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6일 서울 노원구 태릉선수촌 오륜관에서 열린 배드민턴팀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이용대(오른쪽), 유연성이 결의를 다지고 있다. ⓒphoto 남강호 조선일보 기자
지난 6월 16일 서울 노원구 태릉선수촌 오륜관에서 열린 배드민턴팀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이용대(오른쪽), 유연성이 결의를 다지고 있다. ⓒphoto 남강호 조선일보 기자

오는 8월 6일 막을 올리는 리우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의 목표는 ‘10-10’이다. 금메달 10개 이상을 획득해 4년 연속 종합 메달 순위 ‘톱 10’에 들겠다는 것이다. 한국 배드민턴의 간판 이용대(28)는 이 목표를 이뤄줄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힌다. 여성 팬들은 무엇보다 이용대의 ‘윙크 세리머니’를 다시 한 번 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용대는 스무 살에 처음 출전한 2008 베이징올림픽 배드민턴 혼합복식에서 이효정(35)과 함께 금메달을 따내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가수 이승기를 닮은 외모로 올림픽 출전부터 주목받았던 그가 승리를 거머쥔 뒤 수줍게 날린 윙크 한 방은 대한민국 여심(女心)을 흔들어놓기에 충분했다. 2012 런던올림픽에선 정재성(34)과 남자 복식조로 출전해 동메달에 그쳤지만 이용대는 여전히 세계 최정상급 선수로 평가받는다. 리우행을 앞두고 막바지 훈련 중인 그는 “4년 전에는 긴장을 많이 했고 부담이 컸다”면서 “리우올림픽에선 마음을 편하게 먹고 집중력을 잃지 않는 플레이로 좋은 성적을 거두겠다”고 말했다.

올 상반기에만 3개 우승컵

이번 대회에서 이용대는 유연성(30)과 함께 남자 복식으로 출전한다. 2013년 10월부터 복식조가 된 이용대와 유연성은 초기부터 찰떡궁합을 과시했다. 짝이 된 직후 처음 출전한 2013 덴마크 오픈 수퍼시리즈 프리미어에서 정상을 차지했고 이듬해 8월 세계 랭킹 1위에 올라섰다. 지금까지 이용대-유연성은 단 한 차례도 남자 복식 세계 정상의 자리를 내놓은 적이 없다. 이득춘 배드민턴 대표팀 감독은 “이용대가 그간 여러 파트너와 만났지만 유연성이 가장 좋은 파트너”라고 했다.

이용대-유연성 조가 남자 복식 세계 랭킹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고 해서 쉽사리 올림픽 금메달을 딸 거란 보장은 없다. 두꺼운 선수층을 바탕으로 상위권에 다수 포진한 중국과 까다로운 경기 스타일로 악명 높은 인도네시아가 강력한 경쟁 상대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이용대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는 “남자 복식은 춘추전국시대라 세계 랭킹 10위 이내 선수 간의 실력 차이가 백지장 하나 정도에 불과하다”면서도 “앞으로 이 종이 한 장을 더 단단하게 만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가장 큰 경쟁자는 인도네시아의 무하마드 아산-헨드라 세티아완 조(세계 랭킹 2위)이다. 이용대-유연성 조는 2014 인천아시안게임 결승전에서 이들과 맞붙어 패하며 은메달에 그쳤다. 지난해에는 국제대회 ‘왕중왕전’ 격인 수퍼시리즈 마스터스 파이널 준결승에서 아산-세티아완 조에 무릎을 꿇으며 대회 2년 연속 우승에 실패했다. 이용대는 “아시안게임에서 진 경험도 있고 수차례 맞붙은 경험이 있어서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감이 온다”며 설욕을 다짐했다.

세계 배드민턴의 상향평준화에도 대한배드민턴협회는 이용대-유연성 조의 금메달 가능성을 크게 전망한다. 둘은 지난해 국제대회에서 8승을 올린 데 이어 올해 상반기에도 3개 국제대회에서 우승컵을 차지하는 등 최정상의 기량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수비에 강한 이용대와 공격이 강점인 유연성은 서로 약점을 보완해주며 빈틈없는 경기 운영을 해나간다. 이용대의 네트 앞 정교한 플레이와 유연성의 강력한 스매시는 적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용대가 배드민턴을 시작하게 된 건 우연한 계기였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살을 빼려고 학교 배드민턴부에 가입하면서 처음 라켓을 잡았다. 이용대는 “배드민턴을 시작하고 2년 뒤에 학교 야구부가 생겼는데 야구부가 배드민턴부보다 먼저 생겼더라면 지금쯤 야구선수가 돼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농담처럼 말한 적도 있다. 다이어트를 위해 배드민턴을 하게 됐지만 그의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급격하게 성장했다. 출전하는 대회마다 우승컵을 휩쓸어 화순중 3학년 땐 역대 최연소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화순실업고 시절에는 42전42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배드민턴 한류의 주인공

주목받는 외모와 출중한 실력으로 배드민턴 선수로 승승장구했지만 이용대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2014년 도핑검사를 회피했다는 이유로 세계배드민턴연맹(BWF)으로부터 자격정지 1년 처분을 받게 된 것이었다. 도핑검사 명단에 오른 그가 자신의 소재지를 보고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소재지 보고를 대신 처리해준 대한배드민턴협회의 행정 착오에서 비롯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3개월 만에 징계가 취소됐다.

이용대는 징계가 취소되기 전까지 선수로서 어떤 공식 활동도 할 수 없었다. 그는 “그 시간을 겪으면서 배드민턴에 대한 간절함이 더 커졌다”며 “그때 철이 많이 들었다”고 했다. 윙크 세리머니로 인기를 얻으며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여자 연예인과 스캔들까지 터졌던 이용대는 도핑 논란 이후 배드민턴에만 전념했다. 그는 “대회는 물론이고 훈련까지 못 나가게 되니 내가 지키고 싶은 게 뭔지 비로소 깨닫게 됐다”고 했다.

이용대는 말레이시아에서 ‘배드민턴 한류’를 일으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배드민턴이 국민 스포츠로 자리매김한 말레이시아가 지난해 12월 자국 리그 흥행을 위해 이용대에게 5경기 정도만 출전해달라고 초청한 것이 계기였다. 이용대가 등장하는 경기에는 현지 소녀 팬들이 몰려들었고 “코리아”와 “이용대”를 외치며 응원하는 소리가 체육관을 가득 채웠다. 말레이시아 소녀팬들은 SNS에 이용대 사진을 올리고 ‘OPPA(오빠)’라고 적은 ‘현장 관람 인증 샷’을 올리기도 했다.

배드민턴 국가대표 가운데 이용대는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만하는 법도 없다. 그는 유연성을 깍듯하게 ‘형님’으로 모신다. 이용대는 대표팀에서 고참급 선수에 속하지만 대회 때마다 유연성과 한방을 쓰며 청소와 빨래를 도맡아 한다. 이용대는 동생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도 유연성에겐 미안한 마음이 크다고 했다. 경기에서 질 때마다 비난의 화살이 자신이 아니라 유연성에게 쏟아지는 탓이다. 그는 “내가 몸 상태가 안 좋거나 실수를 해서 지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제 팬들이 유연성 형에게 책임을 돌리니 마음이 편하지 않다”고 했다.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에 태어난 ‘88올림픽둥이’ 이용대는 어느덧 한국 올림픽 선수단의 주축으로 성장했다. 그는 “이번 대회가 내 생에 마지막 올림픽이라는 생각으로 간절하게 경기에 임하겠다”며 각오를 밝혔다. “88년이 용띠 해인데, 부모님이 저더러 ‘큰(大) 용(龍)’이 되라고 이름을 ‘용대’로 지어주셨어요. 리우에선 제 이름처럼 금메달을 물고 승천하는 큰 용이 되겠습니다.”

김승재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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