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6일 환율이 1219원으로 치솟고 코스피 지수는 1900포인트가 무너지기도 했다. ⓒphoto 뉴시스
지난 8월 6일 환율이 1219원으로 치솟고 코스피 지수는 1900포인트가 무너지기도 했다. ⓒphoto 뉴시스

한국 자본시장에 대한 불확실성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북한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리스크가 다시 고조된 상황이고, 중국 기업들의 악성 부채와 지방 금융사들의 부실까지 본격화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리스크들이 우리 경제, 특히 자본시장으로 빠르게 전이되며 외국계 자본의 한국 시장 대규모 이탈 현상을 불러오고 있다는 것이다. 2019년 한 해 불안함을 이어오던 외국계 자본 이탈이라는 악재가 2020년에도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역시 깊어지고 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외국인 자금이 한국을 빠져나갔기에 ‘불확실성 우려’라는 표현까지 등장하고 있는 것일까. 지난 12월 9일 한국은행은 ‘2019년 11월 이후 국제금융·외환시장 동향’이란 제목의 자료를 내놓았다. 이 자료에 따르면 2019년 11월 한 달 동안 한국 자본시장을 빠져나간 외국인 자금이 주식시장 24억4000만달러, 채권시장 15억2000만달러 등 총 39억6000만달러에 이른다. 즉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에서 각각 2조9060억4000만원(12월 9일 매매기준 환율 기준)과 1조8103억2000만원 등 무려 4조7163억6000만원에 이르는 외국인 자금이 11월 단 한 달 동안 한국 시장을 떠난 것이다.

한국은행 ‘11월 떠난 외국인 자금 5조 육박’

한국은행의 집계와 조금 차이가 있지만 금융감독원 역시 지난 12월 16일 최근 외국인 자금의 한국 시장 대규모 이탈 실태를 읽을 수 있는 ‘2019년 11월 외국인 증권투자 동향’이라는 자료를 내놨다. 이에 따르면 지난 11월 한 달 동안 한국 주식시장을 빠져나간 외국인 자금이 2조8390억원(순매도)이고, 채권시장에서 빠져나간 외국인 자금이 1조7760억원(순회수)에 이른다. 외국인들이 한국 자본시장에 투자했던 자금 중 무려 4조6150억원에 이르는 돈을 현금화했다는 의미다.

그런데 기자의 취재 결과 한국은행과 금감원의 집계보다 한국 시장을 이탈한 외국계 자금의 규모가 실제로는 더 클 수 있다는 내용이 드러났다. 지난 11월 한 달 동안 한국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은 천문학적 규모의 ‘팔자(순매도)’ 행렬을 이어왔다. 외국인들은 한국거래소를 통해 지난 11월 한 달 동안 3조5450억4500만원어치가 넘는 한국 주식을 팔아치웠다. 한국은행 집계보다 6390억500만원 이상, 금융감독원 집계보다는 무려 7060억4500만원 이상 더 많은 자금이 한국 주식시장을 이탈했다는 뜻이다.

물론 한국 주식을 순매도해 마련한 현금을 외국인들이 주식이 아닌 한국 내 다른 자산에 재투자했을 가능성도 있다. 또 급락한 시장과 악화된 경제 상황을 관망하며 현금화한 돈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런데 재투자든 보유든, 그 규모가 크지 않다는 게 취재에 응한 외국계 투자사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들은 한은이나 금감원이 집계한 것보다 사실상 더 큰 규모의 외국인 자금이 어떤 형태로든 한국 시장을 이탈했을 것으로 분석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한국 주식시장 대규모 이탈 현상은 11월을 넘어 12월 초에도 계속됐다. 12월 1일부터 10일까지의 상황을 보자. 거래일 기준으로 단 7일 동안 외국인 투자자들이 팔아치운 한국 주식, 즉 순매도 규모가 8604억2782만원을 넘었다. 성장률 급락과 수출둔화, 고용악화 등 경제 전반의 악순환 우려가 커지고 있는 한국 경제 상황은 물론이고, 급변하고 있는 미국과 북한 상황 등 지정학적 리스크, 여기에 중국 경제의 부실과 시장 급락까지 한꺼번에 부각되며 12월에도 외국인 자금의 한국 시장 이탈을 자극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물론 지난 12월 12일(미국 시각) 전격적으로 이뤄진 미·중 간 ‘1차 무역협상안 합의’, 또 추락한 주가 수익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지난 연말 국내외 대형 투자사들이 적극적으로 벌인 ‘윈도 드레싱’의 영향으로 12월 10일 이후 외국인 자금의 한국 시장 탈출 러시가 둔화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약발’이 오래가기 힘들다는 우려도 크다.

지지부진했던 2019년 한국 주식시장 상황으로 인해 한국에 투자한 국내외 투자사들의 2019년 수익률이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니다. 가라앉은 수익률을 막판에 끌어올리기 위해 12월 중순 이후 연기금과 금융투자사 등 기관투자자들이 상당한 규모의 돈을 주식시장에 쏟아부으며 개별 주식들과 지수를 끌어올리고 있다. 12월 10일부터 20일까지, 단 9일(거래일 기준) 만에 연기금과 한국계 금융투자사 등 기관투자자들이 사들인 한국 주식 규모가 무려 1조4040억2000만원에 육박한다. 문제는 12월 중순 벌어진 이 같은 대규모 주식 매입 효과가 12월 말 폐장 이후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또 1차 합의에도 불구하고 미·중 무역분쟁 역시 타결이 요원한 게 현실이다.

중국 주요 수출항인 상하이 양산부두 컨테이너 선착장. ⓒphoto 뉴시스·AP
중국 주요 수출항인 상하이 양산부두 컨테이너 선착장. ⓒphoto 뉴시스·AP

8월 초 예고했던 외국인 자금 한국 탈출

외국인들의 한국 자본시장 대규모 이탈은 사실 지난 8월부터 본격화된 것으로 보인다. 7월까지만 해도 한국 시장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관점은 ‘짧은 시간 수조원을 빼낼 만큼 리스크가 확대됐거나, 확대될 가능성이 큰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이런 관점이 7월 말부터 변하기 시작해, 8월이 되자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지난 7월 말까지만 해도 외국인들은 한국 주식을 팔기는커녕 오히려 1조9162억3778만원어치가 넘는 주식을 더 사들였다. 투자 확대 성향을 보였던 것이다.

그랬던 외국인들이 불과 한 달 뒤인 8월 초부터 한국 주식을 팔아치우며 현금화하기 시작했다. 8월 2일 단 하루에 3287억6197만원어치를 팔아치웠고, 다음 거래일인 8월 5일과 6일 역시 각각 3514억9477만원어치와 3183억6205만원어치가 넘는 한국 주식을 처분했다. 이렇게 8월 1일부터 6일까지 단 4일(거래일 기준) 만에 외국인들은 1조1106억8289만원어치 넘게 한국 주식을 팔아치웠다. 한국 주식을 ‘내다버렸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만큼 엄청난 규모와 속도로 외국인들이 한국 주식시장에서 이탈했던 것이다. 참고로 지난 8월 한 달간 외국인 투자자들은 2조5929억5516만원어치 넘는 한국 주식을 팔아치웠다.

9월에도 외국인들은 1조328억8100만원어치에 육박하는 주식을 순매도했다. 이렇게 8월 1일부터 12월 10일까지 외국인들이 팔아치운 한국 주식 규모는 무려 8조2517억6757만원어치가 넘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실 기자 역시 지난 8월 초 ‘2019년 외국인들이 대규모로 한국 시장에서 이탈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지난 8월 12일자 주간조선(2570호) ‘8월 말 더 큰 악재가 기다리고 있다’는 기사를 통해 ‘국내외 각종 이슈들이 한국 경제와 자본시장을 8월부터 본격적으로 압박할 것이고, 이 영향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수조원대 한국 주식을 처분해 한국 시장에서 빠져나갈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을 보도했었다.

지난 10월 북한이 공개한 잠수함탄도탄 북극성 3형 시험발사 모습. ⓒphoto 뉴시스·노동신문
지난 10월 북한이 공개한 잠수함탄도탄 북극성 3형 시험발사 모습. ⓒphoto 뉴시스·노동신문

‘MSCI지수 조정’ 한국 이탈 신호탄

외국인들은 왜 지난 8월부터 한국 자본시장에서 대거 이탈하고 있는 것일까. 외국인 자금의 한국 시장 대거 이탈을 촉발하고 있는 요인은 다양하다. 미·중 무역분쟁과 급등한 환율, 한국과 일본 간 경제 충돌, 한국 경제 기여도가 절대적인 반도체 시장의 악화와 기대보다 현격히 낮아진 주요 기업들의 실적, 1%대가 확실시되고 있는 경제성장률 추락 등 국내외 각종 경제 이슈들이 주식과 채권 등 한국 자본시장을 압박하고 있다. 여기에 실망감을 키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의 기준금리 정책 혼선과 트럼프 정부의 노골적인 미국보호주의, 특히 MSCI신흥국지수 조정 이슈가 8월부터 본격적으로 한국 시장에 충격을 가했다.

이 요인들 중 8월 이후 외국인 투자자들의 대규모 자금 이탈과 관련해 ‘MSCI신흥국지수 조정’ 이슈를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자 역시 지난 8월 초 ‘8월 말 더 큰 악재가 기다리고 있다’는 기사를 통해 ‘MSCI신흥국지수의 비중 조정 이슈가 외국인 자금의 대규모 한국 시장 이탈을 불러올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당시 분석대로 MSCI신흥국지수의 국가별 비중 조정은 현재 한국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외국인 자금의 대규모 이탈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MSCI는 지난 8월 자신들의 인덱스를 조정했다. 이때 MSCI신흥국지수도 조정 대상으로 분류해 국가별 자산 배분 비중을 개편했다. 이에 따라 중국A주와 사우디아라비아 시장의 편입 비중이 기존보다 높아졌다. 기존 10%이던 중국 A주(대형주 기준)의 반영비율을 15%로, 50%이던 사우디아라비아 비율을 100%로 확대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MSCI신흥국지수 전체에서 중국A주 비중은 기존 1.5%에서 2.1%로, 사우디아라비아 비중은 1.4%에서 2.7%로 확대된다. 문제는 중국A주와 사우디아라비아 시장의 비중이 확대되는 만큼, MSCI신흥국지수에 포함돼 있는 한국 주식시장의 비중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결국 13.1%이던 한국 시장의 비중이 12.8%로 쪼그라들었다.

간단히 말해 MSCI신흥국지수 조정에 따라 이 인덱스지수를 추종하도록 설계된 글로벌 자금이 한국 주식을 팔아 만든 돈으로 중국A주와 사우디아라비아 시장에 상장된 주식을 더 사야 한다는 뜻이다. MSCI신흥국지수를 추종하는 자본이 팔아야 하는 한국 주식 규모는 2조원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별 투자 비중이 조정된 MSCI신흥국지수는 지난 8월 27일부터 국내외 투자자본에 실제 적용되기 시작했다. 이론적으로 이때를 전후해 MSCI신흥국지수를 추종하는 2조원 정도의 외국계 자본이 한국 이외의 시장으로 빠져나갔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후에도 지수 조정 후속 작업으로 비중이 축소된 한국 시장에서 비중이 확대된 해외 자본시장으로 어느 정도 자금이동이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MSCI신흥국지수 이슈로 한국 시장을 이탈했거나, 이탈하게 될 외국인 자금의 규모는 3조원 정도로 추산할 수 있다.

북한 핵·미사일 이슈 외국인 이탈 자극

그런데 8월 이후 주식시장 등 한국 자본시장을 이탈한 외국인 자금 규모는 3조원을 훨씬 넘는다. 특히 11월 1일부터 12월 10일까지, 불과 한 달 열흘 동안 외국인들이 팔아치운 주식 규모만 4조4054억7321만원에 이른다. 지난 11월 한 달간 한국 채권시장을 빠져나간 외국인 자금 15억2000만달러(한국은행 집계·1조8103억2000만원)를 더하면 6조원 넘는 자본이 이탈했다는 뜻이 된다.

미·중 1차 무역협상안 합의와 윈도 드레싱 효과로 외국인 자금 유출이 둔화됐다고 알려진 12월 중순까지 범위를 넓혀보자. 11월 1일부터 12월 20일까지 외국인들은 2조739억5735만원어치가 넘는 한국 주식을 팔아치웠다. 윈도 드레싱 효과 등으로 인한 자금 유입으로 빠져나가는 돈이 다소 줄어들었다. 하지만 채권시장에서 팔아치운 1조8103억원대 자금까지 더하면 이 기간에도 4조원에 이르는 외국인 자금이 한국 자본시장을 이탈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그동안 외국인 자본의 한국 시장 대거 이탈을 불러온 요인들로 지목됐던 미·중 무역분쟁, 환율 급등, 한·일 경제 충돌, 경제성장률 추락과 반도체 경기 악화 등의 이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규모다. MSCI신흥국지수 조정 이슈 역시 11월 이후 몰아치고 있는 외국인들의 한국 주식시장 이탈의 ‘원죄’로 못 박아버리기에는 부족하다.

한국 시장에 투자하고 있는 외국계 투자사의 한 관계자는 “11월 이후 외국계 자본은 한국 내부 경제 리스크도 중요하게 체크하지만, 이보다 급부상한 북한 리스크 확대에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며 “특히 대선을 앞두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북한 정책, 여기에 북한의 핵과 미사일 리스크가 예측이 힘든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 한국 자본시장을 상당히 압박하고 있다”고 했다.

익명을 요청한 또 다른 투자사 관계자는 “그동안 트럼프 행정부가 성과로 내세운 북한 핵과 미사일 관련 억지력에 대해 이번 연말 주요 글로벌 대형 자본의 분위기가 매우 ‘회의적’”이라며 “이런 회의적 분위기가 한국 경제, 특히 자본시장에 빠르고 크게 반영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북한 핵과 미사일 이슈에 가장 골치 아픈 부분이 단기적 해결책은 고사하고 중장기적 묘수조차 사실상 찾기 힘들다는 점”이라며 “특히 한국 정부나 시장이 스스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 향후 자본시장에 미칠 리스크의 크기를 가늠하기 더욱 힘들게 만들고 있다”고 했다.

쉽게 말해 가뜩이나 수익성이 떨어져 있는 한국 시장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부정적 변수와, 계산이 쉽지 않은 리스크는 빨리 회피해야 한다는 심리가 외국인 투자 자본들 사이에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계 투자사 관계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정책과 북한 리스크라는 경제 외적 리스크는 정확히 계량화하기 쉽지 않다”며 “하지만 외국인 투자자들, 특히 글로벌 IB 산하 등 주요 외국계 자본의 리스크 관리 수준과 방식을 고려하면 그동안 거론돼왔던 한국의 경제적 문제들과 비교해 트럼프와 북한 이슈를 절대 낮은 수준의 리스크로 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지난 7월 중국 상하이 미·중 무역협상 당시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가운데)와 류허 중국 부총리(오른쪽) 모습. ⓒphoto 뉴시스
지난 7월 중국 상하이 미·중 무역협상 당시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가운데)와 류허 중국 부총리(오른쪽) 모습. ⓒphoto 뉴시스

中 기업 부실 충격 한국이 가장 클 것

중국 기업들의 악성 부채와 부실 문제, 중국 금융 시스템의 위기 역시 최근 한국 자본시장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떠오르는 중이다. 한국 경제는 현재 미국과 유럽보다 중국의 경제에 연동돼 움직이는 경향이 뚜렷하다. 결국 중국 경제를 압박하는 현지 기업들의 악성 부채 등 부실 문제가 확대되면 그 충격이 한국 기업들과 우리 경제에 고스란히 전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석유화학·반도체·자동차·기계·철강 등 한국의 주력 산업과 관련 기업들은 중국 시장 의존도가 매우 높다. 중국 기업들과 사업 제휴를 넘어 자본 관계로까지 밀접히 연결돼 있는 상황이다. 중국 경제와 기업들의 부실이 한국 경제와 기업들에 상당한 리스크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뜻이다.

현재 중국 기업들의 부실 문제는 심각하다. 레버리지, 즉 부채를 통해 성장률을 유지해온 중국 기업들의 운영 방식이 중국 경제 상황 악화와 함께 그대로 독(毒)이 되고 있다. 지난 12월 10일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가 내놓은 중국 본토 민영기업들의 회사채 상황에 대한 보고서를 보자.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1월부터 11월까지 11개월 동안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진 중국 본토 민영기업들의 회사채 규모가 액면가 기준으로 원금만 994억위안(약 16조8000억원)에 이른다. 부채에 따른 이자가 빠져 있어 이를 더하면 부실 규모는 더 커지게 된다.

이보다 앞선 지난 12월 4일 블룸버그 역시 중국 기업들의 부실 실태를 전했다. 블룸버그는 2019년 1월부터 11월까지 중국 기업들의 채권 디폴트 규모를 1204억위안(약 20조3600억원)으로 집계했다. 이 같은 중국 기업들의 부채와 부실 실태는 현재 나타난 상황보다 머지않은 미래가 더 위험한 상태다. 중국 기업들을 향할 부채상환 압력이 2019년보다 2020년 더 강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0년대 초 유럽 재정위기 이후 중국 정부는 가라앉은 경기를 부양하고 미국과 유럽의 경제 위기로 인한 세계시장의 공백에 자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중국 기업들의 대규모 채권 발행을 허용해왔다.

그 결과 중국 기업들은 부채를 통해 규모를 키웠고, 그 덕에 중국 정부도 빠르게 가라앉던 중국의 성장률을 그나마 7%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15년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2010년대 초 대거 발행했던 채권들의 만기가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돌아오면서 중국 기업과 경제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더구나 2015년 3분기부터 경제성장률이 6%대로 내려앉고, 유동성 버블 문제까지 본격화되며 부채상환 압력이 더욱 강해졌다. 큰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2017년부터 밀려든 채권 만기 등 부채상환 압박에 아예 디폴트에 빠지는 기업들이 속출했다. 여기에 2018년 미국의 관세 인상 등 무역 공세가 거세지며 중국 기업의 ‘돈맥경화’는 경고를 넘어 현실적 위기가 됐다. 이렇게 되자 중국 기업들의 채권 디폴트 규모가 수십조원대로 폭증했다. 이 현상은 2020년 더 악화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외국인, 한국 시장부터 리스크 회피 나선 듯

2018년과 2019년 드러난 중국 기업들의 부실 규모보다 2020년 이후 중국 기업들이 상환해야 할 채권 등 부채 규모가 더 클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당장 2014년부터 2016년 사이 중국 기업들이 발행했던 채권 만기가 2020년부터 본격화된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단순히 중국 기업들의 부실과 퇴출 정도로 정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빠르게 가라앉고 있는 중국 경제성장률 하락 속도와 폭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기업 부실과 퇴출 규모가 커질수록 필연적으로 중국 시장과 금융권의 유동성 문제 역시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 중국 시장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매우 크고, 특히 중국 국적 기업들과 합작 형태로 현지 생산을 확대해온 한국 주요 기업들에 매우 부담스러운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특히 한국 기업과 대규모 자본 제휴나 지분 투자 형태로 연결된 중국 기업의 부실이 확인될 경우 그 충격이 고스란히 한국 기업들에 전이될 수밖에 없다.

미국계 투자사의 한 관계자는 “자동차·철강·석유화학·전자·섬유 등 다수의 제조업에서 중국 투자에 큰돈을 투입한 한국의 주요 기업이 상당수”라며 “중국의 성장률 6%가 무너졌을 때 가장 큰 충격을 받게 될 경제국과 시장이 결국 한국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국이 중국 경제에 너무 심하게 연동돼 있다’는 게 외국인들의 다양한 투자 포인트 중 하나라는 의미다. 결국 외국인들은 이런 상황에 대비한 리스크 관리, 특히 충격을 가장 크게 받을 수 있는 시장에서부터 리스크 축소와 회피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외국인 자본은 한국 자본시장에서 기관과 함께 시장을 주도하는 중요한 축이다. 그만큼 영향력 역시 상당하다. 그런 외국인들이 최근 한국 자본시장을 향해 보내는 신호는 매우 엄중하다. 이들의 행보는 우려를 키우는 동시에 진짜 위기를 사전에 감지할 수 있는 열쇠이기도 하다. 11월부터 두드러지고 있는 외국인 자금 이탈을 면밀히 짚어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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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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