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과 지난해 11월 23일 오후(현지시각) G20(주요 20개국) 외교장관회의가 열린 일본 나고야 관광호텔에서 양자회담을 하기 위해 자리로 향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과 지난해 11월 23일 오후(현지시각) G20(주요 20개국) 외교장관회의가 열린 일본 나고야 관광호텔에서 양자회담을 하기 위해 자리로 향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얼마 전 ‘오랜만에’ 강경화 외교부 장관 관련 뉴스가 등장했다. 문재인 정부 이후 외무부 존재 자체가 의심스러워진 상태지만, 다주택 보유 각료가 아닌 외교 현장 뉴스로는 실로 오랜만인 듯하다. 장소는 독일이다. 글로벌 차원의 코로나19 확산 이후 6개월 만에 처음으로 행한 현지방문 외교다. 워낙 비밀이 많은 한국 외교부이기에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가장 큰 방문목적이 G7 확대안 관련 독일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덤으로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경선에 나선 한국 후보자에 대한 지지 요청도 방문목적 중 하나였다고 한다. 장기적 국익과는 무관한, 당장 눈앞의 이해에 관련한 내용들이다.

사실 독일에 G7 확대 관련 지지를 이끌어낸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귀를 의심했다. 지난 5월 말 독일은 트럼프의 미국 내 G7 개최에 불참하겠다고 공식선언한 나라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난리인데 미국까지 갈 여유도 환경도 아니라는 것이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불참 이유다. 트럼프는 ‘G7=전염병 극복 자랑 이벤트’로 만들 생각이었다. 다른 6개국 참가국 수반은 이벤트용 조연이라 볼 수 있다. 메르켈이 불참을 선언했을 때, 트럼프가 얼마나 화가 났을지 상상할 수 있다. 워싱턴 외교전문가들은 메르켈의 G7 불참 선언이 독일 주둔 미군 철수를 앞당긴 이유 중 하나로 보고 있다. 그런 배경을 가진 독일에 G7 확대 관련 한국 측 입장을 지지, 지원해달라고 달려간 것이다.

강경화 외교의 독일행 성과

독일은 한국을 ‘아시아 내 전략적 파트너(Strategic Partner in Asia)’라고 부른다. 글로벌 차원이 아닌, 아시아권 친구란 의미다. G7은 글로벌 차원의 문제다. 독일 외무성 게시판(www.auswaertiges-amt.de)에 실린 양국 회담 결과를 보자. ‘코로나19 협력, 보다 확산된 다자간체제(Greater Multilateralism) 협력, 올해 출발한 핵무기 철폐에 관한 스톡홀름 이니셔티브(Stockholm Initiative) 강화에 주력’ 등 3가지로 압축된다. 다자간 협의와 핵무기 철폐는 독일 외교정책의 근간이다. 양자 간 협의에 주목하고, 중거리 핵무기 재개발에 나서는 트럼프 외교에 정면으로 맞서는 독일식 독립노선이다. 번지수를 잘못 찾은 G7 문제를 논외로 친다 쳐도, 한국은 미국과 각을 세우고 있는 독일의 독립노선에 동조한 격이 된다.

21세기 외교의 특징은 대부분 투명하게 진행된다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 비밀·이면 외교가 설 자리는 거의 없다. ‘이 정도 얘기를 나누러 전염병 확산 이래 첫 방문지로 베를린에 갔을까’라는 생각이 독일 외무성 게시판을 본 첫 느낌이다. 원격 화상 줌(zoom)으로 통해도 충분한, ‘외교적 수사와 원칙적 선언’에 불과한 내용이 전부다. WTO 사무총장 선거 문제는 논외로 치더라도, 한국이 기대했던 G7 확대 얘기는 독일 외무성의 관심권 내에 들지 못했다. 회담 직후 전해진 외신을 보자. ‘외무성 장관 헤이코 마스(Heiko Maas)는 미국에서 열릴 G7 그룹에의 한국 참가를 선호한다(He was in favor of South Korea’s participation in a possible G7 summit in the United States)’는 내용의 원문을 보면서 주목한 부분은 ‘favor, participation, in the United States’란 말이다. 선호를 의미하는 ‘favor’는 ‘지지(support)’ ‘동의(agree)’와 한참 떨어진, 좋다 나쁘다 수준의 감정적 의미를 담고 있다. 선호가 반드시 지지나 동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참여·참가로 번역될 ‘participation’은 책임도 의무도 없이, 주최 측이 제공한 공간에 가서 자리를 지키는 수준의 의미로 통용된다. ‘in the United States’는 미래에도 계속될 모든 G7이 아니라, 올해에 치러질 ‘미국 회의에 한해서’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역시 외교대국 독일답다. 주도면밀하게 만들어진 ‘책임 제로 제3자’ 입장문에 해당한다. 6개월 만에 이뤄진 강 장관의 현지방문을 통해 얻어낸 독일 측 반응이란 것이 이 정도다. 일부 언론을 통해 마치 독일이 한국의 G7 확대 회원국 지지를 표한 것처럼 보도되고 있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너무나 초라하고 한심하다.

설상가상으로 마스 장관의 발언이 외신을 타던 지난 8월 10일, 백악관발 G7 관련 뉴스 하나가 터져나왔다. “대통령 선거 이후 G7을 열고 싶다. 러시아도 초청하고 싶다.” 트럼프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한 G7 스케줄 일정표다. 6월 초에 말했던, 한국·인도·호주·러시아를 초청해 G7을 넘어선 G11이나 G12로 가겠다는 식의 발언은 ‘전혀’ 없었다. 당연히 한국 초청에 관한 얘기도 트럼프는 언급하지 않았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라고나 할까? 독일과 미국 양쪽 모두 무관심인데 혼자서 흥분해 떠든, ‘짝사랑 외교’ 정도로 느껴진다.

모테기 장관이 영국에 가서 한 일

공교롭게도 강 장관이 독일을 방문하기 5일 전인 8월 5일, 일본 외무성 장관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도 영국을 방문했다. 강 장관과 마찬가지로, 글로벌 코로나19 확산 이후 6개월 만에 이뤄진 일본 각료의 첫 외국 방문이다. 양국 무역 확대를 위한 ‘경제 파트너십’이 방문의 주된 목적이다. 영국은 2020년 말, EU로부터 완전탈퇴할 예정이다. 새로운 무역룰을 필요로 한다. 일본이 제일 먼저 달려가 2021년부터 시행될 영국과의 무역협정 논의에 들어갔다. 경제 파트너십 결론은 EU에 준하는 관세시행과, 2026년 이후 일본제 자동차의 수입관세 폐지다. 모테기 장관은 “두 나라 모두 합의가 된 상태로, 각론을 첨가해 8월 말까지 전부 끝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필자가 모테기 장관 영국 방문을 보면서 주목한 부분은 두 가지다. 첫째, 6개월 만에 이뤄진 일본 각료의 첫 번째 방문국이 ‘영국’이란 사실이다. 둘째, 방문 이유가 경제 파트너십이란 ‘경제적’ 문제에 관한 부분이란 점이다. G7 확대와 WTO 사무총장 선거라는 ‘정치적’ 목적하에 독일을 방문한 한국과 너무도 비교되는 행적이다. 2020년 여름 모테기 장관의 영국 방문을 보면 19세기 말 이뤄진 일본의 외교사가 떠오른다. 정확히 말해 1894년 7월 16일 조인된, 영·일통상항해조약(英日通商航海條約)이 주인공이다. 19세기 중엽 이후 막부(幕府)정권에 불어닥친 갖가지 불평등조약의 첫 번째 개정판이 126년 전 행해진 영·일조약이다. 평등한 무역협정은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직후 일본의 숙원사업이었다. 조약국 쌍방에 평등하게 적용되는 관세와 치외법권 문제가 개정판 무역협정의 핵심이다. 영·일조약을 기점으로 곧이어 서방 다른 나라와의 평등 무역협정이 한순간에 단행된다. 19세기 말 영국은 21세기 미국보다 더한 강대국이었다. 영국이 일본을 수용하는 판에 다른 나라들은 전부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19세기 말 일본 역사가 한국과 무슨 관계냐고 되물을지 모르겠다. 일본군의 한반도 출병일이 1894년 7월 25일이란 점에 주목하기 바란다. 동학 문제와 관련해 청의 한반도 출병에 맞서, 일본군이 한반도에 상륙한 날은 영·일조약 체결 9일 뒤다. 일본군 출병 이후 청과의 전쟁이 시작된다. 중국은 100전100패 끝에 시모노세키조약을 통해 배상금과 대만을 일본에 바친다. 1894년 영·일조약은 아시아에서의 일본의 위상을 확인해준 증거다. ‘영국이 평등하게 대하는 아시아의 강국’이란 보험을 확보한 뒤, 마음놓고 한반도 출병에 나섰고 중국과의 전쟁도 벌였다.

모테기 장관의 영국행에 숨은 의미

모테기 장관의 영국 방문을 1894년 일본군 한반도 출병과 연결한다는 것이 황당하게 느껴질 듯하다. 영국의 국제적 위상도 떨어졌고, 한국과 중국의 국력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126년 전에 흐르던 국제 정세는 지금까지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키워드는 21세기 일본의 군사·외교·안보 분야의 염원 중 하나인 ‘파이브아이스(Five Eyes)’다. 한국에도 간간이 소개됐지만, 앵글로색슨계가 주도하는 글로벌 정보통합 분석체계가 파이브아이스다. 2차 세계대전 중 이뤄진 암호해독 협력체제에 기초한 조직으로, 21세기 들어서는 인공위성, 인터넷, 디지털을 활용한 정보가 주류다. 현재 미국·영국·뉴질랜드·호주·캐나다 5개 나라가 회원국으로, 프랑스·독일 심지어 이스라엘의 접근조차도 허용하지 않는 폐쇄적 정보 협력체계다. 한국에서는 음모론에나 등장할 듯한 ‘베일에 가려진 정보체계’ 정도로 통하지만, 일본은 일찍부터 파이브아이스에 주목해온 나라다. 정보력 부재가 2차 세계대전 패전의 이유 중 하나라 믿기 때문이다. 틈만 나면 참가할 의향을 앵글로색슨계 다섯 나라에 전해왔다.

파이브아이스는 지난 8월 초 모테기 장관의 방문 기간 중 화제가 된 문제다. 파이브아이스+일본, 즉 식스아이스(Six Eyes) 구상이 논의됐기 때문이다. 모테기 장관 방문 2주 전인 7월 21일 열린, 방위성 장관 고노 다로(河野太郞)와 영국 외교안보위원회 위원단과의 화상회의가 출발점이다. 영국 측 대표로 참석한 하원 외교위원회 위원장 톰 타젠다트(Tom Tugendhat)는 화상회의의 대화 일부를 트위터에 올렸다. 일본을 포함한 식스아이스 구상을 고노 장관에게 제의하자, “환영한다”라는 답이 돌아왔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일본이 제안해서 영국이 “환영한다”고 말한 것이 아닌, 영국이 제안해서 일본의 승인을 받아낸 격이다. 곧이어 일본 외교안보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난리가 났다. 2차 세계대전 전승국의 상징이던 파이브아이스가 마침내 일본에 열린 것이다. 고노 장관의 영국 방문이 가까운 시일 내에 이뤄질 것이란 보도도 흘러나온다. 줌을 통해 만난 일본인 친구는 “일본을 포함한 식스아이스 구상은, 최근 철회된 이지스 어쇼어 도입보다 100배, 1000배 더 중요한 동아시아 안보상의 게임체인저”라고 단언한다.

귀에 익은 사람도 많겠지만, 첩보영화의 필수요소로 등장하는 글로벌 차원의 도·감청 체계로 에셜론(Echelon)이란 것이 있다. CIA(미 중앙정보부)에서 컴퓨터 전문가로 일하다 2013년 에셜론의 가공할 능력을 폭로한 뒤 러시아에 망명한 에드워드 스노든(Edward Snowden)이란 인물도 기억에 새로울 것이다. 1983년생 스노든은 “전화, 컴퓨터, 인터넷, 케이블을 대상으로 한 개인, 기업, 국가에 관한 모든 정보가 아무런 제약 없이 에셜론 시스템에 축적된다”고 폭로했다. 그토록 엄청난 정보망이 에셜론이라고 하지만, 파이브아이스의 정보취득 수단 중 하나에 불과하다.

‘식스아이스’와 ‘지소미아’

그렇다면 앵글로색슨계에게만 허용됐던 파이브아이스가 일본에까지 확장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의 줄기찬 구애 노력도 큰 몫을 했겠지만, 크게 보면 미·중 간 디커플링(Decoupling)이 가장 큰 배경에 있다. 유럽·아시아·오세아니아·아메리카 대륙이 중국 봉쇄 정보망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일본이 아시아 대표주자에 오른 것이다. 항상 강조하지만, 미·중 디커플링은 막말 대통령 트럼프의 일시적 화풀이 정책이 아니다. 이미 미국의 정치·경제·외교·사회·문화 전방위에 걸쳐 굳어진, 국시(國是)에 해당한다. 1930년대 일본 군국주의가 만주 침략에 나설 때의 상황과 비슷하다. 당시 일본은 미국이 적당한 선에서 평화를 제의할 것으로 예상했다. 진주만 기습공격까지 행했지만, 미국이 휴전에 나설 것이라 보고 행한 ‘겁 주기 힘 자랑’에 불과했다. 장기전은 염두에 없었다. 그러나 미국은 만주는 물론 태평양전쟁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했다. 어중간한 타협은 없다. 원자폭탄까지 사용한 끝에 결국 무조건 항복을 받아냈다. 미·중 디커플링 정책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미국이 보여준 강인한 결의의 재판(再版)이다. 일본을 굴복시킨 군사정보 자산마저 과거의 적 일본에 개방하면서 중국 압박에 나서고 있다. 21세기 들어 파이브아이스의 영역은 과거와 많이 달라지고 있다. 기본은 군사·외교 관련 정보공유지만, 전방위 동일한 ‘가치체계’로 나아가자는 것이 ‘파이브아이스+일본’ 구상의 공통분모가 될 전망이다. 예를 들어 디지털 시큐어리티, 우주 개발, 희소자원 공동 개발, 바이러스 공동 대처, 디지털머니 같은 것도 식스아이스의 새로운 과제다. 흥미롭게도 이 같은 첨단 영역을 주도할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가까운 시일 내 식스아이스 구상과 관련한 갖가지 뉴스가 일본을 중심으로 흘러나올 것이다. 공교롭게도 한국의 지소미아 연장 문제도 눈앞에 나타날 것이다. 식스아이스 참가를 눈앞에 둔 일본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독일까지 가서 ‘책임 제로 제3자’ 입장만 듣고 온 한국과, 영국이 앞장서 지지하는 식스아이스 신세계를 눈앞에 둔 일본. 미·중 디커플링 시대를 대하는 두 나라의 외교적 실력과 현실인식의 간격이 너무나 크고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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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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