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스포츠를 통틀어 코칭스태프의 역량이 가장 적게 발휘되는 종목은 무엇일까.

미국에서는 야구를 첫 번째 손가락에 꼽는다. 이미 완성 궤도에 오른 메이저리거들은 기술적으로 손댈 곳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심재학 넥센 타격코치의 말을 빌려보자. “흔히 말해 코치가 선수를 키웠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선수는 스스로 크는 존재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야구에서도 부진한 선수와 골프를 치며 인생 상담을 해주는 타격코치가 최고의 지도자로 꼽힌다.” 올해 왼손투수 약점을 완벽히 떨쳐내고 후반기 엄청난 성적을 내고 있는 추신수(텍사스 레인저스)도 데이브 메거던 타격코치와 심리적인 문제를 고쳐나가며 명예 회복에 성공했다.

‘52홈런’의 주인공 넥센 박병호는 좀 다르다. 정신적인 부분은 물론 기술적으로도 조언을 아끼지 않은 지도자를 만나 한국 프로야구가 낳은 최고의 타자 중 한 명으로 우뚝 섰다. 그는 성격이 아주 예민한 편이다. 배팅 훈련을 할 때 훈련 도우미가 던진 공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타석에서 좋지 않은 스윙을 하곤 한다.

박병호는 또한 다른 선수들과 비교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심하다. 주위의 시선을 꽤 신경 쓰는 셈이다. 그럼에도 그는 KBO리그 사상 최초로 2년 연속 50홈런을 넘기며 KBO리그 역사를 새롭게 썼다. 올해를 마치고는 구단 동의하에 해외 진출을 추진할 수 있어 뉴욕 양키스, 보스턴 레드삭스 등 빅마켓 구단 스카우트가 목동 구장을 제 집 드나들듯 했다. 피츠버그 파이리츠 강정호의 포스팅 비용(500만달러)을 훌쩍 넘어 2000만달러까지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는 박병호. 그를 키운 사람들을 누구일까.

김시진 “차라리 삼진 당하고 와라”

김시진 전 감독은 성공한 사령탑은 아니다. 코치 시절에는 김수경·조용준 등 우수한 투수를 발굴했지만 넥센과 롯데의 지휘봉을 잡고서는 번번이 가을야구 문턱에서 고개를 떨궜다. 하지만 박병호의 성공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 지인이라면 김 감독을 그의 은인으로 묘사한다. 박병호가 김 감독을 만나지 않았다면 여전히 2군 ‘노망주’(나이 먹은 유망주)로 불리거나 이미 은퇴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LG 선수였던 박병호는 2011년 7월 31일 트레이드 마감일에 극적으로 넥센 유니폼을 입었다. 양 구단은 박병호와 심수창, 김성현과 송신영을 맞바꾸는 2 대 2 트레이드에 합의했다. 당시 히어로즈는 박병호를 데려오기 위해 무려 3년간 공을 들였다. 김기영 넥센 홍보팀장은 “몇 번이고 ‘카드’를 바꿔 가며 트레이드를 추진했다. 트레이드가 성사된 뒤 KTX를 타고 원정경기에 나타났는데, 그때 박병호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며 “52번의 등번호를 주면서 너는 언젠가 꼭 이 숫자만큼 홈런을 칠 수 있다고 얘기해 줬는데, 현실이 됐다”고 말했다.

성남고 시절 2경기에 걸쳐 4연타석 홈런을 때린 박병호는 LG 시절인 2010년에도 4경기 연속 대포를 가동하며 빛을 볼 뻔한 적이 있다. 하지만 스타 선수가 즐비한 LG 팀 사정상 곧바로 기회를 잃었고 2군에서 방황하는 시간이 늘었다. 이에 반해 넥센 김시진 감독은 달랐다. “맞히는 타격을 할 바엔 차라리 삼진을 당하고 와라. 너를 4번에서 빼는 일은 없다.” 김 감독은 어떤 잔소리도 하지 않았다. “네가 못하면 책임은 내가 진다”는 말로 확실한 지원사격을 했다. 결국 그는 2011년 13홈런, 2012년 31홈런, 2013년 37홈런, 2014년 52홈런, 올해도 9월까지 52홈런을 쏘아올리며 괴물이 됐다. 그리고 만약 올해도 박병호가 홈런왕 타이틀을 거머쥔다면 이승엽(삼성)·이대호(소프트뱅크)도 하지 못한 4년 연속 홈런왕의 금자탑을 쌓게 된다.

(왼쪽부터) 김시진 전 넥센 감독 photo 연합 / 박흥식 KIA 코치 photo 정재근 스포츠조선 기자 / 염경엽 넥센 감독 photo 김정민 스포츠조선 기자
(왼쪽부터) 김시진 전 넥센 감독 photo 연합 / 박흥식 KIA 코치 photo 정재근 스포츠조선 기자 / 염경엽 넥센 감독 photo 김정민 스포츠조선 기자

방망이 위치만 바꿨을 뿐인데

김시진 감독이 정신적 안정감을 줬다면 박흥식 타격코치(현 KIA 코치)는 타격에 확실한 눈을 뜨게 도왔다. 메이저리그 사정과 달리 처음 넥센 유니폼을 입은 박병호는 약점이 뚜렷한 타자였던 셈이다. 그렇다고 박 코치가 모든 부분에 칼을 댄 건 아니다. ‘예민한’ 박병호에게 단 한 가지 변화만을 주문했다. 손에 쥔 방망이 위치를 어깨 위로 들어 올리라는 것. 20홈런에 만족하지 말고 30홈런, 나아가 40홈런 이상을 때릴 수 있는 스윙을 하자는 요구였다. 박병호는 처음 그 소리를 듣고 코치의 얼굴조차 쳐다보지 않았다. 이미 LG에서 매년 타격폼 변신을 꾀하다 모조리 실패한 경험이 있던 터였다. 하지만 박 코치의 말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기존의 폼대로 겨드랑이 옆에서부터 방망이를 휘두르면 필연적으로 몸쪽 공에 약할 수밖에 없어 슬럼프가 길어진다고 설득했다. 이는 이승엽의 스윙 메커니즘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결국 이 같은 변화는 골프공을 때리듯 엄청난 비거리와 높이를 보이는 박병호만의 스윙으로 이어졌다. 배꼽까지는 방망이를 짧게 내려친다는 느낌으로, 공을 맞힌 뒤부터는 크게 퍼올린다는 기분으로 몸통 회전을 하며 스카우터가 감탄할 축포를 잇따라 쏘아올렸다. 그의 성장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 염경엽 넥센 감독은 “방망이 위치를 변경하고 나서는 매해 스스로 부족한 점을 고쳐 나갔다. 옆에서 따로 조언할 부분이 없었다”며 “아마 그때부터 박병호가 확실히 타격에 눈을 뜬 것 같다”고 했다.

박병호 하면 빠질 수 없는 얘기 중 하나가 안티팬이다. 그의 기사가 나올 때마다 포털사이트에는 악플을 다는 유저(user)가 꼭 한 명 있다. 아이디 ‘국민거품 박병호’. 야구팬들은 이를 줄여 ‘국거박’이라고 부른다.

그는 박병호가 50홈런을 넘겨도 리그에서 가장 작은 목동구장의 덕을 봤다고 비꼰다. 컨디션이 나빠 삼진이라도 먹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삼진왕’이라고 비아냥댄다. 오죽했으면 박병호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거박의 존재를 알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라고 인터뷰까지 했을까.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 이 안티팬이 박병호의 성장을 도왔다.

박병호는 이승엽·이대호 등 모든 거포들과 마찬가지로 지난해까지 ‘영양가 논란’에 시달렸다. 승부처에서 친 한 방보다 경기 분위기가 기울어진 상황에서 나온 대포가 많다는 지적이다. 또 솔로홈런이 상당수를 차지해 찬스에서 강하다고 볼 수 없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올해는 그러나 52개의 홈런 중 만루포가 3방이다. 3점홈런 5방, 2점홈런 19방, 솔로포가 25방이다. 홈, 원정 홈런 개수도 각각 27개, 25개로 균형을 이뤄 안티팬이 딱히 깎아내릴 부분이 없다. 이 때문에 박병호가 독기를 품고 끊임없이 진화에 성공한 건 안티팬 덕분이라는 우스갯소리가 꽤 설득력 있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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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태수 스포츠조선 야구담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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