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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8호] 2021.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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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통신]영국서 ‘임진강전투 70주년’ 행사 열리던 날

런던= 권석하  재영칼럼니스트·‘두터운 유럽’의 저자 johankwon@gmail.com

▲ 지난 9월 26일 영국 중서부 글로스터시 글로스터대성당에서 열린 ‘임진강전투 70주년 기념 추모예배’가 끝난 후 예비역 군인들과 학군단원, 한인 교포들이 시가행진을 벌이고 있다. photo 권석하
‘우리가 그들을 잊지 않는 한 그들은 아직 죽지 않았다.(As long as we remember them, they are not dead yet.)’
   
   ‘임진강전투 70주년’ 기념 추모예배를 보고 있는 순간 이 문장이 머릿속에 만들어졌다. 지난 9월 26일 영국 중서부 글로스터시 글로스터대성당에서 열린 추모예배는 한국전쟁 당시 영국 글로스터 대대가 벌인 임진강전투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였다. 행사에는 한국전 참전 글로스터 대대 생존 노병 4명과 엘리자베스 여왕의 사촌인 글로스터 공작, 한국의 보훈처장, 글로스터 시민 등이 참석했다. 영국인 300여명과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영국 지부원 40여명, 그리고 영국 교민 40여명 등 전체 참석자가 400명에 이르는 꽤 큰 행사였다. 행사는 추모예배를 끝내고 군인, 학군단, 향토방위군 100여명과 한인 80여명의 시가행진으로 이어졌다.
   
   
   글로스터 부대 5700명의 전설적 전투
   
   임진강전투는 1951년 4월 22일부터 5일간 한순간도 쉬지 않고 임진강 전역에서 벌어진 전투다. 국군을 비롯한 미군, 영국군, 벨기에군 등의 유엔군이 중공군 30만여명을 맞아 싸운 중공군 춘계 공세 전투 전체를 말한다. 사실 영국군은 자신들의 일개 대대가 참전한 이 전투를 ‘임진강전투’라고 부르는데 여기에는 상당한 어폐가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영국군 제29여단 소속 글로스터 연대 5700여명의 병사들이 싸운 곳은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설마리 일대였다. 이곳에서 3만여명의 중공군을 맞아 벌였던 전투는 차라리 한국에서처럼 ‘적성전투’나 ‘설마리전투’라 불러야 맞는다는 생각이다.
   
   설마리에서 정말 치열한 전투를 벌인 글로스터 연대 제1대대(글로스터 대대라고도 불린다) 756명은 불운하게도 중공군에 포위된 상태에서 닷새간 밤낮으로 싸워 대대원 중 59명이 전사했다. 또 98명이 행방불명됐고 530명이 포로가 되는 괴멸적 상황을 맞았다. 포로 중 180여명이 부상병이었는데 이 중 34명이 포로 생활 중 사망했고 탈출한 인원은 69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중공군 역시 전체 병력의 거의 3분의1이 사망하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그만큼 글로스터 대대는 뛰어난 적 살상력(殺傷力)을 보이면서 영웅적인 방어를 했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참패했지만 작전으로만 보면 대단한 성공을 거둔 셈이다.
   
   설마리전투는 어찌 보면 글로스터 대대가 유엔군 전체를 대신해 감당한 전투이기도 했다. 유엔군은 1951년 3월 15일 서울을 수복한 후 중공군의 전력이 약해져 공격 여력이 없을 것으로 안일하게 판단했다. 그래서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중공군의 춘계 공세에 맞설 수밖에 없었고 반격은커녕 서울 방어 준비도 제대로 못했다. 당시 임진강 전선은 서울 방어에 지극히 중요했다. 특히 글로스터 대대가 지키던 설마리가 뚫리면 서울까지는 거의 평지여서 인해전술의 중공군 병력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결국 서울을 세 번째로 적에게 다시 내주는 참상이 벌어질 판이었다.
   
   
▲ 현재 생존해 있는 글로스터 대대 한국전 참전용사 4명 중 한 명인 토미 클로프 옹. photo 권석하

   세 번째 서울 함락 지켜낸 글로스터 대대
   
   당시 글로스터 대대가 주둔하고 있던 235고지(영국군은 ‘글로스터 힐’이라고 부른다)는 워낙 험악해 방어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지만 동시에 후방 지원, 특히 탱크 부대의 지원이 불가능한 양날의 칼이었다. 결국 글로스터 대대는 견딜 수 있는 한 고지에서 결사항전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받았다. 한곳을 끝까지 지키는 공성전(攻城戰)에 특히 강한 글로스터 대대답게 총열이 열에 터지고 탄약이 다 떨어져 마시던 맥주병을 중공군 머리에 던지는 상황이 올 때까지 치열하게 버티면서 고지를 내주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유엔군에 5일이라는 황금 같은 시간을 벌어 주었다. 만일 하루이틀이라도 먼저 글로스터 대대가 무너졌다면 향후 한국전의 양상은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른다는 게 전사가들의 분석이다.
   
   그렇게 최후까지 적에게 고지를 내주지 않던 글로스터 대대는 충분한 시간을 유엔군에 주었다는 판단이 들자 대대장이 각자도생으로 탈출하든지 저항하지 말고 포로로 잡히든지 알아서 하라는 마지막 명령을 했다. 글로스터 힐 전투는 영국군이 2차대전 이후 지금까지 벌인 가장 치열한 전투라고 평가받는다. 중공군도 춘계공세 와중에 전체 병력 30만명 중 7만여명이 사망했다.
   
   대대가 괴멸하면서까지 영웅적으로 임무를 수행했으면서도 부대기를 중공군에 뺏겨버린 글로스터 대대는 한국전이 끝나고도 한국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현재도 글로스터 대대기는 북한 ‘조국해방전쟁 승리관’에 보관, 전시되어 있다. 영국군 전통에 따르면 전투 중 여하한 이유로든 부대 깃발을 잃어 버리면 귀향을 못 하고 영원히 현지에 남아 있어야 한다. 결국 본대는 모두 철수해도 소수는 명목상으로나마 한국에 남아 있는 불명예의 수모를 겪었다. 그러다가 1994년 여왕의 특별 사면으로 한국에서 최종 철수했다. 그럼에도 300년 전통의 글로스터 대대는 바로 다른 연대에 흡수되어 ‘글로스터 버크셔 윌셔 왕립 연대’로 바뀌었다. 지금은 글로스터 시내에 위치한 글로스터 군인 박물관에서만 역사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
   
   현재 생존한 글로스터 대대 참전용사 4명 중 한 명인 토미 클로프(94) 옹은 아직도 각종 행사에 참석한다. 지난 8월 29일 영국 교민들이 글로스터시 역사 축제에 참가해 글로스터 군인박물관 앞에서 벌인 공연에도 참석했다. 한국 교민들은 물론 글로스터 시민들의 사진 촬영에도 기꺼이 응하고 질문에도 열성적으로 대답해 놀라운 노익장을 과시했다.
   
   비록 해체되어 통합되어 버렸지만 설마리전투에서 보여준 용맹으로 인해 글로스터 대대는 전설이 되었다. ‘영광의 글로스터(Glorious Gloucester)’라고 불리는 부대 이름을 기억하고 보존하려는 글로스터 시민들의 눈물겨운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바로 지난 9월 26일 열린 임진강전투 70주년 기념 추모예배도 그 일환이었다. 이번 70주년 행사는 글로스터시 예산이나 정부의 지원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글로스터 대대의 영광을 이어가는 글로스터 군인박물관 주도로 만들어진 ‘임진강전투 70주년 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렸다. 이를 위해 사업회는 3년 전부터 기금 마련 사업을 펼쳐왔고, 이에 호응해 노병은 물론 글로스터 시민들이 발벗고 나섰다. 심지어 한 노병의 종손자인 대학생은 6일간 193㎞를 뛰는 모금 달리기도 했다. 이번 행사의 실무자는 영국 측에서는 로버트 딕슨 전 군인박물관 재단 이사장이 맡았고, 한국 측은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영국 지부장 장희관씨가 맡았다. 우연하게도 두 사람은 한국전 때 말을 막 시작하고 그때를 조금은 기억할 수 있는 세대(1947년생 동갑)이기도 하다.
   
   
▲ 1951년 임진강전투 당시 영국 글로스터 대대원들. photo 위키피디아

   빼앗긴 부대 깃발은 아직도 북한에
   
   글로스터 시민들이 한국전 참전 노병들을 기리는 이유는 영국군 특유의 특성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영국 군대는 향토군대이다. 쉽게 말하면 동네를 지키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모여 만든 군대이다. 그래서 군대 단위 이름에 대개 지역 이름이 많이 붙는다. 글로스터 연대, 글로스터 대대도 그런 연유로 붙여진 이름이다. 같은 지역 선후배나 친척, 가족이 모여 군대에 가기 때문에 서로 애정도 깊고 전우애도 강하다. 봉건 시절 자신이 속한 영주를 보호하고 그의 영지를 적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향토 군대의 전통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영국군 제대 군인들은 자신의 출신 부대를 유난히 자랑스러워하고 사랑한다. 지역 시민들도 비록 자신이 군대를 가지 않았어도 향토군대를 자랑스러워하고 관심을 가지고 아낀다. 동네 부대가 국가의 부름에 의해 소집되면 현역은 물론 예비역과 함께 신병들이 아버지와 형의 뒤를 따라 소집에 응한다. 뿐만 아니라 중·고등학교에까지 자원자들로 이루어진 학군단이 활발하게 구성돼 있다. 이번 행사에도 비록 대대 이름은 다르지만 옛 글로스터 대대와 연관이 있는 현역 군인들과 학군단 학생, 그리고 성인 자원(自願) 인원으로 이루어진 자원 예비군(TA·Teritorial Army)까지 미사는 물론 시가행진에도 참여했다. 영국에는 자원 예비군과 정규 군인 출신 예비군의 두 종류 예비군이 있다.
   
   그러고 보면 모든 영국인들의 피에는 군인의 유전자가 있는 듯하다. 하긴 모든 영국 남자들은 역사적으로 보면 원래 모두가 군인이었다. 유럽 전체가 그렇긴 하지만 특히 영국은 옛날부터 유사시 평민인 농부는 병사로, 기사는 장교로, 귀족은 장군으로 참전해 왔다. 현재도 이런 전통은 살아 있어 노동자 계급은 사병, 노동자 계급 중 직업군인을 택하면 부사관, 중산층 중 사관학교 등의 고급 훈련을 받으면 장교가 된다. 상급 중산층이나 상류층이 장교가 되더라도 평생 직업군인으로 남지는 않는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일정 기간만 복무하고 제대해서 자신의 일을 한다. 이를 일종의 ‘사회지도층의 책무(noblesse oblige)’라고 생각한다.
   
   사실 영국 사회에서는 남자가 군대를, 그것도 장교로 다녀오는 것 이상으로 큰 영예가 없다. 퇴직 후에도 직함을 불러주거나 자신이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유일한 직업이 바로 군인이다. 퇴직 후에도 성 앞에 ‘대위(captain)’ ‘소령(major)’을 붙여서 부르는 식이다. 더군다나 예비역 군인들이 공식 행사나 파티 같은 자리에 훈장이 주렁주렁 달린 군정복을 입고 나타나는 일은 전혀 튀는 행동이 아니다. 그러면 참석자들이 주위에 몰려들어 훈장이나 메달의 의미를 묻는다. 특히 어린이들의 인기를 독차지한다. 또한 영국 고급 사교클럽과 골프클럽에 회원으로 가입하는 데 가장 쉬운 사람들이 바로 예비역 장교들이다.
   
   영국 사회는 군인들을 존경할 뿐만 아니라 철저하게 기억해 주기까지 한다. 올해 2월 22일 자 더타임스와 데일리텔레그래프에는 글로스터 대대 출신 샘 머시어의 부고 기사가 나왔다. 그냥 한두 줄의 부고가 아니다. 텔레그래프는 662단어, 더타임스는 1125단어로 장군이나 장교도 아닌 70년 전에 한국전에 참전했던 일개 사병의 부고를 장문으로 실었다. 부고라기보다는 머시어의 거의 전 생애를 다룬 기사였다. 머시어의 설마리전투 용맹담과 독자로 하여금 웃음이 절로 나와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러브스토리도 들려줬다.
   
   얘기는 이렇게 전개된다. 포위 속에서 밤낮으로 치러진 전투로 탄환이 다 떨어진 후 대대장은 각자 알아서 탈출해 생존하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이미 한쪽 눈을 잃고 다리 하나도 포탄 파편에 부상당한 머시어는 탈출은커녕 언덕을 굴러 중공군 속으로 떨어지고 만다. 자신이 잡히기를 기다리는 와중에도 옆에 부상당해 있는 중공군을 보살피려다가 되레 그가 쏜 총에 나머지 다리마저 부상을 당한다. 그리고는 중국으로 끌려가 2년의 포로생활을 한다. 그는 영국으로 돌아와 군인병원에서 한쪽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신을 간호하는 간호사에게 문자 그대로 하나뿐인 눈으로 반해버린다. 그는 이를 “나는 홀랑 빠져 버렸다. 그걸로 나는 끝나 버렸다(I was smitten. I was done for)”라고 표현했다고 더타임스 부고는 익살스럽게 썼다. 한 눈과 한 개 다리의 머시어는 그래도 끈질기게 구애해서 결국 결혼을 하고 부인과 55년을 해로했다. 머시어는 부인이 2011년 죽고 나서 “내게 총을 쏘아 한쪽 다리를 결국 절단하게 만든 중공군을 만나고 싶다. 감사를 표하기 위해서”라고 농담을 했다. 그가 총을 쏴 주었기에 평생을 같이한 부인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영국에서도 한국전쟁은 잊힌 전쟁이다. 영국 교과서에도 등장하지 않고 영국 언론에서는 더더욱 기사를 볼 수 없다. 특히 참전용사들은 더욱 그런 감정을 느낀다. 그러나 자신들이 속했던 부대나 도시, 특히 한국이 자신들을 기억하고 보살핀다는 사실에 항상 감사하고 감동한다. 최근 수년간 재향군인 영국 지부 초청 보훈 행사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고 칭찬한다. 그래서 그들은 최고의 한국 홍보 요원이기도 하다.
   
   
▲ 황기철 국가보훈처장이 글로스터대성당에서 열린 ‘임진강전투 70주년 기념 예배’에 참석해 헌화하고 있다. photo 국가보훈처

   글로스터 병사 샘 머시어 부고의 감동
   
   이번 행사도 한국 교민들 참여가 없었다면 글로스터 시민만의 행사가 될 뻔했다. 향군복의 재향군인회원들과 한복을 갖추어 입은 영국 교민들이 시가행진을 할 때 글로스터 시민들은 대대적으로 환영했다. 그러나 보훈처 제공으로 작성된 듯한 한국 언론의 기사에는 런던에서 두 시간 반을 버스 두 대에 나누어 타고 온 영국 교민들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없었다. 보훈처 제공 홍보 자료는 영국 교민 얘기는 없이 보훈처장 동정 전달에만 급급했지 않았느냐는 것이 영국 교민들의 추측이다. 여왕의 사촌 글로스터 공작이 참여한 70주년 행사에 한국 대사가 참석하지 않은 점도 교민 사이에서 지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영국군은 연인원 5만6000명이 한국전쟁에 참전해 1078명 전사, 2674명 부상, 179명 행방불명으로 참전 17개국 중 미국 다음으로 많은 희생자를 냈으나 이를 아는 한국인은 드물다. 부산 재한유엔기념공원 영국군 묘역에는 885구의 영국군 유해가 묻혀 있다. 숨진 곳에 무덤을 쓴 뒤 이장하지 않는다는 영국의 관례에 따른 것이다. 미국은 그와는 다르게 공식적으로 연인원 160만명이 참전해 3만6492명이 전사했으나 거의 모두 본국으로 이장해 가고 36구만 남아 있다.
   
   한국전쟁을 통해 영국군 중 4명이 영국 최고의 무공훈장인 빅토리아 십자무공훈장을 수훈했다. 그중 한 명인 빌 스피크맨은 2015년 7월 태극무공훈장까지 받아 양국에서 최고의 무공훈장을 받은 유일한 군인이 됐다. 2018년 사망한 그는 자신의 유언에 따라 2019년 2월 부산 재한유엔기념공원 영국군 묘역에 있는 전우들 옆에 묻혀 사람들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그가 생전에 자신에게 감사해하는 영국 교민들에게 건넨 말은 정말 의미가 깊다.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We did what we had to.)”
   

   인터뷰 | 장희관 재향군인회 영국지회장
   코로나19가 앗아간 노병 43명… 매년 초청 명단이 줄고 있다
   
▲ 군인박물관 앞에 선 장희관 회장과 로버트 딕슨 이사. photo 권석하

   임진강전투 70주년 행사를 준비한 한국 측 주역은 재향군인회 영국지회장을 맡고 있는 교포기업가 장희관씨다. 4년 임기 중 3년 차인 장 회장은 영국에서 치러지는 한국전 기념 행사를 ‘공훈을 갚는 보훈 행사’라고 부른다. 그는 인터뷰 내내 “노병들을 모실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코로나19 사태 전에는 1년에 한 번씩 한국전 참전 노병 100~200명을 모시고 대규모 행사를 가져왔다. 코로나19 사태로 모이지 못하는 사이 돌아가신 분이 생기면 자선단체에 노병 이름으로 기부를 하거나 장례식에 조화를 보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팬데믹 기간 중 43분이 세상을 떠 영국 내 한국전 생존 노병은 팬데믹 전 3000~4000명에서 이제는 2000~3000명으로 줄어들었다. 장 회장은 “이제 2~3년 뒤면 한국전 참전 노병의 숫자가 1000명 이하로 떨어질 듯해서 보훈 행사도 앞으로 몇 년 남지 않은 뜻깊은 행사”라고 말했다. 내년 6월에는 런던 인근뿐만 아니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도 한국전 기념 행사를 했으면 하는 희망까지 내비쳤다.
   
   그는 “이런 규모의 보훈 행사는 정회원 34명에 불과한 영국지회로서는 버거운 일”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결국 회원들의 희생과 열성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장 회장은 “이번 행사는 취지로 봐서도 그렇고 인원도 많고 회비도 많이 걷는 한인회가 맡아 주어야 하는 일이다”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매년 행사를 마치고 나면 노병들이 손편지를 보내주는 것이 가장 보람 있는 일이라고 한다. 한국이 자신들을 잊지 않아줘서 고맙고 한국이 발전된 모습을 보여줘서 더욱 고맙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장 회장은 “그러고 보면 한국전 참전 노병들을 위한 보훈행사는 그들을 위한 일인 듯해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를 위한 일임이 드러난다”고 강조했다. 최근 행사에는 노병 한 분이 3~5명을 동반할 수 있도록 했는데 노병들 혼자서는 운신이 어려울 뿐 아니라 손자·증손자들을 데리고 와서 할아버지가 한 일을 알게 하려는 목적이었다고 한다.
   
   베트남전 당시 육군 전투병으로 근무하고 병장 제대한 장 회장은 수출 전선을 누비던 무역맨 출신이다. 영남대학교 섬유공학과를 나온 후 ㈜선경에 입사해 1983년부터 1988년까지 사우디아라비아 지사장을 역임했다. 임기 동안 수출 실적을 획기적으로 늘려 사우디 한국 상사 중 선경이 압도적 1위를 하게 만든 수출 역군이다. 1993년부터 10년간도 오지인 불가리아에서 한국 물건들을 수입·판매하는 무역업을 하다가 가족이 있는 런던으로 돌아와 현재 육류 식품도매업을 하고 있다.
   
   이번 행사의 영국 측 주역은 영국 육군 대위 출신인 로버트 딕슨씨이다. 글로스터 대대의 영광을 이어가는 글로스터 군인박물관 재단 이사장을 역임하면서 박물관을 현재의 모습으로 만든 인물이다. 지금도 재단 이사로 장 회장과 같이 보훈 행사가 정기적으로 열릴 수 있도록 지대한 역할을 했다. 이번 70주년 행사도 실무 주역을 맡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는 어떤 계기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내게 글로스터 대대의 노병들을 기리는 일이 하늘이 준 소명처럼 다가왔다”고 하면서 말문을 잇지 못해 정말 보는 이를 감동하게 만들었다.
   
   딕슨 이사는 집안 누구도 한국전과는 관련이 없다. 자신이 글로스터 대대에 입대한 후 영국 육군사관학교(일명 샌드허스트)에서 훈련을 끝내고 임관하던 날 부대 배지와 같이 받은 작은 책자에 쓰인 임진강전투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사명감을 느꼈다고 한다. 이때 반드시 무언가를 하겠다는 운명적인 결심을 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직업 외에 글로스터 대대 노병들을 돌보는 일이야말로 유일한 선택지라는 결심을 되돌아보면서 그는 또 한번 울컥했다. 그는 글로스터 대대의 대대장으로 해외근무를 비롯한 13년간의 복무를 마치고 제대한 후 금융 관련 IT기업에서 일하면서 40년간 옆도 안돌아 보고 돈도 안 되는 글로스터 대대 관련 일에 한결같이 몰두하고 있다. 이런 공훈 덕분에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대영제국 4급 훈장(OBE)을 받았다. 런던 교민들의 글로스터 시민을 위한 춤과 음악 등의 공연이 열리는 현장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제대 당시의 대위 계급장이 달린 군정복 차림의 딕슨 이사는 "우리가 이번에 이런 행사를 한 이유는 과거를 돌아보기 위한 일이 목적이 아니다. 미래 세대들에게 교훈과 함께 선배들의 영웅적인 임진 전투를 알려주어 내가 사랑하는 글로스터 대대가 영원히 기억될 수 있게 하려는 목적이다”라고 했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나는 전역 후 지난 40년 동안 한 번도 군인이 아니라고 느낀 적이 없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키가 최소한 185센티미터는 넘고 장대한 체구의 천생 군인인 딕슨은 아파도 약 안 먹고 병원 안 가는 영국 사나이답지 않게 다시 한번 눈가에 물기를 보였다. 임진 70주년 기념 행사를 통해 지구 저편의 사람들의 입에서 우리들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임진강 발음을 들을 때마다 무언가 가슴 속엥서 치밀어 오르는 격한 감정을 숨길 수가 없어서 딕슨의 눈물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역시 역사는 이렇게 산 자들이 기억해주어야 살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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