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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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증권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공채 출신으로는 최초로 CEO 자리까지 오른 홍성국 혜안리서치 대표는 증권사 리서치 업계에서는 ‘살아 있는 전설’로 통한다. 그가 대우증권에 입사한 1980년대는 최고의 인재들이 증권사로 몰리던 때였다. 홍 대표는 특히 2008년 미국발(發) 글로벌 금융위기를 1년 전 예측해 유명해졌다. 16년간 7권의 디플레이션 관련 책을 쓰고 리서치 업체를 차려 사회 변화를 분석해온 그는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에 외부 인재로 영입됐다. ‘해설가’가 ‘선수’로 투입된 셈이다. 민주당에서는 그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영입인재 중 경제 전문가로 꼽힐 만한 유일한 인사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정치권에 도전하게 된 계기로 법과 제도의 중요성을 꼽았다. “책을 7권 쓰고 수많은 강연을 다니면서 참 많은 분들을 만났는데 현장에 계신 분들을 통해 한계를 느꼈습니다. 법과 제도를 바꾸지 않고서는 방법이 없다는 걸요.”

홍 대표는 2018년 말 베스트셀러 ‘수축사회’를 냈다.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진행되고 있는 전 세계적 움직임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수축사회는 저성장 기조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정치·경제·환경을 비롯한 사회 모든 영역의 기초 골격이 바뀌는 현상을 가리킨다. 그는 수축사회를 불러온 핵심 요인은 공급과잉이라고 본다. 전쟁이나 기아, 대규모 전염병이 발생하지 않았는데도 인구가 줄어드는 전 세계적 현상이 공급과잉을 불러왔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수축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면 국가든 개인이든 어려운 시기를 겪을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 그의 조언이다. 그는 “세상을 바꾼다는 책을 수천 권 읽고 체계화까지 했지만 법과 제도를 바꾸지 않고서는 방법이 없다는 걸 절감했다”고 강조했다.

“진영 구애받지 않고 핀셋으로 뽑아 써야”

홍 대표는 2004년 ‘디플레이션 속으로’를 시작으로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한 글을 지속적으로 써왔다. 그가 첫 책을 집필하기 시작한 계기는 1997년 말 발발한 외환위기 사태다. 그는 당시 수많은 국민들이 고통받고 어려움을 겪는 과정을 함께 겪으면서 “세상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수축사회’는 출간 1년이 된 현재까지 약 5만부가 팔렸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역시 양극화죠. 한국도 그렇지만 미국도 극우 성향의 트럼프가 집권했고, 반작용으로 극단적 좌파인 엘리자베스 워런 등의 후보가 등장했습니다. 중간지점은 없어지고 본질은 왜곡됐습니다.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 궁극적으로 우리 국민들이 불행해집니다.”

홍 대표에 따르면 한국은 경제적 계층의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50%를 소유하는 국가다. OECD 최상위권이다. 미국은 48%, 일본이 40% 후반대고 복지 시스템이 잘 갖춰진 유럽의 국가들은 상위 10%가 30% 초반대의 소득을 소유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홍 대표는 “양극화가 이 정도로 심해지면 사회 구조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땜질식 복지정책이 아닌, 복지정책의 전반적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 대표는 ‘문재인 정부 들어 내수가 어려워졌다’는 지적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소득주도성장 때문이라고 하는데 일정 부분 그런 측면이 있었다. 속도가 너무 빨랐다”면서도 “본질은 그게 아니라 온라인 때문”이라고 말했다.

“저희 집이 11층인데 오늘 내려오면서 보니 집집마다 새벽배송이 와 있었습니다. 지금 망하는 내수 업종은 1인당 GDP 1만달러 시대에 최적화된 업종입니다. 그때 최고 잘 팔렸던 김밥과 라면을 예전만큼 사람들이 안 사먹어요. 파스타 먹고 브런치 먹죠. 치킨도 ‘두마리 치킨’보다 조금 비싸도 좋은 기름에 깔끔하게 튀긴 걸 선호합니다. 소비 수준이 변하는 거죠. 비디오가게도 비슷해요. 지금은 하나도 없잖아요.” 국민의 소득 수준 향상과 기술 발달에 따라 소비 트렌드가 변화하는 것이 내수 업종의 부침에 보다 근본적인 영향을 끼치는 요인이라는 설명이다.

홍 대표의 지론은 ‘핀셋 이데올로기’다. 복지와 평등을 중시하는 좌파적 정책이든, 성장과 자유를 중시하는 우파적 정책이든 특정 진영 논리에 구애받지 않고 국익을 위해 도움이 되면 어떤 진영에서든 “핀셋으로 뽑아 쓰자”는 주장이다. 그가 주장하는 우파적 정책의 핵심은 “기업 유치를 통해 전체 파이(Pie)를 키우자”는 것. “법인세를 내리고 규제를 풀자, 다 좋은 얘긴데 핵심은 기업을 유치하는 것입니다.” 홍 대표는 “무엇보다도 일을 만들어야 한다. 단순히 일자리를 위한 일 없는 일자리가 아니라 일(거리)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파이를 키우지 않으면 저절로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의 주력 산업이 너무 편중돼 있기 때문이죠.”

그에 따르면 한국의 주력 산업은 소재 산업과 산업재 산업이다. 소재 산업에는 철강·화학·정유 산업이, 산업재 산업에는 기계·조선·건설·운송 산업이 포함된다. 여기에 IT, 자동차 산업을 합치면 4개 산업이 상장기업 기준으로 65%를 차지한다. 홍 대표는 “이 같은 편중도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라며 “4개 산업이 모두 공급과잉이라 구조적으로 우리 경제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서울 강북이나 세종시에 투입될 듯”

이처럼 우리 기업들의 산업구조가 편중되어 있기 때문에 앞으로 제조업에서는 일자리를 늘리기가 어렵다. 여기에 인공지능(AI)의 발전으로 기존 일자리에서 인력들이 설 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도 이어지고 있다. 어떻게 타개해야 할까.

“결국 온쇼어링(Onshoring)이 정답입니다. 해외에 나간 우리 기업들, 외국 기업들이 한국으로 오게 해야 해요.”

홍 대표는 “과거에는 인건비 문제 때문에 중국, 동남아 등 저임금 국가에 나간 기업이 돌아오기 어려웠지만 이제 환경이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전북 새만금호를 묻어 생긴 부지를 정부가 기업에 100년 무상임대로 제공한다고 해보자. 산업용 전기요금은 한국이 세계적으로 낮은 편이고, 공장 용수의 수질도 좋다. 인력의 생산성도 높다. 언어 장벽이 없기 때문이다. 홍 대표는 “스마트팩토리 도입이 확산되면서 이제는 우리나라가 기업을 외국에 뺏길 이유가 없다”며 “적극적으로 기업을 유치해 파이를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뒤 적극적인 온쇼어링과 고립주의 정책을 통해 낮은 실업률과 높은 경제성장률을 동시에 달성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미국부터가 고립주의로 가고 있죠. 트럼프가 미국인 입장에선 잘하고 있는데 이외 국가에서 보면 힘든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신자유주의의 질서에 길들여져 있으니까요. 코로나19 사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업들도 고위층은 이데올로기의 변화가 이렇게 힘든 것이라는 걸 느껴야 합니다.”

충남 연기군(현 세종특별자치시)이 고향인 홍 대표는 이번 총선에 민주당 소속으로 지역구에 출마할 예정이다. 경제 전문가로 비례대표로 투입될 수 있다는 일각의 예측과는 다른 선택이다. 홍 대표는 “이왕 할 바에는 지역구에 나가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며 “서울 강북 지역이 아니면 세종시가 거론되는 것 같은데 사실 저도 어디에 투입될지는 모른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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