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펜싱 박상영 / 양궁 장혜진 / 축구 손흥민 / 배드민턴 이용대 ⓒphoto 뉴시스
(왼쪽부터) 펜싱 박상영 / 양궁 장혜진 / 축구 손흥민 / 배드민턴 이용대 ⓒphoto 뉴시스

지난 8월 22일 폐막한 리우올림픽. 16일 동안의 올림픽 기간 중 양궁·펜싱 등 좋은 성적을 거둔 종목의 선수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환호가 이어지고 있다. 반면 예상과 달리 저조한 성적을 낸 유도·레슬링·배드민턴·여자배구 등 일부 종목 선수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책임론이 불거지며 침통한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희비는 비단 각 종목별 참가 선수와 관계자들 사이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니다.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 개인은 물론, 참가 종목을 지원·후원했던 기업들 역시 선수들이 거둔 성적과 이들이 만들어낸 스토리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세계 최대 스포츠 이벤트인 하계올림픽은 참가 선수들이 펼치는 경쟁 이상으로 각 기업들이 벌이는 치열한 마케팅 전쟁으로 유명하다. 엄청난 광고비는 물론, 메달 획득이 예상되는 종목과 선수들에게 천문학적 지원금을 투입하는 식으로 기업들은 마케팅 경쟁을 펼친다. 기업들은 자신들이 지원한 선수와 종목이 거둔 성적을 적극 활용해 기업 인지도 개선과 확대는 물론 제품 홍보까지 하고 있다.

양궁과 끈끈한 관계 현대차·정씨 일가

이 점에서 현대자동차그룹과 현대차그룹 오너들인 정몽구·정의선 부자가 이번 리우올림픽 최대 수혜 기업이자 대표적 수혜 기업인으로 꼽히고 있다. 남녀 개인과 단체전 등 4개의 금메달을 따낸 양궁 덕분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대한양궁협회 회장사(社)로 한국 양궁대표팀을 지원해 왔다. 1985년 현대자동차서비스와 현대정공 사장이던 정몽구 회장이 대한양궁협회 회장에 올랐다. 이후 2005년, 정몽구 회장의 뒤를 이어 아들 정의선 부회장이 대한양궁협회 회장이 됐고, 지금까지 회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31년간 계속된 현대차그룹 정몽구·정의선 일가와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현대자동차그룹의 양궁 종목 지원으로 이어진 것이다. 특히 리우올림픽 TV중계에 나선 양궁 선수 출신 몇몇 해설자들이 경기 중에 “30여년 동안 현대차그룹이 한국 양궁에 수백억원을 지원해왔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말하는 등 현대차 정몽구·정의선 부자와 한국 양궁의 끈끈한 관계를 과시하기도 했다.

정의선 부회장은 개인적으로도 이번 리우올림픽 양궁 덕을 봤다. 한국 선수들의 메달이 확정되는 순간마다 양궁 선수 출신 해설자들이 정 부회장의 이름을 수차례 거명했을 정도다. 이런 이유들 때문인지 기아자동차는 올림픽 기간 동안 양궁 선수를 등장시킨 광고를 내보내며 마케팅에 나서기도 했다.

SK그룹 역시 현대차그룹 이상으로 리우올림픽에서 톡톡히 재미를 본 기업으로 꼽힌다. SK그룹은 2008년부터 최태원 회장이 대한핸드볼협회장을 맡아 핸드볼에 상당한 지원을 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여자핸드볼이 역대 올림픽에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며 올림픽 때마다 SK그룹이 상당한 마케팅 효과를 봐온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 리우올림픽에서 SK그룹은 여자핸드볼이 아닌 펜싱을 통해 마케팅 효과를 얻고 있다.

리우올림픽에서 한국 선수 중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기며 금메달을 딴 펜싱 남자 에페 박상영 선수 덕분이다. 10-14 위기 상황을 15-14로 역전시키며 ‘할 수 있다’ 열풍을 일으킨 박상영의 금메달 하나가 짜릿한 감동을 만들어내며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이런 박상영이 활약한 펜싱을 SK그룹이 지원해온 내용이 올림픽 기간 중 국내 언론들을 통해 알려졌다. 이 덕분에 SK그룹 역시 현대차그룹 이상의 홍보 효과를 얻고 있다. 현재 대한펜싱협회 회장사는 SK텔레콤이다. 펜싱협회 회장이 SK그룹 출신이고, 현직 SK텔레콤 스포츠단 단장이 펜싱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한화그룹에 이번 올림픽은 마냥 웃을 수도 없는 묘하고 애매한 상황이다. 한화그룹은 화약을 만드는 방산업체 한국화약이 모태다. 이런 기업 성격에 맞게 오래전부터 대한사격연맹을 지원해왔다. 한화갤러리아 회장 황용득씨가 현재 대한사격연맹 회장을, 또 한화갤러리아 사업팀장과 과장 한 명이 각각 대한사격연맹 부회장과 이사를 맡고 있을 만큼 한화그룹은 사격에 상당한 지원을 해왔다.

리우올림픽에서 한국의 사격 종목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진종오가 남자 50m 권총 금메달, 김종현이 남자 50m 소총 복사 은메달을 땄다. 하지만 한화 입장에선 이들을 활용한 마케팅이 마냥 속편한 것은 아니다. 진종오는 사격연맹을 지원한 한화그룹보다 자신의 소속팀인 KT에 대한 이미지가 더 강한 선수다. 진종오가 금메달을 따자 KT 황창규 회장이 축하 메시지를 보낸 것을 국내 언론들이 보도하는 등 오히려 KT가 마케팅과 홍보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금·은메달 각 1개씩을 딴 사격을 지원한 한화그룹이나 진종오의 소속팀 KT 모두 올림픽 마케팅 주도권을 주장하기 애매한 상황인 셈이다.

리우가 얄미운 기업들

리우올림픽이 가장 아쉬운 건 삼성그룹이다. 삼성은 한국 스포츠계 최고의 큰손 기업으로 통한다. 오너인 이건희 회장이 한국 유일의 IOC위원일 정도다. 하지만 이 회장은 심근경색으로 서울삼성병원에 입원한 후 사실상 IOC위원 활동을 못 하고 있다. 이후 아들인 이재용 부회장이 사실상 그룹 경영권을 행사하며 스포츠 부문에 대한 지원이 과거만 못 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리우올림픽은 이런 삼성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과거 올림픽 때면 이건희 회장 등 오너일가가 올림픽 현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은 이번에 리우를 찾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배드민턴 등 삼성그룹 계열사 소속 일부 올림픽 대표 선수들이 졸전을 벌이며 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그마나 삼성생명 레슬링팀 김현우가 동메달을 따낸 게 삼성 스포츠팀의 위안이 됐을 정도다.

사실 삼성그룹은 리우올림픽에서 계열사 소속 선수들보다 삼성전자의 대표 상품인 갤럭시노트7이 더 효자 노릇을 했다. 리우올림픽 공식 파트너인 삼성전자가 올림픽 참가 선수 1만2500여명 전원에게 스마트폰 ‘갤럭시S7엣지 올림픽 에디션’을 제공하며 관심을 키웠다. 또 올림픽 선수촌 안에 삼성 갤럭시 스튜디오를 만들어 전 세계 올림픽 대표들을 직접 공략한 것 역시 나쁘지 않은 반응을 얻었다.

한진그룹은 이번 리우올림픽에서 가장 죽을 쑨 대표적 기업이다. 한진 조양호 회장은 대한탁구협회 회장을 오랫동안 맡으며 탁구계를 장악하고 있다. 하지만 리우올림픽에서 한국 탁구는 1988년 탁구가 처음으로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메달을 단 한 개도 따지 못한 첫 올림픽이라는 불명예 기록을 썼다. 동메달 한 개조차 따지 못하며 탁구계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최근 위기에 몰린 부실기업 한진해운의 침울한 분위기 역시 한진그룹이 올림픽 마케팅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들 외에도 KEB하나은행 역시 올림픽 마케팅에 완전히 실패한 대표적 기업으로 꼽히고 있다. KEB하나은행은 축구대표팀에 올인했다. 하지만 축구대표팀이 8강에서 탈락하며 일찌감치 올림픽 마케팅을 접어야 했다.

올림픽은 기업들에 마케팅과 광고·홍보를 위한 절호의 기회이자 피를 말리는 전쟁터다. 4년 후 다음 올림픽에서는 어떤 기업들이 울고 웃을지 지켜보는 것도 선수들의 승부만큼이나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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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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