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5일 올림픽 카운트다운을 표시한 도쿄 도심 전광판 아래를 마스크를 쓴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2월 25일 올림픽 카운트다운을 표시한 도쿄 도심 전광판 아래를 마스크를 쓴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photo 뉴시스

일본의 마이니치신문은 요즘 매일 1면 하단에 도쿄올림픽이 며칠 남았는지를 표기 중이다. 올해 들어서 올림픽 관련 특집물도 늘어나는 추세다. 마이니치신문사는 정문 출입구 계단과 아케이드에 도쿄올림픽 홍보물을 대거 부착할 정도로 ‘올림픽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아사히신문도 마찬가지다. 지난 2월 25일자에 도쿄올림픽·패럴림픽에 관련한 특집기사를 2개 면에 걸쳐서 게재했다.

일본에서 마이니치·아사히는 ‘반(反)아베 신문’으로 불릴 정도로 아베 신조 총리에 대해선 비판적이다. 그럼에도 아베 정권이 2013년 유치한 도쿄올림픽에 대해서는 지면을 아끼지 않고 있다. 요즘 TV를 켜면 NHK와 민방(民放)에서는 매일 유도·탁구·수영·레슬링 등 각종 올림픽 종목에 대한 보도가 홍수를 이루고 있다. 그만큼 3월 1일 현재 145일을 남겨둔 도쿄올림픽은 일본인 전체의 관심사다.

외국 특파원이 보기에 일본이 도쿄올림픽에 들이는 관심과 열정은 마치 개발도상국이 국가의 운명을 거는 것을 연상시킬 정도다. 1964년에 이어 56년 만에 두 번째로 하계올림픽을 개최함에도 여기에 들이는 정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더욱이 아베 내각은 1만5000명이 사망한 동일본 대지진의 트라우마 해소를 위해 ‘부흥(復興) 올림픽’이라고도 명명하며 국가적인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다.

국제 체육계 거물의 폭탄 발언

일본 정부는 올림픽 준비를 위해 ‘도쿄 리노베이션’에 착수, 기자가 부임했던 2018년 6월의 도쿄는 거대한 공사판을 연상시켰다. 최근 오테마치역, 다케바시역을 비롯한 도쿄 도심의 지하철역은 올림픽 손님을 맞기 위해 하나둘씩 새롭게 단장한 모습으로 거듭나고 있다. 상업중심지인 마루노우치에서는 올림픽 전의 개장을 목표로 약 40층 규모의 대규모 빌딩 공사가 마무리되고 있다. 일왕이 집무하는 고쿄(皇居)와 벚꽃으로 유명한 치도리가후치공원 사이의 2차선 도로는 그 주변의 인도까지 최근 깔끔하게 단장됐다.

이런 일본 사회에 올 초부터 코로나19 확산과 함께 도쿄올림픽 취소설이 잇달아 제기돼 긴장하고 있다. 지난 1월 30일 코로나19 확산 초기에 ‘도쿄올림픽이 열리지 않을 것’이란 이야기가 급속하게 퍼져 큰 소동이 벌어졌다. 일본의 한 인터넷 사이트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세계보건기구(WHO)의 코로나19 대책 협의 소식을 전하면서 ‘도쿄올림픽 중지?’란 제목을 붙인 것이 화근이었다. 트위터에는 5만건 이상의 관련 글이 올라왔다. ‘도쿄올림픽 중지’라는 해시태그가 인기 키워드에 오르기도 했다. 이 때문에 하시모토 세이코(橋本聖子) 올림픽 담당상은 그 다음날인 1월 31일 기자회견을 열고 “변함없이 (올림픽을) 준비할 것”이라고 밝혀야 했다.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와 타임은 2월 중순 각각 도쿄올림픽 개최가 힘들 수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 현 상태가 심각한 수준임을 상기시켰다. 뉴스위크는 ‘2020년 (도쿄)올림픽 취소되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바이러스 전문가들이 현 상태가 계속되면 올림픽 개최가 열리기 어렵다는 견해를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타임은 ‘도쿄올림픽, 바이러스의 희생양이 되나’라는 제목에서 올림픽이 일본에서 개최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 일본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아베 신조 총리가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2월 말에는 IOC 위원이 공개적으로 문제 제기도 했다. 딕 파운드 IOC 위원은 최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올여름 도쿄에서 올림픽을 개최하는 것이 매우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IOC가 아예 올림픽을 취소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1978년부터 43년째 IOC 위원으로 활동하며 부위원장을 역임한 그는 “도쿄올림픽 개최 여부가 (최종) 결정되기까지는 2~3개월이 걸릴 것”이라며 개최 여부가 5월 말쯤 결정될 것으로 전망했다. 코로나19 사태가 4~5월까지 계속되면 취소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IOC 최장수 위원이자 세계 반(反)도핑기구의 초대회장을 역임한 국제 체육계의 거물이 이 같은 발언을 했다는 점에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해 7월 24일 도쿄올림픽 준비 행사에서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왼쪽)과 악수를 나누는 아베 총리. ⓒphoto 뉴시스
지난해 7월 24일 도쿄올림픽 준비 행사에서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왼쪽)과 악수를 나누는 아베 총리. ⓒphoto 뉴시스

일본에 각별한 올림픽 개최 역사

아베 내각은 잇따르는 ‘올림픽 취소설’을 진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시모토 세이코 올림픽 담당상은 국회에 출석, “IOC로부터 해당 위원의 발언은 공식 견해가 아니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정례 브리핑에서 “다음 달(3월)에 시작하는 올림픽 성화 봉송에 대해서도 조직위원회로부터 일정 변경은 없다고 듣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도 기자들을 만나 “파운드 위원의 발언은 개인적인 견해일 뿐”이라며 “IOC로부터 도쿄올림픽 준비를 착실히 해달라는 이메일을 받았다”고 밝혔다.

만약 도쿄올림픽이 끝내 취소될 경우, 일본은 정치적·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인들은 올림픽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일본이 하계올림픽을 유치한 것은 엄밀히 말해 이번이 세 번째다. 메이지유신으로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그 여세를 몰아 1940년 열릴 제12회 올림픽 개최도시로 선정된 바 있다. 그러나 군부(軍府)가 실권을 장악해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올림픽 무용론이 나왔다. 이에 따라 1938년 각의(閣議·국무회의)에서 올림픽 개최를 포기했다. 이는 올림픽을 유치했다가 전쟁 수행을 이유로 반납한 유일한 사례로 남아 있다.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던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48년 런던올림픽 참가를 불허당하는 수모를 겪는 등 국제사회에 복귀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일본은 1964년 10월 제18회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면서 비로소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다시 인정받았다고 할 수 있다. 당시 93개국에서 5133명의 선수들이 참가한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일본은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올라섰다. ‘메이드 인 재팬’ 브랜드가 서구에서 30년 이상 호평받는 길을 만들었다. 도쿄올림픽은 전 세계에 ‘재팬(JAPAN) 브랜드’를 알리는 신호탄이자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제강국으로 부상하는 출발점이었던 것이다.

아베 내각은 도쿄올림픽 재개최로 일본의 새로운 부상을 노리고 있다. 올림픽을 통해 일본의 소프트파워를 세계에 알림으로써 일본을 명실상부한 아시아의 중심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워왔었다. 이 때문에 아베 내각은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크루즈선 문제에서도 사태를 축소하며 올림픽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고자 안간힘을 써왔다. 그럼에도 사태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일본의 정치권에서는 코로나19 확산 여부와 IOC의 최종 결정이 아베 총리의 정치생명을 쥐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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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원 조선일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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