들의 실력은 ‘빵’은 괜찮은데 ‘덴푸라’는 일본어여서 안 된다는 수준이다. 빵과 덴푸라 모두 포르투갈어로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래어다.

이제 진정한 검찰개혁의 방향은 분명해졌다. 개헌을 통해 검찰을 사법부로 옮기는 것이 근본적 해결책이지만 일단 관련법부터 개정해 대통령의 검찰 인사권을 폐지해야 한다. 검찰청법 제34조① ‘검사의 임명과 보직은 법무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한다’에서 대통령을 검찰인사위원회로 바꾸면 된다. 검찰인사위원회는 프랑스의 최고사법평의회처럼 중립적이고 전문적인 인사들로 구성하면 된다.

21대 총선이 석 달 앞으로 다가왔다. ‘법의 지배’를 민주공화국의 핵심가치로 여기는 중도보수 정당은 대통령의 검찰 인사권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고 국민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신지호 평론가·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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