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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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다시 확산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이후 세계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보름마다 1000만명 이상 늘고 있다. 누적 확진자 9000만명은 세계인구 88명당 1명꼴이다. 최악은 미국이다. 미국의 누적 확진자 수는 전 세계 확진자의 25%에 해당하는 2270만명이다.

코로나19 위기로 세계경제는 대공황 이후 최악이다. 세계은행은 지난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4.3%로 추정했다. 우리나라는 -1.9%다. 2% 정도의 성장률을 기록했을 것으로 보이는 중국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나라가 마이너스 성장률을 보였다. 미국은 -3.6%로 추정된다. 미국에서는 여전히 매주 70만~80만명의 새로운 실업자가 나오고 있다. 경기회복의 시기는 백신과 치료제의 보급 시점이 결정할 것이다. 경기회복은 불확실하고 실물경기는 사상 최악이지만 자산시장 분위기는 다르다. 안전자산과 위험자산을 가리지도 않는다.

코스피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난 한 해 동안 30% 이상 올랐고, 지난해 3월 연저점과 비교하면 97%가 뛰었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도 아니다. 다우와 S&P500, 나스닥 등 뉴욕 3대 증시가 모두 사상 최고치다. 지난해 말 세계의 상장기업 시가총액은 사상 처음으로 100조달러를 넘었다. IMF가 추산한 세계 GDP(국내총생산) 83조달러보다 20% 이상 많다. 지난해 3월 중순 이후만 보면 세계의 평균 주가 상승률은 50%에 달한다.

주식시장만이 아니다. 모든 자산가격의 상승세가 무섭다. 비트코인은 작년 12월 6일 사상 처음으로 2만달러를 넘더니 다시 한 달 만에 4만달러를 돌파했다. 주식과 함께 대표적 자산인 주택의 가격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미국은 주택시장 거품이 한창이던 2007년보다 상승세가 가파르다. 우리나라의 부동산시장은 얘기할 것도 없다. KB국민은행이 집계한 통계를 분석해 보면 서울 아파트값은 작년 한 해 21% 뛰었다. 역대 최악의 경기지표가 확인되고 있는 요즘 발생하고 있는 일들이다. 코로나19 이후 자산시장과 실물시장의 불균형, 이른바 디커플링(decoupling)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자산가격 상승의 가장 큰 이유는 넘치는 유동성이다. 코로나19가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줄이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재정 당국의 정책 대응과 중앙은행의 공격적인 통화 완화가 이뤄졌다. 기준금리는 평균적으로 2%포인트 인하됐다. 중앙은행들은 기준금리 인하에 머물지 않고 회사채 시장을 직접 지원하는 등 전례 없는 규모로 시장에 개입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시중 통화량은 광의통화(M2) 기준 무려 3150조원 넘게 풀려 있다. 2020년 4월부터 7개월 연속해서 9% 이상 통화량이 증가하고 있다. 각국 정부가 보조금이나 일시적 휴직 지원금, 복지 지원 확대 등으로 나눠준 돈은 평균적으로 GDP의 5% 규모에 달한다. 금리가 내리면서 영국과 미국의 주택담보대출 증가 규모는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도 사상 처음으로 국내총생산 규모보다 많아졌다. 주식시장의 대기 자금이라고 할 투자자 예탁금은 72조원을 넘어 역시 사상 최대다.

물론 유동성이 증가한다고 반드시 자산가격이 오르라는 법은 없다. 자산가격의 급등은 시중에 풀린 막대한 유동성이 생산적인 곳으로 흘러가지 못하고 자산시장으로만 몰리기 때문에 일어난다. 이런 현상은 화폐유통속도의 감소로 나타나고 있다. 중앙은행이 공급한 유동성이 실물경제로 투입되어 거래에 활용되기보다 자산시장에 투자되어 묶이면 유통속도는 당연히 감소한다. 미국은 요즘 역대 최저 수준이다. 화폐유통속도의 추세적인 하락과 함께 나스닥은 2009년 2월 저점에서 현재까지 무려 8배나 폭등했다. 우리나라도 화폐유통속도는 2012년까지 M2 기준으로 0.8 수준을 유지하다 2016년 0.75 수준으로 하락한 후 작년엔 0.683까지 떨어졌다. 부동산 가격이 본격적으로 폭등한 시점과 궤를 같이한다.

IT 산업 수출 비중 큰 나라들이 충격 덜해

유동성 폭발과 화폐유통속도 감소는 경제에서 금융이 차지하는 비율이 증가하는 이른바 금융심화(financial deepening) 현상으로 이어진다. 일반적으로 지금 같은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은 한시적 성격의 비상대책이다. 하지만 미국의 연준을 포함해 어떤 중앙은행도 곧 방향을 전환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재정 당국의 경기부양도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당분간 금리가 다시 상승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시장이 확신하는 상황에서 부동산과 주식, 금, 심지어 비트코인 같은 자산까지 모두 값이 뛰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을 오로지 넘치는 유동성이라는 한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만 보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 우선 넘치는 유동성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의 모든 주식시장이 지난해 플러스 수익률을 기록했던 것은 아니다. 전 세계 주요 47개국 가운데 플러스 수익률을 기록한 나라는 17개국에 불과했다. 가장 부진한 성적을 보인 것은 유럽 증시다. MSCI 세계지수에 포함되는 17개 유럽국가 중 11개국이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오로지 유동성만이 주가 상승의 이유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최근의 자산가격 상승, 특히 주식시장의 움직임은 코로나19 시대에 진행되고 있는 구조적인 변화의 결과를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코로나19로 인한 충격은 평등하지 않다. 코로나19 위기에 그나마 경기회복이 빠른 나라들은 IT산업의 수출 비중이 큰 나라들이었다. 많은 기업이 어렵지만, 전례가 없는 호황을 누리는 곳들도 있다. 컨설팅회사 맥킨지의 추정에 따르면 기업의 디지털화 속도는 과거라면 7년 정도는 걸려야 했을 변화가 지난 한 해에 이루어질 정도로 빨라졌다고 한다. 선두기업들은 컴퓨터, 통신장비 및 소프트웨어를 포함한 디지털 자산 축적을 통해 생산비용을 낮추고 효율을 높인다. 특히 애플을 비롯한 글로벌 IT기업들은 막대한 이익을 바탕으로 인수·합병을 거치며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다.

코로나19로 가속화한 디지털 시대에 승자와 패자의 차이는 더욱 확대된다. 분기마다 실적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아마존은 전체 직원이 2019년보다 50% 늘었다. 아마존과 애플,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그리고 페이스북 등 이른바 5대 빅테크 기업은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평균 10%가 넘는 매출 증가를 기록하고 있다. 수익 급증 위에 시장 지배력까지 강화하고 있는 선두기업들의 주가 상승은 놀랄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삼성전자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36조원을 기록해 2019년보다 29% 늘었다. LG전자는 지난해 연간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역대 최대였다.

우리 주식시장에서 종목별 양극화는 심해지고 있다. 지난해 4월 급등장에선 상승 종목 비중이 평균 60~70%였는데 현재는 40%대로 떨어졌다. 갈수록 오르는 종목만 오른다. 터무니없는 주가 상승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금융시장에 흔히 말하는 비이성적 과열이 전혀 없다고 얘기하는 것도 적절하지는 않다. 주식시장에 이례적인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 상장기업의 주가순이익비율(PER)은 25배로 평균 수준이라고 하는 16배를 훨씬 넘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코스피 기업의 주가순이익비율은 11.5배를 넘는다. 2000년 IT 버블 때를 제외하고 이렇게 높았던 적은 없었다. 현재의 S&P500 이익수익률을 계산해 보면 3% 정도다. 이 수치가 3% 밑으로 떨어진 건 1929년 대공황과 2000년 IT 버블 때밖에 없다. S&P500 지수의 변동성은 2000년 IT 버블 때보다 크다.

일부 기업의 주가는 설명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올랐다. 테슬라의 현재 시가총액은 세계의 주요 자동차회사 아홉 개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정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수익성만 따지면 지금 주가에 과도한 측면이 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다만 주가 수준을 평가할 때는 수익률과 실질금리 수준을 비교해야 한다. 지금의 금리 수준을 감안하면, 현재 시장 전체가 과열이나 거품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실물·자산 가격 괴리는 오래갈 수 없다

언제나 그렇지만 거품인지 아닌지는 결국 거품이 터지고 난 뒤에나 알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경제학자 민스키는 경제위기를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해 부채로 인한 자산가격의 붕괴 시점을 의미하는 ‘민스키 모멘트(Minsky Moment)’라는 말까지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위기 예측이 가능하다는 그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 거품의 끝은 예측의 영역이 아니다. 확실한 것은 지금의 주가에는 작년의 이익 증가분과 올해의 기대치가 모두 반영돼 있다는 점이다. 시장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경제가 기대만큼 좋아져야 한다.

무엇보다 지금은 역사상 돈이 가장 많이 풀린 상태다. 역사적으로 부채가 가장 많기도 하다. 세계적으로 작년 한 해 늘어난 부채 규모는 국가와 기업, 그리고 가계를 합쳐 10조달러쯤 된다. 모든 경제주체의 부채가 급증하면서 잠재적인 리스크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거품이 있다면 언젠가는 꺼진다. 실물과 자산가격 괴리가 오래갈 수는 없다. 언제든 유동성을 축소해야 할 시기가 온다. 지나치게 낮은 금리가 오랜 시간 계속돼 가계와 기업의 금리 적응력이 현저히 약해진 상태에서 금리가 다시 오른다면 경기둔화와 자산가격 붕괴가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

결론을 정리하자. 첫째, 지금의 자산가격 상승은 넘치는 유동성이 가장 큰 이유다. 둘째, 그러나 시대적 변화, 디지털 전환의 가속화로 인한 영향도 있다. 특히 주식시장에서의 양극화 현상이 그 결과다. 셋째, 아직 거품 붕괴가 임박했다고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위험도는 높아지고 있으며 주의가 필요하다. 이 시점에 정부 당국이 나서서 투자를 권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코스피가 2007년 7월 2000선을 처음 돌파한 이후 약 13년5개월여 만에 앞자리 수를 갈아치우는 대기록을 썼다. 대통령은 한국이라는 이유로 저평가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시대가 끝났다고 언급했다. 이해하기 힘든 말이다. 흔히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요인이라고 지적되는 문제는 남북한 갈등, 기업 지배구조와 경영 투명성의 부족, 높은 수출의존도, 노동시장 문제, 경제정책의 불확실성 등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될 만한 일은 아직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적이 없다.

김상철 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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