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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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행복해지길 원합니다. 행복과 불행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하면, 예외 없이 행복을 선택할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그 선택으로 인해 사람은 불행해집니다. 로또에 당첨되면 행복하겠지요? 갑자기 생긴 엄청난 돈으로 인해 수많은 당첨자가 불행해집니다. 본인은 잘한다고 일을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이 잘못한 것이 되고, 잘못했다며 후회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게 잘한 일이 되는 경우를 흔히 봅니다. 이런 일은 왜 생기는 걸까요?”

지난 6월 4일 경북 김천에서 만난 임상수(60)씨는 국선도의 고수다. 1976년부터 37년간 국선도 수련을 해 온 그는 김천 오봉리에 ‘동천산방(洞天山房)’이란 집을 짓고 선수행을 하고 있다. “이 세상은 원래 그런 것입니다. 행복과 불행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지요. 행복은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느낌일 뿐이지요. 스스로가 행복하다고 느끼면 행복해지는 것이고,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면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은 실체가 없어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행복을 느끼는 것이 마음인데, 그 마음이 항상 변화하니 행복은 불행이 되고, 불행은 행복이 되면서 계속해서 뒤바뀌는 것입니다.”

임씨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 그 결과를 미리 확실하게 알 수는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확실한 것을 원합니다. 알 수 없으니 고민하고, 확실하지 않으니까 번민합니다. 끊임없이 확인하고 의심하며 궁금해합니다. 나를 사랑하느냐, 나를 믿느냐, 정말이냐, 배신하지 않겠느냐…. 묻고 또 물으며 갈등하고 불만족하고, 재확인합니다. 그러면서 괴로워하죠. 이 괴로움이 어디서 오는가? 불확실성에서 오는 것입니다. 자신의 미래든 상대방의 마음이든,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의심하고 괴로워하는 것이지요.”

그는 “마음은 실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마음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여길 뿐이지요. 괴로움도 마찬가지입니다.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그저 괴롭다고 느낄 뿐이지요.”

“부처는 본질을 보라고 했습니다. 본질이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이 길을 걷고 있다고 칩시다. 그 사람을 향해 누군가가 ‘야 임마’ 하고 소리쳤다고 가정합시다. 이 말을 들은 사람은 어떨까요. 기분이 나빠지겠죠. ‘누가 나한테 욕을 하나’ 싶어 불쾌해질 것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야 임마’라고 한 사람이 어렸을 적 절친했던 친구였습니다. 그렇다면 어떨까요. 노여웠던 감정이 순식간에 반가움으로 변하면서 즐거워질 것입니다.”

임씨는 “왜 그럴까요”라며 말을 이었다. “‘야 임마’라는 말은 욕이지요. 하지만 친구 사이엔 이게 ‘반갑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지요.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아는 것입니다. 그러니 욕을 해도 화가 나긴커녕 반가움에 서로 얼싸안게 되는 것이지요. 이게 본질입니다. ‘야 임마’라는 말을 욕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현상이지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 말이 갖고 있는 본래의 의미, 즉 반가움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본질의 세계입니다. 시시비비를 분별하지 않고, 그것이 갖고 있는 본성을 보는 것. 부처는 이것을 상락아정(常樂我淨·괴로움과 번뇌가 없는 영원한 상태)이라고 했습니다.”

국선도 고수인 임씨가 불교 용어를 구사하는 데엔 이유가 있다. 그는 원래 동국대 승가학과 출신의 승려다.

“고교(충남 공주고등학교) 시절 학생회 활동을 했어요. 주변 사람들을 설득하고 규합해서 학생회 활동을 펴나갔죠. 거기서 회의를 느꼈습니다. 내가 추구하는 이상을 얻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이용하는 것 아닌가 하는 회의였습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람들을 이용하고, 목적이 달성되면 사람들을 버리는 현실에 염증을 느끼게 됐습니다. 산으로 들어갔지요. 계룡산 신흥암에서 심부름을 해주며 지내다가, 거기서 출가를 했습니다. 이후 통도사 극락암에서 경봉 스님을 모셨고, 합천 해인사에서 성철 스님을 모셨습니다. 그러다가 동국대 승가학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했습니다.”

임씨는 “당시엔 매일 12시간씩 수행을 했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허리도 결리고, 위장도 안 좋아지고 그랬어요. 그래서 건강에 좋은 게 뭐가 있을까, 하던 차에 청산선사가 국선도를 가르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게 1976년이었습니다.”

우연찮게 국선도를 시작한 임씨는 4년의 수련 끝에 사범의 실력을 갖추게 된다. 그렇게 시작한 국선도는 임씨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소위 말하는 ‘국선도 사건’이었다. “1979년 12월 12일에 12·12 사태가 터졌잖습니까. 이듬해 2월에 제가 대학을 졸업했는데요, 당시엔 계엄 상황이어서 시국이 대단히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날 국선도 서울 본원에 볼일이 있었어요. 일을 보고 나와서 버스를 타러 가는 도중에, 건장한 남자들한테 연행을 당했습니다. 그게 그 유명한 중앙정보부 남영동 서빙고 분실이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됐습니다.”

임씨는 “왜 연행됐는지 그 이유를 지금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했다. “무조건 고문부터 하는 거예요. 아무 말도 없이 말이죠. 조사도 일절 없었고, 질문도 일절 없었어요. 사흘 동안 잠도 안 재우고, 밥도 안 먹이고 사람을 완전히 녹초로 만들어 놓더군요. 그리고 나서 하는 말이 ‘여기는 일반 범죄자가 오는 곳이 아니다, 너는 국가전복 예비음모 및 간첩행위를 했다’고 하는 겁니다. 한참 뒤에 과거사위원회로부터 들은 얘긴데, 우리(국선도 수련자들)가 ‘도선국이란 나라를 만들려고 했다’는 게 혐의였답니다. 무슨 홍길동도 아니고. 도선국을 거꾸로 읽으면 뭐예요. 국선도잖습니까. 이게 말이나 되는 얘깁니까. 그때는 국선도 수련자가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본원에 한 30명이나 됐을까. 30명으로 무슨 나라를 건설합니까.”

임씨는 “그 일을 겪고 나니 다시 산으로 들어가고 싶어지더라”고 했다. “그런데 고문 후유증 때문에 몸이 안 따라 주는 거예요. 몸을 추스르고 있었는데, 영남대에서 쉬는 동안 강의를 해달라고 하데요. 한 학기만 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다가 대구 시내에 있는 도장을 맡게 됐는데, 거기서 여성 사범을 만났어요. 그만 절에 들어가지 못한 채, 결혼을 해서 환속을 하게 됐지요.”

임씨는 “국선도 수련을 하면서도 계속 불경을 가까이 하며 마음 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는 “현실은 마음의 세계”라며 “행복해지길 원한다면 마음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스스로 자기 한도를 세우는 거예요. ‘100만원만 있으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100만원을 얻으면, 그 다음엔 200만원을 원하게 되지요. 돈은 마음하고 똑같아요. 한도 끝도 없이 커져만 가지요. 사람은 편안하기 위해서 물질을 소유합니다. 그런데 점차 물질에 집착하게 되면, 나중엔 내가 물질을 위해서 살게 됩니다. 그래서 죽을 때가 되면 후회를 하지요. 정말 중요한 걸 놓치고 살았다고 말이지요.”

임씨는 “자기 스스로 한도를 설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 항상 행복할 수가 있어요. 꽃이 피고, 바람이 불고 그 아름다움을 보면서 행복할 수 있습니다.” 수십 년간 국선도 수련을 해온 임상수씨는 한눈에 보기에도 매우 건강해 보였다. 그는 “몸의 중심은 골반”이라며 고관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고관절이 굳으면 몸 전체가 굳고, 고관절이 유연해지면 몸 전체가 유연해진다”는 것이다. 그는 “평소 고관절을 잘 풀어주고, 괄약근을 강화하고, 허벅지 근육을 단련하면 평생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범진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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