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차 상식
중국 최대의 보이차 시장인 광저우의 팡촌(芳村)에서는 보이차 한 편에 100원의 이익만 생겨도 매매가 이루어진다. 창고에 산적한 보이차는 미동도 없이 제자리에 있지만 소유주는 하루에도 여러 번 바뀌는 것이 중국 보이차 시장의 일상이다. 주식 거래에서 실제로 주식이 현물로 오가지 않는 것과 똑같다. 작전세력도 당연히 존재한다.
맹해현에 있는 대익 차창 전경.
맹해현에 있는 대익 차창 전경.

보이차는 중국에서 부동산과 주식보다 뜨거운 투자수단으로 부각되어 있다. 투기과열이 되어 2007년에는 상반기에 급등하였다가 하반기에 폭락하여 중국인을 거리와 죽음으로 내몰기도 했다. 일부 보이차 전문가는 그때의 악몽이 올해 일어날 것이라는 불안한 예고를 한다.

지난 3월 23일 윈난성 시솽반나주징홍시(西雙版納州景洪市)에서 열린 세계차문화교류협회 행사장에서 왕만위엔(王曼源) 세계차문화교류협회 창립회장을 만났다. 그는 “보이차 시장의 과열도 문제지만 고수차(古樹茶)를 중심으로 원료 가격의 폭등과 신참내기인 우림고차방(雨淋古茶坊·이하 우림)이 보이차 투자의 기준점이 되는 대익다업집단(大益茶業集團·이하 대익)의 보이차 가격을 흔들고 있어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대익을 상대로 단단히 재미를 본 우림의 보이차 투자 시장 교란이 올해에는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에서 보이차 투자의 중심에는 대익이 있다. 투자가 이루어지는 주요 무대는 광동성 광저우(廣州)다. 평균 2억원 정도를 투자하는 것을 기준으로 광저우에만 보이차 투자자가 20만명이 넘는다. 광저우와 인접한 둥관(東莞)과 선전(深)의 투자자도 10만명에 육박한다. 이밖에도 중국 전역에는 30만명의 투자자가 더 있다.

대익의 가용자금(자산가치 제외)은 연간 보이차 출시 금액과 중국 전역의 지역별 총대리상과 3000곳이 넘는 대익 전문대리점의 보증금을 합치면 60조원이 넘는다. 이들의 주요 투자 대상은 대익의 보이차에 집중되어 있다. 대익의 보이차 가격이 흔들리면 보이차 시장 전체가 출렁인다.

대익은 1940년 설립된 이래 74년 동안 보이차산업의 역사이자 부동의 1위 자리를 지켜왔다. 대익 흔들기에 나선 우림은 2012년에 생긴 신생기업이다. 우림은 고수차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회사를 표방한다.

대지차(臺地茶)를 주 원료로 사용하는 대익에 대한 우림의 도전은 얼핏 고수차와 대지차의 시장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머니게임처럼 보인다.

2013년을 달군 우림의 공격적 행보는 두 가지다. 첫째는 유명한 고차수 산지에 보이차의 1차 가공시설인 초제소(初製所)를 1년 동안 23개 이상 건립하였다. 우림이 자체 생산량보다 많은 모차를 전례 없이 막강한 자본으로 대량 흡입하고 있다는 사실은 고수차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위기의식을 느끼게 한다. 둘째, 우림은 헤지펀드로 조성한 2조원으로 대익의 신제품을 집중 매입하였다가 일시에 투매했다. 덩달아 투매에 가담한 대익 대리상들과 개인투자가들의 물건이 쏟아져 나오며 대익의 가격이 하락하면 다시 매입하는 것을 반복하여 차익을 챙겼다. 이러한 매매 타이밍을 모르는 중국의 보이차 개인투자가들은 우림이 챙긴 수익만큼 손실을 입었다. 이는 주식시장이라면 작전세력의 기초적인 수준의 투기전략이다. 하지만 보이차 유통에서는 대익을 상대로 한 대규모의 시장 흔들기는 전례 없던 일이다. 우림은 대익이 흔들리면 모두가 손해라는 시장 통념을 뒤집어 버렸다. 우림의 시장 교란 효과는 효력이 있었다. 단기 수익을 노린 헤지펀드가 우림의 깃발 아래 헤쳐모여를 반복하는 와중에 대익 대리상들도 상당수 이에 동참했다. 지난 3월 11일 윈난성 쿤밍(昆明)에서 만난 한 대익 대리상은 “대익 대리상을 하는 이유는 돈이 되기 때문이다. 우림하고 손잡아 득이 된다면 왜 그쪽에 동참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상인은 이익을 따라다닌다”는 그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우림의 대익 제품에 대한 도발적인 투기에도 대익은 표면적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아직은 여유가 있어 보인다. 우림이 가동할 수 있는 유동자금이 2조원인 데 비하여 대익은 30배인 60조원 정도는 움직일 수 있다. 다만 대익이 간과하면 안 되는 게 있다. 대익 제품이 갖고 있는 투자처로서의 안정적 재화가치를 소비자가 의심하게 되면 그게 위험한 순간이다. 대익의 보이차는 소비보다 투자 가치로 구매하는 비중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난해 10월 중국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에서 대익의 우웬즈(吳遠之) 회장과 만나 대익이 변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고수차 시장에 더 늦기 전에 참여할 것을 권유했다. 우 회장은 대익이 고수차 시장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대익이 사랑받는 이유는 경제적 부담 없이 누구나 사먹을 수 있다는 점과 건강하고 안정적인 품질에 있다. 고가의 고수차를 판다면 기업철학과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소신을 밝혔다. 그는 또 “3000개가 넘는 대리점에 고수차를 골고루 공급할 원료를 확보할 수 없다”며 “순료 고수차를 만든다면서 다른 원료를 섞는 일부 중소 차창의 행태를 대익이 따라할 수 없다”는 어려움도 토로했다.

대익은 국영기업에서 민간기업으로 전환된 2004년 10월 이후 처음으로 정면 도전을 받고 있다. 대익을 정조준한 우림의 주요 관리직과 기술 인력에 대익 출신이 많다는 점 때문에 혹시 우림이 대익의 아바타가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받기도 한다. 우림은 대익을 누구보다 잘 아는 집단이다.

국영 시절의 후광을 등에 업은 대익이 기존의 경영 방식을 벗어나 글로벌 스탠더드를 지향하는 각고의 노력이 없다면 또 다른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2014년 중국의 보이차 시장은 총성 없는 전쟁이 뜨겁게 벌어지고 있다.

서영수

1956년 부산 태생. 유현목·이두용 감독 밑에서 영화를 배운 뒤 1984년 영화감독으로 데뷔. 1980년 무렵 보이차에 입문. 중국 윈난성 보이차 산지를 탐방하는 등 조예가 깊음.

서영수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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