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부자들’의 한 장면.
영화 ‘내부자들’의 한 장면.

유쾌하지 않았다. 진실과 거짓조차 돈 앞에선 자리를 바꿀 수 있는 현실, 던적스러운 우리의 치부를 고스란히 드러낸 영화 ‘내부자들’에서 백윤식은 유력 일간지 논설주간 이강희였다. 일흔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 펼쳐진 주름은 함께 연기하는 배우 조승우나 이병헌의 주름과는 달랐다. 정치를 설계하는 언론인답게 속내를 쉽게 읽어낼 수 없는 주름이었다. 입꼬리는 올라가 웃는 듯해도 눈은 매서웠다. 망루 위에 올라선 노회한 전사(戰士)처럼. 그는 ‘~라 볼 수 있다’와 ‘~라 매우 보여진다’를 갖고 놀며 ‘말이 권력이고 힘’이 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가 KBS 공채 9기로 탤런트가 된 1970년은 TV방송 3파전이 막 시작되었을 때였다. 배우는 턱없이 부족했고, 연출자도 몇 없었다. 드라마를 생방송하던 시절에서 간신히 벗어나 열악하지만 녹화 시스템을 갖추고 드라마를 제작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방송사들은 일일연속극을 5편씩 제작하는 기적을 이뤄내고 있었다. 그만큼 드라마 경쟁은 치열했다.

그의 데뷔작은 청소년 드라마의 효시인 일일연속극 ‘꿈나무’(KBS·1971)였다. 1947년생인 그가 스물네 살에 고교생 역으로 배우 인생을 시작했다. ‘한국 TV드라마 50년사’에 그의 이름은 ‘1973년 연표’ 편에 처음 등장한다. 그 작품은 신라 문화의 총화인 ‘신라 정신’을 구현하는 여러 인물들을 그린 옴니버스 드라마 ‘불국사’(KBS)였다. 1974년엔 전국적 화제가 되었던 국책 드라마 ‘꽃피는 팔도강산’(KBS)에 출연했고, 같은 해 그의 첫 영화인 ‘멋진 사나이들’에서 공군사관생도로 출연하며 활동 영역을 넓혀 갔다. 희귀했기에 도전해 보고 싶어 TV 연기자가 된 그는 꾸준히 연기를 연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기억은 ‘서울의 달’(MBC·1994)에서 시작된다. 미술교사 김인철. 교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어서 그런지 그는 항상 진지했다. 어떤 순간에도 표정만은 흔들리지 않았다. 물러서야 할 순간이 오면 ‘쿨’하게 “아닌가 보네”라며 재빠르게 돌아설 뿐이었다. 하도 묘한 캐릭터라 학교 수업 장면이 나오기 전까지는 혹시 교사를 사칭하는 사기꾼이 아닐까 싶었다. 무표정하고 독특한 말투, 아닌 듯 말이 많고 남존여비가 뚜렷한 인물이었다. 어쩌다 미술교사가 되었는지, 그러지 않았다면 거리의 백수나 되었을 인물이었다. 그런 그를 죽자 사자 좋아하는 카페 여주인 옥희와의 사랑은 사차원적 순수함으로 빛났다.

백윤식에게 ‘서울의 달’은 ‘예상을 벗어난 반전 연기’의 시작이었다. 남들이 웃을 때 웃지 않고, 심각하지 않을 때 혼자만 심각한 그만의 연기 세계는 ‘파랑새는 있다’(KBS·1997)에서 사기꾼 백 관장으로 이어지며 한층 업그레이드된다. 미워할 수 없는 서민의 삶을 달관의 무미건조함으로 풀어내는 그만의 해법에 우리는 익숙해져갔다.

촌철살인의 묘미를 살리다

무표정한 얼굴로 툭 뱉어내는 그의 말 속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삶의 철학이 들어있다. ‘히어로’(MBC·2009)에서 그는 쌍도끼파 두목 조용덕이었다. 거대 언론사 대세일보의 사주에게 누명을 쓰고 15년 동안 억울하게 옥살이했던 그는 출소하자마자 사주를 찾아가 억울함을 호소하다 봉변만 당한다. 이럴 바엔 내가 언론사 사주가 되겠다며 ‘용덕일보’를 만들어 좌충우돌 세상과 한판 맞짱을 뜬다. 보잘것없는 신생 언론사의 사주이지만 그는 당당했고 두려울 게 없었다. 가끔은 정장을 입은 채 옛날 부하의 퀵서비스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아 달리고, 위험에 처한 직원을 구하기 위해 과감히 셔츠를 벗어젖히며 쌍도끼 문신을 드러내는 ‘싸나이’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진실은 반드시 승리합니다.” 대세일보에 한 방 먹인 그의 일성은 단순하지만 오랜 울림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내일도 칸타빌레’(KBS·2014)에선 전 세계가 알아주는 거장 중의 거장 프란츠 슈트레제만에 도전했다. 입양아라는 한계를 딛고 세계적 지휘자가 되었지만 거장의 위엄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인천공항에 귀국한 후 택시기사에게 던진 첫 마디 “물 좋은 데로 갑시다”. 천연덕스럽게, 웃음기 하나 없이, 가끔은 입양아라는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어색한 한국말을 하지만 그는 청춘의 방황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마력을 갖고 있는 거장이었다.

“오늘로 우리 연주는 끝입니다. 멋진 무대였습니다. 니 놈이 쪼끔, 쪼오끔 자랑스럽습니다.”

지휘 폼은 뻣뻣하기 그지없지만 그는 참된 스승이었다.

설계자로서의 인생이 멋지다

영화배우로서 그를 각인시킨 작품은 ‘지구를 지켜라’(2003)였다. 악덕 사장 강만식이자 안드로메다 별의 왕자인 그는 비열하면서도 코믹한, 때론 카리스마 넘치는 팔색조 연기를 화려하게 펼쳤다. 자칭 지구를 지키는 사람이라는 병구에게 외계인이란 이유로 납치되어 온몸을 꽁꽁 묶인 채 머리는 삭발당하고, 이는 뽑히고, 벗겨낸 피부 위엔 물파스 발림을 당해야 했다. 붉은 유리 블록 같은 무늬가 프린트된 검정색 팬티 하나만을 입고 의자에 묶여 있는 그의 모습은 기괴하기까지 했다. 우여곡절 끝에 안드로메다로 돌아간 그는 지구를 향해 말한다. “저 행성엔 더 이상 희망이 없어.” ‘푸카푸하 푸키켁’과 같은 요상한 외계 언어로 위엄 있게 던진 그 한마디가 너무나 코믹해 웃음도 멈춰버렸지만 그 메시지는 역설적으로 너무나 진지했다. 거짓, 음모, 비리, 욕정, 폭력이 난무하는 이 시대의 부조리를 외계인과 지구인의 관계로 풀어내며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이 영화는 흥행에 실패하며 ‘저주받은 명작’이라 불렸지만, 명불허전 백윤식 연기의 또 다른 시작이었다.

지는 게임에 베팅하지 않는 법을 알려주던 김 선생의 ‘범죄의 재구성’(2004), 대통령을 암살하고 새 역사를 쓰겠다는 계획을 세운 중앙정보부 김 부장의 ‘그때 그 사람들’(2005), 속을 알 수 없는 싸움의 고수 오판수의 ‘싸움의 기술’(2006), 전국 최고의 타짜 평 경장의 ‘타짜’(2006), 수양대군과 팽팽하게 맞서면서도 절대 기선을 제압당하지 않는 당당함을 지닌 김종서의 ‘관상’(2013), 그리고 감히 그의 연기 인생의 절정판이라 할 수 있는 ‘내부자’에서도 그는 언제나 모든 상황의 설계자였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그는 쉽게 속내를 보여주지 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도, 얻지 못해도 일희일비하지 않았다. 포커페이스 설계자인 그가 대중에게 세상을 보여주는 방법은 사차원적이거나 위압적이다. ‘서울의 달’의 김 선생이거나 ‘내부자들’의 이강희였다. 진지하게, 그러나 화끈하게 자신의 삶을 설계하는 남자. 가끔은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에 주눅이 들기도 하지만, 그는 ‘매우 멋진 배우라 보여진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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