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를 쪼개서 엮은 발을 세워 만든 벽체의 구멍을 통해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교실. 바닥은 흙이다. 겨울이라 비가 오지 않아 바닥이 먼지가 풀풀 나지만 우기에는 수렁처럼 변할 게 뻔하다.
대나무를 쪼개서 엮은 발을 세워 만든 벽체의 구멍을 통해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교실. 바닥은 흙이다. 겨울이라 비가 오지 않아 바닥이 먼지가 풀풀 나지만 우기에는 수렁처럼 변할 게 뻔하다.

대나무를 쪼개 벽을 세우고 양철지붕을 올렸다. 벽 시늉만 냈을 뿐 얼기설기 얽어놓은 대나무 사이로 바람과 햇빛이 숭숭 드나든다. 건물이라고 하기에도 무색한 이곳은 학교다. 과학실, 컴퓨터실, 도서관 같은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화장실은 대나무와 양철로 둘러놓은 수준이다. 흙먼지가 날리는 교실에는 책상 몇 개와 낡은 칠판이 전부다. 책상이 부족해 아이들은 다닥다닥 붙어 앉아야 한다. 건기(乾期)는 그나마 다행이다. 우기(雨期)가 되면 비가 들이치고 불어난 강물이 등굣길을 막아 걸핏하면 휴교를 해야 한다.

인도 동북부 끝에 위치한 아루나찰 프라데시주에 있는 소수민족 차크마인들의 마을이다. 아루나찰 프라데시주는 중국과 영토 분쟁이 계속되고 있는 곳으로 서쪽으로는 부탄, 동쪽으로는 미얀마, 남으로는 방글라데시가 둘러싸고 있다. 이곳에 5만여명의 차크마인이 살고 있다.

차크마인은 방글라데시 줌머인(화전민)에 속했다. 줌머인은 방글라데시 산악마을에서 화전을 일구고 살던 10여개 소수민족 70만명을 통칭한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큰 소수민족인 차크마인은 몽골계로 우리와 비슷한 외모를 가지고 있고 불교도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방글라데시 치타공 산악지대에 살다 1964년 댐 건설로 거주지를 잃게 되자 인도로 망명했다. 당시 인디라 간디 총리는 토지를 제공하고 차크마인들을 수용했지만 1980년대 이후부터 아루나찰 프라데시 주정부는 탄압 정책을 펴기 시작해 토지를 빼앗고 모든 권리를 박탈했다. 그 후 차크마인들은 인도 국민으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난민도 아닌 상태로 경계의 삶을 살고 있다. 국내에도 차크마인 100여명이 난민 자격으로 경기도 김포에 살고 있다.

1996년 인도 대법원에 이어 2000년 델리 고등법원은 차크마인에게 시민권과 참정권을 보장하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주정부의 입장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심지어 교육권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마을에는 스네하 다이윤 등 3곳의 학교가 있다. 그중 한 곳만 끈질긴 노력 끝에 주정부로부터 8학년 과정을 인정받았고 2곳은 아직 미인가 상태이다. 교육환경은 열악하지만 교육열은 뜨겁다. 주정부로부터 아무 지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학비를 내야 하지만 학교를 안 보내는 부모는 거의 없다. 3곳의 학생 수는 1050여명에 달한다.

차크마 아이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전 ‘바뚜루뚜루!’가 오는 4월 12일부터 25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갤러리 나우에서 열린다. 사진은 조의환(62) 사진작가의 작품이다. 그는 지난 2월 아시아인권보호단체인 ‘휴먼아시아’와 함께 이곳을 다녀왔다. 주정부에서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할 뿐만 아니라 민간단체의 직접 지원도 막고 있어 차크마 마을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인도 델리에서 비행기로 4시간, 다시 자동차로 6시간을 달려 몇 번의 검문을 통과하고 닿은 이곳에서 그가 만난 것은 아이들의 해맑은 얼굴이었다.

“흙바닥에 임시로 지은 교사에다 아이들 중 60%는 도시락을 싸오지 못해 굶어야 하는 형편인데도 얼굴에서 그늘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대중교통이 없다보니 등교 시간이면 자전거나 스쿠터로 아이들을 태워다 주고 하교 시간이면 아이들을 기다리는 부모들로 장사진이었습니다. 6·25전쟁 직후 폐허가 된 한국처럼 가난하지만 부모들의 교육열은 현재의 한국 못지않았습니다.”

01 수업이 끝난 뒤 빈 교실에 남아서 칠판에 그림을 그리던 여학생.<br></div>02 차크마 학교 중 한 곳인 비하르 만디르 스쿨로 가는 길.<br>03 교통이 열악해 등하교가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만든 비하르 만디르 스쿨의 대나무 기숙사.
01 수업이 끝난 뒤 빈 교실에 남아서 칠판에 그림을 그리던 여학생.
02 차크마 학교 중 한 곳인 비하르 만디르 스쿨로 가는 길.
03 교통이 열악해 등하교가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만든 비하르 만디르 스쿨의 대나무 기숙사.

10일간 이곳에서 아이들의 웃음을 보고 돌아온 그는 뭘 도와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아이들의 교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와도 수업을 할 수 있고 꿈을 키워갈 수 있는 안전한 학교를 만드는 데 전시 수익금을 보태기로 하고 사진전을 마련했다. 그는 조선일보 미술부장 출신으로 네팔 어린이를 돕기 위한 자선전 등 개인전을 꾸준히 열어오고 있다. 휴먼아시아는 김포 지역 차크마인들을 통해 이곳을 알게 된 후 지원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지난 2월 현장을 방문했다. 그는 10여년간 휴먼아시아에 재능기부를 한 인연으로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

‘바뚜루뚜루, 바뚜루뚜루~!’

차크마 노래로 ‘안녕하세요’라는 뜻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불안한 삶을 이어가면서도 배움의 끈을 놓지 않는 차크마 아이들은 오늘도 대나무 교실에서 이 노래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의 사진 속에서 우리를 닮은 아이들이 전하는 희망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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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순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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