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통상장관들이 지난해 12월 회담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photo 중국 상무부
한·중·일 통상장관들이 지난해 12월 회담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photo 중국 상무부

‘수망상조(守望相助)’는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 겸 국무위원이 지난 11월 26일 방문해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의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언급한 중국의 고사성어다. ‘맹자(孟子)’의 ‘등문공(滕文公)’ 편에 나오는 수망상조는 ‘이웃 마을끼리는 외적의 침입에 맞서 함께 (땅을) 지키며, 서로 망을 봐주고, 돕는다’는 뜻이다. 왕 부장은 “코로나19 사태 때 중·한 양국 국민은 수망상조의 정신에 따라 서로 도움을 줬다”라며 “중·한 양국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라고 강조했다.

왕 부장은 이에 앞서 11월 24일 도쿄를 방문해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상과의 중·일 외교장관 회담에서도 ‘일의대수(一衣帶水)’라는 고사성어로 양국 관계를 표현했다. 일의대수는 북조(北朝) 최후의 왕조인 북주를 물려받은 수(隋)나라 문제(文帝)가 남조(南朝) 최후의 나라인 진(陳)나라를 향해 ‘옷의 띠만큼 작은 시냇물’(양쯔강)을 사이에 둔 이웃이라고 강조하면서 쓴 말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으로 한국과 일본을 연쇄 방문한 왕 부장이 양국 모두에 우호적인 제스처를 보인 것은 중국의 ‘심모원려(深謀遠慮)’에서 나온 전략의 일환이다.

그동안 중국은 코로나19의 최초 발원국이라는 오명 아래 부실한 초동대응과 정보 은폐 및 확산 방치 등으로 전 세계에 엄청난 피해를 초래함으로써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아왔다. 실제로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의 여론조사 결과(10월 6일 자)에 따르면 미국·한국·일본·독일·프랑스·캐나다·호주 등 14개 주요 국가에서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조사대상국들의 여론조사 평균치를 보면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73%로 긍정적 평가(24%)를 압도했다. 그 이유는 코로나19에 대한 중국의 책임과 대응 때문이다. 중국의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61%로, ‘잘 대응했다’는 응답(37%)을 크게 앞섰다.

한국·일본 연쇄 방문한 왕이의 노림수

중국은 또 홍콩과 신장웨이우얼 및 티베트, 남중국해와 대만, 인도와의 국경분쟁 등 정치·인권·지정학적 문제에서 자국 국익만을 우선시해왔다. 중국은 호주와 캐나다에 대한 경제보복을 자행하는가 하면 일대일로 프로젝트 추진으로 아프리카 등 저개발 국가들을 ‘부채의 덫’에 빠뜨렸다. 이 때문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대해서도 부정적 평가가 상당히 높다. 시 주석이 ‘세계적인 문제에 대해 올바르게 대응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응답자는 19%에 그쳤고, 부정적 인식이 78%를 차지했다.

게다가 코로나19 방역에 성공했다고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역시 심각한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경제 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중국 정부는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면서 경제상황이 정상화하고 있기 때문에 내년 경제성장률이 5% 이상을 기록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상당한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 분명하다.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지난 10월 26~29일 열린 제19기 5차 전체회의(5중전회)에서 14차 5개년 계획(14·5규획, 2021~2025년)의 연평균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제시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은 12·5규획에선 7%, 13·5규획에선 ‘6.5% 이상’을 목표치로 내놓았었다. 중국 공산당 중앙위는 그 이유에 대해 “세계는 100년 만의 대격변을 겪고 있다”라면서 “국제 환경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이 뚜렷이 커졌다”라고 밝혔지만, 미국의 경제 제재와 코로나19라는 두 가지 난관을 헤쳐 나가는 게 쉽지 않기 때문에 목표치를 제시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경제회복을 위해 ‘쌍순환’과 ‘기술자립’을 내건 것도 이 때문이다. 쌍순환은 대외적으로 수출과 개혁·개방을 지속하면서 대내적으로는 내수를 키우고 활성화시켜 국내시장과 국제시장이 유기적으로 돌아가게 만들려는 전략을 말한다. 기술자립은 미국이 반도체를 비롯해 최첨단 분야에서 강력한 제재조치를 취하고 있는 만큼 이를 돌파하기 위해 연구·개발(R&D) 강화와 인재육성 등을 통해 독자적인 기술력을 높이겠다는 전략을 의미한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오른쪽)이 부통령 때인 2011년 시진핑 부주석과 중국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photo 신화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오른쪽)이 부통령 때인 2011년 시진핑 부주석과 중국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photo 신화

CPTPP 가입 고려하겠다는 시진핑

시 주석이 지난 11월 20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화상 연설을 통해 “중국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적극 고려하겠다”라고 밝힌 것도 쌍순환과 기술자립 전략에 따른 것이다. CPTPP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과거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내던 시절 깊게 관여했던 아시아·태평양 지역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당시에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으로 불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2017년 2월 TPP에서 탈퇴한 바 있다. 미국의 TPP 탈퇴 이후 일본은 호주 등 남은 11개국과 함께 CPTPP를 체결했다. 바이든 당선인은 앞으로 CPTPP를 중심으로 글로벌 가치사슬을 재편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가 출범 이후 코로나19 방역을 비롯해 산적한 국내 문제로 CPTPP 가입 등 다자 경제 질서에 조속하게 나서긴 쉽지 않은 만큼, 중국은 그 틈을 파고들어 ‘선제공격’에 나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시 주석이 자국의 포위망이라고 볼 수 있는 CPTPP에 가입하겠다는 것은 아·태 경제협력의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의도라고 분석할 수 있다. 말 그대로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굴에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시 주석의 속셈은 자국 주도로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아세안 등 15개국이 지난 11월 15일 세계 최대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체결한 만큼 미국보다 앞서 CPTPP에 가입할 경우 아·태 지역의 통상질서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보다 앞서 CPTPP 가입하려는 속셈

시 주석의 또 다른 노림수는 CPTPP에 가입할 경우 기술자립에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왕후이야오 중국 세계화센터 주임은 “CPTPP는 RCEP와는 달리 첨단기술과 지식재산권, 디지털 경제 같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라면서 “CPTPP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FTA로 중국이 가입에 관심을 두는 것은 개방 심화에 대한 의지를 나타낸다”라고 밝혔다.

특히 중국은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한국과 일본에 경제협력을 더욱 강화하자는 메시지를 보내는 중이다. 중국의 의도는 아·태 지역에서 핵심적 경제 강국인 한국과 일본과의 경제협력을 강화해 미·중 대결 국면에서 양국을 중국 편에 설 수밖에 없도록 만들겠다는 포석이다. 실제로 왕 부장은 미·중이 첨예하게 대결하는 민감한 분야에서 한국과의 협력 방안을 제시했다. 그 내용을 보면 한·중 및 한·중·일 FTA 조속 추진, 일대일로와 연계 일환으로 제3국 시장 진출, 신흥·첨단산업 분야의 협력 등이다. 왕 부장은 또 일본에서도 한·중·일 FTA 조속 추진 및 지역협력 프로세스 강화, 다자무역체제의 공동 수호와 강화 등을 제시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 11월 27일 자에서 “왕 부장의 일본·한국 방문은 한·미·일 연대에 쐐기를 박는 것이 목적”이라며 “바이든 미국 차기 정부가 출범하기 전에 경제 면에서 연계가 깊은 일본과 한국을 끌어당겨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했다.

가장 주목할 점은 중국이 트럼프 정부와 마찬가지로 자국 때리기 전략을 추진할 바이든 정부에 맞서 한·중·일 FTA를 적극 추진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한·중·일이 FTA를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즈강 헤이룽장성 동북아연구소장은 “중·일·한 FTA와 RCEP를 접목해 전 세계 수준 높은 개방의 새로운 모델로 삼아야 한다”면서 “중·일·한 FTA는 RCEP를 뒷받침하는 저수지 역할을 함으로써 RCEP의 다자간 협력 외연을 동북아 지역으로 넓히고, RCEP 이행의 새로운 실험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웨이젠궈 전 상무부 부부장(차관)도 “RCEP 체결 기세를 몰아 질적 수준이 더 높은 중·일·한 FTA를 체결하는 것은 3국 경제 협력에 중요한 상호 촉진과 지지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1월 26일 강경화 외교장관이 방한한 왕이 중국 외교부장(왼쪽)과 팔꿈치를 맞대면서 인사하고 있다. ⓒphoto 외교부
지난 11월 26일 강경화 외교장관이 방한한 왕이 중국 외교부장(왼쪽)과 팔꿈치를 맞대면서 인사하고 있다. ⓒphoto 외교부

한·중·일 FTA에 미국 개입할 명분 약해

한·중·일 FTA는 2012년 5월 중국 베이징에서 3국 정상 간 개시 합의를 한 후 2013년 3월 1차 협상을 시작했다. 하지만 한·중·일 FTA 협상은 상품과 서비스, 투자 분야 등을 둘러싼 3국 간 입장차로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한·중·일 FTA를 강력하게 추진하려는 이유는 무엇보다 바이든 정부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미·일 3각 동맹 복원에 나설 것을 막으려는 의도 때문이다.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지역 협력질서 강화는 미·중 대결이 격화된 국제사회에서 자국의 공간을 넓힐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에 한·중·일 FTA에 적극 나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자주의 무역체제를 대표하는 세계무역기구(WTO)는 미·중 간 패권 다툼의 장이지만 지역 협력체제인 한·중·일 FTA는 미국이 개입할 명분이 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이든 정부 입장에선 다자무역주의 복원을 선언했지만, 보호무역주의를 바라는 러스트벨트 등 미국의 지역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 만큼 다자 무역협정 복귀에는 최소 1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점을 간파하고 있는 중국은 선제적으로 한·중·일 FTA 체결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또 한국과 일본이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제회복을 위해 자국 시장에 대한 진출 확대를 기대하고 있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실제로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일본의 최대 교역 상대국인 중국과의 경제 협력을 강화한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국 압박 정책에 보조를 맞춰 화웨이 퇴출 등에 참여했지만, 중국과의 경제 협력은 일본 경제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지난 11월 30일부터 중국 정부와 함께 사업 목적의 단기 입국자에 대해 2주간 격리를 면제하는 등 ‘비즈니스 트랙’ 조치를 실시하기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수출입 모두에서 한국의 최대 무역상대국이다. 게다가 친중 노선을 보여온 문재인 정부는 중국과의 경제 협력에 적극 나서왔다. 하지만 중국의 노림수도 있다. 중국은 무엇보다 한·일 양국으로부터 미국이 견제하고 있는 반도체와 장비 등 첨단 기술을 도입해 자국의 기술자립을 향상하려는 속셈을 갖고 있다. 특히 한국의 입장에선 중국 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높아지면 자칫 경제적으로 중국에 종속될 수도 있다. 한국의 중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사드 보복처럼 한국은 이에 대응할 카드가 없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가치사슬 구축에 나서는 바이든 정부

바이든 정부는 중국의 선제공격에 맞서 중국을 배제한 ‘글로벌 가치사슬(GVC·공급망)’ 구축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정부는 이를 위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앞세우면서 중국을 포위할 수 있는 다자무역체제를 만들 것이 분명하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바이든 정부가 가장 먼저 가입을 고려하고 있는 다자무역체제는 CPTPP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지난해 7월 미국 외교협회(CFR)에서 연설을 통해 “미국의 TPP 탈퇴는 중국을 운전석에 앉힌 것”이라면서 “아시아와 유럽의 친구들이 우리와 함께 21세기 무역 규칙을 만들고, 중국에 강하게 맞서도록 결집하는 것이 나의 주안점”이라고 밝힌 바 있다. 때문에 미국의 CPTPP 가입은 시간문제라고 볼 수 있다. 바이든 대선캠프 자문위원이 다수 포진한 미국 싱크탱크인 신미국안보센터(CNAS)는 최근 발간한 한·미 동맹 전략 보고서에서 “한국이 RCEP를 통해 중국의 무역궤도에 더욱 빠지지 않도록 미국은 한국이 함께 CPTPP에 참여하는 데 관여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브루킹스연구소도 “CPTPP는 중국에 협정의 규칙에 순응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역내 최대 무역협정에서 제외된다고 압박하는 가장 이상적인 수단”이라면서 “미국의 CPTPP 가입은 아시아 최대 우방국인 일본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한국 등 아·태 국가들을 회원국으로 포함시켜 이 지역의 동맹 블록을 확장할 수도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 연구소는 또 “CPTPP는 신뢰할 수 있는 공급망 확보를 위한 효과적인 플랫폼을 제공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바이든 정부는 한국이 친중국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한·미 동맹을 현대화하는 방안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CNAS는 “미국이 한·미동맹을 활용해 아시아에서의 동맹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기술 사용에 있어서의 민주주의적인 규범과 원칙을 추진하며 민주주의적 경제 주권과 선택의 자유를 포괄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라고 바이든 정부에 제안했다. CNAS는 또 “한국과 미국이 재생에너지 개발, 우주 개발, 5G 통신, 스마트시티, 인공지능(AI), 사이버보안 등 신기술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라고 제시했다. 말 그대로 한·미 동맹을 군사 분야에서 기술 분야로 확대해야 한다는 의미다. 미국이 한국과 기술동맹 관계를 맺는다면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망설이고 있는 한국에 돌파구를 여는 단초가 될 수 있다.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도 중국은 기술 분야에서 경쟁자이자 협력 대상이 아니다. 한국이 중국에 경제적으로 종속되지 않으려면 기술 분야에서 중국보다 훨씬 앞서야 한다. 때문에 한국은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과 기술동맹을 맺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국은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국가이다. 아무튼 한·중·일 FTA는 단기적으로 한국에 이득이 될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론 손해가 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꿀이 발려 있는 ‘독과(毒果)’를 삼켜서는 안 될 것이다.

키워드

#이슈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