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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1호] 2021.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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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탈원전’으로는 계산 안 서는 탄소중립 선언

김상철  경제칼럼니스트  2021-08-19 오전 11:58:44

▲ 지난 5월 29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50 탄소중립위원회 출범식’에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해 격려사를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유럽연합(EU)이 2030년 유럽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55% 감축하기 위한 입법 패키지 ‘Fit for 55’를 발표했다. 많은 내용이 있지만 가장 주목받는 것은 역시 탄소국경조정제도(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였다. EU로 수입되는 제품에 대해 EU 역내에서 생산할 때보다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면 초과분에 대해 비용을 부과한다는 내용이다. 실제로는 수입업자가 배출권 가격에 해당하는 인증서를 구매해야 한다. 세금은 아니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별 차이가 없어서 ‘탄소국경세’라고 부르기도 한다.
   
   2023년부터 철강·시멘트·비료·전력·알루미늄 등을 대상으로 시범적인 시행에 들어간다. 3년 동안은 실제 비용을 부과하지 않지만 2026년 1월 1일부터는 본격적으로 부담이 적용된다. 대상도 점차 늘릴 예정이다. 앞으로 1년 반 동안 EU의 일반 입법 절차를 거쳐 확정되는데, 이견을 가진 역내 회원국들이 있어서 수정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개발 기술 적용된 탄소중립 시나리오
   
   원래 2015년 체결된 파리기후협정은 참여한 국가에 강제로 감축 의무를 부과하지 않았다. 그동안 EU는 2005년 세계에서 처음 도입한 배출권 거래제를 통해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경제적 부담을 지우는 방법으로 산업구조 변화와 에너지 이용 효율화를 추진해 왔다. 하지만 역내 기업에만 적용되는 배출권 거래제는 기업의 해외 이전이나 수입 증가와 같은 부작용을 가져왔다. 그래서 탄소국경세는 규제가 엄격한 나라에서 그렇지 않은 나라로 생산시설이 옮겨 가지 않도록 하겠다는 목적도 갖고 있다.
   
   유럽 경제회복을 위한 재원 마련도 내부적인 목적이다. 연간 100억유로 정도의 자금 확보를 기대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유럽과 비슷한 배출권 거래제를 시행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서 예외를 요청하고 있다고 한다. EU의 반응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탄소국경세가 실제로 도입되면 우리나라는 연간 10억6100만달러, 약 1조2000억원 정도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1.9%의 추가 관세가 부과되는 것과 같다. 특히 국내 탄소배출의 17%를 차지하는 철강업계의 타격이 가장 클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수출량과 배출권 시세를 고려하면 철강업계가 부담해야 할 금액은 약 3000억원에 이른다.
   
   해당 업계는 만만치 않은 숙제를 떠안게 됐지만, EU의 탄소국경세가 당장 국내 경제 전반에 심각한 영향을 줄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흐름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미국도 최근 약 4000조원 규모의 친환경 예산안에 ‘오염 유발국 수입품 수수료’ 항목을 포함했다. 탄소배출량이 많은 수입품에 세금처럼 부과하는, 일종의 탄소국경세나 마찬가지인데 2025년쯤 도입할 계획이라고 한다. EU나 미국만이 아니다. 국제무역 질서에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핵심은 무역과 환경 규범이 하나의 기준으로 통합돼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탄소배출량이 많은 기업은 살아남기 어려운 기업 생태계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달라지는 국제무역 질서는 우리에게 시대에 맞는 변화와 적응을 요구한다.
   
   공교롭게도 EU의 탄소국경세가 발표된 지난 7월 14일은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로 대표되는 한국판 뉴딜이 1주년을 맞는 날이었다. 우리나라는 이미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고, 지난 8월 5일에는 탄소중립위원회가 그 실현을 위한 세 가지 시나리오를 내놓았다. 화석연료 유지와 활용, 신재생에너지 확보 등 핵심 감축 수단을 다르게 적용한 방안이다. 탄소 배출량이 정점에 달했던 2018년 대비 2050년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각각 96.3%, 97.3%, 100% 감축하는 걸 상정하고 있다.
   
   탄소 배출 목표 차이가 가장 큰 부문은 역시 에너지 전환이다. 23.4%인 원자력 발전 비율은 6.1~7.2% 수준으로 낮추고, 태양광이나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시나리오에 따라 전체 전력 공급량의 56.6~70.8%로 늘려야 한다. 1안에서는 석탄화력발전소 7기를 유지하지만 2안에서는 석탄 발전까지 없애고, 말 그대로 탄소중립을 이루는 3안에서는 화석연료 발전이 모두 중단되어야 한다. 국내 원전은 신고리 2~6기와 신월성 1·2호기, 신한울 1·2호기 등 9기만 남는다.
   
   어떤 경우에도 산업 부문은 2050년까지 2018년 배출량 대비 약 80%의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하는데 시나리오가 예상하는 감축 수단은 아직 개발되지도 않은 기술들이 도입되는 것을 전제로 삼는다. 예를 들어 선진국에서도 2040년쯤에나 상용화를 예상한다는 수소환원 제철생산방식을 우리는 2023년부터 산업 현장에 적용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식이다.
   
   시나리오는 대외 의견수렴을 위한 ‘초안’이라고 했지만 필요한 예산이나 비용에 관한 설명은 없다. 변동성이 높은 재생에너지 비율이 증가하면 전력 안정화를 위해서 막대한 추가 투자가 필요하다. 기후변화에 크게 좌우되는 태양력과 풍력만으로는 탄소중립 달성이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해 신재생에너지 의무 공급 비율이 7%였을 때 한전이 발전 대가로 지급한 보조금은 3조원 정도였다. 신재생에너지 의무 발전 비율이 높아지면 결국 전기요금이 오르게 된다.
   
   2030년까지 달성해야 하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는 시나리오에 없다. 다른 나라들을 보면 EU의 55% 감축 선언에 앞서 이미 미국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5년 대비 50~52% 줄이겠다고 했고, 일본도 2013년 대비 46% 감축으로 목표를 높인 계획을 내놨다.
   
   
▲ 원자력발전이 없는 탄소중립에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필요하다. 사진은 운전이 영구정지된 경북 경주시 양남면의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의 모습. photo 뉴시스

   해외의 차세대 원전
   
   사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한다고 해도 얼마나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지는 논란이 불가피하다. 온실가스 감축에는 사회적 비용이 따른다. 일자리 감소나 물가 상승이 그렇다. 목표는 같다고 해도 전략까지 모든 나라가 같은 것은 아니다. 프랑스는 유럽 주요국 중 상대적으로 낮은 25%의 재생에너지 비중을 보이지만 65%가 넘는 높은 원전 비중으로 독일이나 영국보다 탄소 배출량이 적다. 일본은 탄소중립 전략의 일환으로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와 함께 원자력을 포함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지난 6월 발표한 ‘2050년 탄소중립에 따른 녹색성장 전략’은 원자력을 주요 에너지원 중 하나로 명시하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이다.
   
   2050년까지 전력 수요는 오히려 두 배 이상 늘어나게 된다. 풍력이나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를 최대한 도입한다고 해도 수요에 충분히 대응하기는 어렵다. 탄소중립을 위한 전략에 원자력을 포함한 나라는 일본뿐이 아니다. 미국 또한 소형모듈원전(SMR)은 물론, 고속로와 핵융합로 등 다양한 차세대 원전을 탄소중립 전략의 하나로 포함하고 있다. 탄소중립도 우리 여건에 맞는 전략이 필요하다. 세계에너지기구 역시 개별 국가 산업의 특수성에 맞춰 경로를 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EU가 탄소중립과 재생에너지 확대에 앞장서는 것도 따지고 보면 유럽 산업계에 불리하기만 하지는 않다.
   
   탄소국경세만 해도 낮은 탄소 배출 부담으로 얻은 가격경쟁력으로 EU에 수출하는 외국 기업들을 견제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값싼 노동력과 느슨한 환경 규제로 제조업에서 우위를 유지했던 중국과 신흥국들로부터 유럽 제조업을 보호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개발도상국에서 환경과 기후를 구실로 한 새로운 형태의 무역장벽이라는 비판을 제기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유럽 여러 나라의 신성장동력이 될 수도 있다. 현재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는 국가들은 대개 유럽에 있다. 2020년 기준으로 독일·영국·이탈리아·스페인 등의 발전량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은 모두 40%를 넘는다. 한국의 7.2%와 비교가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미국의 20.6%나 일본의 21.7%와 비교해도 월등하다.
   
   원전 없는 탄소중립도 가능할 수는 있다. 지금으로서는 계산이 서지 않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감당하기만 한다면 말이다. 탄소중립위원회가 발표한 시나리오에는 없지만, 한국원자력학회는 신재생에너지 목표치를 달성하려면 에너지 비용만 해마다 41조원에서 96조원의 추가 부담이 발생한다고 추산한다. 보수적으로 대충 계산한 비용만 2050년까지 750조~1500조원이다.
   
   그래서 원자력을 활용하지 않으면서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목표는 비현실적이다. 재생가능한 에너지를 최대한 도입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원자력 활용을 통해 에너지 자급률을 높일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탈원전만 포기하면 탄소중립이 가능한 것도 아니다. 전체 에너지 소비 가운데 전력 생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대략 20%에 그친다.
   
   그렇다고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 전력 생산에서만 탄소를 줄이면 되는 게 아니다. 내연기관의 사용도 줄여야 하고 산업 공정은 청정수소를 최대한 활용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도시가스도 필요하면 전기나 수소로 대체해야 한다. 가정과 산업 등 모든 분야에서 에너지 절약을 위한 효율성의 획기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제조업 경쟁력에서 잃을 것 많아
   
   산업구조 전환과 이로 인한 고용 및 노동 환경의 변화까지 각오해야 한다. 변화는 당연히 부담과 고통을 낳는다. 우리나라의 제조업 비중 28%는 16%의 미국이나 11%의 EU와 비교하기 어려운 구조다. 제조업 경쟁력을 기반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한국과 잃을 것이 적은 EU의 부담이 같을 수 없다. 특히 조선이나 철강, 반도체처럼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한 산업구조의 전면적인 변화가 불가피하다. 에너지 전환을 포함한 탄소중립은 국가가 가진 능력을 모두 동원해야 가능한 일인 셈이다.
   
   할 일은 너무 많다. 정부는 기후변화 문제에서 취약한 산업의 저탄소 전환 노력을 지원하고, 장기적으로는 저탄소를 위한 기술 혁신도 지원해야 한다. 탄소중립 이행을 위해 법적 근거도 마련해야 한다. 원자력을 활용한다고 해도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시설과 영구처분시설을 만들어야 하고 이를 위해 예상되는 사회적 갈등을 극복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갈등을 해결하고 성과를 내는 일이야말로 정부의 역할이다. 정부는 2050년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최종안을 10월 말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11월에는 유엔기후변화협약 총회가 열린다. 2030년까지 더 강력한 목표 설정을 논의하는 자리다. 유엔이 요구하는 탄소 배출량 감축 목표는 2010년 대비 45%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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