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 직원이 궐련형 전자담배 배출물 유해성분을 분석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식약처 직원이 궐련형 전자담배 배출물 유해성분을 분석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유해물질의 ‘허용기준’이 소비자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허용기준을 몇 배 초과한 제품이 확인되면 누구나 당장 재앙이 닥쳐올 것처럼 떨게 된다. 과량섭취에 의한 급성 부작용을 들먹이는 어설픈 전문가와 언론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다른 나라의 허용기준 때문에 불필요한 논란이 벌어지기도 한다. 소비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도입한 허용기준이 오히려 불안을 증폭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발암물질과 보존제에 대한 오해도 심각하다.

고속도로 제한속도와 같은 개념

허용기준은 정부가 가공식품·공산품·의약품·농축산물의 위생적인 생산·유통 관리를 위해 시행하는 품질관리제도의 일부다. 허용기준을 초과한 제품은 인체에 위험하기 때문이 아니라 법을 어긴 ‘불법 제품’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불법 제품이 확인되면 정부가 제조·유통사에 법률에 따라 책임을 묻는다. 제조·유통 과정의 개선을 요구하거나, 리콜·과징금·보상을 명령하기도 한다. 사법적 책임을 묻기도 한다.

허용기준 때문에 소비자가 무작정 공포에 떨 이유는 없다. 사실 허용기준은 고속도로의 제한속도와 같은 것이다. 고속도로에서의 과속은 위험하지만 반드시 사고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과속 운전자에게 법에 정해진 불이익을 주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유해물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법을 지키지 않은 기업에 정당한 책임을 묻고, 정부의 관리를 강화하는 것이 합리적인 문제 해결 방법이다. 소비자가 겁에 질려 호들갑을 떤다고 달라지는 문제가 아니다.

허용기준은 실제 독성이 걱정스러운 수준보다 충분히 낮게 설정하는 것이 일반적인 원칙이다. 급성독성이 의심되는 유해물질은 더욱 엄격하게 관리한다. 그런 허용기준을 ‘안전기준’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결국 허용기준을 초과한 제품에 대해서는 건강상의 피해가 아니라 법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현실을 문제 삼아야 한다. 법을 무시한 기업이나 제 역할을 못한 정부를 바로잡는 일에 신경을 써야 한다.

액체괴물 슬라임 해프닝

허용기준의 관리도 법에 따라 해야만 한다. 생산·유통 중인 상품에서 검사할 표본을 선택하고, 유해물질을 분석하는 절차와 방법이 모두 구체적으로 법제화되어 있다. 허용기준 관리는 충분한 시설과 인력을 갖춘 식약처·기술표준원·소비자원·공정위 등의 정부기관이 직접 담당한다. 정부가 분석 업무를 대행할 전문 분석기관을 인증해놓기도 한다.

물론 언론·소비자단체·전문가가 정부의 허용기준 관리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런 경우에는 반드시 법을 지켜야 한다. 정부가 인증해준 분석기관의 분석 결과를 제시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미인증 기관의 분석 결과는 제도적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스포츠 경기의 비공인 기록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금붕어를 이용한 독성 실험도 무의미한 코미디에 불과한 것이다. 금붕어는 설탕물에서도 죽어버린다.

대학에서의 분석은 피해야 한다. 제도적으로 인정받을 수도 없고, 그런 분석이 자칫 연구윤리에 어긋날 수도 있다. 다른 나라의 낯선 허용기준에 대해서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최근 슬라임(액체괴물)에서 허용기준의 7배에 해당하는 붕소를 검출했다는 서울대의 논문이 그런 경우였다. 유럽연합이 관리하는 ‘용출량’을 ‘총량’으로 오해했고, 분석 방법도 규정에 맞지 않았다.

유럽연합의 규정을 고스란히 번역해서 우리의 ‘완구안전기준’으로 고시해버린 산업부의 배짱도 놀랍다. 미국·일본·국제표준기구(ISO)가 장난감의 붕소를 관리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무시했다. 사실 다른 나라의 규정을 짜깁기한 우리의 유해물질 허용기준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수준이다. 물론 공짜가 아니다. 정부와 기업이 더 많은 비용을 써야 한다. 모두 소비자의 몫으로 돌아올 부담이다.

쉽지 않은 유해성 확인

인체에 독성을 나타내는 유해물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독(毒)도 잘 쓰면 약(藥)이 된다’는 말도 있고, ‘음식과 약은 그 뿌리가 같다(食藥同原)’는 말도 있다. ‘혀에 단 음식은 몸에 독이 된다’는 말도 있다. 음식·약·독이 언제나 분명하게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심지어 똑같은 물질이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효과를 내기도 한다. 그래서 복숭아·땅콩·달걀을 입에 대지도 못하는 사람도 있다. 식품의 안전을 과학적으로 관리해준다는 식품과학자의 말은 조심스러운 것이다.

화학물질의 인체 유해성을 확인하는 일은 쉽지 않다. 독성이 의심스러운 물질의 유해성을 사람에게 직접 확인할 수는 없다. 인체 실험은 윤리적으로 쉽게 허용되지 않는다. 결국 동물실험에 의존해야 한다. 그런데 쥐에게 아무 피해도 주지 않는 페스트균과 한타바이러스가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흑사병과 유행성출혈열을 일으킨다. 동물실험을 무작정 믿을 수도 없다는 뜻이다.

술·담배·젓갈도 1군 발암물질

누구나 발암물질을 무서워한다. 특히 국제암연구소(IARC)의 발암물질 목록이 엄청난 설득력을 발휘한다. 그런데 IARC의 발암물질 분류는 단순히 인체발암성에 대한 근거가 과학적으로 얼마나 확실한지를 분류한 자료일 뿐이다. 발암성의 강도를 나타내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1군(‘1급’이 아님) 발암물질에는 극단적인 거부감을 보인다. 그리고 같은 1군으로 분류되는 술·담배·젓갈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무관심하다. 더욱이 암은 장기간에 걸친 반복적 노출에 의해 나타나는 만성독성이다. 과학적으로 확인된 발암성을 무시할 이유는 없지만 당장 암에 걸릴 듯이 걱정을 할 이유도 없다.

가공식품과 생활화학용품에 사용하는 ‘보존제’에 대한 오해도 심각하다. 보존제를 맹독성의 방부제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보존제를 사용하지 않으면 곰팡이와 세균에 의한 오염을 감수해야 한다. 실제 보존제를 넣지 않은 물티슈가 유통과정에서 심하게 변질된 사례가 있었다. 천연 보존제인 ‘바이오사이드(살생물질)’의 안전성을 검증한다고 동물실험을 하겠다는 환경부의 정책도 황당하다. 사실 보존제의 유해성에 대한 최신 학술자료는 선진국 유해물질 관리기관이나 국제기구를 통해 누구나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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