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 영문판 표지(좌)와 라틴어 원문.
‘유토피아’ 영문판 표지(좌)와 라틴어 원문.

세상이 어지럽다. 이럴 때일수록 인간은 고단한 현실 너머로 이상세계를 맘껏 그려 보곤 했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그리지 않았다. 거기에 자신의 염원과 가치관을 신중하게 반영했다. 그 결과가 서양에서는 유토피아(utopia)이고, 동양에서는 이상향(理想鄕)이다.

우리나라 작품, 아니 동양의 작품 중에서 동양의 이상향 사상을 가장 적절히 담고 있음 직한 것이 바로 ‘홍길동전’이다. 연대 미상인 이 작품에서 길동은 현실세계에 강한 불만을 품은 나머지, 무리를 이끌고 섬나라로 가서 낙토(樂土)를 건설한다. 작품구조상 현실과 이상향의 강렬한 대비가 기대되는 것이다.

‘홍길동전’은 오랫동안 허균(1569~ 1618)의 작품으로 알려져왔다. 그러나 이러한 한글소설이 조선 후기에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점을 들어 허균 저작설을 부정하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여기서는 작가 논란은 제쳐두고 오로지 이 작품의 흥미로운 내용에 주목해 보려고 한다. 워낙 친숙한 탓에 막상 이 작품을 완독(完讀)한 한국인은 의외로 드물다.

이 작품은 조선 후기에 상업적으로 성공한 소설답게 다소 코믹하게 시작된다. 홍(洪)재상이 대낮에 깜빡 졸다가 용꿈을 꾸고 정실부인에게 달려가 합방을 시도한다. 그러나 부인이 정색을 하며 물리치자 그는 ‘대몽(大夢)을 허송할까’ 안절부절못한다. 마침 시중차 들른 시비(侍婢) 춘섬과 합방을 한다. 그렇게 잉태된 씨앗이 바로 길동이다.

천출(賤出)인 길동은 호부호형(呼父呼兄) 못 함을 한탄하면서도 학문과 무예에 힘쓴다. 그의 비범함은 당연히 주변의 질시와 경계를 초래한다. ‘잘되면 왕이고 잘못되면 우환’이라는 점괘를 빌미 삼아 집안에서 그를 제거하려는 움직임이 구체화된다. 마침내 자객이 들이닥치지만 그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해 자객과 점쟁이를 죽이고 집을 뛰쳐나간다.

집을 떠난 길동은 도적 일당을 만나 출중한 재주를 발휘하여 두목이 된다. 이때부터 전국 팔도를 무대로 그의 의적 활동이 화려하게 펼쳐진다. 왕이 그의 부친을 가두자 큰아들 길현이 길동을 잡아오겠다고 나선다. 길동은 자신에게 병조판서를 제수(除授)하면 투항하겠다는 조건을 내건다. 그의 청이 받아들여져 길동이 왕을 알현하고 돌아가자 혼란은 수습된다.

3년 후 길동은 무리 삼천을 거느리고 망망대해로 떠가다가 ‘성도’(‘제도’라고도 함)라는 섬에 이른다. 거기에 정착하여 궁실과 창고를 짓고 부강을 이룩한다. 얼마 후 길동은 부친의 죽음을 예감하고 한양으로 향한다. 길동은 길현과 상의하여 부친의 시신을 성도로 옮겨 성대하게 장사를 치른다. 그는 군법을 엄정히 하고 농업에 힘써 강성한 나라를 일군다.

‘홍길동전’ 필사본 표지(좌)와 필사본.
‘홍길동전’ 필사본 표지(좌)와 필사본.

이런 성공을 바탕으로 길동은 율도국을 공격한다. 3만 병력으로 10만 율도군을 격파하고 도읍에 들어가 왕위에 오른다. 그가 넉넉한 덕치(德治)를 베풀자 율도국은 곧바로 국태민안 태평성대를 누리게 된다. 길동은 나이 칠십에 큰아들에게 양위하고 산속에 삼간(三間) 누각을 짓고 살다가 홀연히 자취를 감춘다.

이처럼 ‘홍길동전’은 현실세계인 조선과 이상향인 율도국을 대비시킨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 대비는 별로 강렬하지 못하다. 여기서 두 세계는 제도나 가치 측면에서 전혀 다를 바가 없다. 그것들은 똑같이 유교로 통치되는 왕조이다. 오로지 다른 점은 ‘치자(治者)’가 탁월하다는 것뿐이다. 심지어 길동은 말년에 신선이 되기까지 한다.

이런 시각은 서양의 유토피아 사상과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유토피아는 토머스 모어(1478~1535)의 ‘유토피아’(1516)에서 유래한 말이다. 물론 그 뿌리는 플라톤의 ‘국가’이다. 거기서 플라톤은 현실세계와 제도적으로 전혀 다른 이상국가를 구상한 바 있다. 그런 사상적 전통이 무어의 ‘유토피아’로 면면이 이어지고 있다.

잘 알다시피 ‘유토피아’는 1·2권으로 나뉘어 있다. 무어는 1권에서 현실세계를 비판하고 2권에서 본격적으로 유토피아의 모습을 묘사한다. 말할 나위 없이 현실세계는 불평등, 부조리, 탐욕, 착취 등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에 반해 유토피아는 현실세계와 제도적으로 전혀 다르게 구상된 이상적인 세계인 것이다.

그것은 54개 도시로 이뤄진 섬나라이다. 각 도시는 6000가구이며 모든 조건이 거의 동일하다. 대표는 행정단위별로 선거로 선출된다. 나라에는 원로회의만 있을 뿐 정치의 중심은 각 도시이다. 누구나 근면하게 일해야 하며, 모든 것이 균등하게 분배된다. 사치가 금지되고 주택이나 의복은 단출하며 동일하다. 의무적 노동, 공유제, 절제된 생활 등을 통해 나태, 탐욕, 교만 등 인간의 단점을 극복하고 모두가 평등하고 행복한 삶을 향유한다.

이처럼 ‘유토피아’는 철저하게 ‘제도’가 새로운 세계이다. 거기에 ‘치자’가 어떠한 인물이어야 한다는 논의는 전혀 없다. 반면 ‘홍길동전’은 제도가 같더라도 ‘치자’의 능력으로 전혀 다른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이 ‘유토피아’와 ‘홍길동전’이 이상세계를 서로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배경은 무엇일까.

동양문명은 춘추전국시대에 싹이 텄다. 당시 제도는 이미 바꾸기 어려울 정도로 강포(强暴)하게 정착되어 있었다. 거기에 신(神)의 개념은 미약하여 상대적으로 사람의 가능성이 크게 열려 있었다. 당연히 공자(BC 551~479)는 사람을 통해 강포한 제도를 제어해 보려고 했다. 그 이후 동양에서는 다양한 수신론(修身論)이 제안되었으나 근본적인 제도의 변경은 거의 시도되지 않았다.

반면 서양문명은 그리스 도시국가에서 비롯되었다. 그것은 규모가 작고 가변적이었다. 아울러 신의 개념이 분명한 탓에 사람은 상대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였다. 당연히 플라톤(BC 427~347)은 제도를 통해 불완전한 인간을 규율하고자 했다. 심지어 그의 ‘철인왕’조차 국가제도에 의해 철저히 육성, 관리되는 존재였다. 그 이후 서양에서는 다양한 제도적 실험이 제안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영위하는 제도가 대부분 서양의 산물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처럼 ‘홍길동전’과 ‘유토피아’는 각각 동서양 사유의 전형적 특징을 담고 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동양은 주로 ‘사람’을, 서양은 주로 ‘제도’를 바꿔 보려고 했다. 이번에도 5년 주기의 정치적 혼란이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다. 우리는 동양의 후예답게 이 사태를 여전히 ‘사람’을 통해 바라본다.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제도’도 살펴보아야 마땅하다.

박종선 인문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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