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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7호] 2021.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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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에스토니아의 질주 뒤에 고려인 3세 시장이 있다

탈린= 이보영  자유기고가 

▲ 미하일 콜바트 탈린 시장이 탈린 구도심을 내려다보고 있다. 콜바트 시장은 고려인 3세다. photo Tallinn City web VisitTallinn
요즘 북유럽의 신흥 강소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에스토니아에 따라붙는 별명들은 한둘이 아니다. ‘발트해의 호랑이’ 외에 ‘북유럽의 실리콘밸리’ ‘e-에스토니아’ 등으로도 불린다. 인구 130만명에 국토가 남한의 절반밖에 안 되는 이 작은 나라가 이룬 성과는 놀랍다. 일례로1991년 2000달러밖에 안되던 에스토니아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지금 2만3000달러(2020년 기준)를 넘어 무려 10배 이상 증가했다.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지 불과 30년 만에 이 같은 성장을 해낸 바탕에는 1990년대부터 에스토니아 정부가 지속적으로 추구해온 ‘디지털 사회 구현을 통한 국가 경쟁력 제고’ 정책이 있다. 독립 후 변변한 경제 인프라와 천연자원도 없고 심지어 관공서를 지을 돈도 없었던 그때, 평균연령 35세의 젊은 정치인들로 구성된 에스토니아 정부는 무에서 유를 만들 수 있는 디지털 세계에 자의 반 타의 반 눈을 돌린다.
   
   이렇게 시작된 젊은 정치인들의 혁신적 디지털 개혁은 지금의 에스토니아를 만든 초석이 됐다. 현재도 에스토니아를 이끄는 대통령(51)과 총리(44) 등 대부분의 정치인은 젊은 세대다. 여성 대통령인 케르스티 칼률라이드는 1969년생이고, 역시 여성인 카야 칼라스 총리는 1977년생이다. 에스토니아는 대통령과 총리 모두 여성인 세계 유일의 나라이기도 하다.
   
   
▲ 콜바트 시장이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찍은 어린 시절 모습. 아버지는 에스토니아인이고 어머니는 카자흐스탄이 고향인 고려인 2세다. photo Tallinn City web VisitTallinn

   한·에스토니아 수교 30년 기념행사
   
   지난 9월 1일 탈린에서 에스토니아를 이끄는 또 다른 젊은 정치인 한 명을 직접 만날 기회가 있었다. 주핀란드(에스토니아 겸임) 한국대사관이 한국·에스토니아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한국 전통춤 공연장에서 그 정치인은 축사를 했다. 바로 2019년부터 탈린시를 이끌고 있는 미하일 콜바트(Mihhail Kolvart·43) 시장이다.
   
   축사에서 그는 “에스토니아와 한국은 여러 면에서 공통점이 많습니다”라며 그 예를 나열하다가 “서로 얼굴까지 비슷합니다”라는 재미있는 말로 축사의 끝을 맺었다. 그 농담은 자신을 소재로 한 일종의 ‘아재 개그’였던 것 같다. 콜바트 시장 자신이 고려인 3세이기 때문이다.
   
   탈린에 러시아인이 많이 사는 것은 알았지만, 고려인의 존재는 그동안 잘 알지 못했었다. 고려인은 중앙아시아와 연해주뿐만 아니라 발트3국에도 작은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다고 한다. 에스토니아 전역에 모두 200명 정도의 고려인이 살고 있는데 콜바트 시장도 이 중 한 명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200명의 고려인 중 무려 150명이나 이날 공연을 보러 왔었다고 한다. 한국과 한국 문화에 대한 이들의 관심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나중에 콜바트 시장과 길게 얘기를 나눌 기회를 얻게 됐다. 시장은 비교적 젊은 나이지만 정치에 입문한 지 20년이 넘은 생각보다 노련한 정치인이었다. 20대 초반, 구의원으로 시작하여 시의원, 국회의원, 탈린 부시장과 시의회장까지 요직을 두루 거친 후 탈린 시장에까지 올랐다. 19세에 이미 에스토니아 태권도협회장을 맡았던 특이한 경력도 가지고 있다.
   
   태권도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아버지를 통해서였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에스토니아에 처음 태권도를 보급한 사람이다. 그래서 아버지가 고려인 2세 태권도 사범일 것으로 추측했는데 의외로 어머니가 고려인 2세였다. 에스토니아인 아버지는 어머니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어머니의 뿌리인 한국과 한국 문화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고 한다. 원래 직업은 변호사와 교수지만, 에스토니아 태권도협회 1대 회장을 맡으며 태권도 보급에 많은 힘을 썼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 고향은 카자흐스탄. 외조부모는 일제강점기 때 한국(남한)에서 연해주로 넘어왔다가 1937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로 이주당했다. 당시 중일전쟁이 터지며 스탈린은 고려인이 일본인 스파이가 될 소지가 크다며 이들을 멀리 떨어진 중앙아시아로 격리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이렇게 고려인 18만명은 행선지도 모른 채 가축용 화물열차에 실려 끔찍한 한 달간의 여정을 시작했다. 먼 길에 병자가 늘어나 열차가 잠시 정차할 때면 시체가 내던져지곤 했다고 한다. 이렇게 6000㎞를 달려 도착한 곳은 사막에 가까운 황무지 땅이었다. 이런 땅에서 고려인들은 불굴의 의지를 발휘하며 강에서 물을 끌어들여 황무지를 논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특이하게도 고려인은 어디에 이주하든 학교를 먼저 세웠다고 한다. 지금도 고려인 중에 교육가, 법률가, 의사, 엔지니어 등 전문직 종사자가 많은 것은 이렇게 교육에 ‘올인’한 결과다.
   
   
▲ 2014년 작고한 어머니 리디아 콜바트와 함께 한 행사장에 들어서는 콜바트 시장.

   할아버지는 고아 교육 헌신
   
   콜바트 시장의 외할아버지도 교육자로 일생을 보냈다고 한다. 부모를 잃어버린 아이들을 위해 고아원을 세워 고아들 교육에 헌신했으며, 그 결과 자신의 딸도 소련 최고의 모스크바대학에 보낼 수 있었다. 콜바트 시장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대학에서 캠퍼스 커플로 만나서 결혼했다. 그 후 카자흐스탄에 잠시 살다 콜바트 시장이 3살이 되던 해, 아버지의 고향인 에스토니아로 이주했다. 어머니의 직업도 할아버지를 이어받아 교육자였다. 대학에서 러시아 문학을 가르쳤고 대외적 활동도 많이 했다. 에스토니아 고려인협회 일도 맡아 했고, 2014년 돌아가시기 전까지 소수민족연합 회장직을 맡아 소수민족의 권익을 위해 앞장서기도 했다.
   
   콜바트 시장은 어머니로부터 이런 적극적 성격을 물려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어머니처럼 그도 일에 적극적이며 보직도 많이 맡고 있다. 현재 시장 일 외에 에스토니아 올림픽위원회 위원과 에스토니아 태권도협회 회장도 겸하고 있다. 소수민족에 대한 관심도 모전자전인 것 같다. 그가 시정에서 특히 신경 쓰는 부분도 소수민족에 대한 지원이다.
   
   시장에 당선된 것도 탈린에 사는 소수민족들의 지지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탈린에 사는 많은 러시아인(전체 탈린 인구의 35%에 해당)에게 인기가 높다. 러시아인의 피는 흐르지 않지만,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그가 그들을 위해 힘쓰고 있기 때문이다. 소수민족 지원 외에 그는 교육과 청소년 정책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지난 100년 동안 소수민족 출신으로 탈린 시장이 된 사람은 콜바트 시장이 처음이다. 그는 에스토니아-러시아-한국-중국(외증조부모 중 한 분이 중국인)을 어우르는 그의 다문화적 출신 배경을 큰 장점으로 생각한다. 덕분에 시야가 넓어지고 ‘다름’을 포용할 줄 아는 관용도 배웠다고 한다. 그는 외국인 유입을 막자는 에스토니아 극우정당의 주장에 반대하며 오히려 지금보다 외국인에게 더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거에 태권도선수, 변호사 등 다양한 직업을 가졌던 그는 고등학교에서 역사 교사로도 일했었다. 그런 그가 역사적으로 탈린 역시 국제무역 중심지로서 다문화·다민족 도시였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다른 문화를 밀어내지 않고 서로 포용할 때 두 문화는 상생할 수 있고 더 풍요로운 문화가 그 속에서 싹튼다고 믿는다.
   
   탈린시에 대한 그의 애정은 깊어 보인다. 2011년과 2019년, 국회의원직에 당선됐을 때 탈린시의 보직을 맡기 위해 국회의원직을 두 번이나 사직했다. 부시장과 시장직을 거쳐 10년간 열심히 달려온 그가 꿈꾸는 탈린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콜바트 시장의 한국 사랑
   
   그가 꿈꾸는 10년 뒤 탈린은 유럽 수도 중 가장 환경친화적이고 녹음이 우거진 곳이 되는 것이다. 그가 10년 뒤로 본 미래가 생각보다 일찍 실현된 것 같다. 지난 9월 9일 탈린은 ‘유럽에서 가장 환경친화적인 수도(European Green Capital for 2023)’로 선정됐다. 소비에트 시대 중공업 공장 운영으로 심했던 공해를 다 없앴으며, 녹색 공원 지역을 넓혔고, 무엇보다 모든 시민에게 대중교통을 무료로 제공한 것이 선정 이유로 밝혀졌다.
   
   콜바트 시장과 나눈 대화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마지막 질문에 대한 마지막 답변이다.
   
   “최근 한국이 문화 선진국으로 약진하고 국력이 신장되면서 혹시 한국인이라는 것에 더 큰 자부심을 느끼지 않나요?”
   
   그는 잠시 숨을 고르고 너털웃음을 한 번 보인 후,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간 답을 주었다.
   
   “원래 고려인은 자기 뿌리에 대한 자부심이 지나칠 정도로 강한 사람들입니다. 한국의 상황과 상관없이 우리는 언제나 한국인으로서 큰 자부심을 품고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내 질문을 부끄러운 우문(愚問)으로 만들어준 지극히 현명한 답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사생활도 조금 궁금해졌다.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혼자가 된 에스토니아인 아버지(79)를 한국식으로 모시고 산다고 했다. 그의 이런 한국식 부모 봉양법은 에스토니아에서도 큰 화제가 됐던 모양이다. 공직생활이 바쁘지만 태권도 역시 취미로 계속하고 있다. 그는 검은 띠, 5단의 실력자다.
   
   개인적 꿈을 묻자 또 의외의 답변이 나왔다. 에스토니아 태권도가 아직 한 번도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적이 없는데 메달을 따는 것이 개인적 꿈이라고 했다. 겉에는 양복을 입고 있지만 속은 여전히 태권도복을 입은 정통 태권도맨이었다. 그가 태권도에서 배웠다는 끈기와 절제, 승리하는 법이 그의 정치에서 앞으로 어떻게 보여질지 자못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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