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제
[2475호] 2017.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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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중국서 부활한 일본 車의 교훈

▲ 2012년 9월 중국 광둥성 선전의 한 주차장에 일본 차들이 뒤집혀 있다. 센카쿠열도 국유화에 대한 항의로 반일시위대가 뒤엎은 차량들이다. photo AP·뉴시스
2012년 9월 15일, 중국 산시성 시안(西安)에서 자신의 도요타 코롤라 승용차를 타고 가던 리(李)모씨가 봉변을 당했다. 차이(蔡)씨 성을 가진 한 남성이 길 가던 차에서 리씨를 끌어내려 길바닥에 패대기친 후 자전거 열쇠뭉치로 두들겨팬 것. 엉겁결에 선혈이 낭자할 정도로 무차별 폭행을 당한 리씨는 뇌사상태에 빠졌다. 리씨가 봉변을 당한 시점은 일본 민주당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정권이 2012년 9월 11일 동중국해의 센카쿠열도(尖閣列島·중국명 댜오위다오)를 개인소유자들에게 사들여 국유화를 선포한 직후였다. 중국에서 반일(反日)감정이 극도로 고조됐고, 졸지에 리씨가 도요타 코롤라 승용차를 타고 다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매국노’로 지목돼 폭행 대상이 된 것이다.
   
   일본 차 소유자에 대한 무차별 폭행과 차량 방화 등의 흉흉한 소식이 꼬리를 물자 중국에서 일본 차 판매량이 급감하기 시작했다. 일본 미즈호종합연구소에 따르면, 같은해 9월 일본 차 판매가 30~40%가량 빠진 데 이어 10월에는 그 여파로 최대 79%(마쓰다)까지 줄어들었다. 같은해 9월 18일, 만주사변 81주년을 전후로 반일시위가 최고조에 달하자 광저우에서 차량을 생산하는 혼다자동차는 18~19일 이틀 동안 공장 가동을 중지시켰다. 도요타 역시 톈진(天津)공장 가동을 중지시켰고, 지금은 닛산에 인수합병된 미쓰비시자동차는 후난성 창사(長沙)의 신공장 준공을 앞두고 일본인 주재원들에게 ‘자택 대기’ 지시를 내렸다. 결국 2012년 중국 진출 일본 자동차 주요 3사는 당초 설정한 판매목표의 80%가량을 달성하는 데 그쳤다. 그나마 상반기가 아닌 하반기에 센카쿠 분쟁이 터진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센카쿠열도 분쟁이 터진 2012년 이후 일본 차는 다시는 중국 길거리에서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랬던 일본 차가 중국에서 완벽하게 부활했다. 중국자동차공업협회가 지난 7월까지의 중국 시장 합자(合資) 브랜드별 판매량을 전수조사한 결과, 닛산과 중국 둥펑(東風)자동차의 합자사인 둥펑닛산은 60만5134대를 판매해 6위, 도요타와 제일자동차(一汽)의 합자사인 이치도요타는 41만7453대를 판매해 10위에 이름을 올렸다. 혼다차와 둥펑차의 합자사인 둥펑혼다는 39만5518대를 판매해 11위, 혼다차와 광저우차의 합자사인 광치혼다는 37만1468대를 판매해 12위, 도요타차와 광저우차의 합자사인 광치도요타는 25만9537대를 팔아 16위에 오르며 그 뒤를 바짝 추격했다.
   
   
▲ 지난 7월까지 일본 차 중 중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둥펑닛산의 실피. photo 바이두

   중국에서 한국 차 압도한 일본 차
   
반면 베이징현대는 지난 7월까지 33만9928대를 팔아 13위에, 둥펑위에다기아는 14만9671대를 판매하는 데 그쳐 22위에 머물렀다. 베이징현대와 둥펑위에다기아 양사의 판매량을 합산해도 둥펑닛산(60만5134대) 한 곳에 뒤지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온 것이다. 게다가 2003년 중국 시장에 진출한 닛산은 2002년 중국 시장에 진출한 현대차보다 후발주자다.
   
   일본계 마이너업체인 창안마쓰다(10만4113대), 이치마쓰다(7만139대), 창안스즈키(4만4133대)의 지난 7월까지 판매량을 합산하면 일본 차는 중국 시장에서 한국 차를 완전히 압도했다. 현대차그룹의 한 관계자는 “현대차그룹 출범과 중국 시장 진출 이후 최대 위기”라고 말했다.
   
   2012년 센카쿠 분쟁과 같은 외부 요인으로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에서 퇴출될 뻔한 일본 차가 5년 만에 완벽하게 부활한 것은 현대기아차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현대기아차 역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이후 중국 측의 유무형 보복조치로 비슷한 위기를 겪고 있어서다.
   
   2012년 센카쿠 분쟁 당시 반일감정으로 촉발된 일본 차에 대한 불매운동과 연이은 차량파괴 행위는 현재의 사드 보복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당시 중국에 진출한 일본 차들은 기민하게 원인분석과 대응책 마련에 들어갔다. 우선 일본 차에 대한 광범위한 불매운동이 일본 차에 대한 반감 탓이 아니라는 점을 간파했다. 오히려 중국 자동차 소비자들의 우려는 큰돈 들여 일본 차를 구매했다가 시위대에 의해 차량손괴 등 재산피해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실제로 자신의 차량이 반일시위대의 표적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오성홍기를 내걸거나, ‘차는 일본차지만, 마음은 중국 마음(車是日本車, 心是中國心)’이란 표어를 붙이고 다니는 차들도 비일비재했다. “불의(不義)는 참아도 불리(不利)는 못 참는다”는 중국인의 기질을 정확히 분석한 것. 코트라 베이징무역관에 따르면, 일본 차들은 신속한 차량수리는 물론 차량보험 한도를 넘는 피해 발생 시 회사 측에서 추가분을 지원하기로 하는 등 각종 지원책을 내놨다.
   
   중국 시장에서 판매하는 모델 교체에도 착수했다. 1998년 혼다차(광치혼다)를 선두로 도요타(2000년), 닛산(2003년), 마쓰다(2005년), 미쓰비시(2012년) 순서로 중국 시장에 본격 진출한 일본 자동차 회사들은 일본 시장에서 이미 단종된 차종을 중국 시장에 들고 가서 판매해왔다. 2000년대 초반 중국은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소득이 급증하면서 ‘마이카(My Car)’ 수요가 폭증할 때다. 당시만 해도 중국 토종차들은 품질경쟁력과 브랜드 신뢰도가 형편없었기 때문에 일본 차는 구형 모델이라고 해도 불티나게 팔렸다.
   
   하지만 2008년을 시작으로 이미 일본 차의 구태의연한 영업전략에는 빨간불이 켜지고 있었다. 2008년 일본 차 전체의 중국 시장점유율이 30.5%로 정점을 찍은 후 이미 20%까지 하락한 상태였다. 2002년 중국 시장에 진출한 현대기아차의 급성장과 현지 토종차들의 맹추격에 따른 점진적 하락이었다. 게다가 2010년에는 광저우혼다와 이치도요타의 부품공장에서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중국 현지 근로자들의 연쇄 장기파업도 발생했다. 브랜드 이미지가 추락하면서 노무관리는 물론 인건비 부담마저 올라간 상태였다. 결국 2012년 센카쿠열도 분쟁으로 일본 차의 시장점유율이 급락한 것은 이런 원인들이 차곡차곡 누적된 결과였다.
   
   이후 일본 차들은 일본에서 구형 모델을 들여와 팔던 관행해서 탈피해 중국 시장에 맞는 경쟁력 있는 차종을 대거 출시했다. 실제 지난해 닛산은 실피(중국명 쉔이)를 36만여대 팔아 지난해 전체 판매순위 6위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 올해 역시 지난 7월까지 차종별 판매 결과, 20만여대를 판매한 닛산 실피가 전체 5위, 19만대를 판매한 도요타 코롤라가 6위에 오르는 등 10위권 내에 2대나 진입했다.
   
   반면 현대기아차는 지난 7월까지 가장 많이 팔린 차종이 6만9804대를 팔아 전체 순위 49위에 오른 랑동(朗動)이다. 랑동은 국내에서는 이미 단종한 구형 아반떼다. 현대기아차로서는 중국 시장에서 새 주력 차종으로 선보인 신형 아반떼 링동(領動)의 판매량이 3만7687대로 전체 순위 96위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적지 않은 골칫거리다. 기아차가 가장 많이 팔았다는 K3(지난 7월까지 6만3491대) 역시 중국 시장에서 선보인 지 오래된 모델이다. 외부적 위기에도 굳건히 버틸 수 있는 신차의 부재가 아쉬운 대목이다.
   
   물론 전체 시장 판도만 놓고 보면 아직 중국 자동차시장에서 현대기아차의 위상은 일본 자동차 각 사보다 더 크다.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중국 시장에서 현대차 114만대, 기아차 65만대를 판매해 총 179만대로 혼다(119만대), 도요타(106만대), 닛산(101만대)등 일본 자동차 주요 3사를 각개격파했다. 하지만 한국 차는 사실상 단일회사인 현대기아차 혼자서 고군분투하는 터라 그만큼 외부 충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최근 불화설(說)이 돌고 있는 중국 측 합자사인 베이징차와의 관계 설정만 해도 그렇다. 사실상 베이징차 1개사에 중국 사업을 의존하는 현대차와 달리 일본 차의 경우 닛산은 둥펑, 도요타는 제일차(이치)와 광저우차(광치), 혼다는 둥펑과 광저우차, 마쓰다는 창안차와 제일차 등으로 합작선이 다변화돼 있다. 도요타나 혼다, 마쓰다와 같이 1개 회사가 2개의 합작선을 잡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를 통해 중국 측 합작사들을 서로 경쟁시키는 효과가 있다. 특정 자동차 회사의 합작 관계에 문제가 생겨도 전체 일본 차 전체로는 위기가 전이되지 않는 구조다.
   
   일본 차의 합작파트너인 둥펑, 이치, 창안은 폭스바겐과 GM이 합작선으로 잡고 있는 상하이차와 함께 중국 정부가 육성하는 4대 자동차그룹 중 하나다. 그만큼 경영이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하다. 현대차의 합작 파트너인 베이징차는 중국에서 아직 2류 회사라서 경영상 리스크가 크다. 이를 이유로 현대차가 합자사인 베이징현대차의 경영을 사실상 주도할 수 있었지만 점차 베이징차의 발언권이 세지고 있다. 또한 생산공장과 주요 시장이 수도 베이징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외풍(外風)을 많이 탈 수밖에 없다. 이는 한·중 관계가 좋았을 때는 현대차에 유리한 점으로 작용했지만 한·중 관계가 악화된 지금은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둥펑위에다기아의 경우 25%의 지분을 갖고 있는 둥펑차는 4대 자동차그룹 중 하나지만, 기아차보다 월등한 닛산·혼다와도 합작관계를 맺고 있기에 자연히 기아차에 신경을 덜 쓸 수밖에 없다. 나머지 25% 지분을 가진 위에다(悅達)는 장쑤성 옌청(鹽城)의 지방 공기업에 불과하다. 기아차가 옌청이란 시골에 생산공장을 두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위에다라는 인지도 떨어지는 이름이 차량 브랜드(둥펑위에다기아)에 들어가니 브랜드 이미지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기아차의 경우 얽히고설킨 합작관계가 오히려 더 큰 성장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셈이다. 사드 외풍으로 불가피한 성장통을 앓고 있는 현대기아차로서는 2012년 일본 차의 위기극복 전례를 교훈 삼아 대중(對中) 전략을 전면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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