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7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열린 BTS의 월드투어 파리 콘서트를 찾은 팬들이 공연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해 6월 7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열린 BTS의 월드투어 파리 콘서트를 찾은 팬들이 공연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photo 뉴시스

열정적인 K팝 팬들이 조지 플로이드 추모 시위에서 주역이 됐다. 이들은 소셜미디어라는 플랫폼을 기발하게 활용하는 그룹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능력을 시위 지원에 활용했다. 국제 해커조직인 어나니머스는 트위터에 이렇게 적었다. “K팝 군대가 정부에 대항하는 무기가 됐다.”

요즘 미국은 감시 기술을 활용하려는 정부와 이를 피하려는 시위대가 대결하고 있다. 미 법무부는 시위를 잠재우기 위한 수단으로 마약단속국에 민간인에 대한 감시 권한을 부여했다. 마약단속국은 기술 활용도가 가장 높은 부서인데 이들은 안면인식 기술에도 접근할 수 있게 됐다. 경찰도 비슷한 기술을 활용해 왔다. 버즈피드는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경찰이 ‘클리어뷰(Clear View)’라는 안면인식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시스템은 소셜미디어에서 무수히 많은 사진을 긁어와서 얼굴 매칭 알고리즘을 통해 신원을 알아낸다.

텍사스주 댈러스 경찰도 시위자를 식별해 찾으려고 했다. 시민들을 향해 시위에서 벌어지는 불법활동을 촬영해 자신들이 운영하는 ‘아이워치(iWatch) 댈러스’라는 앱에 올려달라고 트위터 계정에 공지했다. 문제는 이를 트위터를 통해 홍보했다는 거다. 트위터는 시위대가, 혹은 시위대를 심정적으로 지지하는 이들이 가장 활발하게 활용하고 있는 채널이다. ‘#BlackLivesMatter(흑인 생명은 중요하다)’라는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을 통해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인종차별적 분위기를 몰아내는 대표적 소셜미디어다. 그런 곳에 시위대에 대응하는 공지를 남겼다.

댈러스 경찰의 요청은 K팝 팬들이 팬캠을 기발하게 활용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아미(ARMY·BTS 팬클럽)로 추정되는 한 트윗 사용자가 “시위 영상 대신 팬캠을 올려 어떤 정보도 찾지 못하게 하자”고 제안하면서부터 거대한 움직임이 생겼다. 팬캠은 라이브 공연을 팬이 직접 촬영한 클로즈업 영상이다. 아이돌 그룹 중 내가 특히 좋아하는 특정 멤버 한 명에 초점을 맞추는데, 좋아하는 아이돌을 알리고 사랑하는 멤버를 홍보하는 데 매우 요긴하다.

시위 감시 영상 몰아낸 아이돌 콘텐츠

어쨌든 이 아이디어가 입소문이 나면서 시위 영상 대신 팬캠 업로드가 시작됐다. 그들이 좋아하는 가수의 사진과 동영상이 댈러스 경찰청으로 몰려들었다. 몇 시간 뒤 댈러스 경찰청은 트윗을 통해 “기술적인 문제로 아이워치 댈러스 앱이 일시적으로 다운됐다”고 전했다. 트위터의 K팝 팬들이 올린 콘텐츠가 과부하를 일으킨 것인지, 그래서 작동을 멈추게 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댈러스 경찰청의 트윗 아래 각종 밈(meme)으로 가득한 답변들은 경찰의 감시 앱이 중단된 것을 축하하는 트윗으로 가득했다.

K팝 팬들이 사회적 의제로 결집한 건 처음 벌어진 일이 아니다. 지난해 칠레에서는 산티아고 지하철 요금 인상이 촉매가 돼 시위가 격화됐다. 당시 칠레 내무부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10월 18일~11월 21일 사이 소셜미디어 등에서 시위와 관련해 500만명의 사용자가 쓴 게시물 6000만건의 빅데이터를 분석한 자료였다. 내무부는 칠레 시위 초반에 외부세력이 영향을 줬으며 분석 게시물 중 19.3%가 칠레 밖에서 생산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 외부세력 중 하나로 지목된 게 K팝 팬들이었다. 시위 초기에 약 400만건 이상의 리트윗을 날리며 시위 참가를 유도했다는 게 칠레 내무부의 분석이었다. 그로부터 반년이 조금 지나 미국에서 벌어진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은 K팝 팬들의 새로운 의제가 됐다.

트위터는 ‘#’을 붙여 활용하는 해시태그의 장이다. 월간 활성 사용자수가 3억명이 넘는 글로벌 소셜미디어에서는 해시태그 경쟁이 벌어진다. 해시태그를 클릭하고, 해시태그를 쫓으면 관련 게시물을 손쉽게 볼 수 있다. 지금 대세 해시태그는 플로이드 사망 이후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BlackLivesMatter(BLM)다. 그런데 역으로 등장한 해시태그가 있었으니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전파하기 시작한 #WhiteLivesMatter(백인의 생명은 중요하다)였다.

이 해시태그는 곧 본디 목적을 잃게 됐다. 존재가 알려진 뒤 ‘K팝’ 카테고리로 기록되더니 나중엔 ‘Music’으로 편입되며 국내 아이돌 관련 해시태그로 길잡이 노릇을 하게 됐기 때문이다. K팝 팬들은 이 해시태그를 자신들의 팬캠과 K팝 콘텐츠를 소비하는 태그로 며칠 동안 활용했다. 그 덕분에 #WhiteLivesMatter를 검색하면 BTS나 샤이니를 쉽게 만나게 된다. 인종주의를 담은 해시태그를 K팝 검색어로 덧씌우며 재기발랄함을 뽐냈다. #WhiteLivesMatter를 단 패러디 영상이나 애니메이션도 수없이 등장하는 걸로 봐서는 K팝과 관련 없는 사람들도 해시태그를 가로채는 반(反)인종주의 전투에 동참한 것을 알 수 있다.

소셜미디어는 반인종주의 시위를 둘러싼 여론전이 펼쳐지는 무대다. 그래서 효율적으로 싸울 전략을 공유하기도 한다. 5월 마지막 주말에는 ‘건걸(gun girl)’ 케이틀린 베넷이라는 유튜버에 관한 이슈가 떴다. 그녀는 2018년 반자동 소총을 소지한 채 모교인 켄트주립대를 걸어 다녀 유명세를 얻었다. ‘건걸’이라는 별명은 그때 얻었다. 노이즈 마케팅을 즐기는 인물로 극우 음모론 사이트인 인포워(Infowar)에서 리포터로 활동한다. 그런데 베넷이 유튜브와 웹사이트에 올릴 콘텐츠를 위해 5월 마지막 주말 시위에 등장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녀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에 대한 아이디어들이 등장했는데 이때 제시된 전략 중 하나가 ‘디즈니 활용법’이었다.

한 K팝 팬 트위터 계정이 ‘불법시위 활동을 신고해달라’는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경찰의 공지를 공유하며 시위대 영상 대신 팬캠을 업로드할 것을 독려하고 있다. ⓒphoto @7soulsmap 트위터 캡처
한 K팝 팬 트위터 계정이 ‘불법시위 활동을 신고해달라’는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경찰의 공지를 공유하며 시위대 영상 대신 팬캠을 업로드할 것을 독려하고 있다. ⓒphoto @7soulsmap 트위터 캡처

“디즈니를 동원하자”는 재기발랄함

디즈니는 ‘귀가 까만 쥐를 그리면 디즈니가 찾아온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저작권에서는 악명이 높은 기업이다. 이 집요함을 소환하자는 아이디어가 호응을 얻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만약 이 여성 유튜버를 시위 현장에서 발견한다면 그녀를 따라다니며 디즈니 영화와 뮤지컬 등에서 나오는 사운드트랙을 틀면 된다. 디즈니의 음악이 들어간 장면이라면 단 한 컷이라도 이 극우 유튜버가 자신의 계정에 사용할 수 없을 거라는 방법은 이내 알음알음 퍼져나갔다.

소셜미디어는 행동주의의 양상을 변화시켜 왔다는 평가를 듣는다. #MeToo(미투)운동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때로는 ‘유행을 위한 행동’으로 폄하받을 때도 있다. 직접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냐는 물음표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기부’는 소극적이지만 중요한 실천이다. 유튜버들은 이 부분을 맡고 있다. 유명 유튜버들 중에 “직접 참가하지 못해 미안해요. 이번 콘텐츠 광고 수익은 전부 BLM 활동에 기부합니다”라고 공언하는 경우가 늘었다. 구독자수와 영상 조회수에 따라 광고비가 책정되는 유튜브의 수익 정책을 십분 활용한 것이다. 집에 머무는 시청자들은 동영상을 틀어놓는 것만으로 기부할 수 있게 됐다.

기술적인 지원도 뒤따르고 있다. 정부가 안면인식을 하겠다면 그걸 막겠다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에버레스트 피프킨은 이런 요구에 재빠르게 반응한 개발자인데 그는 ‘이미지 스크러버’라는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웹앱을 내놓았다. 트위터를 통해 공개한 사용법을 보면 사이트를 통해 업로드된 사진 속 얼굴 이미지는 모두 흐릿하게 만들 수 있고 사진 파일에 포함된 날짜나 시간과 같은 메타 데이터도 제거할 수 있다. 필수 요소들이 제거되면서 시위 참가자는 완벽한 익명성을 얻을 수 있다. 보안 메시징 앱 ‘시그널(Signal)’도 이런 요구에 호응해 ‘사진 흐림’ 기능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시그널 설립자인 말린 스파이크는 “거리의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었다. 2020년은 얼굴을 감추기 좋은 해다”라고 블로그에 글을 남겼다.

소셜미디어를 벗어나 직접 행동으로 나선 경우도 적지 않다. 미국 내에서는 이들을 ‘Z세대 운동가’라고 부른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10년 사이에 태어난 Z세대는 미국에서 가장 다양한 사회적 환경을 경험하고 있는 세대다. 지난 3월 퓨리서치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Z세대 중 직장인인 사람은 이미 두 번째 경기침체를 겪고 있다. 직장인이 아닌 사람은 전 세계적으로 구직난에 시달리거나 일자리를 잃는 비율이 이전 세대보다 높은 집단이다. 플로이드가 사망한 지 몇 시간 만에 만들어진 ‘프리덤 파이터 DC’에는 약 1만명의 트위터 팔로어, 2만명의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참여하고 있다. 이들이 소셜미디어 밖에서 처음 만난 건 지난 6월 3일 미 국회의사당 앞이었다. 약 1000여명이 함께한 연좌농성이 있던 날이었다.

영상을 시청·구독함으로써 ‘Black Lives Matter’ 캠페인을 후원하는 유튜브 스트리밍 채널. ⓒphoto 유튜브 Revive Music 캡처
영상을 시청·구독함으로써 ‘Black Lives Matter’ 캠페인을 후원하는 유튜브 스트리밍 채널. ⓒphoto 유튜브 Revive Music 캡처

“10~20명 예상, 전혀 다른 모습이 됐다”

이 조직의 대변인 격인 케리건 윌리엄스는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와 가진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10~20명이 모여 마치 친구를 사귀듯 시위를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며칠 만에 완전히 다른 모습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비록 오프라인에서 집회를 열고 있지만 온라인 속 소통과 조직화가 중심을 잡는다. 이들은 소셜미디어 계정을 사용해 앞으로 있을 이벤트와 업데이트된 정보 등을 전달해 자신들의 노력이 실질적인 개혁으로 이어지길 원하고 있다. 시위에서 체포된 사람들을 위해 법적 지원에 나서거나 11월에 있을 대선에 앞서 유권자 등록을 홍보하는 것도 좀 더 현실의 변화를 추동하기 위해서다.

시위가 번질수록 각자의 방식으로 인종주의를 반대하고 정부의 대응에 항의하는 움직임이 다양한 플랫폼에서 진행되고 있다. 자발적이고 리더가 없는 온라인 행동주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목표가 없는 건 아니다. 일관성이 없을수록, 그리고 분산돼 있을수록 더 다재다능한 방법들이 튀어나온다. 인스타그램에 검은색 이미지만을 올리자는 흑인 여성 두 명의 ‘블랙아웃 운동’ 제안이 검정색으로 가득 찬 2800만개의 게시물을 만들어낼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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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권 국제·IT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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