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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치
[2631호] 20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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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호의 正眼世論]김대업과 김봉현, 평행이론인가?

신지호  평론가·전 국회의원 jayho63@gmail.com

▲ 지난해 7월 해외 도피 중 필리핀에서 체포된 ‘병풍 사건’의 주역 김대업(왼쪽)과 라임 사태의 핵심 인물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 photo 뉴시스
누군가 정치는 진흙탕 속에서 연꽃을 피우는 작업이라고 했다. 뒷부분은 동의하기 힘들지만, 앞부분은 쉽게 수긍이 간다. 정권을 거머쥐기 위해서는 더러운 물에 손을 담가야 한다. 그게 냉엄한 현실이다. 누군가 악역을 할 사람이 필요하다. 악역의 부류는 정치인이 직접 할 수 있는 역할과 할 수 없는 영역으로 나뉜다.
   
   5공 시절까지 정치인이 직접 할 수 없는 역할을 대행한 것은 깡패였다. 이승만 정부 시절, 권력과 결탁하여 각종 만행을 저지른 이정재, 임화수부터 1987년 통일민주당 창당대회를 조직폭력배들이 방해한 일명 용팔이 사건에 이르기까지 정치깡패는 한국 정치사의 빼놓을 수 없는 구성요소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깡패는 사라지고 사기꾼이 등장하여 맹활약(?)하고 있다. 정치사기꾼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인물은 김대업이다. 김대업은 군인 출신으로 병무 관련 부사관으로 예편하였다. 김대중 정부 시절 군과 검찰은 대대적으로 병역비리 수사를 했다. 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수사였다. 군의관에게 돈 주고 자식 군 면제를 받아낸 부모들, 둘을 연결해준 브로커 등 수백 명이 적발됐다. 이즈음 전과 7범의 병역 브로커가 전문가를 자처하며 수사에 끼어들었다. 수사팀에 전화를 걸어 “병역비리 커넥션을 잘 알고 있다. 이 기회에 새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의무 부사관 출신 김대업이었다. 사기행각으로 감옥을 들락거리면서도 1년 넘게 수사관 행세를 했다.
   
   김대업은 2002년 제16대 대선의 핵심 변수였다. 그해 7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두 아들 병역 문제와 관련해 “병적기록표가 위·변조됐다” “병역비리 은폐 대책회의가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정국은 이른바 ‘병풍(兵風)’으로 요동쳤다. 김대업은 국군수도병원 부사관이었던 김도술의 목소리가 담겼다는 녹음테이프를 증거 자료로 제시하였다. 검찰은 대선 두 달 전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김대업 주장이 대부분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결정적 증거라고 제출된 녹음테이프는 녹음 시점보다 2년 뒤 생산된 제품이었다. 조작이 들통나자 김대업은 “배가 아프다”며 숨어버렸다. 검찰은 “(범죄) 신고자인 김대업을 사법처리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발을 뺐다. 병풍의 직격탄을 맞은 이회창 후보는 진실 규명에 따른 지지율 회복의 시간을 갖지 못한 채 노무현 후보에게 2.3%포인트, 57만표 차로 패배하였다.
   
   김대업은 국민을 농락해 놓고도 “대선이란 전쟁터에서 죽음을 불사하고 싸웠다”고 큰소리를 쳤다. 나중에 야당이 사과하라고 하자, 야당 당사로 사과상자를 보내기도 했다. 그를 수사한 검사는 “김대업은 거짓과 사실을 교묘하게 뒤섞어놓는 재주가 있었다”고 했다.
   
   김대업을 키워준 건 민주당과 언론, 검찰이었다. 그해 6월 지방선거에서 참패하고 이회창 대세론에 위협을 느낀 민주당은 김대업발 병풍에 명운을 걸었다. 추미애는 김대업을 “용감한 시민”이라고 했고, 박양수는 “신념을 가진 의인(義人)”이라고 치켜세웠다. 이해찬은 “그쪽(검찰)이 국회 대정부질문을 통해 병역 의혹을 제기해 달라고 했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병풍 유도’ 논란을 일으켰다. 한 공중파 방송은 대선 기간 김대업의 거짓말을 101건이나 대서특필했다. 검찰은 배후와 관련한 수사는 하는 둥 마는 둥 덮어버리고, ‘테이프 조작’을 밝혀낸 검사를 한직으로 쫓아냈다.
   
   ‘평행이론’은 서로 다른 시대를 사는 두 사람의 운명이 같은 패턴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이론이다. 2020년의 김봉현은 2002년의 김대업과 매우 흡사하다. 1조5000억원의 금융사기를 저지르고 구속돼 재판 중인 김봉현은 최근 잇따른 폭로를 통해 정·관계 로비의 화살을 야당 정치인과 검찰로 돌렸다. 라임, 옵티머스펀드 사기 연루 의혹으로 곤혹스러워하던 여권은 반색을 하며 역공을 취하기 시작했다. 추미애는 김봉현을 공익제보자로 칭하면서 전광석화와 같은 감찰과 수사를 지시하였다. 사기 전과자의 말을 믿고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을 박탈하였다.
   
   현역 검사 3명을 강남 룸살롱에서 접대했다는 의혹은 아직 확인이 안 되고 있지만, 검찰 조사 과정에서 술 접대 관련 진술을 했는데 뭉갰다는 의혹, 야권 정치인 비리 제보를 받고도 수사를 뭉갰다는 의혹 등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윤석열 사단과 ‘딜’을 하기 위해 강기정 5000만원 건을 불었던 게 아니라, 자신이 먼저 여권 정치인들의 비위 의혹을 언론 플레이한 사실도 드러났다. 김봉현의 동업자였던 이강세의 변호인은 김봉현의 폭로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말하면 안 믿어주니까 사실과 거짓을 섞어 과장하고 있다”고 평했다. 18년 전 김대업의 수법과 비슷하다. 일관성이 없는 오락가락 진술도 닮았다.
   
   그런데 추미애가 올해 검찰개혁을 명분으로 세 차례 발동한 수사지휘는 사기꾼의 주장을 근거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추미애는 지난 6월 “한명숙 전 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이 검찰의 거짓 진술 강요로 조작됐다”고 주장한 재소자 한모씨 참고인 조사를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실이 아닌 대검 감찰부에서 진행하라는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대검 감찰부장은 진보성향 법관 모임 소속의 판사 출신으로 조국 전 법무장관이 추천한 인물이다. 한씨는 ‘기업사냥’ 범죄와 각종 사기·횡령 등의 전과로 징역 20년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현재도 복역 중이다. 한씨는 한명숙 사건과는 직접적 연관이 없다. 구치소 수감 당시 한명숙에게 돈을 줬다는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가 검찰로부터 거짓 진술을 강요당했다는 정황을 옆에서 전해 듣거나 목격했다고 주장할 뿐이다.
   
   지난 7월 추미애는 채널A 사건 수사팀이 총장에게 보고도 하지 말고 감독도 받지 말라는 내용의 수사지휘권을 또다시 발동했다. 7000억원대 불법사기 혐의로 징역 14년6월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금융사기범 이철 전 VIK 대표가 채널A 기자로부터 협박당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된 사건이다. 이철씨와 만난 적도 없는 사기·횡령 전과 5범의 ‘제보자X’ 지모씨가 이씨의 ‘대리인’으로 나서 채널A 기자를 접촉했으며, 그 내용을 전달받은 MBC는 ‘검·언 유착’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보도했다.
   
   이 두 사건은 추미애의 의도와 달리 사기꾼들의 주장이 허위였음이 시간이 갈수록 명확해지고 있다. 누구보다 냉정하고 신중해야 할 일국의 법무부 장관이 사기꾼들의 작두에 올라타 춤을 춘 셈이다.
   
   2002년과 2020년을 비교해 보면, 사기꾼의 정치 개입은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사기꾼에 의해 선거 결과가 왜곡되고, 법의 심판이 교란되는 현상은 한국 민주주의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2002년 병풍 사기는 김대업이 1년9개월 감옥 생활을 하는 것으로 끝났다. 이번에는 달라야 한다. 사기꾼들과 결탁한 정치인들에게 충분한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한다. 죗값을 제대로 치르게 하는 것은 정의 실현의 필수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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