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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지호의 正眼世論]  트로트 열풍의 정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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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치
[2594호] 202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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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호의 正眼世論]트로트 열풍의 정치경제학

신지호  평론가·전 국회의원 jayho63@gmail.com

▲ TV조선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터 트롯’의 방송 장면.
TV조선 오디션 프로그램 ‘내일은 미스터 트롯’ 시청률이 25.7%까지 치솟았다. 2011년 종합편성채널 출범 이후 최고치다. 지난해 2월 JTBC 드라마 ‘스카이캐슬’이 기록했던 23.7%의 기존 최고 시청률을 훌쩍 넘어섰다. 그것도 방송 단 5회 만에 이룬 것이기에 더욱 값지다. 1월 30일 목요일 밤 약 1000만명이 ‘미스터 트롯’을 시청하였다. 기세로 보아 시청률 30% 돌파는 시간문제로 보인다.
   
   무엇이 이토록 많은 이들을 열광케 하는 것일까. 지난해 신드롬을 일으킨 ‘미스 트롯’의 후속 프로그램이라는 높은 화제성, 참가자들이 뿜어내는 남다른 가창력과 시청자들을 무대에 몰입시키는 열정적인 퍼포먼스, ‘1 대 1 데스매치’ 등 긴장감 넘치는 연출 등이 인기 구가의 요인으로 분석된다. 특히 전작인 ‘미스 트롯’에 없던 유소년부의 신설도 ‘미스터 트롯’ 흥행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홍잠언, 정동원, 남승민 등 유소년부는 시청자들의 큰 관심을 이끌어냈다. 홍잠언이 부른 ‘항구의 남자’ 영상은 유튜브 조회수 207만건을 넘어섰고, 정동원의 ‘보릿고개’ 유튜브 영상은 242만건을 기록했다.(2월 6일 정오 기준)
   
   그런데 이 같은 미시적 분석과 달리 왜 이 시점에 이런 열풍이 불고 있는지, 한국은 왜 트로트를 권하는 사회가 되었는지, 그 정치경제학적 함의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필자는 트로트 열풍은 경제가 불황임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트로트는 복고풍 문화예술 상품이다. 복고풍 상품은 불황기에 강세를 나타낸다. 잘나가던 시절의 추억과 영광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불황이 깊어질수록, 복고풍 상품의 위력은 증가한다.
   
   1990년대 초 버블붕괴 이후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세월을 경험하였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당시 일본 경제는 저금리·저물가에도 투자와 소비는 늘어나지 않고, 소비와 투자의 위축이 저물가와 저금리를 온존시키는 악순환, 즉 ‘4저불황’을 경험하게 된다. 저금리·저물가·저투자·저소비의 악순환이라는 4저불황의 구조화는 결국 1999년부터 디플레이션을 유발시켰다. 디플레는 2006년까지 지속된 후 나아지는 듯했으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재발하여 제2차 아베 내각 출범 당시인 2012년까지 지속되었다. 무려 14년간에 걸친 지독한 디플레였다. 일본의 경제 주체들은 물가가 더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에서 소비와 투자를 미루었고, 이것이 다시 ‘가격파괴’ 마케팅을 가속시키는 ‘디플레 함정’에 빠진 것이다.
   
   경제 상황이 확실히 개선되고 있다는 대통령의 공언과 달리, 한국 경제는 침체의 늪에 빠져 있다. 세계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초고속·압축 고령화, 과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의 무리한 적용,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지 않는 낡은 제도와 시스템, 근로의욕(working spirit)의 퇴화로 인해 타 선진국에 비해 낮은 경제활동 참가율, 무상복지 남발로 인한 재정투입의 효율성 저하 등을 그 배경으로 꼽을 수 있다. 역대 최저수준의 금리와 물가에도 불구하고 소비와 투자가 꽁꽁 얼어붙는 저금리·저물가·저투자·저소비의 4저불황에 빠져 있다. 버블붕괴 후 디플레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1990년대 일본 경제 상황과 흡사하다.
   
   필자는 1994년부터 6년간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하였다. 당시 체험하였던 일본 사회의 현상과 풍경은 근래 한국 사회에서 겉모습만 바뀌어 재현되고 있다. 가격파괴 경쟁 속에서 초저가 잡화점과 중저가 브랜드가 급성장하는 모습은 빼닮았다. 문화예술계에서는 복고풍 상품이 강세를 보였는데, 고도성장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한 ‘남자는 괴로워(男はつらいよ)’라는 드라마가 각광을 받으면서 각종 잡화 등 파생상품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 또한 한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한국의 복고풍 열풍은 문화예술계를 넘어 전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올 설에 1980〜1990년대 각광을 받던 젓갈, 한차, 커피, 햄, 식용유 선물세트 등이 큰 폭의 매출 증가를 기록하였다. 반면 건강식품, 와인, 프리미엄 상품 등 2000년대 이후 웰빙 열풍으로 인기를 누리던 상품들은 저조한 성적에 그쳤다.
   
   복고풍 열풍은 중장년층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힙지로’로 거듭난 을지로의 노포, 구한말 경성 분위기의 카페와 경양식집을 찾는 밀레니얼 세대 소비자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대형마트에서는 ‘아재 상품’으로 젊은이들에게 외면받았던 모나카, 양갱, 곶감 등의 판매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중장년이 향수로 복고풍을 찾는다면, 청년들은 호기심과 동경심에서 복고풍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전자가 과거를 그리워하며 그 시절로 돌아가려는 레트로라면, 후자는 그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뉴트로다.
   
   오히려 최근에는 뉴트로가 레트로를 압도하고 있다. 온라인 쇼핑사이트 G마켓이 지난해 연령대별 선호 상품군을 분석한 결과 10〜30대는 복고풍을, 40〜60대는 IT기기 등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통적인 연령별 소비공식이 깨진 것이다. ‘미스터 트롯’에서의 뉴트로는 단연 “교회 오빠하고/ 클럽은 왜 왔는데/ 너네 집 불교잖아/ 니가 왜 거기서 나와”라는 가사로 시청자들의 배꼽을 잡았던 영탁의 ‘니가 왜 거기서 나와’다.
   
   복고풍 열풍과 더불어 또 하나의 흥행 요인이 된 것은 오디션이라는 열린 형식을 통한 기회의 제공이었다. 무명의 숨은 고수들은 자신의 끼와 실력을 발산할 수 있었고, 데뷔는 했지만 빛을 보지 못한 가수들에게는 패자부활의 무대가 제공되었다. 인생의 쓴맛도 달게 넘기는 한잔 술처럼 구성지거나 흥이 넘치는 노랫가락에는 애잔한 인생사가 투영돼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욱 몰입하였다.
   
   난세가 영웅을 부르듯이 불황은 성공 스토리를 갈구한다. 그 성공은 산전수전과 우여곡절의 결과물이어야 감동을 배가시킨다. ‘미스터 트롯’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스타 탄생이 아니라, 낮은 곳에서 한 계단씩 올라가는 현실성과 생동감이 밑받침되는 성공드라마여서 많은 이들의 갈증을 풀어주고 있다. 시청자들은 저런 기회가 나에게도 주어질 수 있구나 기대하면서 감정이입을 한다.
   
   복고풍 열풍과 패자부활의 기회 갈구가 상호작용하여 만들어낸 트로트 열풍은 우리 정치가 풀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도 선명히 보여준다. 정부 예산으로 퍼주는 허접한 일자리가 아니라 자신의 피와 땀으로 성취할 수 있는 기회를 보다 많이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정치의 본령이다. 우한 폐렴이 4저불황을 악화시키지 않기를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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