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광주 민족민주열사묘역(구 망월동 5·18묘역)의 전두환 기념비를 밟고 선 이재명 경기지사. ⓒphoto 뉴시스
지난 5월 광주 민족민주열사묘역(구 망월동 5·18묘역)의 전두환 기념비를 밟고 선 이재명 경기지사. ⓒphoto 뉴시스

성남 대장동 사태로 코너에 몰린 이재명 경기지사를 방어하기 위해 더불어민주당은 ‘택지개발촉진법(이하 택촉법)’을 소환했다. 박근혜 정부가 지난 2014년 택촉법 폐지를 추진하면서 민간업자들을 위한 꽃길을 깔아줬다는 지적이다. 이재명 지사 역시 지난 10월 5일, 국회 국토교통위 국감에서 이 같은 발언을 한 진성준 민주당 의원의 기사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유했다.

하지만 이는 과거 택촉법을 ‘전두환의 유물’로 비판해온 민주당의 기존 입장과 상충된다는 지적이다.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 설계자인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택촉법은 1980년 유신정권 붕괴 후 등장한 신군부가 통치권을 확립하기 위해 설치한 국보위에서 만든 법”이라며 “이 법은 사유재산권을 현저히 제약하는 그야말로 행정편의 입법”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수용권’이 본격적으로 위력을 발휘한 것도 전두환 정부 때 ‘주택난 해소’를 위해 주택 500만호 건설을 추진하면서다. 수용에 따른 형식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중앙토지수용위원회(중토위)’라는 기구를 만들기는 했지만, 건설부(현 국토부) 장관이 ‘택지지구’로 지정만 하면 택지개발을 막을 수 없었다. 보전녹지와 절대농지로 묶인 곳도 택촉법이 적용되면 관계 법령과 상관없이 단번에 ‘택지’로 바꿀 수 있는 위력적인 법률이었다. 심지어 택지지구 내 분묘(墳墓)도 유족들의 동의 없이 관을 파내 이장할 수 있는 권한마저 부여돼 있었다.

‘수용권’을 앞세운 ‘택촉법’이 제정된 직후, 서울과 수도권에는 대단위 택지지구와 신도시가 우후죽순 들어섰다. 서울만 해도 개포·고덕·상계·중계·목동 등 대단위 택지지구 대부분이 ‘수용권’으로 확보한 토지 위에 들어선 곳들이다. 노태우 정부 때 ‘주택 200만호 건설’에 따라 조성된 분당·일산·산본·평촌·중동 등 ‘1기 신도시’ 역시 마찬가지다. 손정목 전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지금까지 약 6000개의 법률이 제정공포되었지만, 택촉법만 한 위력을 가진 법률이 과연 몇 개나 있었을까를 생각해본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택촉법으로 초래된 목동·사당동·상계동 철거민 사태 때 원주민 편에 섰던 민주당이 되레 ‘수용권’을 핵심으로 하는 택지개발을 옹호하고 나선 현실이다. 노무현 정부 때 입안된 화성동탄 등 12개 ‘2기 신도시’와 행정수도 세종시를 비롯 10개 혁신도시 등은 모두 ‘수용권’을 앞세운 토지공기업이 녹지와 농지를 일괄수용해 세운 곳들이다.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고양창릉 등 ‘3기 신도시’ 역시 마찬가지다. ‘수용권’이 없으면 이 많은 신도시를 빵틀에서 찍어내듯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1993년 결성된 전국철거민협의회 중앙회(전철협)는 지난 10월 1일 시국 기자회견을 열고 “대장동 특혜의혹은 공익사업을 가장한 사익추구에 혈안이 된 사업구조”라며 “근본적으로 토지수용 지역 주민들의 재산권, 주거권, 생존권은 보장받지 못하는 군사정권에서 만든 구조를 개혁하지 않고는 대장동 사업구조는 유지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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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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