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6일 2016 서울국제유스양궁페스타 이벤트 경기에서 김우진 선수가 활을 당기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7월 26일 2016 서울국제유스양궁페스타 이벤트 경기에서 김우진 선수가 활을 당기고 있다. ⓒphoto 뉴시스

한국 양궁은 자타공인 세계 최강이다. 국제대회만 나가면 맡겨 놓은 물건을 찾아오듯 메달을 싹쓸이하는 양궁은 오는 리우올림픽에서도 가장 믿고 볼 수 있는 종목이다. 이번 올림픽 목표는 지금껏 전례없던 남녀 개인·단체전 전관왕. 여자 대표팀엔 2012 런던올림픽 2관왕에 빛나는 기보배(28)가 건재하고, 세계 랭킹 1위 최미선(20)의 상승세도 놀랍다. 남자팀에선 무엇보다도 맏형 김우진(24)의 활약이 절실하다. 대한민국 양궁의 ‘간판’으로 평가받는 그는 이번이 첫 올림픽 도전이다. 김우진은 과연 생애 첫 올림픽 무대에서 금빛 과녁을 적중할 수 있을까.

김우진은 2016년 7월 현재 남자 양궁 세계 랭킹 1위(273.250점)이다. 2위인 대표팀 동료 구본찬(23·234.500점)과 40점 가까이 차이나는 압도적 선두다. 화려했던 그의 최근 성적이 이를 뒷받침한다. 지난해 5월 1·2차 월드컵에서 연이어 은메달(남자 개인)을 목에 건 김우진은 8월 코펜하겐 세계선수권대회에선 2관왕(개인·단체)에 올랐다. 한 달 뒤엔 리우올림픽 전초전 격인 프레올림픽에서 개인전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올해 2월 세계양궁연맹(WA)이 선정한 ‘2015 올해의 선수’에 올랐다.

거침없는 상승세는 치열한 올림픽 선발전에서도 이어졌다. 올림픽 메달을 따는 것보다 어렵다는 대표팀 선발전에서 김우진은 내내 선두자리를 지키며 지난 4월 남자 1위로 리우행을 확정지었다. 8개월간 이어진 선발전 기간 동안 선수 개개인이 쏜 화살만 약 4000발. 연습을 포함해 수만 번 활 시위를 당긴 김우진의 손엔 두꺼운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김우진은 초등학교(충북 이원초) 3학년 때 처음 활을 잡았다. 처음엔 육상을 했던 그에게 체육선생님이 양궁을 권했다고 한다. 먼저 양궁을 시작한 두 살 위 형의 모습을 자주 봤던 터라 김우진에게도 활 쏘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각종 대회에서 우승을 하며 가능성을 보였던 그는 2007년 전국소년체전에서 3관왕을 차지하며 한국 양궁의 기대주로 주목받았다.

18세에 ‘한국 양궁의 미래’로 떠올라

처음 국가대표가 됐던 2010년은 김우진에겐 잊을 수 없는 해이다. 충북체고 3학년이던 그는 광저우아시안게임에 출전해 금메달 2개(개인·단체)를 목에 걸었다. 개인전·단체전 결선에서 단 한 발도 9점 밑으로 내려가지 않을 정도의 완벽한 경기력을 선보였다. 괴물 같은 실력의 18세 소년을 두고 양궁계에선 ‘한양미(한국 양궁의 미래)’란 별명도 붙여줬다. 이듬해 토리노 세계선수권에서도 2관왕을 차지한 김우진의 감각은 절정에 이르렀다.

하지만 실패를 몰랐던 그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2012 런던올림픽 최종 선발전에서 4위에 머물며, 3위까지 주어지는 티켓을 얻지 못한 것이다. 주변에서도, 스스로도 자신했던 런던행 좌절의 충격은 컸다. 겉으론 “내 실력이 모자랐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고 말했지만, 선발전에 떨어지고 나선 2주 동안 아예 활을 쳐다보지도 않을 정도였다. 그는 “활 잘 쏜다는 칭찬에 나태해졌던 것 같다”며 “당시엔 욕심이나 자만·집착 등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추락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걷잡을 수 없는 슬럼프에 빠지며 최고의 궁사는 한순간에 평범한 선수가 됐다. 한번 빗나가기 시작한 화살은 돌아오지 않았고,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장비를 바꿔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김우진은 “선발전 이후 출전한 전국체전에 선수 60여명이 나왔는데 그중에 55등을 했다”며 “그땐 정말 뭘해도 안 될 정도로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다”고 했다.

김우진이 다시 일어선 건 우연한 계기 덕분이었다. 어느 날 들른 소속팀(청주시청) 훈련장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훈련에 매진하고 있는 한 동료를 본 것이다. 순간 ‘아차’ 하는 마음이 들었다. 자괴감에 빠져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냈던 김우진은 이날 큰 자극을 받았다. ‘또 도전하면 올라갈 수 있다’는 마음이 생겼고, 다시 활 시위를 당기기 시작했다.

‘천재’에 가까웠던 김우진은 이후 ‘노력형’ 선수로 변했다. 식사 시간을 빼놓곤 하루 종일 활만 쏜 날이 많았다. 2년 동안 국내 대회에만 나서며 절치부심한 그는 2014년 다시 국가대표로 선발되며 재기했다. 아쉽게 2014 인천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한 뒤에도 연습의 고삐는 늦추지 않았다. 문형철 양궁대표팀 총감독은 “태릉선수촌 훈련장에 가장 먼저 나와 가장 늦게 떠나는 선수가 김우진”이라고 말했다.

사대(射臺)에선 그 누구보다 예리하고 철저한 그이지만, 평소 성격은 정반대에 가깝다. 푸근한 외모와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둥글둥글한 성격 때문에 코칭 스태프와 동료들은 김우진을 ‘곰’이라고 부른다. 맛집을 찾아나서거나 친구들과 함께 한강에서 치맥(치킨+맥주)을 즐기는 그의 휴일 일상은 여느 20대 청년과 다르지 않다. 김우진에겐 경기가 있는 날엔 국밥이나 빵을 먹지 않는 징크스가 있다. 경기를 ‘말아 먹지’ 않고, ‘빵점’을 쏘지 않기 위해서다.

양궁 남자 대표팀 3명(김우진·구본찬·이승윤)은 모두 올림픽에 첫 출전한다. 이를 두고 ‘경험이 중요한 큰 무대에서 이들이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겠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주장’ 김우진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세 명 모두 비슷한 또래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눌 정도로 친하다”며 “팀 케미스트리(궁합)로 따지면 역대 어느 팀에 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활발한 성격의 구본찬과 묵직하고 차분한 막내 이승윤, 이 두 선수의 가운데 선 김우진이 긍정적인 조화를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실제로 셋은 지난해 7월 광주유니버시아드대회 때 나란히 대표팀으로 선발돼 단체전 우승을 일궈냈고 개인전 금·은·동 메달을 휩쓸었다.

이제 올림픽은 눈앞의 현실이 됐다. 그동안 쐈던 수만 발의 화살, 사대와 과녁을 오갔던 수많은 발걸음은 메달이란 결과로 평가받게 된다. 김우진은 “(금메달에 대한)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이라며 “양궁에 대한 국민의 믿음이 크다는 걸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랜 기다림 끝에 꿈의 무대 앞에 선 그는 오히려 담담했고, 여유마저 흘렀다. “4년 전(런던올림픽 선발전)을 돌이켜보면 부담감과 욕심이 과해 결국 경기력에 안 좋은 영향을 미쳤던 것 같아요. 이번엔 마음을 비우고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해보려고요. 후회 없는 경기를 하는 것이 이번 대회 목표입니다. 제가 원숭이띠인데 마침 올해가 원숭이의 해(병신년·丙申年)잖아요.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드네요.”

이순흥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