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산둥성 옌타이의 롯데호텔 위탁경영계약을 체결한 송용덕 호텔롯데 대표(오른쪽). ⓒphoto 호텔롯데
2014년 8월, 산둥성 옌타이의 롯데호텔 위탁경영계약을 체결한 송용덕 호텔롯데 대표(오른쪽). ⓒphoto 호텔롯데

중국 산둥성 옌타이(烟台)시 경제기술개발구. 옌타이시 서쪽에 있는 경제기술개발구는 옌타이시 정부가 중점적으로 개발하는 신도시다. 이 신도시에서는 983가구의 아파트를 비롯 기술기업들이 입주하는 오피스, 특급호텔을 짓는 ‘예다(業達)과기원’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아파트와 오피스 같은 부속건물이 완공된 현재, 당초 호텔이 들어서려던 건물은 여전히 뼈대만 드러낸 채 공사가 중지돼 있다. 이곳에 입주하려던 호텔은 한국 최대 호텔인 롯데호텔이다. 예다과기원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옌타이한국상회(商會)의 관계자는 “교통요지이면서 발전 가능성이 높은 곳인데 어찌된 연유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호텔롯데의 중국 진출이 차일피일 지연되고 있다. 호텔롯데는 2014년 8월 옌타이의 한 부동산개발상(디벨로퍼)과 호텔 위탁경영계약을 체결하고 ‘롯데호텔’ 브랜드를 붙인 호텔을 중국 최초로 세우려고 했다. 호텔롯데 측이 위탁경영계약 체결 당시 밝힌 호텔 개관 시점은 2017년 6월이다. 위탁경영계약을 체결하는 자리에서 송용덕 호텔롯데 대표는 “2017년 성공적인 개관과 운영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당초 올해 6월 개관하려던 옌타이 롯데호텔은 중국 측 사정으로 2018년 3월로 한 차례 늦어진 데 이어 또다시 지연될 조짐이다. 관계 당국으로부터 설계변경에 따른 인허가를 받는 절차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늦어지고 있어서다. 호텔롯데 홍보팀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11월쯤 중국 측 개발상으로부터 설계 및 구조변경과 관련한 변경신고 인허가건으로 예정보다 5~6개월 정도 지연될 것 같다는 공문을 받았다”고 했다.

롯데 측과 중국 현지 한국기업 관계자들은 옌타이 호텔의 지연이 최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의 후폭풍이 아닌지 예의주시 중이다. 지난해 9월 우리 국방부와 군 당국이 사드 배치부지를 ‘최적지’라던 경북 성주군 성주포대(공군 호크미사일 방공포대)에서 롯데 성주골프장(롯데스카이힐 성주CC)으로 변경하면서 롯데는 중국 당국의 ‘눈엣가시’가 됐다. 지난해 11월 29일에는 상하이 푸둥(浦東)에 있는 롯데그룹의 중국본부를 비롯해 150여곳의 중국 현지 사업장이 세무·소방·위생 등 각종 명목으로 일제 점검을 받았다. 랴오닝성 선양에서 호텔을 비롯 백화점·마트·아파트·오피스로 복합개발 중인 ‘선양롯데월드’ 역시 중국 당국이 소방시설 미비를 지적하면서 공사가 일시 중단된 상태다.

호텔롯데의 한 관계자는 “연락을 받은 시점이 성주골프장 사드배치 문제가 터지기 직전이라 직접 관계는 없는 것으로 안다”며 “롯데가 직접 복합단지로 개발하는 선양롯데월드와 달리 옌타이는 현지 호텔을 위탁경영하는 데 불과해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옌타이 호텔 진출이 차일피일 지연되면서 그동안 역점을 둔 중국 진출에도 일단 제동이 걸렸다. 실제 호텔롯데의 2017년 개관 예정 호텔에서 중국 지역 호텔은 모두 제외됐다. 호텔롯데는 오는 5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9월에 미얀마 양곤에 새로 호텔을 낼 예정이다. 호텔롯데의 한 관계자는 “올해 중국 지역 호텔 개관 계획은 없다”고 했다.

호텔롯데는 국내 최대 호텔기업이다. 미국(뉴욕·괌), 러시아(모스크바), 베트남(하노이·호찌민), 우즈베키스탄에서도 ‘롯데호텔’ 이름을 붙인 특급호텔을 운영 중이다. 일본 도쿄에도 일본롯데가 운영하는 롯데시티호텔이 있다. 하지만 해외진출은 아직 걸음마 단계로, 샹그릴라·페닌술라·만다린오리엔탈·오쿠라 등 아시아 지역 경쟁 호텔에 비해 입지가 약하다. 이에 그간 ‘2018년 아시아 3대 호텔’이란 목표로 해외진출에 공을 들여왔다. 하지만 중국 시장 진출만큼은 녹록지 않았다. 중국의 현지 호텔을 비롯해 전 세계 글로벌 호텔이 피말리는 경쟁을 벌이고 있어서다. 대도시 알짜 요지에서는 적당한 호텔 입지조차 구하기 힘들 정도다.

이로 인해 롯데는 ‘2선(線) 도시’에서 대도시로 포위해 들어가는 출점(出店) 전략을 세웠다. 브랜드파워가 약한 한국 기업의 전통적 중국 진출 방식이다. 이 같은 전략에 따라 최초 출점지로 낙점된 곳이 산둥성 옌타이, 랴오닝성 선양, 쓰촨성 청두였다. 마침 옌타이의 예다과기원 측에서 300실 규모의 신규 호텔 위탁경영계약 체결을 타진했고, 이에 호텔롯데 측도 흔쾌히 응했다. 현지 부동산개발상인 예다과기원이 호텔 건물을 세우면, 호텔롯데 측이 그간 축적된 호텔 경영 노하우를 활용해 호텔을 위탁운영하는 방식이다. 위탁경영방식을 통한 중국 진출의 경우 대규모 직접투자에 따르는 예상치 못한 위험과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시련의 롯데

호텔롯데로서도 본격적인 중국 진출과 투자에 앞서 ‘테스트 마켓’으로 시험해 볼 수 있는 그다지 손해볼 것이 없는 장사였다. 국내에서 롯데호텔과 경쟁관계에 있는 삼성그룹 계열의 신라호텔이 2006년 중국 장쑤성 쑤저우(蘇州)의 쑤저우공업원구에 위탁경영방식으로 중국 첫 번째 ‘신라호텔’을 내기도 했다. 쑤저우 역시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 등 삼성그룹 계열사를 비롯해 국내 기업들이 많이 진출해 있어 출장 수요가 많은 곳이다. 신라호텔은 이 같은 방식으로 삼성전자와 삼성SDI가 진출한 산시성 시안(西安)에도 신라호텔 개관을 준비 중이다.

옌타이 역시 두산인프라코어, 대우조선해양을 비롯해 한국 기업들의 진출이 활발한 곳이다. 아직 2선 도시로 글로벌 호텔기업과 경쟁도 치열하지 않다. 현재 옌타이에 있는 글로벌 브랜드 호텔은 힐튼, 쉐라톤, 크라운플라자 정도다. 2014년은 박근혜 정부 초기 한·중 관계가 최상의 평가를 듣던 시점이다. 중국 지방정부도 한국 기업 유치에 혈안이 되어 있을 때다. 당시 자리에는 개발구 관계자들도 대거 참석해 분위기를 띄웠다. 중국 측 개발상 역시 계약 체결 당일 저녁 200여명의 한국 교민을 초청해 ‘한국 특집 행사’를 열기도 했다. 또 ‘옌타이 최초 한국 5성급 호텔’이라고 홍보하며 부동산 분양에도 쏠쏠히 활용했다. 한국의 유명 개그맨 이경규씨를 초청해 홍보에 활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과 2년 만에 사드 배치 문제로 한·중 관계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이제는 몸을 사려야 하는 입장이 됐다. 롯데의 몸 사리기는 성주골프장 사드 부지 제공에 대한 입장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롯데 측은 지난 2월 3일 비공개 이사회를 열고 사드 부지 제공에 대해 논의했지만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역시 특검에 의해 출국금지된 상태라 운신의 폭이 좁다. 이래저래 롯데에는 시련의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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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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