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쇼박스
ⓒphoto 쇼박스

나는 임상에서 부자간 갈등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례를 수없이 봐 왔다. 아버지와 아들은 복잡미묘한 관계다. 잘났건 못났건 편견 없이 사랑하는 어머니와는 다르다. 부자관계는 남자 대 남자 간의 미묘한 권력관계, 힘의 관계가 역학적으로 얽혀 있다. 잘난 아버지는 잘난 아버지대로, 못난 아버지는 못난 아버지대로 아들과 불화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아버지는 대개 잘난 아들만 진정한 아들로 대하는 존재다. 못난 아들을 차별 대우하면서도 크게 미안해 하지 않는 편파성을 가진 것이 아버지다. 반항하거나 기대에 어긋나는 아들을 향해 ‘호적에서 파버린다’는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아버지가 까다로울수록, 학식과 사회적 위상이 높을수록 아들에 대한 요구가 많아진다.

특히 자수성가한 아버지는 아들에게 우상이자 존경할 만한 대상인 동시에 문턱이 높은 존재다. 저 멀리 보이는 경원의 대상이다. 세상의 온갖 어려움을 혼자서 겪고 헤쳐온 그 자신감과 고집스러움, 오만함은 아들에게는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영역이다. 소유욕과 권력욕 강한 아버지는 아들을 누른다. 아들이 하는 행동은 다 못마땅하고 눈에 안 찬다. 아들의 성장은 자신의 후퇴를 의미하기 때문에 방해하고 꺾는 심리도 존재한다. 수시로 아들을 비하하고 평가절하해 버려 자존감과 자신감 없는 아들로 만들어 버린다. 칭찬받을 행동을 해도 “뭐 그 정도 가지고 잘했다고…” 식으로 말해 버린다.

특히 권력자의 아들에게 비극이 많다. 최근 개봉한 영화 ‘사도’가 그 경우다. 사도세자는 아버지 영조에게 죽임을 당했다. 영조는 천한 신분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우여곡절 끝에 왕위에 올랐고, 조선왕조를 통틀어 손꼽히는 명민한 군주다. 그런 아버지는 웬만한 아들이 눈에 차지 않는다. 영조는 한 번도 아들을 칭찬하거나 인정한 적이 없었다. 이렇게 하면 저렇게 안 했다고 야단치고 저렇게 하면 이렇게 안 했다고 꾸중했다. 아들은 차차 될 대로 돼라 하는 식의 자포자기에 빠지고, 해괴한 행동을 함으로써 더욱 더 아버지 눈 밖에 나고 만다.

영조는 사도세자에게 사적(私的)으로는 아버지이지만 공적(公的)으로는 군주다. 아버지에게 아들 또한 마찬가지다. 세자는 사적으로는 아들이지만 공적으로는 자신의 뒤를 이어 나라를 책임질 미래의 군주다. 영조는 사적인 감정과 공적인 의무 사이에서 심각하게 고민했다. 결국 아버지는 아들을 죽이려는 극단적 결단을 내린다. 그것이 나라의 장래를 위한 선택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호전적인 유목민 국가였던 오스만투르크제국은 왕위다툼이 치열했다. 궁정에서는 왕자들 간 골육상쟁이 수시로 일어났다. 강하고 잔인한 아들이 형제들을 죽이고 세력을 키우며 다음 왕 자리를 노리고 준비한 것이다. 놀라운 것은 아버지가 이를 두고 본다는 점이다. 강하고 무서운 다음 왕의 출현을 기대하면서 아들 중 최강자가 가려지기를 바라는 욕심 때문이다.

다행히도 조선은 유교국가라 상황이 다르다. 조선의 군주에게 필요한 덕목은 강한 윤리의식과 책임감이었다. 영조는 다음 군주감으로서 이 두 가지 덕목이 결여된 세자에게 죽음을 내린 것이었다. 어이없고 이해 안 되는 비극이고 폭력적인 사건임에는 틀림없다. 아들을 죽게 만든 아버지의 행위는 정당화되기 어렵지만, 나라를 이끌 차세대 군주를 길러내야 하는 왕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영조는 적임자가 아닌 사람이 계속 세자의 자리에 있을 경우 발생할 불행을 떠올렸을 것이다. 아들보다 더 자격 있다고 판단되는 손자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것이 옳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부자 사이에서 어머니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완충지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폭력적인 아버지를 누그러뜨리고 중재하는 사람이 어머니이고 폭력에 맞서서 완화시켜야 하는 사람이 어머니다. 사도의 비극은 어머니의 부재와 무관하지 않다. 사도세자의 생모가 살아 있었다면 자식을 죽이는 불행을 막을 수도 있었다.

막강한 아버지는 아들과의 권력싸움에서 이겨도 문제, 져도 문제다. 아버지가 이기면 사도세자의 경우처럼 아들을 불행으로 내몰고 아들에게 지게 될 경우 엄청난 풍파를 거치게 된다. 욕망이 강한 아버지는 끝까지 권리와 권력을 놓지 않으려 한다. 자식에게 돈도 안 주고 의견을 주장할 기회도 주지 않는다. 그걸 감내해야 하는 아들의 선택은 두 가지다. 아버지의 곁을 떠나거나 아버지를 가두거나.

자신에게 하루빨리 모든 것이 이양되길 원하지만 아버지가 그럴 의향이 없는 상황에서 기다리지 못하면 비극이 발생한다. 아버지가 가진 것이 많은 재벌가에서 흔하고, 평범한 가정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오래전 사건이지만 유학까지 다녀와 교수가 된 아들이 인색하고 자기 주장 강하며 잘 내놓지 않는 부친을 살해한 패륜 사건이 있었다. 아버지는 내려놓지 않았고 아들은 기다릴 줄 몰랐던 것이 비극이었다.

역사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다. 흉노족 묵특(혹은 묵돌) 선우가 얘기다. 선우는 군사들을 훈련시켜 일제히 아버지를 향해 화살을 쏘도록 하여 죽이고 권좌에 올랐다. 아버지가 권력을 물려줄 때까지 기다릴 인내심이 없었던 것이다. 타지마할묘를 만든 샤 자한은 국고를 탕진해 가면서 죽은 아내를 위한 위대한 건축물을 만들었지만, 이를 못마땅히 여긴 아들에 의해 아버지는 아내 묘가 보이는 곳에 유폐당하는 신세가 돼 버렸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살부 주제도 그렇고, 현실에서 일어나는 부친 살해사건도 대부분 내놓지 않는 아버지와 인내심 없는 아들 때문에 발생한다.

지금까지는 능력 있고 강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아버지가 다 능력 있는 것은 아니다. 실패하고 좌절당한 나약한 아버지가 더 많다. 나약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좋을까? 불행히 이 경우에도 부자관계가 대부분 좋지 않다. 나약한 아버지가 된 데에는 불운한 성장과정 탓이 큰데, 이런 아버지의 아픔을 이해하는 아들은 많지 않다. 그들은 아들에게 나약하고 무책임하고 초라한 존재 자체다.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친 아버지는 자존심만 내세운다. 아들의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나를 무시하는 거냐”며 추궁하고 술에 빠져 살기 십상이다. 아들은 초라한 아버지를 비난하며 얕잡아보고 함부로 대하게 된다.

부자간 갈등은 뿌리 깊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존재해 왔다. 부자간 갈등을 해결하고 좋은 관계로 발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버지가 아들에게 입 맞추고 핥아주던 시절을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세월이, 그리고 각자의 욕망이 관계를 나쁘게 만들어버렸다면 다시 따뜻한 봄날의 초심으로 되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우선 아버지가 잘해야 한다. 아버지는 아들보다 세상을 많이 살아봤고 사리분별도 할 줄 안다. 아버지는 자신의 욕망과 소유욕 그리고 무리한 기대로부터 최대한 비껴서야 한다. 그리고 아들의 고유한 욕망, 소망에 눈을 맞추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아들은 최대한 기다리면서 준비해야 한다. 자신의 때, 자신의 역량으로 우뚝 설 수 있는 시기를 말이다. 아버지를 이기려고 하면 안 된다. 아버지를 향한 승부욕과 패배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어야 한다. 아버지와 아들은 누가 이기고 지는 관계가 절대 아니다. 아버지는 시간이 흐르면 죽어서 사라지므로 자연히 지는 존재다.

아들아! 아버지를 넘어서라. 그렇게 하려면 큰 꿈을 품고 아버지가 아닌 다른 어른들을 본보기로 삼는 것도 괜찮다. 세상에는 아버지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웃집 아저씨, 또 업적을 쌓고도 겸손한 어른, 의로운 행동을 한 어른들이 수없이 많다. 그들을 보고 배우고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아들 앞에서 뽐내고 으스대며 함부로 대하는 아버지는 사실 그리 잘난 것이 없고 비굴한 사람이다.

키워드

#영화
김영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한국의 아버지와 아들’ 저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