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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9호] 2020.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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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통신]한국과는 너무 다른 영국인의 코로나19 대처법

런던= 권석하  재영칼럼니스트 johankwon@gmail.com

▲ 지난 3월 4일 런던 잉글랜드 은행 앞을 지나는 시민들. 동양인으로 보이는 한 남자만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정말 삶은 소설보다 더 기이하다. 유럽의 지평선 위에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심정이다. ‘카산드라 크로싱(The Cassandra Crossing)’이라는 1976년 영화를 현실에서 보고 있는 듯하다. 버트 랭카스터, 소피아 로렌, 에바 가드너 등의 쟁쟁한 명배우들이, 바이러스에 오염된 채 쉬지 않고 달리는 열차 안에서 벌이는 재난영화다. 이 영화를 보면서 충격적으로 느껴져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장면이 있다. 요즘 각국에서 방호복을 입고 방재처리를 하는 요원들의 모습이다. 투명창으로 보이는 눈 말고는 흰옷으로 몸을 모두 감싼 로봇 같은 군인들이 기관단총을 든 모습은 어떤 장면보다도 섬뜩했다. 그런데 인구 6000만명이 넘는 이탈리아에서 흰옷의 군인들이 실제 국민을 통제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쉽게 믿기지 않는 현실이다.
   
   
   길거리에 마스크 쓴 사람 없어
   
   영국은 그동안 코로나19 사태를 강 건너 불 보듯 해왔다. ‘마스크 대란’ 뉴스가 외신으로 전해지는 와중에도 길거리에 마스크를 쓴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신문·방송의 뉴스에서도 코로나19 사태는 1면 기사가 아니었다. 그나마 이탈리아가 전국을 봉쇄(lockdown)하는 상황이 되자 영국의 간판 방송 BBC가 홈페이지 기사들을 코로나19로 바꿨다. 이탈리아를 오고 가는 모든 영국 항공편이 4월 3일까지 중단되자 비로소 긴장하는 모습이 조금씩 보인다.
   
   그러나 아직도 영국인들은 길거리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영국에서 30년을 산 필자의 판단으로는 앞으로도 상당수 영국인들이 쓰지 않을 듯하다. 이는 다른 유럽인들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얼마 전 이탈리아 피렌체와 로마를 다녀왔다. 이탈리아가 국가봉쇄를 하기 바로 전주였다. 물론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막 퍼지고 있던 밀라노, 베네치아를 포함한 북부 롬바르디아 지방은 아니었다. 그래도 한 나라 안인데 피렌체나 로마 거리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 평화로웠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이탈리아인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바티칸 베드로성당 미사 중간에 신자들끼리 하는 ‘평화의 인사’ 시간에는 주위의 이탈리아인들이 중국인처럼 보이는 필자에게 서슴없이 악수를 청하면서 껴안기까지 해서 놀라움을 넘어 감동을 받았다.
   
   한국 언론에 로마 스페인광장과 콜로세움 근처에 사람들이 없어 휑하다는 사진이 나온 바로 그날, 필자가 지켜본 로마는 행인들로 바글바글했다. 마침 필자는 영국 낭만파 시인 존 키츠가 로마에서 25살의 나이로 요절한 집을 취재하고 있었다. 키츠가 마지막 숨을 내쉰 침실이 스페인광장 계단 바로 옆이어서 계단을 오르내리는 행인들의 말소리까지 들렸다. 그 소리가 하도 시끄러워서 ‘사랑이 나의 종교이며 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고 당신을 위해 죽을 수 있다’던 천재 시인의 애달픈 마지막을 애도하면서 취재하려던 분위기를 방해할 정도였다.
   
   그리고는 바로 그날, 집으로 가기 위해 런던 히드로공항에 도착했을 때 영국 정부가 무슨 조치를 내리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지만 역시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유럽에서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가 가장 많이 나온 이탈리아에서 들어오는 항공편 승객을 맞는 히드로공항은 평소와 전혀 다름이 없었다. 평소대로 여권자동확인기를 통해 입국할 수 있었다. 늦은 밤이어서 그런지 세관원마저 보이지 않았다. ‘이래도 되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필자와 함께 이탈리아를 여행한 동료 승객들 중 한 명이 “이건 좀 이상하네”라고 중얼거릴 정도였다. 차라리 일주일 전 피렌체공항에 들어갈 때는 우주복 같은 방호복을 입은 요원이 이마에 체온계를 대고 체크를 해서 조금 긴장했지만 이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히드로공항은 평온했다.
   
   
▲ 지난 3월 3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운데)가 수석의학사무관 크리스 위티(왼쪽), 수석과학고문 패트릭 발랜스와 함께 코로나19 사태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이탈리아 여행객, 한국 학생들도 무사 통과
   
   사실 유럽은 한 나라와 같아 국경이 따로 없다. 그러니 영국 정부는 편하게 생각한다. 즉 이탈리아에서 아무리 확진자가 많이 나온다고 해도 이탈리아 정부가 조치를 취해야 맞지 영국 정부가 어떤 조치를 취할 수는 없다는 식이다. 아직도 영국은 한국에서 들어오는 여행객에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한국 언론에서 왜 영국이 한국인 입국 제한국이고, 2주일 격리 운운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필자가 운영위원인 런던 한인촌 초등학교의 학생 20%가 한인학생이다. 그래서 학교 측에 “중간방학 후 한국에서 돌아온 한국 아이들을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자신들도 위험을 알지만 정부의 지침도 없고 규정도 없다는 뜻이었다. 영국인이 무심한 건지 대범한 건지 알 수 없다. 이런 영국의 ‘무조치’를 좀 더 잘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최근 기자회견을 소개하겠다.
   
   지난주 화요일(3월 3일)부터 존슨 총리는 순전히 코로나19에만 국한된 기자회견을 매주 하고 있다. 총리가 나서서 국민에게 직접 상황 보고와 이해를 구하겠다는 시도다. 총리는 관저의 좁은 강당에 다른 장관이나 보좌관 없이 수석의학사무관(CMO·Chief Medical Officer)과 수석과학고문(CSA·Chief Scientific Advisor) 딱 2명과 같이 나와 영국 기자들만 상대로 질문을 받았다. 해당 분야 최고의 두 전문가는 존슨 총리 뒤에 배석한 것이 아니라 각자 마이크가 비치된 총리 양쪽의 독립 답변대에 서서 대답했다.
   
   우선 총리는 ‘손을 잘 씻자’는 말로 회견을 시작했다. 지난주에는 한두 번 고소가 터지는 웃기는 장면도 있었지만 이번 주(3월 9일) 회견은 상당히 진지하고 무거운 분위기였다. ‘왜 우리는 지금 조금 더 강력한 조치(vital steps·예컨대 입국제한, 대중집회, 스포츠게임 중단 등을 의미)를 하면 안 되나’라는 질문에 대해 수석과학고문은 특정 국가명을 밝히지 않고 “공항에서의 열 확인(scan)과 국경 폐쇄는 결과적으로 별 소득이 없다”라고만 답했다. 이를 받아 수석의학관이 “이탈리아는 중국에서 오는 항공편 중지와 공항 열 확인을 제일 먼저 시행한 나라인데도 지금 제일 확산이 심한 나라가 되었다”고 했다. 그러자 총리는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우리나라에서도 똑같이 일어난다는 보장이 없다”고 했다.
   
   총리나 두 전문가 모두 “너무 일찍 강력한 통제를 하면 효과도 없고, 너무 많은 사람들의 삶을 혼란스럽게 하기 때문에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결정(right time, right decision)을 하겠다”고 했다. 지난주에는 분명 “우리는 지금 질병 봉쇄 단계에 있다”고 했으나 이번에는 “확산 지연 노력을 해야 하는 2단계에 들어가고 있다”라고 솔직하게 자인했다. “봉쇄 시도는 거의 불가능하다”라고도 인정했다. 그래서 바이러스 대처 4단계인 봉쇄(contain)·지연(delay)·조사(research)·완화(mitigate) 중에서 2단계인 ‘지연’ 노력을 시작한다고 했다. 영국 정부는 이미 코로나19 사태가 영국에 대거 확산되는 상황을 각오하는 듯보였다.
   
   
   30만명 모이는 경마 경기도 열려
   
   이날 총리와 두 전문가는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아직은 축구경기 같은 대형 군중 행사 중단 조치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도 했다. 수석과학고문은 “수만 명이 모인 행사에 확진자 한 명이 주위에 (바이러스를) 퍼뜨릴 가능성은 두서너 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소규모 모임에서 한 명이 퍼뜨리는 숫자는 비율로 보면 훨씬 더 크다”라고 했다. 그래서 대규모 모임 중단으로 벌어지는 사회혼란보다는 차라리 그냥 내버려둬 일상생활 영위 중 벌어지는 자연스러운 확산은 각오하고 대처하겠다는 뜻처럼 보였다. 실제 영국 경마 시합 중 두 번째로 큰 첼튼함 경마가 3월 10일에서 13일까지 4일간 중단되지 않고 열려 매일 7만~8만명이 즐겼다. 코로나19 확산이 한창인데 거의 30만명이 한군데 모이는 행사를 중단시키지 않은 것이다.
   
   어쩌면 영국 사회는 어느 정도의 희생은 불가피하며, 그로 인해 자신들의 일상을 방해받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막으려고 자신들의 일상이 방해받는 사회혼란(social disruption)은 가능하면 피하자는 노력으로 보인다. 영국 정부는 아직은 공공모임이나 운동경기 중단 같은 ‘사회적 거리 두기(social distancing)’도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영국인들도 이를 이해하는 듯하다. 결국 바이러스 확산 방지와 일상생활의 균형을 가능하면 유지하겠다는 것이 전체 영국인의 생각이다. 전혀 막을 수는 없으나 가능하면 피해를 적게 보고 일상생활은 일상생활대로 유지하는 ‘피해 최소화(damage limitation)’ 정책이라 볼 수 있다.
   
   기자회견을 통해 보인 코로나19 사태를 대하는 영국 정부의 태도는 사실 놀랍다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로 솔직했다. 바이러스는 처음에는 천천히 번지다가 좀 지나면 급속도로 광범위하게 퍼진다는 걸 분명히 경고했다. 확진자 숫자가 천정부지로 올라갈 때가 언제쯤인지는 예측하기 어려우나 여름까지는 끌고 갈 것 같다는 예상도 했다. 바이러스의 대량 확산을 전혀 막을 수는 없다고도 인정했다. 단지 지연시키려는 노력을 할 뿐이라고 했다.
   
   통상적으로 병원이 조금 한가해지는 여름까지 대거 확산을 막았으면 하는 희망과 노력도 피력했다. 그 기간 동안 영국은 준비를 하겠다는 말이다. 만일 준비가 되기 전 대거 확산 사태가 발생하면 영국 병원은 환자를 맞을 병상도 없고 능력도 없다. 평상시에도 병상이 없어 병원 복도 침대에 환자가 누워 있다는 보도도 나오고, 실제 의사가 없어 수술이 안 되는 일도 벌어진다. 만일 모든 코로나19 확진자를 병원에 입원시키면 영국 의료제도는 그날로 망가지고 정지된다.
   
   
▲ 지난 3월 11일 챔피언스리그를 보기 위해 리버풀 안필드 스타디움에 운집한 축구팬들. 영국 정부는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아직 대규모 관중이 모이는 행사 중단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photo 뉴시스

   확진자 받아들이면 영국 병원 멈춰
   
   현재 영국 내에 코로나19 환자를 위해 선정된 병원은 30개이고 병상은 4000개밖에 안 된다. 그나마 영국 병원의 병상은 95%가 차 있어 5%밖에 여유가 없다. 영국에는 의료진 10만명이 부족한 형편이다. 게다가 브렉시트로 인해 EU 출신 의료진이 귀국하는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 또 브렉시트 협상이 제대로 안돼 유럽으로부터 들어오는 의약품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영국 의료기관들은 정지된다. 이런 상황에서 만일 수천 명 혹은 수만 명의 확진자가 나오면 영국 병원은 일반 환자들을 전혀 받을 수 없는 설상가상의 비상이 걸린다. 이런 약점들을 고려하면 사실 영국은 어느 나라보다 긴장해 코로나19 사태에 민첩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인데 오히려 너무나 느긋해서 놀랍다 못해 경악할 정도다.
   
   더욱 놀라운 것은 수석의학관의 말이다. 그는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지 않는다. 수많은 영국인이 보균자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비관적으로 생각할 일은 아니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영국인다운 낙관적이고 합리적이고 현실감각을 갖춘 발언이었다.
   
   그의 현실론을 더 들어보자. “보균자 중 90%는 아주 가볍게 지나가거나 아예 발병을 안 하거나 한다. 10%의 발병자 중에도 소수만 입원을 해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나머지는 그냥 집에서 안정을 취하면 자연적으로 낫는다. 발병을 해도 아주 경증(mild, moderate)으로 지나간다. 발병자(보균자의 10%)의 10%인 전체 보균자의 1%만 사망한다. 예를 들면 1만명이 확진자라고 판정 나면 그중 90%(9000명)는 자가에서 안정하면 자연치유가 된다. 나머지 10%(1000명)는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 그중 10%인 전체 확진자 중 1%(100명)만 사망한다. 그러나 이 비율은 실제 더 낮을 가능성이 크다. 보균자 중 발병을 전혀 안 하는 경우부터 아주 경미한 증상을 자각하지 못해 검사를 받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영국 의료기관의 현실에 비춰 보면 수석의학관의 이 말은 틀린 게 아니다. 영국 의료보험 제도를 감안하면 확진자라고 해서 모두 입원을 시킬 수가 없기 때문에 현실적인 판단을 해서 조치를 취하겠다는 뜻이다. 두 번째 기자회견 전 주말은 2월 9일 4명의 첫 확진사례(confirmed cases·영국에서는 확진자라는 말을 안 쓴다)가 나온 이래 한 달 만에 확진자 460명, 사망자 6명이 나오던 시점이었다. 사망자 6명은 60대 후반이 1명, 70대가 3명, 80대가 2명으로 모두 노년층이었다. 6명 전원이 당뇨, 고혈압, 암 같은 기저질환자였다. 결국 너무 걱정하거나 공포에 떨지 말라는 수석의학관의 말이 크게 틀린 것은 아닌 셈이다.
   
   
   독감은 병으로도 치지 않는 영국
   
   영국 국가건강서비스(NHS·National Health Service) 홈페이지의 코로나19 대처 안내를 봐도 그냥 이렇게 나온다. ‘일단 증상이 나타나면 당황해서 병원이나 가정의에게로 뛰어오지 말고 타인에게 전파하지 않게 자가격리한 다음 NHS에 신고하라. 그리고는 7일 정도 지켜본 후 증세가 낫지 않고 심해지면 다시 연락을 하라. 그러면 의료진이 방문해서 상황을 보고 조치를 취한다.’
   
   사실 영국 병원들은 독감으로 열이 나고 몸살로 사지가 아프고 힘들어도 해열제 처방도 안 해준다. “그냥 병가 내고 집에서 과일주스 많이 마시고 푹 쉬라”는 말만 한다. 아무리 편도선이 붓고 목이 아파 힘들어도 항생제도 주지 않는다. 감기나 독감은 병으로도 치지 않는다.
   
   총리의 코로나19 기자회견에 대해 영국인들 대다수가 공감했을지 모르지만 가디언지는 칼럼에서 날을 세웠다. 가디언지는 ‘모두 동요하지 말고 일상을 하던 대로 그냥 계속하라는 말밖에는 안 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영국인들은 총리의 기자회견 발언을 자신들이 가장 사랑하는 2차대전 구호 ‘(소란 피우지 말고) 조용히 하면서 (하던 일이나) 계속하자(Keep Calm Carry On)’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모든 일에 허둥대지 않고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참고 고난을 이겨나가는 영국인답게 코로나19 사태에서도 일상을 유지하면서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 균형의 묘미를 찾자는 뜻으로 영국인은 이해한다. 사실 존슨 총리는 코로나19 회견 이후 더 인기를 얻은 편이다. 국민과 대면해서 솔직하게 현실을 인정하고 이해를 구하는 자세를 영국인들은 높게 평가했다.
   
   
   동양인의 마스크 집착 비아냥
   
   요즘 영국 언론에 등장하는 마스크 쓴 사진 속 사람들은 모두 동양인이다. 필자가 유럽 한인 교민들을 통해 알아본 바로도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스웨덴, 네덜란드인 모두 마스크를 거의 안 쓴다. 그래서인지 영국인들은 ‘동양인의 마스크 집착(obsession)’이라는 단어까지 쓰면서 빈정댄다. 존슨 총리도 기자회견에서 손 잘 씻자는 얘기는 해도 마스크 쓰자는 얘기는 안 했다. 좁은 회견장을 지키던 참석자 누구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NHS도 “마스크를 쓰면 분명 감염의 가능성이 안 쓴 것보다는 줄어들지만 절대 완벽한 보호(iron-clad)는 아니다”고 강조한다. 마스크를 써도 바이러스균은 침범한다는 뜻이다. 마스크를 쓰고 집에 들어갈 때까지 한 번도 안 벗으면 모르지만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실 때 벗는다면 그때 얼굴에 손이 가니 더 위험하다는 논지도 편다. 얼굴에 손을 대는 일이 생기면 생길수록 위험하다는 뜻이다. 거기다가 바이러스가 눈으로 많이 침투하기 때문에 마스크만 쓴다고 완벽한 보호는 아니다라는 주장도 곁들여진다.
   
   오히려 영국에서는 마스크를 쓴 사람을 환자로 취급하는 분위기다. 심지어 런던의 한 식당에서 한국에서 방금 도착한 마스크 쓴 한국인을 받지 않고 내보냈다는 얘기도 들린다. 마스크를 쓰고 들어오면 다른 손님들이 불안해하기에 받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마스크 쓴 사람이 환자가 아니냐는 것이 영국인들의 일반적인 시선이다. 오히려 식당 주인이 “어떤 식당을 들어가든 마스크를 벗고 들어가라”고 충고하면서 정중하게 한국 손님을 거절했다고 한다.
   
   영국인들은 상당히 운명론자들이다. 그래서인지 병이 나면 다른 의사의 2차소견(second opinion)을 구하지 않는다. 하긴 2차소견을 받기도 쉽지 않다. 영국에서는 전문의에게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정의(GP·General Practitioner) 소견서가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다른 전문의의 2차소견을 받기 위해서는 건강보험 내의 다른 병원을 찾아가 진찰을 받아야 하는데 이런 일이 워낙 드문 일이라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대개의 영국인들은 1차 전문의가 진료해서 결정하면 별다른 의사 표시 없이 의사와 병원의 진단과 결정을 따른다. 간단하게 말하면 첫 의사가 진단한 병을 ‘운명’이라고 여기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별다른 방법이 없으니 현실에 순응하는 ‘제도적 포기’일 수도 있다. 이와 함께 인간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고 하늘이 정해준 시련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기독교적 운명론이 곁들여진 생사관’일 수도 있다.
   
   
   제도적 포기와 기독교적 운명론
   
   코로나19 사태 와중에도 영국에서는 모든 것이 큰 변화 없이 그대로 진행되면서 세상이 조용하게 돌아갈 것으로 필자는 본다. 어느 정도의 피해가 생겨도 국경을 막는 호들갑 역시 떨지 않을 것이다. 겁쟁이처럼 '집안에만 틀어박혀 미쳐버리는'(stir crazy 혹은 cabin fever 등으로 표현) 일도 벌어지지 않을 듯하다. 그렇게 해서 영국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평정심을 갖고 일상을 유지할 것이다. 수석의학관의 말대로 연간 독감으로 죽는 8000명 정도는 감수하겠다는 자세로 보인다. 곤경을 참고 이겨 나가는 영국인을 표현하는 말이 또 떠오른다. 바로 ‘굳은 윗입술(stiff upper lip)’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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