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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7호] 2018.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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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축구는 진화 중

러시아월드컵이 남긴 것

장민석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 2018 러시아월드컵 결승전에서 크로아티아를 이긴 프랑스팀이 경기가 끝난 후 디디에 데샹 감독을 헹가래 치고 있다. photo 뉴시스
“이젠 뭘 봐야 하지?”
   
   지금이 축구 팬들에겐 가장 아쉬운 순간이다. 월드컵 결승전이 끝나고 우승팀이 FIFA컵을 들고 나면 또 4년을 기다려야 월드컵을 만날 수 있다. 이 공허한 기분을 이번 대회를 곱씹으며 달래보자. 프랑스의 역대 두 번째 우승으로 막을 내린 2018 러시아월드컵은 여러 가지로 짚어볼 만한 구석이 많은 대회였다. 분명히 축구는 진화하고 있다.
   
   
   속도의 시대가 왔다
   
   월드컵은 세계 축구의 트렌드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무대다. 2010 남아공월드컵의 ‘히트 상품’은 우승팀 스페인이 선보인 ‘티키타카(스페인어로 탁구공이 왔다갔다한다는 뜻)’였다. 스페인은 짧은 패스를 끊임없이 주고받으며 볼 점유율을 높이는 축구로 상대에게 공격할 기회를 주지 않으면서 경기를 지배했다. 사비와 이니에스타 등 좁은 공간에서도 공을 내 몸처럼 완벽히 컨트롤할 수 있는 ‘마법사’ 같은 선수들이 즐비했기에 가능한 전략이었다.
   
   2014 브라질월드컵에선 ‘스리백’과 ‘역습’이 유행어였다. 2000년대 초반까지 사용되다가 이후 포백이 완전히 자리를 잡으면서 낡은 유산으로 평가됐던 스리백(중앙수비수를 세 명 두는 전술)은 이 대회를 통해 화려하게 부활했다. 네덜란드(3위)와 코스타리카(8강), 칠레(16강) 등이 스리백을 바탕으로 한 역습 축구로 성과를 냈다. 스페인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하긴 했지만 점유율 축구의 위력은 살아있었다. 독일이 강력한 전방 압박과 함께 빠른 패스 플레이를 펼친 독일식 ‘티키타카’로 정상에 섰다.
   
   또 4년이 흘러 이번 월드컵은 ‘속도’가 지배한 대회였다. 이미 수비에 큰 비중을 두고 뒤로 물러선 팀을 상대로 패스를 돌리며 기회를 엿보는 것보다는 적절히 볼 점유율을 낮추고 상대에 공격할 기회를 준 뒤 그 뒷공간을 속공으로 공략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를 발휘했다.
   
   폭발적인 스피드의 공격 자원을 보유한 팀은 한두 번의 패스로 결정적 기회를 만들어냈다. 프랑스(우승)의 킬리안 음바페, 크로아티아(준우승)의 이반 페리시치, 벨기에(3위)의 에덴 아자르 등이 빠른 발로 역습의 첨병 역할을 했다. 특히 프랑스는 그 화려한 멤버를 보유하고도 공격보다는 수비에 중점을 두면서 역습 시 음바페의 스피드를 활용하는 ‘실리축구’를 펼쳐 우승컵을 들었다.
   
   반면 점유율 축구는 종말을 맞았다. 이번 대회를 통틀어 점유율 1위(69.2%)를 기록한 스페인이 16강에서 탈락했고, 2위 독일(65.3%)은 한국에 덜미를 잡히며 월드컵 출전 사상 처음으로 조별리그 탈락의 굴욕을 맛봤다. 3위 아르헨티나(61.1%·16강 탈락)의 운명도 비슷했다.
   
   
   월드컵만 오면 쓸쓸한 두 사람
   
   지난 10년은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의 시대였다. ‘인간의 실력이 아니다’란 뜻으로 팬들로부터 ‘신계(神界)’로 분류되는 둘은 한 해 최고의 선수에게 수여되는 발롱도르를 최근 정확히 다섯 번씩 나눠 가졌다. 메시가 2009~2012, 2015년, 호날두가 2008, 2013~2014, 2016~2017년 발롱도르의 영예를 안았다. 둘은 당대를 넘어 펠레·마라도나 등과 함께 역대 최고선수를 꼽을 때 등장하는 이름이 됐다.
   
   세월이 흘러 두 영웅도 어느덧 30대가 됐다. 호날두가 서른셋, 메시가 서른한 살이다. 둘은 월드컵 우승 트로피가 없다는 점에선 ‘동병상련’이다. 최고 클럽을 가리는 UEFA 챔피언스리그에선 호날두가 다섯 번, 메시가 네 번 정상에 섰지만 월드컵 우승과는 유독 인연이 없었다. 나이를 감안할 때 이번 월드컵은 두 선수가 전성기 기량으로 출전하는 사실상 마지막 대회라는 평가가 많았다. 둘은 2006년 나란히 독일에서 월드컵 데뷔전을 치렀고, 이번이 네 번째 월드컵이었다.
   
   이번에도 메시와 호날두는 웃지 못했다. 호날두는 스페인과의 조별리그 1차전(3 대 3 무승부)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포효했다. 모로코와의 2차전에선 결승골로 1 대 0 승리를 이끌며 월드컵 개인 통산 득점을 7골로 늘렸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호날두의 포르투갈은 16강전에서 우루과이에 1 대 2로 패했다. 호날두의 네 번째 월드컵도 그렇게 마무리됐다.
   
   메시의 활약도 나쁘진 않았다. 나이지리아와의 조별리그 3차전(2 대 1 승)에서 선제골을 터뜨리며 팀을 16강으로 이끌었다. 16강 상대는 프랑스. 메시의 고군분투에도 아르헨티나는 프랑스의 파상 공세를 막아내지 못하고 3 대 4로 패했다. 공교롭게도 메시와 호날두는 같은 날 짐을 쌌다.
   
   
   펠레가 다시 돌아왔다?
   
   호날두와 메시를 떠나보내고 심란해진 팬들에게 위안을 준 것은 ‘펠레의 재림’이라 불린 천재 10대 공격수의 등장이었다. 세계 축구사에서 가장 유명한 10대 선수를 꼽으라면 단연 펠레다. 1958년 스웨덴월드컵 당시 만 17세였던 펠레는 8강전부터 신들린 골 퍼레이드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웨일스와의 8강전(1 대 0 브라질 승)에서 결승골을 터뜨린 펠레는 프랑스와 벌인 준결승전에서는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5 대 2 대승을 이끌었다. 스웨덴과의 결승전(5 대 2 승)에서도 두 골을 기록하며 우승을 이끌었다. 토너먼트 3경기에서만 6골을 집어넣은 괴력을 발휘한 것이다. 스웨덴월드컵을 통해 자신의 시대를 힘차게 열어젖힌 펠레는 이후 1962년과 1970년 두 번 더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축구황제’로 자리매김했다.
   
   프랑스의 음바페는 크로아티아와 벌인 결승전에서 팀의 쐐기골을 터뜨리며 스웨덴월드컵 펠레 이후 60년 만에 결승전에서 득점한 10대 선수가 됐다. 1998년 12월생으로 프랑스가 1998 월드컵에서 우승하고 6개월 뒤 태어난 그는 만 19세로 새로운 스타 탄생을 알렸다.
   
   가장 인상적인 경기는 메시가 버틴 아르헨티나와의 16강전이었다. 압도적인 스피드로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누비며 두 골을 터뜨렸다. 음바페가 속도를 내면 아르헨티나의 그 누구도 그를 잡지 못했다. 그는 이 두 골로 1958년 펠레 이후 처음으로 한 경기 두 골 이상을 터뜨린 10대 선수라는 기록도 남겼다. 음바페가 뜬 날, 메시는 쓸쓸히 그라운드를 빠져나갔다. 세계 축구의 대세가 바뀌는 듯한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음바페 외에도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 신예 스타들이 있었다. 프랑스 수비진의 좌우를 책임진 벵자맹 파바르와 뤼카 에르난데스는 21세 동갑내기다. 파바르는 아르헨티나전에서 환상적인 중거리 슛으로 골망을 갈랐다. 에르난데스도 활발한 공격 가담으로 프랑스 우승에 힘을 보탰다.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골로빈(22)도 대회를 빛낸 라이징 스타였다. 공격형 미드필더로 다양한 재능을 뽐낸 그에게 빅클럽의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
   
   
   세트피스 전문가 잉글랜드
   
   러시아월드컵에선 각종 기록이 쏟아져 나왔다. 무엇보다 ‘세트피스 월드컵’이라 불릴 만큼 페널티킥과 프리킥, 코너킥 상황에서 나온 골이 많았다. 이번 대회에서 나온 169골 중 41%에 해당하는 69골이 세트피스에서 나왔다. 종전기록은 1998 프랑스월드컵의 62골이었다.
   
   페널티킥이 29개나 선언됐다. 역시 종전 기록(18개)을 훌쩍 넘었다. 그중 득점으로 연결된 것은 22골. 페널티킥이 늘어난 것은 처음 도입된 VAR(비디오 판독 시스템)의 영향이 결정적이란 분석이다. 과거 심판들이 미처 보지 못했던 장면들을 VAR이 속속들이 잡아냈다. 결승전에서도 페리시치의 핸드볼 파울이 VAR을 통해 페널티킥으로 선언돼 프랑스의 골로 연결됐다.
   
   한국도 VAR로 울고 웃었다. 스웨덴전에서 VAR 판독 결과 김민우의 파울이 페널티킥으로 선언되며 실점한 한국은 독일전에서는 무효로 판정됐던 김영권의 골이 VAR을 통해 정상적인 득점 장면으로 인정받았다.
   
   철저한 준비로 세트피스에서 가장 큰 효과를 거둔 팀은 잉글랜드다. 1990년 이후 28년 만에 4강에 오른 잉글랜드는 전체 12골 중 9골을 세트피스로 만들어냈다. 세트피스 상황에서 선수들이 한 줄로 선 뒤 킥과 함께 제각기 약속된 장소로 재빨리 흩어져 헤딩을 노리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우승팀 프랑스도 세트피스로 재미를 봤다. 앙투안 그리즈만은 페널티킥으로 3골을 넣었고, 결승전에서는 날카로운 프리킥으로 상대 자책골도 이끌어냈다. 벨기에와의 4강전에서도 수비수 사무엘 움티티가 코너킥을 헤딩 슛으로 연결해 골망을 갈랐다.
   
   러시아월드컵은 개막전부터 37번째 경기까지 지루한 0 대 0 무승부 경기가 한 번도 없었다. 이 또한 종전기록(26경기)을 뛰어넘는 신기록이다. 38번째 경기였던 프랑스와 덴마크의 조별리그 C조 3차전이 0 대 0으로 끝나자 관중은 야유를 퍼부었다. 결국 이 경기가 이번 대회의 유일한 0 대 0 경기가 됐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이변의 연속이었다. 러시아월드컵은 사상 처음으로 전통의 강호로 통하는 브라질·아르헨티나·독일이 모두 4강에 진출하지 못한 대회가 됐다. 브라질 입장에서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건 월드컵 통산 득점에서 229득점을 기록, 독일(226골)을 제치고 1위에 올라섰다는 것이다.
   
   이번 대회 4강 진출국들의 과거 우승 횟수는 2회(프랑스·잉글랜드 각 1회)에 불과했다. 브라질월드컵 4강 진출국(독일·아르헨티나·네덜란드·브라질)의 10회와 큰 차이다. 발칸반도 국가 최초로 월드컵 결승에 진출한 크로아티아는 역대 월드컵 결승전에 이름을 올린 13번째 국가가 됐다. 남아공월드컵 챔피언 스페인은 개최국 러시아에 발목이 잡혀 16강에서 탈락했다.
   
   매 대회 한두 팀이 돌풍을 일으켰던 아프리카는 한 팀도 16강에 올라가지 못했다.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무함마드 살라흐의 이집트가 3전 전패를 당한 것을 시작으로 모로코(1무2패), 나이지리아(1승2패), 튀니지(1승2패), 세네갈(1승1무1패)이 차례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반면 아시아는 선전했다는 평가다. 일본이 H조에서 1승1무1패의 성적으로 16강에 올랐다. 일본은 16강전에서도 강호 벨기에를 맞아 먼저 두 골을 뽑아내며 기염을 토했지만 2 대 3으로 역전패했다. 한국은 우승 후보 독일을 탈락시키면서 1승2패의 성적을 거뒀다.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도 1승씩을 챙겼다.
   
   ‘극장 골’이 많이 나온 것도 러시아월드컵의 흥행 요소였다. 후반 정규시간이 지나고 추가시간(연장 제외)에만 9골이 터졌다. 이 역시 역대 최다 기록이다. 지난 대회(4개)와 비교해도 2배가 넘는다.
   
   한국은 이번 대회의 모든 득점을 90분 이후 터뜨렸다. 손흥민이 멕시코전에서 후반 48분 중거리 슛으로 골망을 갈랐다. 독일전에선 김영권이 후반 48분, 손흥민이 후반 51분 연속골을 뽑아내며 팬들을 열광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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