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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5호] 2019.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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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홍콩 우산혁명의 주역 조슈아 웡 “한국 촛불에 배웠다”

▲ 지난 6월 17일 교도소에서 갓 출소한 조슈아 웡이 홍콩 입법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photo AP·뉴시스
“7월 1일 홍콩 입법회 건물을 점거한 시위대는 폭도가 아니었다. 그들은 결코 폭력적이지 않았다. 그들의 목표는 어떤 개인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었다. 그들은 다만 홍콩 정권이 홍콩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을 원했을 뿐이다. 조금 과격한 행동을 하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우리는 이미 모든 방법을 시도해봤다.”
   
   홍콩 ‘우산혁명’의 상징적 인물 조슈아 웡(중국명 黃之鋒·23)은 지난 7월 1일 발생한 홍콩 시위대의 입법회 점거에 대해 “홍콩 시민의 모든 요구를 무시한 홍콩 정부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더 없었다”고 말했다. 홍콩 반환 22주년 기념일이었던 7월 1일, 33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에도 주최 측 추산 55만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다. 이날 밤 일부 시위대가 한국의 국회에 해당하는 입법회를 점거하며, 시위대를 해산하려는 경찰과 시위대 간 무력충돌이 발생했다.
   
   홍콩 민주화 운동가이자 학생정치단체 데모시스토당(黨)의 공동 설립자 조슈아 웡은 그 현장에 있었다. 1996년 홍콩에서 태어난 조슈아 웡은 2014년 18세의 나이에 홍콩 우산혁명을 주도했다. 그는 당시 법원의 해산명령을 따르지 않은 죄로 2018년 1월, 1심에서 3개월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가 6일 만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그러다 지난 5월 16일 항소심에서 홍콩 대법원이 징역 2개월형을 확정하면서 재수감됐다.
   
   홍콩 라이치콕교도소에 재수감됐던 그는 지난 6월 17일 다시 조기석방됐는데, 출소와 동시에 범죄인 송환법 반대 시위 현장에 합류했다. 지난 6월 30일, 정부청사 앞 타마르공원에서 친정부 시위가 열렸을 때는 친정부 시위대에 의해 입법회 건물에 포위되는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기자는 지난 6월 30일 조슈아 웡과 전화 인터뷰를, 홍콩 반환 22주년 기념식 다음날인 지난 7월 2일에는 모바일 메신저 ‘왓츠앱’을 통해 다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는 영어로 진행했는데 휴대폰 통화앱 페이스타임 너머로 그의 목소리가 간간이 끊겼다.
   
   
▲ 지난 6월 21일 조슈아 웡이 홍콩 경찰본부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photo AP·뉴시스

   - 7월 1일, 홍콩 반환 22주년 입법회 시위 현장에 있었나. “그날 시위 때 처음으로 최루액을 맞아봤다. 경찰이 우리 시위대를 해산하기 위해 발사한 것이다. 많은 어려움에도 홍콩 시민들은 늘 그래왔듯 단결된 모습을 보였다. 나는 우리 동료들이 어젯밤 감행한 입법회 점거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우리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우리의 자리를 찾을 것이다. 계속 싸울 것이다.”
   
   - 당신은 “2003년 국가보안법 제정 논란 때부터 베이징이 홍콩에 대한 정치적 개입을 이어오고 있다”고 주장한다. 2019년 홍콩인들이 거리로 뛰쳐나온 까닭은. “2003년 국가보안법 제정 논란 때도 홍콩 시민들이 거리에 나와 반대했다. 2019년까지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는 ‘자유롭기 위한 권리’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홍콩 시민의 25%에 달하는 사람들이 이번 시위에 동참한 이유다.”
   
   2002년 홍콩 특구의 초대 행정장관 둥젠화(董建華)는 베이징의 요구에 따라 국가분열, 선동소란을 유발하는 사람을 잡아 가둘 수 있는 국가보안법을 제정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홍콩에서 야권을 중심으로 한 대대적인 반대에 부딪혔고, 급기야 2003년 7월 1일 홍콩 반환 기념일에는 50만명이 거리에 쏟아져나와 국가보안법 반대 시위를 벌였다. 결국 둥젠화 정부는 국가보안법 도입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는데, 일각에서는 ‘송환법’ 역시 국가보안법과 같은 전철을 밟을 것으로 보고 있다.
   
   - 홍콩 정부가 범죄인 송환법 개정을 미루기로 했다. 완전 철회할까. “정부는 법안 개정안을 단지 연기(suspend)했을 뿐이다. 아마도 가까운 미래에 다시 법안처리를 시도할 것이다. 우리는 계속 철회를 요구하며 싸울 것이다.”
   
   - 이번 시위에 외부세력 개입을 의심하는 주장도 있다. “그렇지 않다. 이번 시위는 홍콩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여 이뤄낸 것이다.”
   
   - 홍콩 시위대가 국제사회에 기대하는 바가 있나. “범죄인 송환법은 비단 홍콩 시민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홍콩에 있는 외국인을 중국으로 추방하는 데도 이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홍콩에 머무는 한국인을 중국으로 추방해서 그가 중국에서 불공정한 재판을 받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국제사회가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만 하는 이유다. 시진핑 주석과의 회담에서 홍콩 인권 문제를 제기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등 세계 정상들에게 감사한다. 그러나 홍콩 정부를 향한 우리의 요구는 여전히 무시되고 있다. 한국 정부가 홍콩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더 적극적인 관심과 역할을 보여주길 바란다. 홍콩 시민은 한국 시민들이 보여준 촛불시위에 감명받았다. 촛불시위는 우리에게 커다란 동력이었다.”
   
   - 2014년 우산혁명 이후 사회활동가의 길을 걷고 있다. 중국 및 홍콩 정부가 당신을 주시하는 걸로 알고 있다.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당시 우산혁명은 결과적으로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우산혁명 초기부터 경찰의 개입으로 시위대가 고통받았다. 이번에도 경찰이 무력으로 시위대 진압에 나섰는데, 이후에 더 큰 움직임이 있을 것이다. 한국인들이 그랬듯이 나뿐 아니라 홍콩 시민들 모두가 경찰의 감시를 받고 있다. 특별히 두렵지는 않다. 언젠가 지금의 순간을 뒤돌아봤을 때 후회가 없을 것이다. 홍콩 시민은 민주주의를 누릴 자격이 있다.”
   
   - 캐리 람 행정장관은 법률 파괴행위에 대한 처벌이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시위대는 입법회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그들 앞에 무엇이 기다리는지 알고 있었다. 아마도 특정 죄목으로 기소되고 폭동 혐의로 징역형을 받을 것이다. 최고 형량은 10년이다. 시위대 대부분이 앞날이 창창한 젊은 친구들이다. 우리는 입법회 진입 후에도 규율에 따라 행동했다. 입법회 내부 카페테리아에서 음료수를 마시기 전에 사람이 없는데도 카운터에 현금을 두고 나왔다. 건물 내부에 저장된 역사적 문서를 보존하기 위해 도서관도 봉쇄했다. 시위대는 단 1초도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나는 우리 친구들이 지난밤에 한 일이 자랑스럽다.”
   
   - 이번 시위가 얼마나 오래갈 것이라 보나. “홍콩 인구 700만명 중 200만이 넘는 사람들이 시위에 참여했다. 홍콩 시민들은 일본 오사카 G20 정상회담을 앞두고 신문 광고를 제작하기 위한 크라우드펀딩에 670만홍콩달러(약 10억원)를 모금했다. 7월 1일에도 역대급 규모가 모였다. 홍콩 정부가 계속해서 우리 목소리, 우리 요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움직임에 동참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 시위대가 정부에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 요구는 범죄인 송환법을 완전 철회하고, 캐리 람 행정장관이 퇴진하는 것이다. 또 정부가 시민의 움직임을 ‘폭동(riot)’으로 규정하지 않는 것이다. 더불어 시민 활동가들을 기소하지 않고 경찰의 강경진압을 조사할 독립조사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이다.”
   
   - 또 다른 대규모 시위를 준비하고 있나. “아직 계획 없다. 조금 숨을 고를 생각이다.”
   
   - 당신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안타깝게도 현재 홍콩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베이징의 꼭두각시일 뿐이다. 그의 권력은 홍콩 시민이 아니라 중국공산당으로부터 나온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더는 지도자가 될 수 없다. 우리는 민주주의와 진정한 자치권을 원한다. 홍콩 정부는 홍콩 시민들이 선출해야 한다.”
   
   - 한국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홍콩에서 벌어지는 일은 단순한 법안 개정이나 캐리 람 행정장관 퇴진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심지어 민주주의를 위한 움직임 그 이상이다. 우리의 움직임은 결국 다음 세대가 만들어갈 2047년(일국양제 종료 시점) 그 너머 홍콩의 미래에 관한 것이다. 한국인들이 홍콩의 상황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중국의 영향력은 점점 더해가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인권이 침해당하고 있다. 한국, 대만,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에서 우리 홍콩인들에 대한 지지를 보내주길 바란다. 한국 정부가 법의 올바른 역할과 홍콩의 법적 독립(judicial independence)을 위해 목소리를 내주길 바란다. 우리는 여전히 진정한 민주주의를 원한다.”
   

   홍콩 우산혁명이란?
   
▲ 2014년 홍콩 우산혁명 photo AP·뉴시스

   2014년 9월 홍콩에서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며 일어난 민주화 시위다. 시위 진압에 나선 홍콩 경찰의 물대포와 최루탄을 우산으로 막아내면서 ‘우산혁명(Umbrella Revolution)’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홍콩 대학생 조직인 ‘홍콩전상학생연회(香港專上學生聯會·약칭 학련)’와 중고등학생 위주로 결성된 ‘학민사조(學民思潮)’가 주도한 시위에 시민단체와 일반인까지 가세하면서 홍콩 전역으로 확산됐다.
   
   하지만 중국과 홍콩 당국의 강경한 입장으로 79일 만에 성과 없이 끝났다. 조슈아 웡은 우산혁명 당시 ‘학민사조’를 이끌며 시위의 상징적인 인물이 됐다. 조슈아 웡이 주간조선과 인터뷰 말미에 밝힌 ‘진정한 민주주의를 원한다’는 우산혁명 당시 슬로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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