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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4호] 202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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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후베이의 황태자 후춘화는 어디로 갔나

▲ 지난해 1월 현장을 시찰 중인 후춘화 중국 국무원 부총리(가운데). photo 바이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창궐로 중국 후베이성(湖北省) 전역에 곡(哭)소리가 넘친다. 지난 2월 6일 오전 8시 기준 중국 전역에서 564명이 사망(홍콩 1명 포함)했는데, 후베이성에서만 549명이 죽었다. 이 중 후베이성 성도 우한(武漢)에서 사망한 사람만 414명에 달한다. 후베이성을 제외한 중국 내 다른 지역 사망자는 15명, 해외 사망자는 1명에 불과하다. 초기대응 미숙과 열악한 의료체계로 인해 빚어진 대참사다.
   
   현재 중국에서 사태수습을 총지휘하는 사람은 리커창(李克强) 국무원 총리다. 중국에서는 국가적 관심이 집중되는 대형 참사의 경우, 관례적으로 총리가 지휘봉을 잡고 사태를 수습해왔다. 약 7만명의 사망자를 냈던 2008년 쓰촨(四川)대지진과 2011년 원저우(溫州) 고속철 사고 때는 원자바오 총리가, 2015년 장강(長江) 유람선 침몰 사고 때는 리커창 총리가 사태수습을 도맡아 지휘했다. 이번에도 리커창 총리는 지난 1월 23일자로 전면봉쇄된 우한에 직접 들어가 사태수습을 지휘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치국원 중 유일한 후베이 출신
   
   반면 사태 초기 수습에 관여할 것으로 유력 거론된 후춘화(胡春華) 부총리가 철저히 배제돼 있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후춘화 부총리는 중국공산당 최고지도부인 중앙정치국원 25명 가운데 유일한 후베이 출신이다. 오는 2022년 퇴임하는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의 뒤를 이어 집권이 유력시되는 차기주자이기도 하다.
   
   이에 사태 초기 중국에서는 “리커창 총리가 지휘부를 맡고 ‘샤오후(小胡·후춘화)’가 후베이성 당 서기로 임시파견돼 사태를 수습할 것”이란 설이 유력하게 돌았다. 2012년 보시라이(薄熙來) 사건 때 당시 국무원 부총리로 있던 장더장(전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이 충칭시 당 서기로 급파돼 사태를 수습한 전례를 따를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중국에서 시진핑의 전임자인 후진타오 전 총서기는 ‘다후(大胡)’, 차기 총서기로 거명되는 후춘화는 ‘샤오후’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리틀 후’란 뜻이다. 하지만 지난 1월 23일 중국공산당이 우한 봉쇄를 단행한 이후 지금까지 ‘리틀 후’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후춘화의 이름 석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수습을 지휘하기 위해 지난 1월 25일 출범한 태스크포스(TF)인 ‘영도소조’에서도 빠졌다. 현재 사태수습 최고 지휘부인 영도소조 조장은 리커창 총리, 부조장은 시진핑의 측근인 왕후닝 중앙서기처 서기(이상 정치국 상무위원급), 그 아래는 총서기 비서실장에 해당하는 딩쉐샹 중앙판공청 주임, 쑨춘란 부총리, 황쿤밍 중앙선전부장, 차이치 베이징시 당 서기(이상 정치국원급), 총리 비서실장에 해당하는 샤오제 국무원 비서장, 왕이 외교부장, 자오커즈 공안부장(이상 국무위원급) 등 모두 9명으로 구성(서열 순)돼 있다.
   
   홍콩·마카오 사무를 총괄하는 한정 부총리가 최근 홍콩에, 미·중 무역협상을 총괄하는 류허 부총리가 미국에 발이 묶여 있다고 해도, 후춘화에게 별다른 역할이 주어지지 않는 것은 이상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영도소조 내에서 리커창 총리를 보좌하고 있는 사람은 중앙정치국 내의 홍일점인 쑨춘란 부총리다. 푸젠성 당 서기와 톈진시 당 서기를 지낸 쑨춘란 부총리는 그간 교육과학문화 분야를 관장해왔는데, 지난 2월 2일에는 우한을 직접 방문해 임시병동인 화신산(火神山)의원 현장을 둘러보기도 했다. 아무런 역할이 없는 후춘화 부총리와 대조적이다. 중국 국무원은 총리, 부총리의 동정을 상세히 보도하는데, 후춘화의 이번 사태에 대한 언급은 지난 2월 5일 “농촌 방역을 강화하라”가 고작이다. 후춘화는 국무원에서 중앙농촌공작 영도소조 조장을 맡고 있다.
   
   사태수습 최고지휘부인 9인의 영도소조 가운데서도 가장 많은 사망자와 확진자가 나온 후베이성 출신은 단 한 명도 없다. 후춘화는 후베이성 이창(宜昌)시에 속한 우펑현 토가족(土家族)자치현 출신이다. 후춘화의 고향인 이창에서도 2월 6일 오전 8시 기준 563명의 확진자와 6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이에 “시진핑 총서기가 중앙정치국원 가운데 유일한 후베이 출신으로 후베이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차기주자 후춘화를 의사결정에서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흘러나온다.
   
   후춘화는 16세 때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에 베이징대에 입학했고, 1983년에는 수도 졸업생대회에서 3명의 학생대표로 선발돼 격오지인 시짱(티베트) 근무를 자처, 일찌감치 당 원로들에게 차기 지도자감으로 낙점받았다. 이후 시짱에서 만난 후진타오 전 총서기의 후원으로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제1서기, 46세 때 전국 최연소 허베이성 성장, 네이멍구 당 서기와 광둥성 당 서기를 차례로 지냈다. 특히 후춘화는 유력 경쟁자이던 쑨정차이 전 충칭시 서기가 2017년 낙마한 이후 차기에 한발 더 가까이 간 것으로 관측돼왔다.
   
   하지만 2017년 10월, 19차 당대회 때 정치국 상무위 입성에 실패하면서 입지가 불안한 상태다. 현재는 정치국 내에서 몸을 바짝 낮추며 시진핑 총서기의 측근으로 ‘벼락출세’한 천민얼 충칭시 당 서기와 ‘60후(60後·1960년대 이후 출생)’ 대표주자로 차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사스 사태 때 장쩌민 레임덕 가속화
   
   ‘후춘화 배제 논란’은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 직후 장쩌민 전 주석의 레임덕이 가속화한 것과 관련이 있다. 사스가 한창 번지기 시작하던 2003년 초는 후진타오 총서기가 16차 당대회(2002년 11월)를 통해 신임 당 총서기로 선출된 직후였다. 후진타오는 2003년 3월에는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주석으로도 선출됐다. 하지만 장쩌민 전 총서기는 전임자인 덩샤오핑처럼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거머쥐고 ‘상황(上皇)’으로 군림하며 최종적인 권력이양을 거부했다. 당·정·군 주요 요직도 후진타오가 아닌 장쩌민계가 장악하고 있었다.
   
   사스 사태가 터지자 후진타오는 장쩌민의 주치의 출신으로 최측근으로 분류된 장원캉(張文康) 위생부장을 ‘사태 은폐’ 책임을 물어 경질하는 것을 신호탄으로 친정체제 구축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멍쉐농(孟學農) 베이징시장을 쳐내고, 하이난성 서기로 있던 왕치산(현 국가부주석)을 베이징시 대리시장으로 임명하는 결단도 내렸다. 결국 후진타오는 2004년 9월에야 장쩌민 전 주석이 끝까지 붙잡고 있으려고 했던 당 중앙군사위 주석직까지 넘겨받으면서 집권기반을 굳힐 수 있었다.
   
   장쩌민의 레임덕을 가속화시켰던 것은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TIME)에 ‘사스 사태의 심각성’을 최초 폭로한 베이징 인민해방군 301병원의 장옌융(蔣彦永) 소장의 가택연금을 지시한 당사자가 장쩌민이란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결과적으로 사스 사태는 비록 중국에서만 300명이 넘는 사망자를 냈지만, 새로 취임한 후진타오의 권력기반 강화에는 상당한 도움이 됐다.
   
   사스 사태 전개를 누구보다 잘 아는 시진핑 총서기 입장에서는 이번 사태와 함께 자신에 대한 책임론이 부상하는 것을 막고 장기집권에 방해가 되는 새로운 정치스타의 출현을 경계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2003년 사스 때는 왕치산 현 국가부주석이 ‘소방대장’이란 별명을 얻으며 스타로 떠올랐고, 2008년 쓰촨대지진 때는 원자바오 총리가 ‘친민(親民) 총리’로 입지를 강화한 바 있다. 시진핑 총서기의 공식적인 임기는 오는 2022년까지다. 누가 최후의 정치적 승리를 거머쥘지 주목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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