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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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이태원에 가면 ‘할랄(halal) 로드’가 있다. 한국이슬람교 서울중앙성원 앞으로 이어진 우사단로 10길, 초입부터 할랄 레스토랑, 할랄 빵집, 할랄 정육점, 할랄 마트 등이 길 양쪽으로 늘어서 있다. 이곳에서는 ‘할랄’ 인증마크가 붙어 있지 않은 가게를 찾기가 더 어렵다. 한국 여성보다 히잡 쓴 무슬림 여성을 더 흔하게 볼 수 있고 한글보다 아랍어, 영어가 더 친숙하다.

최근 정부가 할랄산업을 신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발표하면서 ‘할랄’이 한국 사회 키워드로 떠올랐다. 전 세계 무슬림 인구는 2015년 말 기준 18억명이다. 2030년엔 22억명으로 전 세계 인구의 26.4%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할랄’은 무슬림에게 ‘허락된 것’을 뜻한다. 반대로 ‘금지된 것’은 ‘하람(haram)’이라고 한다. 무슬림은 이슬람법(法)인 샤리아에 의해 허락된 것, 즉 할랄만 먹고 사용하고 소비한다. 글로벌미디어그룹인 톰슨로이터에 따르면 세계 할랄산업 규모는 2015년 3조2000억달러, 2020년엔 5조200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할랄산업은 식품시장을 넘어 화장품, 제약, 관광 등 산업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정부 발표 이후 국내 기업들도 할랄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국내 무슬림 시장도 급성장하고 있다. 국내 체류 무슬림 인구는 한국이슬람교중앙회에 따르면 14만명에 달한다. 한국관광공사는 국내를 찾는 무슬림 관광객도 한류에 힘입어 매년 20%씩 증가, 2014년 75만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 8월 5일 우사단로를 찾았다. 할랄 식재료를 파는 외국인 마트만 4~5곳이 성업 중인 가운데 한 달여 전에 개업했다는 새로운 대형 마트가 눈에 띄었다. 한국인이 운영하던 마트들은 대부분 문을 닫고, 무슬림이 운영하는 대형 마트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는 중이었다. 가게 안은 과자, 소스부터 생선, 고기까지 할랄 식재료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무슬림 국가에서 수입한 제품뿐만 아니라 농심 신라면, 롯데 빼빼로 등 할랄 인증을 받은 국내 제품도 의외로 많았다.

이슬람교 서울중앙성원 가기 전 골목에 이태원에서 유일하게 할랄 인증 고기를 파는 정육점 ‘알 바라카’가 있다. 우즈베키스탄 출신으로 한국에 온 지 4년 됐다는 알 바라카의 이브로키모브 노디리벡 부장이 유창한 한국어로 말했다.

“한국에는 할랄 도축장이 없어서 호주에서 수입한 할랄 소고기를 판매하고 있다. 마장동에 가도 할랄 정육점이 꽤 있다. 한국인들이 할랄이나 무슬림에 대해 무조건 거부감부터 가질 것이 아니라 먼저 알고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도쿄올림픽 ‘무슬림 식단’ 준비에 나선 일본

우사단로에서 최근 늘어나는 것 중 하나는 할랄 한식 레스토랑이다. 이곳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열었다는 할랄 한식당 ‘이드’ 근처에 새로운 한식당 ‘마칸’이 최근 문을 열었다. 마칸 앞에는 ‘다섯 번째 할랄 레스토랑’이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두 곳 모두 한국인 무슬림이 운영하는 곳으로 마칸은 평일 이른 저녁 시간인데도 닭볶음탕, 떡갈비, 불고기 등 한식을 먹는 무슬림들이 자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무슬림 고객을 잡기 위한 움직임은 우사단로 밖에서도 활발하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음식 관광 업체인 온고푸드커뮤니케이션즈(대표 최지아)는 ‘할랄 쿠킹 클래스’와 ‘할랄푸드 투어’를 새로운 관광상품으로 내놓았다. 최지아 대표는 “할랄은 종교가 아닌 문화로 접근해야 한다. 우리에게 유교문화가 있듯이 그들에게 할랄은 라이프스타일인 셈이다”라면서 “할랄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데 국내서는 무슬림 고객을 맞을 인프라가 전혀 갖춰져 있지 않다”고 전했다. 최 대표의 말에 따르면 무슬림 관광객이 한식을 경험하고 싶어도 찾아갈 할랄 한식당이 거의 없다는 것. 온고푸드의 ‘할랄 쿠킹 클래스’는 무슬림들이 한식을 직접 만들어보고 맛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할랄 식재료는 물론 도마, 식기류 등도 교차 오염되지 않도록 분리해서 사용한다. ‘할랄푸드 투어’는 한옥에서 한정식 즐기기 등 할랄 음식이 가능한 곳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한양대는 학생식당에 할랄 푸드코트를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출신 등 이슬람권 유학생이 늘면서 2013년부터 할랄 식재료를 활용한 코너를 별도로 만들었다. 경희대 청운관 학생식당에서도 올해부터 할랄 식단을 제공하고 있다.

8월 18일부터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할랄산업엑스포코리아’가 3일간 열렸다. 국내 식품산업 전시회를 주최해온 ‘월드전람’이 국내 기업의 할랄시장 진출을 위해 마련한 장으로 해외 업체 20여곳을 포함 100곳이 넘는 기업이 참여, 할랄산업에 대한 관심을 보여줬다.

정부가 할랄산업을 새로운 먹거리로 내세우고 기업들도 속속 뛰어들고 있지만 갈 길은 멀다. 호주, 일본 등 할랄시장 선점에 나선 외국에 비하면 한국은 한참 뒤처져 있다. 우리보다 먼저 할랄을 전략사업으로 육성하고 있는 일본은 벌써부터 2020년 도쿄올림픽 기간 무슬림 선수들을 위한 식단 준비에 나섰다. 도쿄올림픽 식단을 책임진 일본 핫토리요리전문학교는 지난 5월 인도네시아 유명 셰프인 윌리엄 웡소 등을 초청해 메뉴에 대한 컨설팅을 받고 할랄 식단 연구에 들어갔다. 호주는 정부 주도하에 70여개 도축장에 대해 할랄 인증을 관리하고 할랄 고기 수출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비무슬림 국가 중 할랄산업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태국이다. 태국은 ‘할랄 수출 5대 강국’을 목표로 올해부터 5개년 계획을 세우고 3800억원의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전 세계 할랄식품시장의 80%는 비무슬림 다국적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국내 할랄산업 육성의 걸림돌은 기독교계의 반발이다. 할랄식품 수출 확대를 위해 전북 익산에 추진하던 할랄식품 테마단지는 기독교계와 주민들의 거센 반발로 보류된 상태다. 한국교회언론회는 정부의 할랄 육성 방침에 대해서도 “무슬림 대거 유입은 명약관화” “종교 간 갈등을 촉발하게 될 것”이라고 반발하고 “할랄산업 국내 육성을 철회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할랄은 테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선입견도 문제다. 3조달러가 넘는 거대 시장을 놓고 세계 각국이 선점 경쟁을 벌이고 있는 만큼 찬반 논란에 앞서 과연 할랄은 무엇인지, 할랄산업이 우리 경제의 신성장동력이 될 수 있는지 제대로 알고 이해하는 것이 먼저이다.

황은순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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