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마르 앞엔 메시보다 더 높은 벽이 있다. 펠레다.
‘제2의 펠레’란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네이마르이기에 펠레와의 비교는 평생 따라붙을 숙명과도 같다.
펠레의 등번호 10번을 물려받은 네이마르. ⓒphoto 연합
펠레의 등번호 10번을 물려받은 네이마르. ⓒphoto 연합

브라질은 축구의 나라다. 역대 최다인 월드컵 5회 우승(1958·1962·1970·1994· 2002년)이라는 찬란한 성과는 브라질 사람들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부심이다. 공을 차는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가득한 브라질 거리의 익숙한 풍경은 자국 리그가 펼쳐지는 주말이면 축구에 살고 축구에 죽는 열혈팬들의 물결로 채워진다. 저마다 응원하는 클럽의 유니폼을 입고 목놓아 부르는 응원가에 브라질 전역이 들썩거린다.

브라질 사람들에게 축구는 축제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들에게 특별한 장소가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의 축구 경기장 마라카낭이다. 마라카낭은 한때 20만명의 관중을 수용하는 세계 최대의 경기장이었다. ‘브라질 축구의 성지’란 수식어는 괜히 붙은 게 아니다.

1945년 제툴리우 바르가스 장군의 독재정권이 막을 내린 뒤 브라질엔 강한 민족주의의 바람이 불었다. 브라질의 힘을 남미 대륙을 넘어 전 세계에 보여주고 싶었던 브라질 사람들은 1950년 홈에서 열리는 월드컵이 그런 무대가 되길 원했다. 마라카낭이 세계 최대 규모의 스타디움이 된 것도 이러한 열망이 담긴 결과였다.

브라질은 무조건 이 대회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야 했다. 1950년 7월 16일 브라질은 마라카낭에서 우루과이와 만났다. 월드컵 파이널 라운드 마지막 경기였다. 당시 월드컵 본선은 1라운드에서 조별 1위를 한 네 팀이 파이널 라운드에서 리그전을 벌여 1위 팀이 우승을 하는 방식이었다. 파이널 라운드에서 먼저 2승을 거둔 브라질은 이날 우루과이와 비기기만 해도 대망의 첫 월드컵 우승컵을 차지할 수 있었다.

관중석을 가득 채운 약 20만명의 브라질 팬들은 자국팀의 우승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날 수립된 축구 한 경기 역대 최다 관중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결과는 기대와 너무 달랐다. 브라질은 대관중의 성원을 등에 업고도 우루과이에 1 대 2로 패하며 힘없이 우승을 내주고 말았다. 마라카낭엔 침묵만이 흘렀다.

이날 패배는 ‘마라카나수(마라카낭의 충격)’라는 고유명사를 탄생시킬 정도로 브라질인에겐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남겼다. 브라질 축구 역사에서 가장 지우고 싶은 한 페이지로 기억되는 이날 경기에 대해 브라질의 소설가 넬손 호드리게스는 “어느 나라든 일본의 히로시마 원폭과 같은 치유할 수 없는 국가적 재앙이 있다”며 “우리의 히로시마는 바로 마라카나수”라고 말했다.

이런 브라질 사람들에게 64년 만에 홈에서 개최되는 2014년 월드컵의 의미는 특별할 수밖에 없다. 브라질 팬들은 이번 대회 결승전도 마라카낭(현재는 7만8000명 수용의 경기장으로 개축)에서 열리는 만큼 자국 대표팀 선수들이 ‘비극의 장소’에서 이번엔 환희의 우승 트로피를 들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 애타는 소원은 월드컵축구대회 개막을 1년 앞둔 시점에서 조금은 이뤄졌다. 지난 7월 1일 브라질은 마라카낭에서 열린 2013 컨페더레이션스컵(대륙간컵) 결승전에서 스페인을 3 대 0으로 완파하며 정상에 올랐다. 유로 2008, 2010 남아공월드컵, 유로 2012를 석권하며 세계 축구의 절대 강자로 군림했던 스페인을 대파하는 모습에 마라카낭에 모인 브라질 팬들은 오랜만에 자존심을 맘껏 세웠다. 이번 컨페더레이션스컵은 브라질 축구의 전성기가 다시 도래하고 있음을 만천하에 알리는 무대였다.

브라질 팬들이 더욱 열광한 이유는 세계 최고 선수로 성장하는 수퍼스타의 활약 때문이었다. 1992년생으로 이제 겨우 스물한 살인 네이마르(Neymar)는 매 경기 눈부신 기량으로 이번 대회를 자신의 콘서트 무대처럼 만들어버렸다. 스페인과의 결승전에서 왼발 중거리 슛으로 팀 승리를 이끈 그는 이 대회에서 4골 2도움으로 골든볼(MVP)을 받았다.

네이마르는 그림 같은 골로 전 세계 팬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는 일본전과 멕시코전에서 감각적인 발리 슈팅으로 잇따라 골망을 갈랐다. 이탈리아전에선 페널티 지역 왼쪽 외곽에서 오른발 프리킥으로 골문 구석을 정확히 찔렀다. 루이스 스콜라리 브라질 감독은 “네이마르는 이탈리아 골키퍼 부폰이 한쪽으로 약간 움직이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반대쪽을 노렸다”며 “천재라서 가능한 골”이라고 말했다. 네이마르로 인해 브라질 팬들의 어깨도 으쓱해졌다.

그동안 ‘축구는 곧 브라질’이라고 자부하던 브라질 팬들은 자존심이 많이 상해 있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중반을 풍미한 호나우두(37)와 호나우지뉴(33) 이후 수퍼스타 계보가 끊긴 것이다. 잠시 ‘미남 스타’ 카카(31)가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그의 전성기는 너무 짧았다.

최근 브라질은 오히려 티아구 실바(파리 생제르맹)와 다니 알베스(바르셀로나), 다비드 루이스(첼시), 마르셀루(레알 마드리드) 등 많은 명수비수를 배출했다. 반면 주요 유럽 리그 득점 순위 상위권에서 브라질 선수를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탁월한 스트라이커는 한동안 나오지 않았다. 화끈한 공격축구로 상징되던 브라질의 축구 색깔도 덩달아 빛을 잃었다.

이런 상황에서 골잡이 갈증에 목말라하던 브라질 사람들에게 네이마르는 단비와 같은 존재였다. 소문은 일찌감치 나 있었다. 축구선수로 활동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축구를 시작한 네이마르는 어릴 적부터 재능을 드러내며 15세에 브라질의 명문 클럽 산투스와 정식 계약을 맺었다. 산투스는 ‘축구 황제’ 펠레가 활약했던 팀이다. 펠레는 16세에 산투스에서 프로 데뷔전을 치른 뒤 이 팀에서 수많은 우승 트로피를 들었다. 이런 배경 덕분에 자연스럽게 ‘제2의 펠레’로 불리기 시작한 네이마르는 2010 시즌 42골을 터뜨리며 18세에 브라질 리그 득점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해 펠레는 벤치에 앉히더라도 경험을 쌓게 해줘야 한다며 네이마르의 2010 남아공월드컵 대표팀 발탁을 주장했지만 당시 둥가 브라질 감독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월드컵이 끝난 뒤 곧바로 대표팀에 이름을 올린 네이마르는 2010년 8월 미국과의 A매치 데뷔전에서 득점포를 쏘아 올렸다. 그는 2011·2012년 ‘남미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며 브라질 최고의 스타로 올라섰다.

브라질 사람들이 네이마르에 더욱 열광한 것은 그가 대부분의 축구스타들처럼 일찍 유럽 무대로 떠나지 않고 자국 리그를 한동안 지킨 데 있었다. 네이마르는 브라질 TV에 끊임없이 등장하며 여성 팬들을 몰고 다니는 ‘축구 아이돌’이 됐다. 네이마르가 헤어스타일을 바꾼 다음 날이면 수많은 브라질 젊은이들이 미용실을 찾아 그와 똑같은 스타일로 머리를 자르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그의 여자친구는 브라질의 톱모델인 브루나 마르케지니(18)다.

네이마르는 각종 후원 계약으로만 매년 200억원 이상의 수입을 올린다. 스포츠 비즈니스를 주로 다루는 영국 월간지 ‘스포츠프로’는 지난해 5월 전 세계 운동선수 중 가장 상품가치가 높은 인물로 네이마르를 선정했다. 현재 세계 축구의 두 영웅으로 불리는 리오넬 메시(26·바르셀로나)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8·레알 마드리드)도 네이마르에 밀렸다.

전성기의 펠레. ⓒphoto 조선일보 DB
전성기의 펠레. ⓒphoto 조선일보 DB

올 시즌 네이마르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지난 5월 그는 바르셀로나로의 이적을 발표했다. 이적료는 5700만유로(약 830억원)에 달했다. 우려는 있다. 바르셀로나의 명실상부한 ‘에이스’는 메시다. 실제로 다비드 비야와 세스크 파브레가스와 같은 스타들도 바르셀로나 이적 후 메시의 그늘에 가려 이름값을 하지 못했다. 네이마르도 잘못하면 메시의 뒤를 받쳐주는 역할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

브라질 팬들의 입장에선 자신들의 수퍼스타가 라이벌 아르헨티나 출신 메시의 들러리가 된다면 자존심이 상할 게 틀림없다. 네이마르가 메시의 바르셀로나에서 어떻게 존재감을 드러낼지가 다음 시즌 스페인 리그를 보는 관전 포인트다.

이런 네이마르 앞엔 사실 메시보다 더 높은 벽이 있다. 바로 펠레다. ‘제2의 펠레’란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네이마르이기에 펠레와의 비교는 평생 따라붙을 숙명과도 같다. 펠레가 뛰는 모습을 거의 접하지 못한 젊은 축구 팬들에게야 펠레는 ‘저주’로 더 잘 알려진 인물일 수 있다. 월드컵 등 각종 대회를 앞두고 예상한 결과가 대부분 틀리게 나와 유명해진 ‘펠레의 저주’는 이제 축구계의 대표적 징크스로 자리를 잡았다.

펠레가 이뤄낸 성과를 조금만 살펴봐도 그가 얼마나 위대한 선수였는지를 알 수 있다. 펠레는 1956년부터 1977년까지 선수 생활을 하며 1366경기에 출장해 1282골을 넣었다. A매치 92경기에 나와 터뜨린 77골은 브라질 최다 기록이다. 가장 빛나는 업적은 월드컵 3회 우승 기록이다. 펠레는 만 17세에 출전한 1958년 스웨덴월드컵에서 프랑스와의 준결승전 때 3골, 스웨덴과의 결승전 때 두 골을 터뜨리며 세계를 경악에 빠뜨렸다. 펠레는 이 대회에서 최연소 월드컵 득점과 해트트릭 기록을 갈아치웠는데 이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당시 펠레가 단 등번호 10번은 이후 축구팀의 에이스를 상징하는 번호가 됐다.

펠레는 1962 칠레월드컵 우승에 이어 1970 멕시코월드컵에서도 이탈리아와의 결승전에서 선제골을 넣는 등 맹활약하며 브라질의 정상 등극을 이끌었다. 브라질은 멕시코월드컵에서 통산 세 번째 우승을 달성하며 줄리메컵을 영구 소장하게 됐다.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월드컵 우승을 경험한 독일 축구의 전설 프란츠 베켄바우어(68)는 “디에고 마라도나와 요한 크루이프, 미셸 플라티니 등 위대한 선수는 많았다. 하지만 단연 최고의 선수는 펠레다. 누구도 펠레와 대등한 위치에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펠레는 FIFA(국제축구연맹)가 뽑은 ‘20세기의 선수’다.

이렇게 보면 펠레와의 비교는 이제 스물한 살의 네이마르에겐 가혹한 일일 수 있다. 그동안 주로 등번호 11번을 달았던 네이마르는 이번 컨페더레이션스컵부터 펠레의 상징적 등번호인 10번을 물려받고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부담이 될 법도 했지만 네이마르는 이 대회에서 예전 펠레가 월드컵에서 보여준 활약을 재현하며 축구에 울고 웃는 브라질인들의 영웅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현 시점에서 펠레와 네이마르의 A매치(국가대표팀 경기) 기록을 비교해 볼 수는 있다. 18세에 대표팀에 데뷔한 네이마르는 3년 동안 A매치 39경기에 출전했다. 이 추세대로라면 30대 초반쯤엔 150경기를 돌파할 수도 있다. 17세에 대표팀 데뷔전을 치른 펠레는 3년 동안 23경기에 나왔다. A매치 출전 기록을 따져보면 네이마르가 오히려 펠레에 앞선다.

득점 페이스는 아무래도 네이마르가 ‘전설’에게 밀릴 수밖에 없다. 네이마르는 지금까지 국가대표 경기에서 24골을 넣었다. 경기당 평균 0.67골이다. 이에 반해 펠레는 초반 3년 동안 23경기에서 24골을 몰아넣었다. 한 경기에 한 골씩 터뜨린 셈이다. 펠레는 23세에 이미 A매치 40번째 골을 터뜨릴 정도로 초반 페이스가 빨랐다. 하지만 당시에 비해 평균적으로 선수 생명이 3~4년 길어졌기 때문에 네이마르가 펠레의 A매치 기록(77골)을 깰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전망이다. 펠레는 일찌감치 네이마르를 자신의 후계자로 인정했다. 후계자란 말엔 아직 네이마르가 자신을 뛰어넘기엔 부족하다는 뜻도 담겨 있다. 메시의 경우엔 데뷔 시절부터 줄기차게 ‘마라도나의 후계자’ 혹은 ‘제2의 마라도나’로 불려왔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수식어는 쓰이지 않게 됐다. 메시가 마라도나를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선수에게 수여되는 FIFA 발롱도르를 사상 처음으로 4년 연속 수상한 메시는 지난해 91골로 게르트 뮐러(독일)가 1972년 세운 한 해 최다 골 기록(85골)을 갈아치우는 등 축구의 각종 기록을 새로 써가고 있다. ‘꿈의 무대’로 불리는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네 번이나 우승했다.

그래서 2014 브라질월드컵이 더욱 기다려진다. 앞으로 바르셀로나에서 메시와 함께 수많은 우승 트로피를 들 것으로 보이는 네이마르가 스스로 빛나며 펠레의 명성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자신이 에이스인 브라질의 월드컵 우승컵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브라질을 막아설 가능성이 가장 큰 팀 중 하나가 팀 동료 메시가 이끄는 라이벌 아르헨티나란 점이다.

네이마르는 펠레도 경험하지 못한 마라카낭에서의 월드컵 우승 세리머니를 즐길 수 있을까. 이번 대회가 네이마르가 만들어갈 월드컵 전설의 시작이 될지 전 세계 축구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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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민석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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