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가운데)과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지난 1월 2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신년합동인사회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왼쪽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photo 뉴시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가운데)과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지난 1월 2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신년합동인사회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왼쪽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photo 뉴시스

삼성전자가 ‘전고체 배터리(2차전지)’와 관련한 논문을 학술지 ‘네이처 에너지’에 냈다고 발표한 지난 3월 10일, LG화학의 ‘차세대 전지 프로젝트’팀 내부는 술렁거렸다. LG화학의 종합 기술연구소인 대전 기술연구원 산하에 있는 ‘차세대 전지 프로젝트’팀은 차세대 배터리의 유력한 후보로 꼽히는 ‘전고체 배터리’를 연구하는 팀이다.

팀 소속 인원이 27명 정도로, 일반적인 팀에 비해 2~3배는 많다. 이 기술연구원에서 진행하는 연구는 양산 가능성과는 별개인, 완전한 선행개발 관련 연구다. LG화학의 한 관계자는 “연구소에서의 연구가 끝나고 실제 개발부서 정도로는 넘어와야 양산 여지가 있다는 것”이라며 “지금 대세가 전고체 배터리로 넘어가고 있는데 이 분야에서는 아직 회사가 갈 길이 멀다고 본다”고 말했다.

LG화학은 리튬이온 배터리 세계 1위 업체다. 올해는 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에서도 세계 1위에 올랐다. 지난 5월 7일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LG화학 배터리는 올해 1분기 세계 각국에 등록된 전기차 배터리 사용량 중 27.1%를 차지해 일본 파나소닉, 중국 CATL 등을 제치고 올해 1분기 사용량 1위에 올랐다.

하지만 최근 시장은 기존 배터리의 한계를 한 차원 뛰어넘는 차세대 ‘전고체 배터리’에 더욱 주목하고 있다. 앞서 지난 5월 13일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과 현대차의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만나 논의한 내용이 ‘네이처 에너지’에 발표한 전고체 배터리 관련 협업 건이라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더욱 관심이 쏠리는 분위기다. 국내 1·2위 그룹 총수가 사상 처음 단독 회동한 자리에서 배터리 얘기를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차세대 배터리가 뭔지 궁금증을 키웠다.

무음극 배터리 상용화의 이정표

전고체 배터리 관련 기술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에 따르면, 최근 삼성이 공개한 새 전고체 배터리 관련 기술은 여러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우선 배터리를 단순화해 보면 양극과 음극, 전해질, 분리막으로 구성돼 있다. 일반 압축 배터리나 건전지는 전해질이 액체다. 처음에는 물을 기반으로 했는데, 물은 전기학적으로 상당히 불안한 물질이기 때문에 전압을 높이기가 어렵다. 여기서 물이 아닌 다른 액체로 전해질을 바꾼 것이 현재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리튬이온 배터리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물을 배제한 전해질을 사용했기 때문에 전압을 4볼트까지 올릴 수 있었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전압을 올리는 데 기여한 미국의 존 구디너프 텍사스대학 엔지니어링과 교수는 이 공로로 지난해 노벨화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 대부분의 리튬이온 배터리는 양극재로 리튬코발트산화물(LiCoO2)을 사용한다. 양극의 리튬코발트산화물이 전해질을 통해 음극의 흑연층으로 삽입되는 게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의 작동 원리다. 쉽게 말하면 양극의 리튬이 전해질을 통해 음극으로 이동하는 게 핵심이다.

에너지 밀도를 높여야 하는데 전압을 더 이상 높이지 못할 경우 용량을 높여야 한다. 차세대 배터리는 용량을 높이기 위해 음극재를 현재의 탄소계 흑연에서 다른 재료로 바꾸는 방식으로 주로 연구되고 있다. 음극재로 흑연 대신 실리콘이나 리튬금속을 쓰는 방식이다.

여기서 더 나아간 게 이번에 삼성이 발표한 논문이다. 음극에 리튬금속을 쓰지 않고 리튬금속산화물을 쓰는 배터리다. 초기 상태에는 음극이 없고, 충전을 하면 양극에서 음극으로 증착(deposition)이 이뤄지면서 음극이 생겨난다. 일종의 무음극 배터리(anode-less battery), 즉 음극이 없는 배터리다.

무음극 전고체 배터리는 일반 리튬이온 배터리에 비해 무게를 줄일 수 있고 안전성도 높다. 전해질이 고체이기 때문이다. 전고체 배터리 전문가인 정윤석 한양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주간조선에 “무음극 배터리는 이상적인 배터리”라며 “이 배터리의 콘셉트 자체는 전부터 있었지만 전고체를 사용한 무음극 배터리로 이 정도의 성능을 낸 건 삼성이 최초”라고 말했다.

정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이번에 삼성이 발표한 연구는 성능 측면에서 두 가지 큰 진전을 이뤄냈다. 우선 가역성(리튬이온을 주고받는 능력)이 높다. 1000번 이상의 충전과 방전이 가능하기 때문에 기존 배터리에 비해 훨씬 긴 수명을 자랑한다.

두 번째는 에너지 밀도다. 에너지 밀도는 같은 무게의 배터리 내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넣을 수 있는지를 말한다. 현재 상용화된 전기차용 배터리의 경우 주행거리가 보통 400㎞ 내외다. 반면 삼성의 이번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고체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는 한 번 충전으로 800㎞까지 갈 수 있다. 정 교수는 “삼성 논문을 기준으로 보면 시스템 레벨에서 기존에 비해 최소 2~3배 이상 에너지 밀도가 늘어났다”며 “음극에 리튬금속을 쓰면 에너지 밀도가 높아지지만 전해질이 액체일 경우 실제 배터리를 만드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는데, 삼성이 이번에 고체 전해질로 꽤나 안정적으로 구현을 해낸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의 경우 첫손에 꼽히는 문제가 안전사고 우려다. 배터리라는 한정된 공간에 불안한 용매(액체 전해질)가 있기 때문에 불이 날 가능성이 높다. 휴대전화 배터리 등의 폭발 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기차가 더 보편화할 경우 배터리가 휴대전화에 비해 훨씬 크기 때문에 큰 사고로 번질 수 있다. 반면 전고체 배터리의 경우 전해질이 고체기 때문에 흘러내릴 우려가 없다.

정 교수는 삼성의 이번 발표에 대해 “일종의 돌파구, 큰 진전을 만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전에도 전고체 배터리를 이용해서 작동시킨 건 있었지만 성능이 그렇게 좋지 못했거나, 진전이 있어도 작은 실험실 수준의 증명이었는데 이번 건은 여러 공정과 셀의 형태가 갖춰진 상태에서 뛰어난 에너지 밀도를 냈다는 점에서 상용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는 설명이다.

보안 철저한 도요타가 세계 선두

주요 배터리 제조사들은 전극(양극재와 음극재)을 만드는 각 사(社)만의 노하우가 있다. LG화학의 경우 특히 양극재 제작에서 독보적인 기술을 지닌 업체로 평가받는다. 양극재는 리튬이온 배터리 소재 가격 중 약 44%를 차지하는 핵심 소재다.

LG화학은 지난해 4월 경쟁업체인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관련 영업 비밀을 침해했다며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당시 침해한 특허 중 2건이 양극재의 배합 비율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ITC는 지난 2월 SK이노베이션의 조기패소 예비결정을 내렸지만 SK이노베이션의 이의 제기로 전면 재검토 작업에 들어간 상황이다.

전고체 배터리는 차세대 배터리로 주목받고 있지만 아직 상용화까지는 갈 길이 멀다. 리튬이온 배터리 전문가인 선양국 한양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주간조선에 “전고체 배터리는 장점이 많지만 배터리 성능 자체로만 말하면 리튬이온 배터리에 비해 아직 많이 떨어진다”라며 “전고체 배터리는 성능 발표가 안 된 것이 많아 정확하진 않지만, 발표된 기준으로 보면 리튬이온을 100이라고 보면 전고체 배터리의 성능은 50~60 수준”이라고 말했다. 선 교수는 리튬이온 배터리만 20여년간 연구해 온 이 분야의 권위자다.

정윤석 교수도 “이번에 삼성 연구진이 셀을 구현한 온도가 섭씨 60도로 고온이었다”며 “전기차는 상온에서 구현해야 하는데 그 온도 차이를 줄이는 것이 과제”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전고체 배터리의 경우 기술이 아직 시작 단계지만 실제 상용화가 목표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리튬이온 배터리와 경쟁할 수 있는 가격 경쟁력을 마련하는 것도 과제로 꼽힌다.

현재 배터리 연구 분야에서는 관련 논문이나 특허에 비춰봤을 때 일본이 가장 앞서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구디너프 교수를 포함해 지난해 리튬이온 배터리 관련 연구로 노벨화학상을 받은 3명 중 한 명이 일본 메이조대의 요시노 아키라 교수였다. 전문가들은 전고체 배터리 관련 연구도 일본이 한국 등 다른 나라에 비해 최소 5년에서 10년은 먼저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일본의 완성차업체 도요타가 전고체 배터리 관련 연구에서는 매우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도요타는 기술 관리 측면에서 보안이 매우 뛰어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익명을 원한 한 전문가는 “도요타는 이번에 삼성이 발표한 것과는 달리 차세대 배터리와 관련한 기술 발표는 일절 하지 않는다”라며 “무음극 배터리는 이상적인 배터리의 맨 끝단을 보여준 것인데 도요타가 이미 수년 전에 이 부문에서도 상당한 수준의 연구 성과를 낸 것으로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알려져 있다”고 했다. 그는 “도요타의 R&D가 그 이후에 얼마나 진전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삼성의 이번 연구도 일본에 있는 삼성연구소와의 협업을 통해 나온 결과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도요타는 오는 2022년 전고체 배터리를 적용한 자동차를 내놓겠다고 밝힌 바 있다.

대규모 투자를 앞세운 중국의 추격도 매섭다. 중국 배터리 제조사들은 기존에는 기술력 부족으로 주로 리튬인산철 배터리를 생산했지만 현재는 리튬이온 배터리로 넘어오는 추세다. 중국 정부는 노골적인 자국 업체 ‘밀어주기’로 배터리 업계에 큰 파란을 불러온 적이 있다.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 당시 중국 정부가 국내 업체의 배터리가 탑재된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을 제외하면서 국내 업체들이 타격을 입은 사례도 있다.

LG화학의 한 관계자는 “보조금 지급 사태 등의 이슈로 중국 시장의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미주나 유럽 등으로 고객사를 다변화하는 중”이라고 했다. 선양국 교수는 “경쟁을 해야 기술 개발이 가속화된다는 측면에서 삼성·LG 등 국내 기업들이 서로 기술 개발 경쟁을 하는 상황은 바람직하다”라며 “배터리는 ‘차세대 반도체’로 꼽히는 얼마 안 되는 미래 먹거리인 만큼 정부도 적극적으로 기업들을 도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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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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