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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7호] 2020.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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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호의 正眼世論]민주와 독재가 한 몸인 586의 민주주의관

신지호  평론가·전 국회의원 jayho63@gmail.com

▲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 12월 9일 국회 본회의장 입구에서 공수처법 개정안 처리 등을 위해 본회의에 참석하는 여당 의원들을 향해 공수처법 저지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photo 뉴시스
자칭 ‘민주정부 3기’인 문재인 정부하에서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거여(巨與)의 입법 폭주는 거침이 없다. 표현의 자유를 옥죄는 ‘대북삐라금지법’ ‘5·18왜곡처벌법’에 이어 야당의 비토권을 없애는 공수처법 개정까지 일사천리로 밀어붙이고 있다.
   
   이에 대해 보수야당은 ‘좌파독재’라고 비난하고 있으며, 진보정치학계의 원로 최장집 교수는 “운동권 엘리트와 ‘빠’ 세력이 결합한 유사전체주의”라고 진단한다.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는 “현재 일어나는 민주주의 위기는 군사 쿠데타나 민중 봉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폭력적으로 붕괴하는 전통적 위기가 아니다”라며 “선출된 정부에 의해 민주주의가 점진적으로 침식된다는 점에서 전례 없는 위기”라고 평했다.
   
   하버드대 정치학자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라는 책에서 선거로 선출된 합법적 권력이 어떻게 독재로 변해가는지를 분석했다. 그들은 △정치적 경쟁자에 대한 부정 △삼권분립 등 민주주의 규범에 대한 거부 △언론 및 감시기관의 기본권 억압 등으로 합법 권력이 독재 권력으로 변해간다고 지적했다. 작금의 한국 상황과 딱 맞아떨어진다.
   
   민주주의의 퇴행과 붕괴라는 비판과 지적은 전임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김대중은 용서와 화해를 몸소 실천하였고, 노무현은 당청분리와 대연정과 같은 파격적 실험을 마다하지 않았다. 진일보했어야 할 3기 민주정부는 도대체 왜 그런 비판에 직면한 것일까.
   
   그 핵심적 원인은 집권 586의 민주주의관에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운동권 586은 김대중 정부 시절 ‘젊은 피’ 수혈 차원에서 정치권에 진입했고, 노무현 정부 시절 ‘우희정-좌광재’로 활약했으나, 이번 정권만큼 국정운영의 중추세력으로 자리 잡은 적은 없다.
   
   집권 586은 대학 시절 전두환 정권의 권위주의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한 것을 최대의 자산으로 삼고 있다. 사람들은 그런 겉모습을 보고 그들이 민주적 사고의 소유자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정작 그들이 학창 시절 민주주의에 대해 어떤 학습을 했고 어떤 사고를 형성했는지 알게 되면 깜짝 놀랄 것이다. 그리고는 이내 문재인 정권에서 왜 민주주의의 퇴행과 붕괴가 일어나는지를 간파하게 될 것이다.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민주와 독재를 공존 불가능한 정반대의 것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586이 학창 시절 터득한 민주주의론에서는 민주와 독재가 동전의 앞뒷면 관계다. 1980년대 운동권은 자유민주주의를 보수야당의 이데올로기로 치부하며, 그 대안으로 민중민주주의를 꿈꾸었다. 주지하듯이 민중민주주의는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의 중국적 변형인 인민민주주의의 한국 버전이다.
   
   마르크스는 계급이 완전히 소멸되는 공산주의 사회로의 이행기인 사회주의 단계에서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를 구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동의어다. 노동자 계급에는 민주주의를, 자본가 계급에는 독재를 하는 것이 곧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이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다. 부르주아에 대한 독재를 통해 그들을 소멸시켜야 계급 없는 사회가 실현된다고 본 것이다.
   
   자본주의 발전이 늦었던 중국에서는 많지 않은 노동자들만으로 혁명을 도모할 수 없었다. 그래서 농민과 진보적 지식인, 민족자본가까지 규합해 군벌과 매판 자본가 세력을 타도하는 마오쩌둥의 인민민주주의 혁명론이 등장했던 것이다. 당연히 인민민주 정권은 군벌과 매판 자본가들에게 독재를 실시한다.
   
   수십 년 전 학습 내용을 들추는 것은 색깔론을 펴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집권 586 역시 오랜 세월의 풍파를 겪으면서 젊은 시절의 미몽에서 깨어나 진화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 들어 진행되고 있는 ‘적폐청산’과 ‘민주개혁’의 양태를 보면, 젊은 시절 학습의 잔상(殘像)이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집권 586들에게 적폐세력은 타도와 청산의 대상이지 대화와 타협의 상대가 아니다. 적폐세력에는 독재를 해야 하는 것이다.
   
   최장집과 진중권은 운동권 전체주의, 문(文)주주의를 논하면서 독일 나치의 이론가 칼 슈미트와의 유사성을 들었는데, 아마도 민주당 586의 대다수는 칼 슈미트에 대해 학습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지독한 피아 구분 및 적대와 배제의 정치는 운동권 시절 사회주의 학습의 영향이라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얼마 전 금태섭은 민주당을 떠나면서 “지금의 민주당은 김대중, 노무현이 이끌던 민주당이 아니다”라고 정곡을 찔렀다. 문제의 핵심은 다양성을 인정하는 당내민주주의(introparty democracy)의 실종이다. 현재 민주당 내에는 당내민주주의가 있어야 할 자리에 민주집중제(democratic centralism)가 또아리를 틀고 있다.
   
   민주주의적 중앙집권제의 줄인 말인 민주집중제는 인민민주주의의 바탕 위에서 권력을 집중적으로 행사하는 시스템을 일컫는다. 밑으로부터 창의성과 자주성 등의 에너지를 결집시키는 것이 앞의 민주이고, 조직을 일사불란하게 만들기 위해 통일된 방침과 실행을 제도화하는 것이 뒤의 집중이다. 마오쩌둥은 중국공산당이 실천할 민주집중제의 네 가지 원칙으로 소수의 다수에 대한 복종, 개인의 집단에 대한 복종, 하부의 상부에 대한 복종, 전당(全黨)의 중앙에 대한 복종을 제시하였다. 요컨대 앞의 민주는 장식품이고 뒤의 집중이 본질인 것이다. 민주집중제는 공산당 일당독재의 필수 메커니즘이다.
   
   집권 586이 학창 시절 학습했던 민주주의론은 민주집중제였다. 자유민주주의, 표현의 자유, 법의 지배, 삼권분립, 견제와 균형 등은 운동권 커리큘럼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검경수사권 조정을 추진하면서, 수사권과 기소권 모두를 부여하는 공수처를 만드는 것에 모순을 느껴 공수처법 표결에서 기권표를 행사한 것은 국회의원으로서의 양심에 따른 행동이었지만, 민주집중제의 관점에서는 허용할 수 없는 일탈이었다. 금태섭은 민주집중제를 따르지 않은 ‘죄’를 지은 것이다.
   
   지금의 민주당은 친문 일색화(一色化)가 높은 수준으로 구현된 정당이다. 올 4월 총선을 치르면서 친문 일색화의 농도는 한층 짙어졌다. 이런 정당에 자유민주주의를 논하는 것은 우이독경(牛耳讀經)이다. 지금은 ‘제2의 민주화운동’을 전개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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