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겨울도 이제 이별이다. 춘삼월 꽃놀이를 앞두고 바람이 시샘하는 환절기. 계절의 변화에 몸이 부대낄 즈음이면 서울 남대문 ‘민속찻집’의 보약 같은 한방차 생각이 간절해진다.서울 남대문시장 알파문구 맞은편 갈치조림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30년 전통의 민속찻집이 나온다. 손님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전통찻집이라는 작은 간판을 걸어둔 바로 그 집이다.비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갈치조림집들이 옹기종기 들어선 가운데 자리 잡은 이곳은 세련된 카페에선 느낄 수 없는 푸근함과 정겨움이 가득하다. 테이블 몇 개 놓인 작고 소박한 공간이 좁은 계단
연애만 그런 것이 아니다. 맛에도 타이밍과 기다림이 필요하다. 지인은 매년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서울에서 제일 오래되기로 1~2위를 다투는 중국집, 대방동 ‘대성관’의 부추굴짬뽕 개시일을 손꼽아 기다린다. 추위가 더디 찾아와 개시일이 늦어지기라도 하면 전화로 아우성을 친다. 하지만 차가운 바닷속에서 굴이 여물고 부추도 찬바람을 맞아야 부추굴짬뽕의 맛이 제대로 나는 법! 그것을 잘 알고 있는 대성관의 주인장 정대용(72)씨는 빨리 부추굴짬뽕을 먹고 싶다는 손님들의 요청이 쇄도해도 묵묵히 기다린다. 마침내 때가 와야 진짜배기 겨울 진
아기자기한 산책로와 근사한 전망으로 연인들을 유혹해온 서울 남산! 데이트족이 많은 남산엔 유서 깊은 돈가스 맛집들이 즐비하다. 요즘이야 분위기 좋은 전문 레스토랑이 많지만 양식이라곤 경양식집이 대부분이었던 1970~1980년대엔 데이트나 특별한 날의 외식으로 돈가스가 최고 인기였다.‘남산돈가스’라는 말을 고유명사처럼 불리게 한 이곳의 식당들 중 ‘촛불1978’은 41년 역사를 자랑하는, 남산의 랜드마크 같은 곳이다. 남산 케이블카 승강장 근처 대로변, 다른 돈가스집들 사이에 고풍스럽고 세련된 외관을 자랑하는 이곳은 1978년 돈가스
“맛있는 집이라면 방방곡곡 어디든 가리지 않고 찾아다녔어요. 결국 부산에서 맛본 양곱창구이에 반해서 개업까지 하게 되었죠.”매콤달콤하게 양념해 구워 먹는 경상도식 양곱창 요리는 식도락가 탁승호(68)씨의 입맛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그 맛을 잊지 못해 한강둔치에서 미식가 지인들을 불러 모아 수시로 시식회를 거친 탁씨는 1992년 서울 을지로3가에 양대창숯불구이 전문점 ‘양미옥’을 열었다. 최고 등급의 질 좋은 특양과 선도 좋은 곱창 본래의 맛을 살릴 수 있도록 양념 맛을 연하게 자제한 그의 양대창구이는 개업 초부터 선풍적 인기를 끌며
맛의 추억은 잊히지 않는 법! 인천에서 청춘을 보낸 이라면 누구나 푸짐한 삼치구이에 막걸리 한 사발 들이켜며 풀어내던 젊은 날의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인천시 동인천역 인근 밤늦도록 생선 굽는 냄새가 퍼져나가는 삼치거리는 옛 추억을 찾아온 단골들과 이제 막 추억을 쌓아가는 젊은이들의 소박한 정겨움이 가득하다.좁다란 골목에 올망졸망 붙어 있는 삼치구이집들. 기본 삼치구이 가격은 어느 집이나 6000원이다. 서민의 거리인 만큼 500원 올리는 데 5년은 족히 걸렸다고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곳 간판엔 원조라는 문구가 없다. 다른 음
올겨울도 어김없이 동장군(冬將軍)이 찾아왔다. 입김이 하얗게 피어오르는 겨울은 뜨끈한 매운탕의 계절이기도 하다. 개운한 탕거리들이 제철의 먹거리로 입맛을 돋우는 데다가 부재료인 무에 시원한 단맛이 돌고 미나리까지 더 향긋해지니 말이다. 겨울철 탕거리로 대표적인 생선이 바로 대구다. 30년 넘게 유명세를 이어온 서울 용산구 삼각지 대구탕 골목도 요즘 한창 성수기를 맞았다.대구탕이 삼각지에 처음 자리 잡게 된 것은 1979년. 고 손양원씨와 김명희(77)씨가 이 골목에 처음으로 ‘원대구탕’이라는 옥호를 걸었다. 경남 밀양에서 자란 손씨
아직 어둠이 짙은 새벽 3시 반. 지난 수십 년간 늘 그래왔듯 서울 삼각지에 있는 봉산집 주인장 양희성(93)씨가 차돌박이를 썰기 시작한다. 고령의 연세에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 것일까! 3㎏ 가까이 되는 차돌박이 여러 덩이를 계속 번갈아가며 냉동육절기에 넣고 1.3㎜ 남짓 얄팍한 두께로 썰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인다.“제가 좀 힘들어도 차돌박이는 얇게 썰어야 드시기 좋아요.”차돌박이는 어떻게 써느냐에 따라 맛이 좌우된다. 소의 앞다리와 양지살 사이에 숨어 있는 단 한 덩이의 보석! 빨간 살코기 속에 하얀 지방이 차돌처럼 박혀
1980년대 한창 청춘일 때 직장 동료들과 가장 자주 먹던 음식이 부대찌개였다. 여럿이 둘러앉아 빨간 부대찌개를 나누던 그 시절의 풍경을 떠올릴 때마다 군침이 절로 고인다. 겨울의 문턱을 넘고 있는 요즘 같은 때면, 추억의 부대찌개집으로 발길이 향하곤 한다. 햄과 소시지, 그리고 김치와 고춧가루! 동서양이 만난 퓨전음식의 최고 걸작이자 우리 음식문화 속에 깊숙이 뿌리내린 부대찌개의 익숙한 온기를 마주하고 싶은 것이다.부대찌개의 ‘부대’란 말 그대로 군부대를 뜻한다. 6·25전쟁 직후 모두가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에도 미군기지만큼은
지난 여름 경기도 구리에서 포천까지 고속도로가 시원스레 뚫렸다. 덕분에 산정호수, 백운계곡, 명성산 등 볼거리 넘치는 포천이 한층 가까워졌다. 이곳의 대표 먹거리인 이동갈비를 맛보기도 쉬워졌다. 고속도로가 완공된 뒤 여름휴가철을 맞은 포천의 이동갈비집들은 갈비가 동나 못 팔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고 한다.‘포천에 가면 이동갈비를 꼭 먹어야 한다’는 인식이 넓게 퍼져 있을 만큼 이곳의 갈비맛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이렇게 포천 여행객들에게 필수코스가 된 이동갈비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포천에는 군부대가 많아 이 지역의 소고기를 대량으로
소년은 틈만 나면 친구들과 임진강으로 천렵을 다녔다. 바구니 가득 물고기를 잡아오면 할머니는 아낄 것 없이 빡빡하게 매운탕을 끓여주셨는데, 그 뜨끈한 진국 매운탕 한 그릇에 부모님 안 계시는 소년의 외로움이 스르르 녹아내리곤 했다. 청년이 되어 서울서 큰 기업에 다닐 때도 어린 시절의 그 행복한 맛과 추억이 잊히지 않았다. 그래서 돌아온 것이 스물아홉. 고향의 맛을 사람들에게 전하기로 마음먹고 수백 년간 대대손손 살아왔던 집터에 한옥을 지었다.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임진대가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긴 세월 따라 ‘임진대가집’의 창
소풍날이면 아이들보다 더 설렜다. 새벽같이 일어나 하얀 밥 위에 노란 달걀지단, 초록 시금치나물, 주황 당근볶음을 가지런히 올리고 쫀득한 우엉조림이랑 고슬하게 볶은 소고기를 올려 꼭꼭 야물게 마는 손끝에 정성을 모았다. 엄마표 도시락을 건네받은 아이들의 즐거운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녀는 행복했었다. 식구들이 모두 나간 텅 빈 점심엔 수제비 한 냄비로 동네 엄마들을 모았다. 별것 아니지만 주부 9단의 솜씨는 푸짐하고 맛난 수다로 이어지곤 했었다.서울 방배동 카페골목 안쪽 끝자락 ‘서호김밥’ 대표 이혜주(61)씨의 오래전 이야기다. 3
서울 강남, 도산공원 사거리에 보석처럼 아껴두고 싶은 오래된 음식명가가 있다. 이곳의 정갈하고 순한 음식은 몸에 따뜻한 기운을 주고, 맛깔스러운 안주는 술 한잔의 정겨움을 더하기에 충분하다.창업주는 서울 경기여고 출신의 인텔리 자매 정재선(작고)·정재실씨. 옥호는 1983년 창업 당시 자매의 맏언니 정재영씨(작고)가 운영하던 인사동의 한정식집 ‘한성’에서 따와 ‘한성칼국수’라고 지었다. 공교롭게 세 자매가 모두 일찍이 혼자되어 생활전선에 나섰는데, 재영씨가 인사동에서 한정식집으로 성공하자 둘째와 셋째도 언니를 벤치마킹해 음식점을 차
어복쟁반으로 유명한 평양 음식의 명가 ‘대동문’. 주인장 문광석(59)씨는 오래된 통장 하나를 소중히 품고 다닌다. 겉표지가 나달나달해진 통장을 펼치면 지면마다 만두피, 냉면 등 작은 글씨로 출력된 레시피들이 빼곡히 붙어 있다. 그동안 아내 최현숙(52)씨와 수없이 연구하면서 완성한 것들이다. 음식 맛에 집중하는 이러한 열정은 대물림받을 당시 작은 규모였던 대동문을 서울 여의도의 내로라하는 식당으로 성장시켰다.문씨의 어머니는 평양 출신으로 1·4후퇴 때 월남했다. 이런저런 고생 끝에 1990년대 초 서울 여의도상가 건물 2층에 ‘삼
뜨거운 여름! 누군가에게 푸른 바다는 낭만의 휴가이며 어떤 이에게는 행복한 추억이다. 그런가 하면 충남 태안군 이원면 포지리의 안국화(59)씨에게 바다는 맛의 보물창고다. 날마다 물때에 맞춰 싱싱한 산낙지를 구하기 위해 인근 갯벌로 향하는 그녀의 손엔 어김없이 맛난 안주 보따리가 들려 있다. 썰물에 낙지 잡느라 애쓴 지역어촌계 주민들을 위해 그녀가 정으로 준비한 것이다.충남 태안반도의 북쪽 끝자락, 면 전체가 북쪽으로 길쭉하게 튀어나온 이원면은 바다와 갯벌·염전으로 둘러싸인 지형으로 대하·우럭·꽃게·전복·주꾸미 등 풍요로운 먹거리를
더위에 지쳤을 때 입맛을 돋우는 음식이 따로 있다. 그것은 새콤달콤한 냉채 한 접시일 수도 있고, 고추장에 맛깔스럽게 비빈 국수 한 그릇 혹은 맨밥에 짭조름한 오이지 한 종지일 수도 있다. 무엇이든 입맛 까칠한 이 더위엔 맛난 것 찾아 먹고 힘을 내야 한다. 여기에 더위를 너끈히 견뎌낼 보양음식이라면 금상첨화! 요즘 아귀찜집들이 유독 북적이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에서 은평뉴타운을 관통해 일영 가는 길. 한적한 일영로에 자리한 ‘경남아구’는 오래된 아귀찜 명가다. 35년 전 이곳에서 가까운 지축역 인근에 터
전라남도 신안군 임자도 앞의 조그만 타리섬. 지금은 무인도가 되었지만 100년 전만 해도 수많은 어선들과 사람들로 불야성을 이뤘다. 이 섬에 사람들을 모여들게 한 것은 단 하나, 바로 민어였다. 이곳은 우리나라 제일의 민어 어장으로 오랫동안 파시(波市)가 열려왔다. 초여름이면 모래사장에 수백 채의 초막이 세워지고 사람들이 모여들어 민어를 안주로 먹고 마시다가 늦가을이 되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민어가 귀해지면서 타리 파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타리섬과 인접한 항구 도시 목포에는 민어를 취급하는 가게들이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며 성
부부의 고향은 전북 순창. 한동네에서 나고 자란 이들은 야문 손끝과 정직함으로 일 년을 하루같이 매일 게장을 담근다. 이 집 뒤란의 커다란 옹기 항아리들 속엔 시간의 마법 속에 간장게장이 숙성되고 있다. 항아리 뚜껑을 열어 보면 넓적한 다시마가 살포시 덮여 있다. “매번 담글 때마다 넣는 것은 아니고 며칠에 한 번씩 올려줘요.”아하! 이러면 간장에 깨끗한 감칠맛이 녹아들겠다 싶다.인천 석남동에서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켜온 ‘삼백꽃게장’은 주인장 부부의 내공이 빛나는 게장 명가이다. 대표 김형태(65)씨가 열네 살부터 전주 한정식집에
“다음엔 꼭 예약해주세요!” 몇몇 손님들이 아쉬운 표정으로 발길을 돌린다. 자리가 없어 손님을 돌려보내야 하는 주인장의 표정은 더 안타깝다. 서울에서 가장 유서 깊은 이탈리안 레스토랑 ‘라 칸티나’의 흔한 점심 풍경이다.서울 을지로 입구에서 51년째 추억을 쌓아가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라 칸티나(LA CANTINA)’. 라 칸티나는 이탈리아어로 ‘포도주 저장창고’를 의미한다. 창업주 김미자씨가 운영할 때는 일반 양식당 메뉴에 스파게티, 피자 등 이탈리아 음식을 몇 가지 내는 정도였다. 라 칸티나가 이탈리아 음식 전문점이 된 건 19
아직 동트지 않은 새벽, ‘문화옥’ 주인장 이순자(77)씨의 바지런한 손길이 시작된다. 평생의 익숙한 손길로 고기를 손질하고 육수의 기름기를 말끔히 걷어낸 다음 그날의 첫밥을 손수 짓는다. 손님 맞을 채비를 마치면 얼추 6시, 아침 댓바람부터 누가 올까 싶지만 가게는 이내 설렁탕을 먹으려는 이들로 북적인다.‘문화옥’은 서울 지하철 2호선 을지로 4가역 뒷골목을 오랫동안 지켜온 설렁탕 명가이다. 오래된 평양냉면집, 우래옥과 나란히 붙어 있는 이곳은 긴 세월 변함없는 맛과 분위기로 손님들의 발길을 끌어모았다. 1952년 이영옥씨(작고)
자연이 손짓하는 신록의 계절이다. 깨끗한 녹음을 찾아 멀찌감치 떠나고픈 도시인들에게 경남 함양은 꽤 매력적이다. 조용한 오토캠핑장이 있는 용추자연휴양림을 비롯해 맨발의 청춘이 되어 걷기 좋은 상림숲 등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명소가 즐비하다. 예부터 선비의 고장이라고 불려온 함양은 정자문화의 산실로도 명성이 높다. 100여개의 누각과 정자가 있어 가는 데마다 운치 있는 여유로움을 누릴 수 있다.이곳은 또한 한우갈비로도 지명도가 높다. 함양엔 오래전부터 갈비찜으로 유명한 작은 마을이 있는데 바로 안의면이다. 인구 4000여명 정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