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의 한 식당에서 손님을 상대로 발열 체크를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하노이의 한 식당에서 손님을 상대로 발열 체크를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우한 코로나 사태 초기 베트남은 가장 큰 명절인 ‘뗏’(TET·춘절·1월 23~29일)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명절 분위기에 젖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정부는 중국의 우한 코로나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하자 중국에서 오는 모든 길목을 차단했습니다. 한국 교민들이 보기에 너무나 신속하고 과감한 결단이었습니다. 중국과의 교역 규모가 상당한 베트남이지만 교역보다는 자국민 보호가 우선이라는 원칙을 앞세워 방역의 기본을 지킨 것이라고 봅니다. 베트남은 중국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과감하게 버릴 것은 버리면서 실속 있게 코로나19 사태에 대처해 나갔습니다.

베트남 정부의 과감한 결단으로 인해 베트남 현지 한국 기업들도 어쩔 수 없이 대책 마련에 나서야 했습니다. 당장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랑선 세관을 통해 중국에서 자재가 들어오는 길이 막혀버렸기 때문입니다. 춘절을 맞아 중국을 찾아갔던 공장 기술자들이 돌아올 길도 막혀버렸습니다. 긴급한 상황 속에서 베트남의 한국 기업들도 비상대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주요 자재가 통과되는 랑선 세관은 한국대사관과 코참의 노력으로 방역을 하고 통제 가능한 한도 내에서 조금씩 열리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들은 자구책 속에서 어렵지만 운영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현지 한국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베트남 정부의 노력은 무척 돋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자국 국민들을 보호한다는 명분하에 과감하고 엄중한 대책을 실행했고 방역은 성공적이었습니다. 한국이 코로나19 확진자 1000명을 넘긴 시점에 베트남은 불과 16명의 확진자를 기록하며 강력한 방역국가임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베트남 정부가 중국과의 교역 단절이 경제에 미치는 파장을 신경 쓰지 않은 게 아닙니다. 특히 대중 수출길이 막힌 베트남 과수 농민을 위해 다양한 조치를 취했습니다. 베트남 상공부(MOIT)는 수박, 용과, 두리안, 잭프루트 등 다양한 수출 과수의 내수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강조했습니다. 내수 소비가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 중 하나라고 호소했으며, 기업들이 농민들에게 공임을 나누어주는 방식으로 농촌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갔습니다.

현지 한인 기업들도 어려움을 함께 나누자는 베트남 정부의 호소에 적극적으로 동참했습니다. 현지 봉제 업체들은 자체적으로 마스크를 만들어 베트남 지역에 선물하는 CSR활동을 시작했고, 한인회는 모자와 마스크를 뉴질랜드 등에서 수입해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번 사태는 오히려 베트남에 득이 된 측면도 있습니다. 예컨대 중국 우한 쪽에서 주로 생산되던 특수강, 알루미늄 등을 구하려는 바이어들은 대체재를 찾아 베트남으로 몰려왔습니다. 베트남의 바이러스 청정 이미지는 베트남 경제를 활기차게 만드는 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현재도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한 베트남 정부의 과감한 조치는 계속 중입니다. 확진자가 발생한 빈푹(Vinh Phuc)성을 과감히 차단하면서 애국심이 강한 자국민들에게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학교는 무제한 휴교를 실시하는 중이고, 사람이 모이는 모든 집회는 다 취소됐습니다.

이런 노력 속에 한국에서 확진자가 급속히 늘어나자 안타깝게도 베트남은 한국을 불신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젠 한국을 ‘제2의 우한’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생겼습니다. 한국인이 있는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언제 한국을 방문했는지 조사하기 시작했고, 사무실 개업식 등 한인들이 모이는 행사에서는 참석자들이 손소독을 하는지 감독합니다. 모든 교민들은 한국 방문일자를 적어 내야 합니다. 호찌민공항에서는 지난 2월 25일 대구·경북 지역에 다녀온 한국인을 돌려보내는 일까지 발생했습니다. 대구·경북 지역을 다녀온 한국인들에게는 지금 두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14일간 병원에서 격리되어야 합니다.

택시나 그랩은 한국인을 거부하기 시작했고,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한국인들을 베트남 사람들이 큰소리로 꾸짖는 일도 자주 목격합니다. 한국인이 많이 사는 하노이 경남아파트조차 헬스장-테니스장 등등 편의시설을 잠정 폐쇄한 상태입니다. 찌링, 스카이레이크 등의 하노이 골프장들은 베트남 정부 지침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의심되는 한국인의 출입을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대구 출신의 한국인 기업인 두 명은 지난 2월 25일 가족들에게 메시지도 남기지 못한 채 격리되었습니다.

베트남인들에게 더 이상 한국은 동경의 대상이 아닐지 모른다는 안타까움이 듭니다. 박항서 감독의 나라가 베트남인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현지에서 목격하는 이 모든 일들은 ‘바이러스를 확산시키는’ 한국인들을 베트남 사람들이 더 이상 좋아하지 않게 됐다는 슬픈 사실을 확인시켜줍니다! 우리 교민들로서는 모국이 하루빨리 청정국 이미지를 되찾아 베트남과의 돈독한 관계가 복원되기를 하루하루 희망하고 있습니다.

WHO 인정한 베트남 방역법은

최대 교역국 불구 중국 차단 핵심… 1월 말 항공·철도 운항 중단

김경민 기자 kkim@chosun.com

베트남 하노이에 7년째 살고 있는 교민 이모(57)씨는 최근 전화 통화에서 “요즘 한국 교민들이 눈칫밥 먹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베트남인들의 한국 교민들에 대한 경계심이 부쩍 높아졌다는 것이다. “베트남 사람들이랑 회의라도 하게 되면 한국을 최근에 언제 갔다왔는지 확인증을 써달라고 합니다. 한국 교민들이 많이 사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도 한국에 언제 갔다왔는지 묻고 다니고요. 골프장 출입을 할 때도 눈치가 보입니다.”

이미 베트남에 들어온 한국 여행객들도 현지 식당 등을 출입할 때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지난 2월 23일부터 나트랑을 여행 중인 대학생 정모(25)씨는 “식당에 들어가는데 한국 사람으로 보이면 발열 체크를 하고 어디서 묵는지 다 적어 내야 한다”고 했다. 현재 한국인이 베트남에 입국하려면 체온이 37.5도 이하로 측정된 경우에만 검역 서류 작성 후 입국이 허용된다. 기준치를 넘어서면 2주간 격리 조치에 취해진다.

지난 2월 24일 대구에서 다낭으로 온 한국 여행객들을 격리 조치해 주목받은 베트남은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코로나19 모범 방역국’으로 인정받았다. WHO로부터 ‘국제사회의 모범’으로 평가받은 베트남의 방역 조치 역시 중국과의 차단이 핵심이다. 베트남 정부는 코로나19 발병 초기인 지난 2월 1일 중국을 오가는 모든 항공편에 대한 운항 허가를 중단했고 중국과의 철도운항도 중단시켰다. 지난 2주간 중국 방문 이력이 있는 외국인은 입국도 금지했다. 또 중국 방문자에 대한 14일 자가격리도 의무화했다. 주베트남 한국대사관 측은 “베트남 장기 체류자라도 중국 방문 경력 때문에 입국이 불허될 수 있다. 건강 상태에 대한 증명서를 제출해도 중국을 갔다왔으면 입국을 제한당할 수 있다”고 했다.

베트남 역시 우리처럼 중국과의 교역 규모가 무시 못 할 수준이다. 2018년 기준 대중 수입 약 839억달러, 대중 수출 약 639억달러로 최대 교역국이 중국이었다. 하지만 이런 교역 규모도 중국과의 국경을 걸어잠그는 데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다.

이런 삼엄한 정부 조치는 민간으로도 전파돼 곳곳에서 방역망이 강화됐다. 주요 도시의 아파트와 쇼핑몰에서는 입구에서부터 발열 체크를 하고, 배달 음식은 로비에서만 받을 수 있다. 외국인 손님을 받을 때 국적 체크를 하는 곳들도 많다. 얼마 전 하노이에서 차로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빈푹성 손로이라는 인구 1만명가량의 마을에서 확진자가 나오자 이 마을 전체를 봉쇄하고 외부와의 연결을 차단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지난 2월 27일 기준 베트남의 코로나19 확진자는 16명에 그쳤다. 지난 2월 13일 이후에는 확진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다. 확진자 16명 중 15명은 이미 완치 판정을 받았다. 지난 2월 22일 기준 유증상 감염 의심자도 12명에 불과하다. 격리 조치된 무증상 감염 의심자는 1538명이다.

통계의 신빙성이 의심되기는 하지만 베트남 외의 중국 주변국들 중에서도 코로나19 확진자가 확연히 적은 나라들은 모두 대중 차단 정책을 편 나라들이다. 예컨대 중국과의 국경이 5000㎞나 되는 몽골도 2월 24일 현재 확진자가 한 명도 없다. 몽골 역시 2월 초부터 중국 체류 경력이 있는 외국인의 입국을 전면 금지하고 중국과의 항공 노선도 차단했다. 중국이 최대 교역국이고 수출액의 절반을 석탄이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석탄 수출도 운송업자들의 감염을 우려해 3월 2일까지 잠정 중단한 상태다. 미얀마와 라오스 역시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들이지만 국경을 봉쇄한 덕분에 코로나19 확진자의 발생을 막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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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덕상 코참(주베트남 한국상공인연합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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