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이 구상 중인 ‘벌집통’ 창고. 드론을 위한 물류 기지다.
아마존이 구상 중인 ‘벌집통’ 창고. 드론을 위한 물류 기지다.

올해는 애플 아이폰이 탄생한 지 10년이 되는 해다. ‘21세기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불리던 스티브 잡스 덕분에 지구 전체의 생활방식이 송두리째 뒤집혔다. 그러나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던가.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10일을 못 넘기고, 하늘을 찌르는 권력이라도 10년을 못 넘긴다. 애플도 마찬가지다. 지난 6월 5일 캘리포니아주 산호세에서 열린 애플의 연례행사 ‘세계 개발자 컨퍼런스(WWDC)’를 기억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사람들은 애플 10주년을 기념한 고성능 신제품이 나온다는 뉴스 정도에만 귀를 기울였다. 청바지, 스니커즈 차림의 스티브 잡스가 주인공으로 등장해 한때 세계인의 눈과 귀를 사로잡던 그런 설렘은 이제 없다. 아이폰의 업그레이드나 가격이 어떻다는 수준 정도의 관심에 그친다. 애플도 이제 예측 가능한 세계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최근의 WWDC를 지켜보면 애플에서 혁신의 이미지는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화무십일홍’은 애플만이 아니라 구글, 페이스북도 비껴가기 힘든 운명일지 모른다. 달나라에 간다는 구글, 10억 단위의 유저를 자랑하는 페이스북이지만 언제부턴가 무덤덤하게 와닿는다.

아마존닷컴(이하 아마존)은 설립 23년째를 맞은 미국 IT업계의 맏형 격이다. 화무십일홍을 두 번 이상 겪은 ‘꼰대’ 기업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마존에서는 그렇게 늙은 냄새가 안 난다. 청년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거를 파는 노년기 기업도 아니다. 아직은 매력을 유지하고 있고 뭔가 새로운 자극을 줄 만한 이미지로 남아 있다. 최근의 홀푸드 매입만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아마존 특유의 혁신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존의 혁신에서는 단순한 돈벌이를 넘어 인류의 미래를 가늠케 하는 비전도 보인다. 크게 볼 때 4가지 영역에서의 진화, 약진이 두드러진다.

아마존의 드론
아마존의 드론

1 드론 물류 제국

구글·애플·페이스북이 부러워하는 아마존만의 자랑이자 비즈니스 영역이다. 빨리, 정확히, 대량으로 물건을 옮기자는 것이 아마존의 목표다. 드론은 차기 물류 수단의 왕자로 각광받고 있다. 구글의 무인자동차도 물류의 대변화를 예감케 하지만 보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물건을 배달하는 수단으로 드론만 한 것이 없다. 기술적 진보를 통해 드론의 가격이 싸지고 기능도 엄청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중 드론이 나타나자마자 어느 틈엔가 리모트 컨트롤러 없이 손바닥 하나만으로 움직이는 팜 드론(Palm Drone)이 등장하는 세상이다.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는 15㎝ 크기에, 최고시속 100㎞로 3㎏의 물건을 실어나를 수 있다. 아직 가격이 500달러 선이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100달러 이하로 내려갈 전망이다. 바다와 하늘만이 아니라 지하와 우주를 드나드는 드론도 나올 판이다.

아마존은 그 같은 시대를 예견하고 드론을 앞으로 펼칠 모든 비즈니스의 핵심으로 만들어 놓은 상태다. 드론 자체 개발에 나서면서 수많은 관련 특허 확보에 나서는 것은 물론 드론에 가해지는 법적 제재를 피하기 위해 연방정부에 엄청난 로비를 벌이고 있다. 미국은 자본주의의 본산이다. 말이 된다면 모든 비즈니스를 장려하는 나라다. 아마존이 추진하는 드론 물류 비즈니스의 법적 걸림돌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지만 미국의 비즈니스 우선 마인드를 고려하면 큰 제약이 될 수 없다.

이른바 ‘벌집통(Beehives)’ 창고는 드론 물류 비즈니스의 기반이 되는 아마존의 새로운 프로젝트 중 하나다. 아마존의 드론 물류는 벌집통처럼 생긴 창고를 기반으로 한다. 드론을 위한 초대형 주차장이자 물류창고가 아마존 벌집통이다.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있는 동네마다 수십 수백 개의 벌집통 창고를 만들 계획이다. 수많은 물건을 보관하는 동시에, 수백 수천 대의 드론이 대기하면서 배송에 나서는 기지인 셈이다.

주문을 받는 즉시 주문처와 가장 가까운 벌집통으로 연락이 간다. 곧바로 자동분류된 물건이 드론에 전달되면서 주문자에게 언제 도착하는 것이 좋을지 모바일을 통해 묻는다. 주문자는 정확한 도착 시간과 장소를 모바일로 확인하면서 집 앞에서 기다리면 된다. 주문한 물건이 가까운 벌집통에 있을 경우 소비자는 1시간 안에 주문한 상품을 손에 쥘 수 있다. 주문 이후 물건을 집안에 들여놓기까지의 모든 과정에 아마존이 축적해 놓은 IT기술이 깔려 있다.

아마존의 벌집통 창고는 가까운 시일 내에 전 세계 도심 곳곳에서 볼 수 있는 21세기의 새로운 풍경이 될 전망이다. 마치 꿀벌이 꿀을 찾아 헤매듯, 아마존 드론이 주문자에게 신속 정확하게 달려가는 모습도 일상화될 것이다. 아마존은 이미 지난해 12월 영국 케임브리지 지역에서 드론 배달 실험을 완료한 상태다. 당시 드론은 이륙 후 13분 만에 배송을 완료했다. 필자의 판단이지만 앞으로 5년 내로 벌집통 드론 비즈니스는 현실화될 것이다. 간단한 물건만이 아니라 수십㎏의 물건이나 신선도가 필요한 농수산물도 드론 하나로 간단히 배달할 수 있을 것이다. 온라인 서적에서 시작한 아마존은 드론을 통해 물류의 왕자로 거듭 태어날 전망이다.

아마존은 드론을 활용한 새로운 의료·제약 서비스도 검토 중이다.
아마존은 드론을 활용한 새로운 의료·제약 서비스도 검토 중이다.

2 혈액 검사와 치료제 배달

아마존의 홀푸드 매입 소식이 전해지면서 미국에서는 ‘아마존 때리기’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른바 반독점법에 따라 아마존의 문어발식 사업확장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아마존이 배달 전문회사인 페덱스(FedEx)에도 눈독을 들인다”면서 “당장 제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확산되고 있다. 6월 19일자 뉴욕타임스에 실린 ‘재벌은 죽지 않았다(Conglomerates Didn’t Die)’라는 제목의 기사는 디지털 포식자가 연약한 중소 아날로그 비즈니스를 싹쓸이하고 있다는 반(反)아마존 정서를 잘 보여주고 있다.

현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는 미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아날로그 비즈니스 종사자다. 상황으로 본다면 아마존에 대한 반독점 반재벌 논리가 먹힐 듯도 하다. 실제로 지난해 선거운동 당시 트럼프는 “내가 대통령이 되면, (아마존은) 문제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한 적이 있다. 인터넷 거래에 따른 세금포탈이 트럼프의 공격 명분이었다. 비슷한 시기, 세계 2위 부자로 등극한 아마존 CEO 제프 베조스에 관한 뉴스도 흘러나왔다. ‘베조스 차기 대통령 선거 출마 전망’. 트럼프와 아마존은 물과 불의 관계다. 그러나 아마존이 실제로 법적 제약을 받을지는 의문이다. ‘비즈니스 제1주의’를 외치는 미국적 환경을 이해한다면 IT계의 맏형 아마존을 반독점 기업 리스트에 올리기는 힘들 것이다. 애플, 페이스북, 구글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분명한 것은 포식자 아마존의 사업영역이 확장될수록 반독점 반재벌에 근거한 아마존 때리기가 한층 더 심해질 것이란 점이다.

의료나 제약에 대한 아마존의 관심은 앞으로 반(反)아마존 정서를 증폭시키는 또 다른 소재가 될 것이 분명하다. 의료·제약 분야는 웰빙, 고령화사회에 대비하고 있는 아마존의 비즈니스 신천지다. 21세기 IT기업의 궁극적인 종착역은 의료·제약산업으로 집약될 전망이다. 얼마나 건강하게 오래 사느냐는 모든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의료·제약 서비스와 관련해 아마존이 주목하는 것은 ‘실험실 테스트(Lab Tests)’와 그에 따른 처방이다. 간단히 말해 혈액 검사나 유전자 검사 같은 것을 아마존이 시행한 뒤 거기에 맞게 약품을 제공하는 식이다. 물론 조만간 ‘아마존 병원’이나 아마존 라이선스를 가진 협력 치료시설도 상상할 수 있다. 혈액 검사나 유전자 검사를 원하는 사람이 스스로 샘플을 채집한 뒤 드론으로 아마존에 보내면 결과를 디지털 기기로 확인하는 방식의 비즈니스도 구상 중이다. 아마존 의료팀이 처방이나 자문을 한 뒤 거기에 맞는 치료제나 건강식 등을 드론으로 보낼 수도 있다. 아마존이 직접 신약 개발에 나설 수도 있지만, 초기에는 이미 만들어진 신약 가운데 효능이 좋은 제품을 판매할 전망이다. 물론 테스트나 처방, 결과물 확보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엄청 빠르고 저렴하다. 예컨대 간암이 걸렸는지 확인하기 위해 피 한 방울을 아마존으로 보내면 결과와 처방을 24시간 안에 얻는 식이다.

아마존의 의료·제약 사업은 막연한 구상에 그치고 있지 않다. 지난 6월 초 미국 증권가에서는 ‘아마존의 의료·제약 사업 임박’에 관한 정보가 흘러나왔다. 소문이 퍼지는 순간 기존 의료·제약 관련 주식이 일제히 추락했다. 6월 16일 하루 만에 의료·제약 관련 주가가 100억달러 정도 폭락했다고 한다. 애플·구글·페이스북이 따라가기 힘든 영역이지만 아마존에는 반재벌 반독점 정서를 확산하기에 충분한 ‘위험한’ 신천지라 볼 수 있다.

아마존의 신생아 등록 서비스.
아마존의 신생아 등록 서비스.

3 신생아 비즈니스

한 번에 두 명의 고객을 확보하고 이후에도 확실한 고객층을 유지할 수 있는 비즈니스는? 바로 임산부 상대 비즈니스가 정답이다. 쌍둥이일 경우 임산부를 포함해 한 번에 세 명의 고객 확보가 가능하다. 이후 둘째, 셋째가 태어나면 장래의 고객도 기대할 수 있다. 최근 아마존이 힘을 쏟고 있는 새로운 비즈니스는 ‘신생아 등록(Baby Registry)’이다.

아마존이 구상하는 이 비즈니스는 우선 임산부가 신생아 출산 날짜와 자신에 관한 간단한 정보를 아마존에 제공하면서 신생아 등록을 하는 것으로 출발한다. 이후 아마존은 출산일을 전후해 준비할 물건 목록을 모바일 기기를 통해 전달한다. 신생아가 자랄 동안 필요한 모든 물건과 정보도 제공받고 구입할 수 있다. 육아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물건이나 상품에 관한 정보도 파악할 수 있다. 신생아 등록을 하면 10~15%의 할인도 적용된다. 기존에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가 하던 출산 컨설턴트 역할을 아마존이 대신하는 셈이다. 임산부는 출산·육아에 관한 자신의 경험담을 글로 남겨 모두와 공유할 수도 있다. 신생아나 임산부가 구입한 물건은 90일 내 반품이 가능하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27만여종에 달하는 아마존 내 어린이 관련 상품을 간단하고 저렴하게 확보할 수 있다. 특히 20~30대 밀레니엄 세대의 경우 육아 관련 정보에 무심하다. 하지만 아마존의 신생아 등록증 한 장만 갖고 있으면 외부 도움 없이 자식을 키울 수 있는 시대가 열리는 셈이다. 물론 한 번 아마존에 신생아 등록을 할 경우 그 아이에 관한 디지털 정보는 영원히 남게 된다. 아마존이 도우미로 나서 다출산을 장려하는 비즈니스라 볼 수도 있다.

인도 뉴델리에 걸린 아마존 간판.
인도 뉴델리에 걸린 아마존 간판.

4또 다른 신천지 인도

인도가 중국을 잇는 핵심 글로벌 시장이란 사실은 상식에 속한다.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상식을 따를 경우 이미 늦었고 상식이 정착되기 전에 움직여야 확실한 기회가 보장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워싱턴을 방문하기 직전, 인도 총리 나렌드라 모디가 미국에 먼저 들렀다. 미국의 대표적 기업인들 대부분이 모디와의 만남에 매달렸다. 아마존 제프 베조스는 모디가 가장 먼저 만난 기업인 중 한 명이다. 제프 베조스는 모디와 만나기 직전, 인도에 대한 투자를 한층 강화할 것이란 트위터 메시지를 던졌다.

인도에 관한 한 아마존은 ‘파이오니어 기업’에 해당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인도인의 아마존에 대한 높은 호감도에 있다. 외자 회사에 대한 반감이 높은 인도지만, 아마존은 인도인이 가장 신뢰하는 외국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인도 IT기술자들의 활약이 두드러진 기업이 바로 아마존이다. 현재 인도는 아마존이 올인하고 있는 글로벌 시장의 최전선이다.

인도 뭄바이는 21세기 초 상하이(上海)에 버금가는 글로벌 투자 1순위 도시다. 올해 아마존의 뭄바이권 수익 규모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20% 증가한 상태다.(4월 말 기준) 이미 9개의 초대형 물류창고와 33개의 중형 물류센터를 인도에서 가동하고 있다. 아마존은 올해 중 인도 내 13개 지역에 41개의 중소 규모의 물류창고를 추가로 개설할 예정이다. 맥도날드 햄버거와 월마트는 중국의 외자도입이 본격화하던 1990년대 초 파이오니어 기업이었다. 당시 아마존은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다. 인도에서의 아마존의 발 빠른 활약을 보면 한 세대 전 맥도날드와 월마트에 비견된다. 21세기 비즈니스 신천지 인도에 대한 아마존의 관심은 가속화할 전망이다. 2014년에 20억달러를 인도에 투자했고 올해 30억달러를 더 투자할 예정이다.

유민호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