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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5호] 2019.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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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그날 밤 홍콩은 분노의 섬이었다

▲ 지난 7월 1일 홍콩 반환 22주년 기념일에 홍콩 완차이 헤네시로드를 가득 메운 시위대들. photo 연합
지난 7월 1일 새벽 5시30분, 경찰차 사이렌 소리에 잠을 깼다. 홍콩섬 완차이(灣仔)에 있는 호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22층 창밖을 내려다봤다. 홍콩섬을 동서로 연결하는 왕복 8차선 글로체스터로드가 텅 비어 있었다. 옛 해안선을 따라 만든 도로로 불야성(不夜城) 홍콩에서 24시간 자동차로 북적이던 곳이다. 자동차가 달리고 있어야 할 새벽의 도로 위에는 시위진압 장비를 갖춘 파란 제복의 경찰들이 대오를 맞춰 애드미럴티의 정부청사 쪽으로 진군하고 있었다. 경찰 병력을 뒤따르던 경찰차들이 90도로 방향을 돌려 도로를 가로막는 것이 보였다.
   
   홍콩 TVB 뉴스채널에서는 새벽 4시부터 시위대가 입법회(우리의 국회)에서 완차이의 홍콩컨벤션센터로 가는 길을 바리케이드와 대형 쓰레기통으로 막고 있다는 속보가 나왔다. 전날 애드미럴티의 입법회 앞에서 농성 중이던 시위학생이 넌지시 알려준 이날 ‘행동 개시’ 시점이 아침 6시였는데 그것보다 2시간이나 빨리 시위대가 움직이고 있다는 얘기였다. 이날 오전 8시 홍콩컨벤션센터에서는 홍콩 반환 22주년을 맞아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올리는 국기게양식이 예정돼 있었다. 시위대는 오성홍기가 홍콩 하늘에 나부끼는 것을 저지하겠다고 별러왔다. 드디어 터질 게 터졌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마비된 홍콩의 중심 애드미럴티
   
   지난 6월 29일, 홍콩 첵랍콕공항에 도착해 휴대폰을 켜자 외교부에서 보낸 문자가 들어왔다. ‘홍콩 정부청사, 입법회 건물 등 인근 방문 자제 및 신변안전 유의’. 지난 6월 9일과 16일, 각각 100만과 200만명이 넘는 대규모 시위가 홍콩에서 벌어진 후 홍콩에 입국하는 자국민에게 보내는 경고문자였다. 그래도 첵랍콕공항에서 입국수속을 밟는 여행객들의 표정은 시위 소식에 상관없이 들떠 있었다. 기자 역시 홍콩 정부청사가 있는 애드미럴티를 찾아갔다.
   
   애드미럴티(金鐘)는 명실상부한 홍콩의 중심이다. 홍콩 특별행정구 정부청사를 비롯해 행정장관 집무실, 입법회, 홍콩 주둔 인민해방군 사령부, 경찰본부, 고등법원 등 주요 관공서가 몰려 있다. 홍콩섬 동서와 커우룽(九龍)반도, 홍콩섬 남부 애버딘섬(압레이차우)을 연결하는 지하철만 3개 노선이 지난다. JW매리어트, 콘라드, 샹그릴라 같은 특급호텔들이 몰려 있는 복합쇼핑몰 퍼시픽플레이스(太古廣場)는 늘 화려함으로 생기가 도는 애드미럴티의 랜드마크다.
   
   하지만 이날 퍼시픽플레이스 앞에는 망자(亡者)를 추모하는 흰 국화꽃이 줄줄이 놓여 있었다. 이곳은 지난 6월 15일, ‘반송중(反送中·중국으로 송환법 반대)’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 하야’ 플래카드를 내걸고 고공시위를 벌이던 30대 청년 량(梁)모씨가 투신자살한 곳이다. 국화꽃 옆에 걸린 흰 도화지에는 ‘희망을 봐서 견디는 것이 아니고, 견디기 때문에 희망을 볼 수 있다’ ‘홍콩인 힘내라’는 글귀들이 적혀 있었다.
   
   투신 당시 노란 비옷을 입고 있어 ‘레인코트 보이’라고 알려진 이 청년은 경찰이 급히 설치한 에어매트 대신 콘트리트 바닥에 떨어져 목숨을 잃었다. 송환법 반대시위 과정에서 생긴 최초 사망자였다. 지나가던 홍콩 시민들은 국화꽃 앞에 잠시 멈춰 서서 묵념을 하고 지나갔다. 빗물에 테이프가 떨어져 너덜너덜해진 도화지를 다시 정리하는 사람도 보였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중얼중얼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애드미럴티 정부청사와 입법회 앞도 만신창이였다. 정부청사와 입법회는 주 출입구만 다를 뿐 한 건물로 연결돼 있다. 정부청사 동관(이스트윙) 외벽에는 ‘레인코트 보이’가 입었다는 노란색 비옷이 내걸렸고 빈소도 설치되어 있었다. 빈소 주위로는 ‘송환법 반대’ ‘캐리 람 행정장관 하야’ 등을 요구하는 포스트잇이 형형색색의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정부청사 외벽에는 ‘부착물 금지’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어 보였다.
   
   마침 이날은 일본 오사카 G20 정상회의가 끝나는 날이었다. 한국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배경으로 ‘G20에 대해 도움이 필요합니다’라고 한국어로 적힌 전단이 눈길을 끌었다. G20 정상회의 참가국들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는 의미로 읽혔다. 한국의 ‘촛불시위’ 당시 사진을 걸어놓은 전단도 있었다. 전단에는 ‘3년 전 남한의 촛불바다, 2000만명이 참여해 박근혜가 낙마하기까지 23주 연속 집회가 열렸다’라고 적혀 있었다. 한국 사례를 들어 캐리 람 행정장관 낙마 때까지 시위 지속을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입법회로 들어가는 일반인 출입구는 시위대가 붙여놓은 대자보로 인해 틀어막혔다. 시위대는 ‘송환법 완전 철폐’ ‘경찰 강경진압 규명 독립조사위원회 설치’ ‘캐리 람 행정장관 하야’ 등을 요구조건으로 내걸고 출입구 앞에서 철야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섭씨 30도를 웃도는 폭염에 일부는 웃통을 벗고 드러누워 있었다. 입법회 앞에서 만난 한 시위 참가 20대 여대생은 “순번을 돌면서 친구 4명과 함께 이곳에서 지내고 있다”며 “한국에서도 많이 보도해달라”고 말했다. 한류 드라마로 배웠다며 ‘사랑해요’란 말까지 덧붙였다.
   
   
▲ 지난 7월 1일 홍콩 정부청사 앞 도로에서 경찰과 대치 중인 시위대들. photo AP·뉴시스

   만신창이가 된 홍콩 경찰본부
   
   다시 7월 1일 오전 7시, 반환 기념식을 저지하려는 시위대를 해산하는 경찰의 진압이 시작됐다. 검은옷을 입은 시위대는 머리에는 노란색 안전모 또는 자전거 헬멧, 눈에는 경찰이 쏘는 고추스프레이를 막기 위한 투명고글, 입과 코에는 최루탄과 채증에 대비해 쓴 마스크, 팔과 다리는 주방용 비닐랩으로 칭칭 감고 있었다. ‘비닐랩을 왜 감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천(陳)씨라고 밝힌 한 시위학생은 “비닐랩을 팔다리에 두르면 고추스프레이를 맞아도 덜 따갑고, 곤봉에 맞아도 덜 다친다”고 말했다. 직접 만져보니 그 정도의 효과가 있을지는 의심스러웠다.
   
   ‘앞으로 전진, 앞으로 밀어’라는 구령과 함께 경찰이 서서히 방패와 곤봉으로 시위대를 밀어냈다. 우산을 휘두르며 맹렬하게 저항하는 시위대를 향해서는 에프킬라처럼 생긴 고추스프레이도 과감히 분사했다. 고추스프레이를 정면으로 얼굴에 맞은 시위학생은 손으로 눈을 감싸고 괴로워했다. 동료들은 고추스프레이를 맞은 동료의 얼굴에 연신 생수를 뿌렸다.
   
   그나마 경찰들은 강경진압 비난여론을 의식한 듯 마구 곤봉을 휘두르는 것은 자제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6월 12일 강경진압 때는 “인민해방군이 홍콩 경찰 옷으로 바꿔 입고 시위진압에 투입됐다”는 유언비어까지 난무할 정도로 완전군장의 무장경찰들이 시위대를 향해 무자비하게 곤봉을 휘둘렀었다. 하지만 이날은 검은 옷을 입은 무장경찰이 아니라 파란 제복을 입은 일반경찰이 시위대와 맞섰다.
   
   지난 6월 12일 최루탄과 고무탄을 꺼내든 직후부터 홍콩 경찰은 줄곧 수세에 몰렸다. 입법회와 대각선 건너에 있는 홍콩 경찰본부는 기자가 찾았을 때 누더기가 돼 있었다. 경찰본부를 알리는 간판은 시위대에 의해 뜯겨져 나가 있었다. 표지판과 입구에는 차마 지워내지 못한 붉은 페인트와 ‘개 구(狗)’란 글자가 보였다. 경찰본부 주위 CCTV 카메라는 시위대가 채증을 막기 위해 칠한 노란색 페인트로 덮여 있었다. 지난 6월 26일 경찰의 과잉진압에 항의하며 약 1000여명의 학생시위대가 경찰본부를 6시간 동안 포위한 여파였다.
   
   영국 식민지 경찰 시절부터 시위 진압에 나름 노하우가 있는 홍콩 경찰은 이번 시위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시위 지령이 주로 외국에 서버를 둔 텔레그램 등을 통해 전파되는데, 도대체 몇 명이나 호응할지부터 파악할 수 없었다. 이에 병력과 장비를 얼마나 투입할지 몰라 어려움을 호소해왔다고 한다. 시위대 속에 채증 등을 위한 사복경찰도 투입했으나, 시위대에 발각돼 레이저빔을 맞고 줄행랑을 치는 사건도 있었다.
   
   입법회 앞에서 만난 학생들은 경찰의 강경진압을 조사하기 위한 독립조사위원회 설치와 당시 강경진압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영국 국적 홍콩 경찰 간부 2명의 신상과 증거사진까지 전단에 내붙이고 처벌을 요구했다. 홍콩 영화를 통해 식민지 시절 영국 경찰의 횡포를 수없이 보고 자란 시위대는 영국 국적의 경찰이 강경진압을 주도했다는 사실에 격분한 듯 보였다. 실제로 1973년 식민지 홍콩의 영국 경찰 간부 피터 고드버의 부패 스캔들로 인해 1975년 대대적인 학생시위가 벌어진 적이 있었다. 홍콩의 반부패기구인 ‘염정공서’가 출범한 것도 고드버 스캔들 때다.
   
   
▲ 지난 7월 1일 밤, 홍콩 입법회 본회의장을 점거한 시위대가 단상에 영국령 홍콩기를 걸고 있다. photo AP·뉴시스

   법무부·인민해방군 부두도 포위당해
   
   이번 홍콩 시위대 중 일부가 과격해진 것도 지난 6월 12일 강경진압 이후다. 주요 정부 기관들이 시위대에 의해 포위되는 일도 일어났다. 행정장관 관저(官邸)로 쓰는 빅토리아피크(太平山) 초입의 예빈부(禮賓府·옛 홍콩 총독부) 바로 아래는 법무부 격인 율정사(律政司)가 있다. 율정사 역시 지난 6월 27일 연좌시위를 벌이는 시위대에 겹겹이 포위됐다. 건물에 꼼짝없이 갇혔던 율정사장(법무장관)은 시위대가 해산한 직후에야 겨우 건물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애드미럴티 정부청사 바로 옆 홍콩 주둔 인민해방군 사령부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중환군영(軍營)’으로 불리는 이 사령부는 1997년 홍콩 반환 전까지 ‘프린스 오브 웨일스 빌딩’이라고 불린 홍콩 주둔 영국군 사령부였다. 1997년 7월 1일 인민해방군은 홍콩에 진주한 뒤 건물을 넘겨받아 건물 꼭대기에 ‘8·1(인민해방군 건군절)’ 자가 들어간 큼직한 붉은 별을 붙였다.
   
   빅토리아항과 곧장 연결되는 사령부 앞 부두는 과거 영국 해군(로열네이비)이 ‘타마르 해군기지’라고 부르던 곳이다. 홍콩 정부는 옛 타마르 해군기지 일대를 매립해 수변공원으로 조성한 후 공원 일부를 해방군 전용부두로 사용하려고 계획해왔다. 전용부두라고 해봤자 배 한 척이 겨우 정박할 수 있을 만한 150m 정도의 안벽이다. 기자가 찾아갔을 때도 홍콩 경찰 소속의 소형 선박 한 척이 정박해 있었다.
   
   하지만 ‘송환법’ 반중시위와 맞물려 야당인 민주파 쪽에서 해방군 전용부두를 ‘할지송중(割地送中·땅을 떼서 중국에 보낸다)’이라고 재차 이슈화하면서 문제가 커졌다. 급기야 지난 6월 28일에는 시위대가 이곳에 몰려와 ‘정부 토지 출입금지’라고 경고문이 붙은 펜스를 뜯어내고 전단을 붙이는 등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잡초가 무성한 해당 부지를 찾았을 때 몇몇 사람들은 펜스 너머로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현장에서 만난 한 여성은 “이렇게 전망 좋은 곳을 군부대가 혼자 차지하는 것이 맞느냐”고 했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다른 행인은 안에서 지키고 있는 경찰에게 거칠게 욕을 퍼붓고 삿대질을 하고 지나갔다. 빅토리아항으로 난 전용부두가 바라다보이는 인민해방군 사령부 문 앞에는 완전무장하고 방탄모를 쓴 군인이 총을 들고 서 있었다. 마치 해방군의 인내를 시험하는 것 같았다.
   
   
   배편으로 행사장 상륙한 행정장관
   
   다시 7월 1일, 애드미럴티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거리에 떨어진 완차이의 홍콩컨벤션센터. 캐리 람 행정장관 등 귀빈들은 이날 시위대를 피해 자동차가 아닌 배편으로 행사장에 ‘상륙’했다. 지난 6월 18일 홍콩 시민들에게 공식 사과한 후 모습을 감췄던 캐리 람 행정장관이 약 2주 만에 공개석상에 나타난 순간이었다. 마침 아침에 흩뿌린 비로 인해 매년 홍콩컨벤션센터 앞 골든바우히니아광장(금자형광장)에서 진행된 기념식은 실내 개최로 바뀌어 있었다.
   
   행사 하루 전날, 기자가 찾았을 때 행사장으로 연결되는 통로는 모조리 봉쇄돼 있었다. 컨벤션센터와 연결된 그랜드하얏트와 르네상스호텔에서 이어지는 통로 역시 차단돼 있었다. 현장에는 경찰들이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한 경찰은 “내일까지 컨벤션센터 출입이 안 된다”고 되돌아갈 것을 요구했다. 행사에 매년 참가해오던 보이스카우트 등 어린 학생들에게도 불상사를 염려해 참석하지 말라는 통지가 이미 전달된 상태였다.
   
   오전 8시 정각, ‘일어나라, 노예가 되기 싫은 인민이여’로 시작하는 중국 국가 ‘의용군 행진곡’이 장내에서 군악대의 연주로 울려 퍼졌다. 홍콩 주둔 인민해방군 3군 의장대는 골든바우히니아광장의 국기게양대에 오성홍기와 홍콩의 상징인 바우히니아(자형화)가 그려진 특별행정구기를 동시에 게양했다. 캐리 람 행정장관을 비롯한 내외빈들은 자리에 선 채로 홍콩컨벤션센터 안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으로 이 장면을 지켜본 뒤 샴페인을 들어 건배하며 홍콩 반환 22주년을 자축했다.
   
   기념식은 베이징에서 쓰는 표준어인 보통화와 영어 두 가지 언어로 진행됐다. 하지만 캐리 람 행정장관은 홍콩에서 쓰는 광둥어로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해 젊은이들과 접촉하겠다. 정책 제정 때는 더 많은 의원들과 소통하겠다”고 기념사를 했다. 기념사 와중에 야당인 민주파 소속 여성 의원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이내 장내에 있던 요원에 의해 문 밖으로 끌려나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홍콩 반환 기념식을 치르는 것은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22년 만에 처음이었다.
   
   
▲ 지난 7월 1일 홍콩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반환 22주년 기념식. 캐리 람(오른쪽 두 번째), 둥젠화(세 번째), 렁춘잉(네 번째) 등 전·현 행정장관들이 건배를 하고 있다. photo AP·뉴시스

   오성홍기 올라가자 과격해진 시위대
   
   같은 시각, 애드미럴티의 정부청사 앞. 오성홍기가 올라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정부청사와 입법회 앞 도로를 점거하고 있던 시위대가 일순 동요했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새벽부터 오성홍기 게양을 저지한다며 공들인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순간이었다. 행사가 끝나자 경찰도 서서히 포위망을 풀고 인근 경찰본부로 퇴각했다. 정부청사와 기념식 행사장이 있는 애드미럴티역과 완차이역을 무정차 통과하던 지하철도 다시 정차하기 시작했다.
   
   기념식이 끝나자 흩뿌리던 비가 완전히 그치고 다시 햇볕이 뜨거워졌다. 대치하던 경찰마저 떠나버린 왕복 8차선 아스팔트 도로 위에 덩그러니 남겨진 시위학생 대부분은 정부청사와 경찰본부 앞 육교 아래에 퍼져버렸다. 섭씨 30도가 넘는 폭염 속에 유일하게 그늘이 생기는 곳이었다. 시위학생 중 일부가 분을 참지 못하고 우산과 기물을 집어던지며 격분하자, 다른 동료들이 ‘워워’ 하면서 진정하라고 말리기도 했다.
   
   일부 시위대는 시위대 속에 섞여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던 중년 남성을 우르르 에워싸고 “경찰 프락치 아니냐”며 거칠게 몰아세우기도 했다. 기자 역시 검은 옷을 입은 시위학생들로부터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지 말라는 제지를 몇 차례나 받았다. 그나마 ‘프레스’라고 적힌 기자 신분증을 꺼내들고 “한국 기자”라고 외친 덕에 봉변을 당하는 일은 없었다. 평화시위라는 말만 믿고 시위대에 맞춘 검은 옷과 서양 기자들처럼 ‘PRESS’가 적힌 야광조끼를 챙기지 못한 것이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정부청사 앞에서 오성홍기가 올라가는 것을 지켜보던 시위대의 마지막 희망은 코즈웨이베이(銅鑼灣)에서 출발해 정부청사까지 밀려들어올 대규모 거리시위대와의 접선이었다. 지난 6월 9일에는 103만명, 6월 16일에는 200만명이 이 코스를 따라 행진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시위대와 반중매체들은 전날부터 이날 오후 3시 코즈웨이베이 빅토리아공원에서 시민들이 모여 애드미럴티의 정부청사까지 행진할 것이라는 뉴스를 전파했었다.
   
   하지만 이날 거리행진에 가담한 시위군중은 주최 측 추산 55만명에 그쳤다.(경찰 추산은 19만명) 상당한 인파였지만, 지난 두 차례 거리행진에 비해서는 확연히 줄어든 숫자였다.
   
   결국 이날 오후 정부청사와 입법회 앞에서 농성 중이던 과격파 일부가 입법회 진입을 시도했다. 쇠파이프와 벽돌, 손수레 등 손에 잡히는 온갖 기물을 동원해 정부청사의 방탄유리를 두들겨 팼다. 제지하는 경찰은 보이지 않았다. 오후 5시30분쯤 우산 하나가 들어갈 만한 틈이 생겼다.
   
   이날 밤 9시, 시위대는 중간문까지 깨뜨리고 입법회 본회의장에 난입해 단상에 유니언잭에 사자(영국)와 용(중국)이 들어가 있는 영국령 홍콩기를 내걸었다. 이날 오전 기념식에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게양한 것에 반대한다는 뜻으로, 과거 치욕의 상징이던 식민지 깃발을 내건 것이다. 본회의장을 점거한 일부 시위학생은 영국 국기인 ‘유니언잭’을 흔들기도 했다. 시위대가 선을 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홍콩에서 법치보다 중요한 것 없다”
   
   7월 1일 자정을 넘긴 시각, 시위진압 장비를 갖춘 무장경찰들이 입법회 앞으로 대오를 갖추고 들어왔다. 오전 현장에 투입됐던 일반경찰과 달리 다시 완전무장을 갖춘 무장경찰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최루탄을 쏜다’는 검은색 경고 깃발을 올린 무장경찰은, 최루탄을 쏘며 시위대를 내쫓고 입법회를 다시 탈환했다. 7월 1일 홍콩 반환 22주년 기념일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가 자정을 넘긴 시간에 시위대를 해산한 듯 보였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7월 2일 새벽 4시, 모두가 자는 이례적인 시간에 경찰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홍콩에서 법치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특유의 단호한 어조로 시위대를 강력 비난했다. 흑(黑)과 백(白)이 뒤바뀌어버린 무간도(無間道)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홍콩 반환 22주년을 기념한 긴 하루가 한 편의 홍콩 누아르영화처럼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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