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2일 서울 조계사 입구에 ‘정청래는 즉각 사퇴하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조계종은 1월 21일 조계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정권의 종교 편향과 불교 왜곡’을 시정하는 ‘승려대회’를 열기로 했다.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1월 12일 서울 조계사 입구에 ‘정청래는 즉각 사퇴하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조계종은 1월 21일 조계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정권의 종교 편향과 불교 왜곡’을 시정하는 ‘승려대회’를 열기로 했다.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불교계와 정부·여당 사이에 전면전이 벌어지는 것일까. 대한불교조계종은 오는 1월 21일 조계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승려대회’를 열기로 했다. 2월 말엔 ‘범불교도 대회’도 예고하고 있다. 종교 편향과 불교 왜곡을 시정하겠다는 것이다. ‘범불교도 대회’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이후 13년 만에 처음이다. 승려대회는 문자 그대로 스님들이 모이는 행사이고, 범불교도대회는 스님뿐 아니라 불교 신자들까지 집결하는 대규모 행사다. 대선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조계종은 왜 이렇게 정부·여당에 대해 날을 세우는 것일까.

불교계와 정부·여당 갈등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장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의 ‘봉이 김선달’ 발언 이후다. 당시 정 의원은 사찰 문화재 관람료 문제를 거론하면서 문화재 관람료를 ‘통행세’, 관람료 징수 사찰은 ‘봉이 김선달’에 빗댄 바 있다. 불교계는 발끈했다. 그러나 정 의원은 불교계의 반발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불교계의 항의방문이 잇달았고, 결국 송영길 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대선후보가 대신 사과했다. 지난해 11월 8일 이재명 후보는 조계종 총무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총무원장 원행 스님에게 “우리 식구들 중 하나가 과한 표현으로 불교계 심려를 끼쳐드렸다. (송영길) 대표도 사과의 말씀을 드리긴 했는데 저도 대표할 자격이 있다면 대신 사과를 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에둘러 표현한 ‘대리 사과’였다. 이 면담에서 원행 스님의 대답은 “그분이 빨리 사과를 ‘잘못 생각했다’든지 이렇게 하면 되는데 고집이 센 것 같다”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해 11월 8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조계종 총무원장인 원행 스님을 예방해 정청래 의원의 발언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해 11월 8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조계종 총무원장인 원행 스님을 예방해 정청래 의원의 발언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촉발은 정청래 ‘봉이 김선달’ 발언

이때까지만 해도 조계종과 여당의 분위기는 봉합이 가능했다는 것이 불교계 안팎의 이야기다. 이날 대화의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에도 한동안 정 의원 본인의 사과는 없었다.

사실 문화재 관람료 문제는 불교계의 오랜 숙제다. 전국의 명산(名山), 특히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들은 대부분 사찰 소유 토지이다. 그러나 국립공원으로 묶여 있어 재산권 행사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 불교계 입장. 반면 사찰 내에 소장된 국보·보물을 비롯한 문화재는 스님들이 사찰에 살면서 관리하고 있는데, 그 노력은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을 불교계는 아쉬워하고 있다. 의무는 있는데 권리는 행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문화재 관람료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것은 2007년. 그 이전까지는 국립공원 입구에서 국립공원 입장료와 문화재 관람료를 통합 징수했다. 마치 전기료에 TV수신료를 붙여서 함께 징수하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TV수신료 거부’ 움직임이 있지만 전기료에 묶여 있기 때문에 수신료만 따로 안 낼 수 없는 것과 같은 방식이었다.

그러나 2007년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똑같은 위치의 매표소에서 국립공원 입장료는 안 받는데, 문화재 관람료만 내라고 하니 문화재 관람료가 등산객들의 집중 타깃이 됐다. 특히 불교 신자가 아닌 경우엔 “난 산에만 간다. 사찰의 문화재는 안 볼 거다”라며 항의하는 경우도 잦았다. 사찰들로서는 “등산객이 가는 등산로도 모두 우리 사찰 소유”라고 해명을 해봐야 잘 통하지 않았다. 물론 불교계도 백담사(설악산), 천은사(지리산) 등 주요 등산로 입구의 사찰은 문화재 관람료를 폐지하는 등 자구 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지금도 곳곳에서 문화재 관람료 갈등은 말끔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정 의원의 국감 발언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조계종의 거듭된 요구에도 사과를 거부하던 정 의원은 결국 당대표, 대선후보의 대리 사과 이후인 지난해 11월 25일 조계사를 찾았다. “총무원장을 뵙고 사과하겠다”고 했지만 문전박대 당했다. 조계종의 반응은 “이미 늦었다”는 것이었다. “조계사 법당 부처님께 참배라도 하고 가겠다”는 요청도 거부당했다. 불심(佛心)이 완전히 돌아선 것.

지난해 11월 25일 이른바 ‘통행세’ ‘봉이 김선달’ 발언을 사과하기 위해 서울 조계사를 찾은 정청래 민주당 의원. ⓒphoto 뉴시스
지난해 11월 25일 이른바 ‘통행세’ ‘봉이 김선달’ 발언을 사과하기 위해 서울 조계사를 찾은 정청래 민주당 의원. ⓒphoto 뉴시스

‘캐럴 캠페인’으로 앙금 쌓여

정 의원 발언 파문이 확산하는 동안 정부·여당으로서는 또 다른 ‘악재’가 터졌다. 지난해 12월 들어 문화체육관광부가 천주교 서울대교구와 함께 진행한 ‘캐럴 캠페인’이 문제였다. 코로나19 일상회복에 맞춰서 예산 10억원을 들여 연말 분위기를 살려보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조계종은 발끈했다. 종교중립을 위반한 종교편향적 정책이라는 것이었다. 당황한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비공개로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을 만나 해명하며 진화에 나섰으나 이미 집행한 예산을 회수할 수는 없었다. 민주당은 당내에 전통문화특위(위원장 김영배 의원)를 구성해 관련법 개정 등을 위해 노력하며 성난 불심(佛心)을 진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평소 같았으면 물밑 대화로 소통이 가능했을 사안이었겠지만 여러 문제가 중첩되고 불신이 누적된 상황에서 ‘캐럴 캠페인’은 앙금만 더 쌓이게 만들었다.

그 사이 불똥은 조계종 내부로도 튀었다. 일반 사회의 국회 격인 ‘중앙종회’가 총무원 집행부가 미온적이라며 성토하기 시작한 것. 결국 조계종 총무원의 수석 부장인 총무부장 금곡 스님이 사퇴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이후 조계종은 전국 사찰에 정청래 의원의 사퇴를 촉구하는 현수막을 일제히 내걸었다. 지금도 서울 조계사 일주문 앞에는 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중앙종회에 이어 전국교구본사주지협의회 등이 나섰고, 이 무렵부터 정부·여당과 갈등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불교계 일부에서는 조계종의 강경 드라이브에 대해 전 총무원장 자승 스님의 배후설을 제기하기도 한다.

불교계에서는 정청래 의원의 ‘통행세’ 발언은 불씨였을 뿐, 이미 불교계와 정부·여당 사이에는 ‘유증기’가 가득했다고 말한다. 단적인 예가 지난해 12월 중앙종회가 ‘종교편향 불교왜곡 대응 특별위원회’를 구성하면서 내놓은 자료다.

“가톨릭만 받드는 문재인 정부”

왜 이런 특위를 만들게 됐는가를 설명하는 이 자료는 제목부터 ‘가톨릭만 받드는 문재인 정부’다. 이 자료는 모두 11가지 사례를 들고 있다. ‘취임하자마자 청와대서 축복미사(축복식의 착오)’ ‘해외순방 마지막은 성당 방문 관행 이어져’ ‘국가인권위원회 공식행사를 명동성당에서 개최’ 등이다. ‘청와대 축복미사’는 2017년 5월 13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입주 후 자신이 출석하던 홍제동 성당 신부와 수녀를 초대해 축복식을 한 것을 말한다. 천주교 신자들은 집을 이사하거나 가게를 새로 냈을 때 사제를 초청해 축복식을 갖곤 한다. 조계종은 당시 이 축복식 장면이 소셜미디어(SNS)를 거쳐 언론에 공개됨으로써 ‘문재인 정부의 종교편향 정책 신호탄’이 됐다고 본다.

이후 문 대통령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을 성사시키기 위해 해외 순방 때마다 현지의 가톨릭 지도자를 만났으며 교황과는 두 차례 면담도 가졌다. 그때마다 청와대가 쓴 ‘알현’이란 표현도 불교계는 불편하게 여기고 있다.

이 자료의 마지막 11번째 항목은 ‘청와대에 불자(佛子)가 오죽 없었으면 무종교인을 청불회장으로’이다. 지난해 5월 청불회 회장을 이철희 정무수석이 맡게 된 것을 가리킨다. 청와대 내 직원들의 종교모임으로는 청불회(불교), 청기회(개신교), 청가회(천주교)가 있다. 각 모임의 회장은 일반적으로 비서실장, 정책실장, 경호실장 등과 수석비서관이 맡아왔다. 그런데 청불회의 경우는 종교가 없는 이철희 수석이 청불회장을 맡게 됐다는 의미다. 특히 ‘오죽 없었으면’이란 구절에서는 감정적인 느낌까지 묻어난다. 알려진 대로 현 정권은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천주교 신자들이 정부·여당에 많다.

이 문건 내용을 보면, 불교계가 현 정권에 가진 불만 내지는 섭섭함은 정청래 의원의 돌출발언이 아니라 정권 초기부터 차곡차곡 쌓여왔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정청래 의원 정도가 아니라 청와대에 대한 불신의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지난 5년간 약속 지킨 게 없다”

조계종의 한 교구 본사 주지스님은 “현 정권은 5년 동안 불교계와 약속을 지킨 적이 없다는 것이 불교계 정서”라고 말했다. 지난 5년간 문화재 관람료를 비롯해 국립공원 내 사찰 문화재와 경내지(땅) 가치에 대한 충분한 보상과 과도한 규제를 완화해 달라는 등의 불교계 문제 해결에 정부·여당이 진지한 태도를 보이지 않다가 선거를 앞두고 정 의원 발언 등이 돌출하자 부랴부랴 진화에 나서고 있다는 시각이다. 한마디로 “우리를 무시한다”는 정서가 짙게 깔려 있다. 지난해 12월 14일 자 조계종 기관지 ‘불교신문’ 지면은 이런 정서를 잘 보여준다. 1면 톱은 ‘캐럴 캠페인, 종교중립 위반 불법행위’였으며 3면은 ‘민주당 약속은 말뿐… 전통문화 예산 배려 없었다’ ‘잇단 종교편향… 범불교계 강경대응 예고’ ‘캐럴 중단 안 하면 장관 사퇴 요구’ 등의 기사가 실렸다. 결국 사찰 재산권과 문화재 관람료 등의 경제적 문제가 저변에 깔린 상태에서 최근 들어 정부·여당이 보인 태도 문제까지 겹치면서 불교계가 폭발한 셈이다.

조계종은 결국 ‘승려대회’ 카드까지 빼들었다. 조계종 총무원은 지난 1월 4일 종무회의에서 ‘종교편향 근절과 한국불교 자주권 수호를 위한 전국승려대회(가칭) 봉행위원회’를 구성했다. 총무원장 원행 스님이 봉행위원장을 맡고 중앙종회 의장, 호계원장, 교육원장, 포교원장, 교구본사주지협의회장, 전국선원수좌회 대표, 전국비구니회장 등이 참여하며 종정 진제 스님의 법어도 발표할 예정이라고 조계종은 밝혔다. 사실상 조계종 모든 기구가 참여한다는 뜻이다. 조계종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지난 1월 6일 청와대 유영민 비서실장과 이철희 정무수석, 방정균 시민사회수석은 총무원장 원행 스님과 비공개 면담을 가졌지만 뚜렷한 해결책은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계종은 이미 전국 교구(敎區) 본사(本寺)별로 참석인원 체크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오는 1월 21일 약 5000명의 스님들이 조계사 앞마당에 모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교계 일각에선 ‘승려대회’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금까지 승려대회는 종단이 큰 위기에 빠졌을 때 스님들이 자발적으로 열어왔다. 1994년 종단 분규 때가 그랬다. 최근엔 2017년 당시 총무원장 설정 스님의 사생활 문제가 불거졌을 때 일부에서 승려대회 개최를 주장했지만 실행되지는 못했다. 조계종 내부적으로는 현 정권에 대한 불만과 섭섭함이 누적됐지만 일반 국민들로서는 잘 모르는 사안이라는 점도 문제다. 일반 국민들로서는 ‘정청래 발언’ 외에는 알고 있는 내용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전국의 스님 5000명이 상경해 조계사 마당에 모여 구호를 외쳤는데, 정작 일반 국민들이 주장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공감하지 못한다면 이후의 역풍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점을 의식해 조계종은 홍보에도 적극 나선다는 계획이다.

MB정권 충돌과 닮은꼴

‘승려대회’와 별도로 2월 말로 예고된 ‘범불교도대회’ 강행 여부도 주목된다. 가장 최근 범불교도대회가 열린 것은 2008년 8월.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이른바 ‘고소영 내각’으로 불려왔다. 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출신 위주로 꾸려진다는 이야기였다. 이때도 불교계는 부글부글했다. 당시 국토해양부의 대중교통시스템에 교회·성당은 표기하고 사찰을 누락시켰고, 경호처 차장의 “모든 정부부처의 복음화가 나의 꿈” 발언, 경찰청의 ‘복음화 포스터’ 등의 경우가 이어졌다. 누적된 불만이 범불교도대회로 폭발한 계기는 2008년 7월 당시 총무원장 지관 스님 검문 사건이다. 당시 조계사에는 광우병국민대책위와 민노총 수배자들이 피신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조계사 정문 앞에서 총무원장의 관용차가 검문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검문 경찰은 총무원장의 신분증을 확인하고 차량 내부와 트렁크까지 검색했다. 이 사건이 결국 8월의 범불교도대회로 이어졌다. 당시에도 불교계의 요구사항이 뚜렷하지는 않았다. 포괄적으로 ‘정부의 종교차별 철폐’ 등을 요구했다. 조계종은 “참을 만큼 참았다. 점잖게 대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는 분위기였다. 총무원장 지관 스님은 범불교도대회를 앞두고 “수행에 있어서는 시비를 초월해야 하지만 현실사회에서는 옳고 그름을 따져 바로잡는 것이 종교의 역할”이라며 “점잖은 것만이 우리의 자세가 아니며 정도가 지나치면 시정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우리의 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정부가) 불교계에 대해 지나친 부분이 많았다. 그동안 줄기차게 시정 요구를 했지만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며 “잘못된 것을 방치하는 것도 계(戒)를 범하는 일”이라고 했다.

당시 범불교도대회의 진행과정과 이번 승려대회의 진행과정을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대통령이 특정 종교 신자로서 부지불식간 종교색을 드러냈다는 점, ‘계속 참고 있으니 불교를 무시한다’는 정서가 바탕에 깔려 있다는 점, 그리고 정권이 다소 힘이 빠졌을 때라는 점이 공통적이다. 2008년 당시 이명박 정권은 광우병 시위 등으로 크게 휘청거린 이후다. 이번에는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두고 있다. 차이점은 2008년엔 보수정권, 이번엔 진보정권과 갈등을 빚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이번엔 바로 범불교도대회로 직행하지 않고, 승려대회를 먼저 열고 1개월 후 범불교도대회를 예고한 것은 일종의 ‘완충장치’를 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한 달 사이 물밑 대화의 여지를 남긴 것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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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수 조선일보 종교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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