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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4호] 2021.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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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혁명의 서막]브레튼우즈 체제의 몰락… 달러의 굴욕 속 미래화폐 탐색

홍익희  세종대 대우교수·‘월가이야기’ 저자  2021-06-30 오전 10:38:58

1944년 7월 브레튼우즈 회의에서 영국 대표 케인스가 제안했던 세계화폐는 거부되었고 미국의 의도대로 달러 중심의 금환본위제도가 확립되었다. 35달러를 금 1온스로의 금태환을 보장하고 각국 통화가치를 달러에 1% 범위 내에서 연동시켰다. 브레튼우즈 체제 초기인 1947년까지만 해도 미국 정부는 전 세계 금의 70% 이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 일본과 서독의 눈부신 경제성장과 무역증대로 세계 무역에서 미국의 위상은 점점 축소되었다. 게다가 베트남전쟁으로 늘어난 국가채무, 통화팽창 등으로 달러가치는 1960년대 들어 심각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달러 모순을 보여주는 ‘트리핀 딜레마’
   
   인플레이션의 근본원인은 통화팽창과 재정적자이다. 그런데 미국은 재정적자가 일어나야만 달러가 발행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 그리고 경상수지 적자가 되어야 달러가 해외로 공급된다.
   
   국제통화기금(IMF) 추정에 따르면, 1950년대 세계경제에 공급된 국제 유동성 85억달러 가운데 미국이 제공한 액수는 무려 70억달러에 달했다. 덕분에 미국은 만성적인 적자상태에 허덕여야 했다. 1950년대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이어지자 이러한 상태가 얼마나 지속가능할지, 또 미국이 경상수지 흑자로 돌아서면 누가 국제 유동성을 공급할지에 대한 문제가 대두됐다. 1960년에 이미 방만하게 공급된 달러는 외환시장에서 평가절하 압력에 시달렸다.
   
   그러자 미국 예일대 경제학과 교수 로버트 트리핀은 미국의 방만한 재정운용 정책이 지속될 경우 금태환이 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심각해진 1960년 트리핀은 미 의회에서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구조적 모순을 설명했다. 그는 “미국이 경상적자를 허용하지 않아 국제 유동성 공급이 중단되면 세계경제는 크게 위축될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적자상태가 지속돼 달러화가 과잉공급되면 달러가치가 떨어져 준비자산으로서의 신뢰도를 잃고 고정환율제도도 붕괴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달러화의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태생적 모순을 가리켜 ‘트리핀 딜레마’라고 한다.
   
   트리핀 교수가 제시한 해결책은 케인스가 제안했던 ‘방코르’와 유사한 세계화폐를 만들어서 국제 거래에 활용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 초반에 이 해결책을 지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금값 안정을 위한 금풀 협정
   
   1960년대 들어 유럽과 일본이 보유한 달러자산 총액이 미국이 보유한 금을 초과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미국의 금태환 능력에 대해 의심이 들기 시작하면서 금값이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런던 금시장에서 1960년 10월부터 금값이 온스당 40달러를 호가했다. 그러자 금이 미국에서 빠져나와 유럽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금값이 뛰자 미국은 1961년 12월에 주요국들이 달러를 갹출하여 금값을 안정시키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국가별 갹출 비중은 미국 50%, 프랑스·독일·이탈리아·영국 각 10%, 벨기에·네덜란드·스위스 각 3%였다. 이렇게 모인 기금은 금값이 온스당 35달러 이상으로 오르려고 하면 금을 매도해 금값을 안정시키는 데 사용되었다. 다른 출자국들은 금풀(Gold Pool) 운영에 따른 손실액의 절반을 미국에 보상해주어야 했다.
   
   2차 대전 이후 세계 외화자산 결제는 주로 달러로 진행되었는데 브레튼우즈 체제의 금환본위제임에도 미국은 암암리에 달러 발행을 남발했다. 당연히 달러의 실질가치가 많이 떨어졌다. 이에 따라 달러에만 모든 결제를 맡기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1964년 국제통화기금(IMF) 연례총회에서 달러의 독점적 위상을 반대하던 프랑스는 세계화폐 역할을 할 수 있는 ‘특별인출권(SDR·Special Drawing Rights)’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미국에 의해 즉각 거부되었다.
   
   그러자 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골은 세계화폐 개념은 새로운 게 아니라 역사 속에서 통용되던 금이 바로 세계화폐라며, 국제체제의 평등성 회복을 위해 금본위제로 복귀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프랑스가 보유하고 있는 달러를 미국의 금과 바꿀 의향을 밝혔다. 이러한 협박은 미국의 공식입장을 변하게 만들었다. 미국은 달러의 위상이 더 이상 난공불락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고 입장을 바꿔 드골의 특별인출권 창출에 동의했다.
   
   결국 IMF가 케인스의 세계화폐 아이디어를 차용해 1969년 새로운 국제 준비자산을 만든 것이 특별인출권이다. 특별인출권은 IMF 회원국의 국제수지가 악화되었을 때 담보 없이 필요한 만큼의 외화를 인출해 갈 수 있는 권리이다. 쉽게 말해 특별인출권은 IMF에서 사용하는 가상의 준비통화로 달러를 보완하기 위한 세계화폐이다. 미국은 지금도 특별인출권의 존재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미국, 브레튼우즈 체제를 속이다
   
   케인스가 우려했던 것이 전후 세계경제 흐름 속에서 차례차례 현실로 드러났다. 1965년 암살당한 케네디 대통령을 승계한 린든 존슨은 베트남전쟁에 확대 개입하면서 경제는 점점 더 수렁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는 당시의 금환본위제를 위배하는 비도덕적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부족한 재정을 메우기 위해 연방준비제도에 금 보유와 상관없이 달러를 더 발행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이는 브레튼우즈 체제 참가국들을 속이는 행위였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 위원들은 대통령의 압력에 굴복해 화폐발행량을 늘렸다. 그러자 물가상승률은 6%까지 치솟았다. 이후 1970년대 미국 인플레이션은 두 자릿수를 넘나들었다.
   
   1960년대에 미국의 금 보유는 전 세계 금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음에도 1971년 들어 달러 통화량은 10%나 늘어났다. 이에 불안을 느낀 서독이 그해 5월 브레튼우즈 체제를 탈퇴했다. 그러자 달러가치는 마르크 대비 7.5% 하락했다.
   
   다른 나라들도 동요하기 시작했다. 이제 각국은 달러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각국이 보유한 달러를 금으로 바꾸기를 원했다. 스위스가 가장 먼저 7월에 5000만달러를 미국으로부터 금으로 바꾸어갔다. 이어 프랑스도 1억9100만달러를 금으로 태환해갔다. 그러면서 1억5000만달러를 더 태환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드골은 미국에 해군 함대를 보내 프랑스로 금을 운반하는 걸 대내외적으로 과시까지 하며 미국을 압박했다. 이어 스페인도 6000만달러를 금으로 교환해갔다. 이를 지금의 가치로 환산하면 수백억달러어치의 금을 교환해간 것이다. 이로써 미국의 금 보유고는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달러가치가 유럽 각국의 통화들에 비해 떨어지자 8월에 스위스도 브레튼우즈 체제를 떠났다. 1971년 8월 9일, 영국의 경제 대표가 재무부에 직접 와서 자그마치 30억달러를 금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했다. 미국 정부는 잘못하면 국가 부도사태를 불러올지도 모르는 비상 국면에 직면한 것이다.
   
   그다음 주 13일 금요일,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돌연 행정부 주요 경제정책 담당자 16명에게 헬리콥터를 타고 자신과 함께 캠프 데이비드 군사기지로 가자고 명령을 내렸다. 대통령은 외부와 연락할 수 있는 모든 길을 차단함으로써 이 모임에 대한 정보가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했다. 금 고갈에 직면한 미국이 자신만 살길을 찾아나선 것이다.
   
   
▲ 1974년 화폐이론으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밀턴 프리드먼. 그는 비트코인이 탄생하기 18년 전 컴퓨터의 바이트가 미래 화폐가 될지 모른다고 내다봤다. photo 위키피디아

   세계를 우롱한 ‘닉슨쇼크’
   
   영국마저 대량의 금태환 움직임을 보이자 미국은 결국 1971년 8월 15일 달러와 금의 교환을 일방적으로 중단하는 이른바 ‘닉슨쇼크’를 단행해 브레튼우즈 체제를 스스로 파기하는 비도덕적 배신을 감행했다. 닉슨은 투기꾼들에 의해 달러가 공격받고 있다고 하면서 일시적으로 달러의 금태환을 중지한다고 발표했다. 발표 내용도 지극히 부정직했다. 이렇게 미국이 하루아침에 금과 달러의 연결고리를 끊어버림으로써 그간 금 교환권이라고 믿어온 달러와 또 그 달러에 연동되어 있던 전 세계 화폐 모두를 종잇조각으로 전락시킨 엄청난 사건이었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그 뒤 세계경제는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되고 나서도 3~4년 동안 세계는 효과적인 국제 통화제도를 찾지 못했다.
   
   닉슨쇼크와 동시에 미국 정부는 모든 수입품의 관세를 10% 올리는 보호무역을 단행하고, 국내적으로는 90일간 물가와 임금을 동결시켰다. 또 대외적으로는 달러의 평가절하를 단행하여 목표 금값을 온스당 35달러에서 38달러로 변경했다. 전형적인 ‘인근 궁핍화 전략’으로 다른 나라들이야 어떻게 되든 미국 혼자만 살아남겠다는 것이었다. 1972년에는 달러가치를 다시 금 1온스당 42.22달러로 절하했다. 금본위제가 공식적으로 폐지된 것은 제럴드 포드가 대통령을 하던 1974년이었다.
   
   사실 달러의 ‘인근 궁핍화 전략’은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1934년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달러의 가치를 금 1온스당 20.67달러에서 하루아침에 35달러로 자그마치 69%나 일시에 평가절하한 사례가 있었다. 그때도 다른 나라들, 특히 수출 경쟁국들의 고통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하이에크 ‘화폐의 탈국가화’ 주장
   
   중앙정부가 돈을 발행하는 현재의 화폐제도에 대해 우려하는 오스트리아 출신 경제학자가 있었다. 바로 시카고대학 경제학 교수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였다. 1차 대전 때 오스트리아군 병사로 이탈리아 전선에서 싸웠던 하이에크는 빈으로 돌아와 초토화된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급격한 물가상승으로 부모의 저축은 휴지조각이 됐다. 이때 경험으로 그는 정부가 화폐공급량을 늘려 인플레이션으로 경기를 진작시키자는 주장에 단호하게 반대하게 됐다. 또한 그는 스탈린이 반대세력 68만명을 사형시키고 63만명을 강제수용소로 보냈으며 같은 시기 히틀러가 유대인 600만명을 죽이는 걸 보면서 정부의 권력강화가 얼마나 커다란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지를 절감하고 자유주의를 신봉하게 되었다.
   
   신자유주의 아버지로 불리는 하이에크는 특히 ‘화폐와 경제 변동에 관한 연구’의 공로를 인정받아 1974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그 2년 후에 그는 ‘자유은행론’을 바람직한 금융제도로 주장하는 ‘화폐의 탈국가화(The Denationalization of Money)’를 출간했다.
   
   하이에크는 시장의 자유를 철저히 보장하고 정부는 일절 개입해선 안 된다고 믿었다. 그는 사람들이 화폐발행권을 중앙은행이 독점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이 제도가 재정팽창을 유발하고 경기변동을 일으킨다고 지적했다. 그는 ‘화폐의 탈국가화’에서 화폐 발행의 자유화를 주장했다. 하이에크는 중앙은행은 정치적 제약으로 인해 높은 인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므로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민간주체 누구나 화폐를 자유롭게 발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민간주체들이 자발적으로 발행량을 조정하며, 결국 경쟁에서 우수한 화폐가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국가의 화폐발행권 독점 때문에 오히려 경제가 불안정해진다는 게 하이에크의 생각이다. 그래서 화폐의 국가 관리에 반대한 것이다. 사람들은 중앙은행이 통화량을 조정하지 않으면 큰 혼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하이에크는 중앙은행이 없는 세상이야말로 바람직한 세계라고 생각했다.
   
   
   프리드먼, 미래 화폐 ‘바이트’를 예견하다
   
   화폐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한 또 한 명의 학자가 있다. 바로 1974년 화폐이론으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또 다른 오스트리아계 유대인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다. 그는 경제학에서 통화를 경제의 가장 중요한 변수로 강조하는 통화주의 창시자이자 시카고학파의 태두이다. 그는 격심한 인플레이션이나 대공황과 같은 심각한 경제교란은 대부분 급격한 통화 팽창이나 수축 때문에 발생한다고 했다.
   
   프리드먼이 주장한 화폐정책의 핵심은 정부가 인위적으로 화폐발행량을 결정하지 말고 일정한 통화증가율을 사전에 공시하고 이를 준수하라는 것이다. 이를 ‘k% 준칙’이라 불렀다. 곧 화폐는 경제성장률을 조금 상회하는 수준에서 발행량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 준칙만 지키고 나머지는 민간에 맡기면 통화량의 급격한 변동으로 인한 경제 혼란을 예방할 수 있고, 미래의 불확실성을 제거하여 경제주체들이 보다 합리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독일연방은행은 1974년부터 이 준칙을 지켜왔다. 독일 경제가 견실하게 성장한 배경이다.
   
   프리드먼은 “모든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떠한 경우라도 화폐적 현상이다”라고 말하며 ‘k% 준칙’을 위배하는 통화교란이 경기불안의 원천임을 밝혔다. 프리드먼은 1991년 그의 저서 ‘화폐경제학’에서 돈을 마구 찍어내는 국가가 인플레이션으로 어떻게 나라를 망치는지를 알려준다. 그는 책 서문에서 과거 화폐들의 발전 형태를 나열하면서 미래 화폐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그러면 미래의 화폐는 어떤 형태를 가지게 될 것인가? 과연 컴퓨터의 바이트(byte)일까?”
   
   그는 비트코인이 탄생하기 18년 전에 이런 자문자답을 했다. 컴퓨터 저장단위 ‘비트’와 ‘코인’의 결합이 비트코인이다. 프리드먼이 지금의 가상자산과 중앙은행 디지털화폐의 탄생을 지켜볼 수 있었다면 과연 자신이 생각한 미래 화폐의 형태가 맞았다고 평가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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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호랑이의 해 정장열 편집장

격화되는 대선전에 오미크론 사태까지 더해져 연말이 어수선합니다. 한 해를 정리할 때면 지나온 날을 되돌아보지만 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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