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부터 3시즌 삼성화재에서 뛴 가빈. ⓒphoto 삼성화재
2009년부터 3시즌 삼성화재에서 뛴 가빈. ⓒphoto 삼성화재

지난해 12월 21일 한국배구연맹(KOVO)은 블록버스터 계약을 발표했다. 스포츠 전문채널 KBSN과 2016/2017시즌부터 2020/2021시즌까지 5년간 방송권료로 200억원을 받기로 하고 조인식을 연 것이다. 프로배구 V리그의 현재 위상을 보여주는 이벤트였다.

우리나라 4대 프로 스포츠라면 프로야구와 프로축구, 프로농구와 프로배구가 있다. 이 가운데 누구나 아는 것처럼 프로야구의 영향력이 가장 크다. 2015시즌 방송권료로 360억원의 수입을 올렸다. 2014시즌은 180억원이었다. 프로축구의 중계권 수입은 야구에 비하면 초라하다. 방송권 계약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리지 못할 정도다. 프로농구도 마찬가지다. 프로배구 V리그는 이번 시즌까지 3시즌 동안 100억원을 받았다.

프로스포츠시장에서는 ‘돈’이 모든 것을 웅변한다. ‘돈’은 방송권료와 입장 관중 수로 결정된다. 방송권료를 결정하는 방송사는 시청률을 잣대로 스포츠의 인기도와 가치를 평가한다. 지금 방송사의 기준으로 본다면 프로야구가 첫 번째이고 프로배구 V리그가 두 번째다. 두 종목은 시청률에서 안정적 지수를 보여주고 있다. 케이블 채널에서는 1% 시청률만 나와도 성공이라고 하지만, 꾸준히 1%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스포츠가 프로야구다. 그리고 프로배구 V리그 남자 경기가 그렇다. 그래서 방송사는 프로야구와 프로배구 V리그의 방송권을 따내려고 많은 투자를 한다.

V리그 성공의 이유는?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삼성화재에서 뛴 레오. ⓒphoto 삼성화재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삼성화재에서 뛴 레오. ⓒphoto 삼성화재

겨울 스포츠의 1인자 자리를 놓고 농구와 치열한 경쟁을 해왔던 배구였다. 냉정하게 본다면 시작은 농구가 앞섰다. 프로 출범도 농구가 빨랐다. 선점 효과를 놓쳤다. 접근성이 좋고 교통이 편리한 경기장은 대부분 프로농구에 빼앗겨 V리그의 시작은 어려웠다.

하지만 반대급부도 있었다. 배구는 선행주자인 농구가 했던 실수를 피해갈 수 있었다. 또 V리그가 처한 위치를 잘 알고 합리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앞서가는 다른 리그의 장점을 벤치마킹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한 덕분에 이제는 야구에 이은 2인자. 겨울 스포츠의 정상을 차지했다.

V리그 성공의 요인 가운데 하나는 리그를 방송용 콘텐츠로 겨냥해 접근한 것이다. 출범 첫해부터 관중이 경기장에 와서 보고 즐기는 현장용 콘텐츠가 아닌 안방의 시청자들을 목표로 삼았다. 배구 경기가 이뤄지는 실내체육관의 규모로 봤을 때 이는 탁월한 판단이었다. 최대한 방송 편의에 맞춰 리그를 운영한 전략은 성공했다. 그 덕분에 주관 방송사가 KBS와 KBSN으로 출범 이후 변하지 않았다.

12시즌 동안 주관 방송사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은, V리그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겨울에는 KBSN 채널을 틀면 배구를 한다’는 습관과 반복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꾸준히 중계가 이어지는 것도 시청자들에게 믿음과 친숙함을 주는 요인이었다. 프로농구와 달리 V리그는 전 경기 중계를 통해 리그의 가치를 높였다.

V리그는 다른 리그보다 먼저 비디오 판독을 도입하는 등 세련된 리그 운영 수준을 보여줬다. 현장에서도 경기 내내 관중을 즐겁게 하는 다양한 이벤트가 있다. 그 덕분에 V리그의 수준은 현재 배구 리그가 있는 나라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남자부는 2005/2006시즌, 여자부는 2006/2007시즌부터 외국인 선수 제도가 도입됐다. 관중들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주기 위한 선택이었다. 잘생긴 외모, 타고난 신체능력, 특히 높이가 승패를 좌우하는 배구에서 외국인 선수의 등장은 팀의 시즌 운명을 결정하는 요소였다.

단적으로 그동안 V리그에서 우승한 팀을 보면 된다. 우승 경험이 있는 팀은 삼성화재, 현대캐피탈, OK저축은행이다. 이들 3개 팀의 우승 뒤에는 리그를 평정했던 외국인 선수가 있었다. 2005/2006시즌과 2006/2007시즌 우승한 현대캐피탈의 루니를 제외하고는 삼성화재의 안젤코, 가빈, 레오, OK저축은행의 시몬은 50% 가까운 공격 점유율과 높은 공격 성공률로 주 공격수 역할을 해줬다. 여자부도 김연경이 해외 리그로 떠난 뒤에는 인삼공사의 몬타뇨, IBK기업은행의 알레시아, 데스티니, GS칼텍스의 베띠 등 외국인 선수의 활약 여부가 우승의 필요충분 요소였다.

특히 남자는 갈수록 V리그를 찾는 외국인 선수의 수준이 높아졌다. 세계 최고 수준의 외국인 선수들이 등장해 V리그의 수준을 높였다. 더러는 “타이거 우즈가 우리 프로 골퍼와 같이 경기하는 것”이라고 비유하기도 한다. 외국인 중심의 ‘몰빵’ 배구라는 비난도 받지만 다행스럽게도 토종 선수들도 어느 정도는 경쟁력을 갖췄다. 현대캐피탈의 문성민, KB손해보험의 김요한에 이어 한국전력의 전광인, OK저축은행의 송명근 등의 공격수가 등장해 균형을 이루고 있다.

왜 특급 외국인 선수는 V리그에 올까?

OK저축은행 우승의 주역 시몬. ⓒphoto OK저축은행
OK저축은행 우승의 주역 시몬. ⓒphoto OK저축은행

현재 V리그 남자부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선수는 세계 배구선수 가운데 톱클래스다. V리그가 이처럼 유명한 선수들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돈의 힘 덕분이다. 외국인 선수들은 다른 리그에서 뛸 때보다 1.5배에서 2배 정도 돈을 더 받는다. V리그에 가면 다른 리그보다 돈을 더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다.

외국인 선수가 V리그를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리그의 안정성이다. V리그는 약속을 잘 지킨다. 다른 리그보다 팀을 보유한 모기업이 탄탄하다. 공기업 3곳, 금융기관 7곳, 일반 기업 3곳이 구단 운영의 주체다. 메인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시즌을 포기하거나 중도에 선수를 방출하는 경우는 없다. 체불(滯拂)도 없다. 신용을 생명으로 하는 금융기관과 공기업,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기업들이 배구단을 운영하다 보니 월급을 제때에 주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못하는 것이 V리그다.

손님을 잘 대해주는 우리의 전통은 V리그에도 살아 있다. 선수는 물론이고 가족에게도 잘 대해준다. 이른바 ‘에이스 대접’을 해주는 것인데, 한국에 오갈 때 항공기편은 물론이고 숙박까지 챙겨준다. 가족들이 찾아오면 관광 안내도 하고 선물도 전달한다. 선수의 가족 입장에서는 생활하기에 대한민국만큼 안전한 나라가 없는 셈이다. 외국인 선수들이 앞다퉈 V리그로 오는 데는 가족들의 응원도 있다.

물론 외국인 선수에게 힘든 일도 있다. 팀 내에 외국인 선수가 혼자라 공격에 대한 압박감이 심하다. 훈련도 많다. 일정도 빡빡하다. 대신 배구 실력은 는다. 처음 왔을 때는 무명이었지만 V리그의 경험을 통해 실력이 늘어서 빅리그로 진출한 선수도 많다. 루니, 안젤코, 가빈, 몬타뇨 등이 그랬다. 빅스타가 와서 우승을 시켜준 것은 지난 시즌 시몬이 유일했다.

각 구단과 감독들은 여전히 외국인 선수의 이름에 목을 맨다. 2015/2016시즌 V리그에서 활약하는 외국인 선수도 모두 자국의 국가대표 에이스다. 어느 전문가는 “이제 러시아 리그에서 뛰는 레온과 무셜스키만 오면 세계 최고의 선수를 한국에서 다 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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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건 스포츠동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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