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메뉴 단팥죽
대표메뉴 단팥죽

“1980년대 어느 추운 겨울밤이었어요. 막 문을 닫으려는데 젊은 연인이 동동거리며 들어와서 따듯한 단팥죽 한 그릇 꼭 먹고 싶다고 사정을 했어요. 그래서 부랴부랴 단팥죽을 새로 끓여줬더니 아주 맛있게 먹고는 자기들도 보답하고 싶다면서 저쪽에 둘이 서더니 듀엣으로 노래를 불러주지 뭐예요. 그때 받았던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날 자신의 단팥죽에서 돈 이상의 가치를 발견했다는 김은숙(78)씨의 얼굴에 흐뭇한 감회가 어린다. 김씨는 1976년 봄, 서울 삼청동에 ‘서울서 둘째로 잘하는 집’ 문을 열고 지금까지 한자리에서 서울에서 제일 맛있는 단팥죽을 끓여내고 있다.

“여고 시절 단팥죽이랑 국화빵을 곁들여 먹으면 최고로 대접받고 한턱 쏘는 거였어요. 이것 이상의 간식이 없었죠.”

한방찻집을 시작하면서 김씨는 학창 시절부터 제일 좋아하던 단팥죽도 메뉴로 함께 올렸다. 그런데 주력 메뉴였던 쌍화탕을 제치고 단팥죽이 점점 잘나가면서 어느새 단팥죽집으로 유명해져 문전성시를 이루게 되었다.

그런데 왜 둘째로 잘하는 집일까? 지금은 삼청동이 서울의 유명한 관광 명소가 되었지만 개업할 때만 해도 다방 하나, 분식집 하나밖에 없었던 조용한 동네였다. 한적한 곳에 가게를 열자니 여러모로 정성을 들여야 했다. 상호를 짓는 데도 당시 신문기자였던 남편과 몇날며칠 머리를 맞대었다. 그래서 탄생한 이름이 ‘서울서 둘째로 잘하는 집’이었다. 김씨는 이 상호가 손님들에게 대화의 끈을 만들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왜 첫째가 아니고 둘째인지 화두를 던지면 손님들이 나름 해석하는 즐거움을 주고 싶었다. 그 마음을 담은 이 집의 상호는 숱한 화제를 모았다. 어떤 잡지사에서는 대학 입시에 낙방한 아이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 ‘서울서 둘째로 잘하는 집이 있다. 꼭 합격을 해야만 1등을 해야만 잘 사는 것은 아니다’라는 칼럼을 싣기도 했다.

이 집은 외관부터 요즘 삼청동의 화려한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단층집 문을 열고 들어서면 달착지근한 향기가 따듯하게 반겨준다. 세월이 묻어나는 메뉴판 속엔 단팥죽 외에 십전대보탕과 식혜, 수정과 등 몇 가지가 더 있다. 그중에 대표 메뉴는 단연 단팥죽이다. 요즘 특히 동지를 맞아 단팥죽을 찾는 이들로 더 북적인다. 우리 조상들은 밤이 가장 긴 동짓날, 음의 기운이 강한 액을 면하고 우리 마음속의 사악함도 씻어내기를 바라는 염원으로 양의 기운이 가득한 붉은색의 팥죽을 쑤어 먹었다.

대표 김은숙씨와 아들 가광위씨
대표 김은숙씨와 아들 가광위씨

향긋한 계피향이 코끝을 스치며…

김씨는 단팥죽 한 그릇에 온갖 정성을 담고 뚜껑을 덮어준다. 설레는 마음으로 뚜껑을 열면 향긋한 계피향이 코끝을 스치고 흑갈색 단팥죽 위에 넉넉히 올린 노란 밤과 은행, 울타리콩이 한눈에 들어온다. 팥죽을 떠먹어 보면 마치 고운 수프처럼 목넘김이 부드러운 데다가 매콤한 계피향이 어렴풋이 어우러지면서 질리지 않는 단맛으로 자꾸 숟가락이 간다. 포실한 밤의 고소한 향이 입안에 가득 퍼지고, 큼직하고 쫀득한 찹쌀새알 떠먹는 재미에 순식간에 한 그릇을 비우게 된다. 아쉬운 마음에 숟가락을 잠시 입에 물어보지만 거기서 숟가락을 놓을 수밖에 없다. 한 그릇만 비우기엔 살짝 아쉬움이 들지만 그것이 다시 이 집을 찾게 하는 묘한 매력이 된다. 단팥죽이지만 인공적인 단맛이 아니기에 붕어빵이나 찹쌀떡, 팥빙수 등 단팥이 들어 있는 음식을 싫어하는 사람도 반할 만하다.

부업으로 조그맣게 시작한 가게가 성공을 거두게 된 비결은 좋아하는 것에 정성을 들인 덕분이다. 김씨는 결혼 전부터 팥으로 요리하기를 좋아해서, 집에서 만든 팥앙금으로 삼단 양갱 케이크를 만들어 결혼식에 선물할 정도로 솜씨가 좋았다. 단팥죽도 누구에게서 배운 것이 아니다. 열두 살 전쟁통에 부산으로 피란 갔을 때 먹었던 단팥죽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다. 그 기억을 더듬어 평소 자주 만들던 팥앙금으로 죽을 쑤면서 나름의 레시피를 만들었다. 사실 단팥죽은 단조로운 음식이기에 들이는 공에 따라 맛이 확연히 달라진다. 팥과 찹쌀을 국산으로 쓰고 밤은 정안에서 가져오는 등 좋은 재료를 구하는 데 최선을 다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즉석으로 끓여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집 단팥죽이 맛있는 이유는 미리 만들어 두지 않기 때문이에요.”

이 집은 팥을 불려서 푹 삶아 팥앙금을 만들어 놓았다가 손님이 주문하면 즉석으로 팥죽을 쑤어준다. 그러느라 가게는 작지만 화구가 일곱 개이고 주방식구도 여럿이다. 그래도 손님이 한꺼번에 몰아닥치는 시간엔 정신이 하나도 없지만 김씨는 밑준비만 해두었다가 즉석으로 끓여내는 방식을 고집해왔다. 미리 만들어두었다가 다시 데운 단팥죽으로는 최상의 맛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정성스레 내린 팥앙금으로 죽을 쑤기에 거칠게 씹히는 것 하나 없이 죽이 매끈하고 부드럽다. 밤도 하루에 여러 차례 쪄서 일일이 손으로 속껍질을 벗겨내어 막 삶은 듯 포실하게 준비한다. 떡은 전날 쌀을 담갔다가 아침에 직접 방아로 찧어서 익반죽해 큼직하게 빚어 팥물에 삶아 놓고 주문이 들어오면 다시 한 번 말랑하게 삶아서 단팥죽에 넣는다.

가게 안쪽 마당, 커다란 냄비엔 팥물이 끓고 있고 그 옆에 나란히 십전대보탕도 끓고 있다. 처음 몸에 좋은 차를 만들고 싶어 일부러 한의사의 처방을 구해 달이기 시작한 것이 벌써 40년이 되었다. 예전에는 모두 국산 약재를 써서 쌍화탕이라고 이름 지었지만 이제 몇 가지 재료는 국내산으로 구할 수 없어 중국산을 구해 쓴 뒤 이름을 십전대보탕이라고 바꿨다. 이 역시 정성으로 달여내어 단팥죽 다음으로 이 집의 쌍벽을 이루는 메뉴다.

이 집은 주변에 커피집이 변변찮을 때만 해도 점심시간마다 근처 금융감독원 직원들의 사랑방이 되곤 했었다. 삼청동 거리가 발전하면서 손님이 따라 늘기도 했지만 커피집이 많아지면서 우리 차를 찾는 손님은 점차 줄고 있다. 거리가 복잡해지면서 길가에 차를 대기 어려워지자 멀리서 차를 가지고 오던 손님의 발걸음이 전보다 뜸해지기도 했다. 그래도 삼청동 안쪽 깊숙하게 자리 잡은 이곳을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들께 항상 고마운 마음이다.

이발소였던 건물을 개조한 이 집은 창이 널찍하다. 그 너른 창으로 계절이 변하고 삼청동 거리가 변하는 모습을 김씨는 수없이 지켜보았다. 창밖의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지만 이 집의 맛과 분위기는 세월이 멈춘 듯 그대로다. 요즘 아들이 나와 일을 거들고 있기에 든든하다는 김씨. 앞으로 그의 아들 가광위(54)씨가 변함없이 이곳을 지켜주길 기대해 본다.

정수정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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