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미각 도다리쑥국
봄의 미각 도다리쑥국

4월! 통영의 봄 바다는 반짝이는 윤슬로 눈부시다. 요맘때면 통영 앞바다에 흩뿌려진 수많은 섬들마다 해쑥이 지천으로 자라고 남해 바다 도다리는 살이 토실하게 오른다. 통영 사람들은 봄맞이 음식으로 도다리쑥국을 보약처럼 챙겨 먹는다. 뭍의 향긋함과 물의 싱싱함이 만난 이 담박한 생선국으로 입안에 봄을 틔우는 것이다.

맛을 찾아 떠나는 미식 여행은 얼마나 설레는 일인가! 풍경의 정취가 빼어나고 먹을거리도 푸짐한 통영은 봄의 미각(味覺), 도다리쑥국으로 미식가들을 유혹한다. 3월부터 통영의 거의 모든 횟집에서 도다리쑥국을 내놓는데, 특히 서호시장의 ‘분소식당’은 주말마다 타지에서 온 손님들로 아침부터 줄을 잇는다. 옛날 수협 분소(分所) 자리에 식당 건물을 지었기에 그대로 분소식당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이곳은 지난 50여년 가까이 수산물이라면 이력이 난 수협 경매사나 판매사, 이른 새벽 집을 나서는 시장 상인들의 깔깔한 입맛을 만족시켜온 내공을 자랑한다.

그닥 넓지 않은 소박한 식당 앞에 줄을 서노라면 수족관에서 펄떡이는 도다리를 뜰채로 떠다가 손질하는 모습을 자연스레 볼 수 있다. 도다리는 광어처럼 납작하고 마름모꼴이다. 광어와 도다리를 구별하는 기준은 좌광우도. 눈이 왼쪽에 쏠려 있는 것이 광어, 오른쪽에 모여 있는 것이 도다리다. 도다리는 양식을 하지 않아 모두 자연산으로 봄철에 두툼하게 살이 오른다.

“요즘 알이랑 이리가 풍성해서 더 맛나요!”

도다리쑥국 끓이는 법은 보기에는 간단하다. 무, 대파, 다시마를 넣어 육수를 끓인 다음 손질한 도다리를 툭툭 토막 쳐 넣는다. 땡초와 소금으로만 깔끔하게 간하고 쑥 향을 살리기 위해 마늘은 넣지 않는다. 고기가 익으면 신선한 해쑥을 넣고 바로 불을 꺼서 그릇에 담아낸다.

반 마리만 주는 집도 있는데 이 집은 1인분에 도다리 한 마리를 다 넣어 양껏 즐길 수 있다. 모락모락 나는 김에 쑥 향이 솔솔 올라오는 도다리쑥국! 맑은 국물에 뽀얀 도다리 살과 푸른 쑥이 담긴 단출한 모습이다. 국물부터 한 술 뜨면 비린 맛 전혀 없이 개운하고 향긋하기가 이를 데 없다. 눈 감고 맛본다면 생선국인지 모를 정도다. 담백하지만 알과 이리의 고소한 맛이 녹아들었기에 국물에 깊이가 있다. 토실하게 오른 도다리 살은 씹을 필요도 없이 입안에서 으깨지면서 사르르 녹는다. 살짝 익어 초록이 살아있는 쑥도 연하고 향기롭다. 이 한 그릇이면 온몸에 봄기운이 돌 것만 같다.

그런데 아쉽게도 4월이 지나면 이 맛을 볼 수 없다. 도다리는 남쪽 바다에서 흔히 잡히는 생선으로 봄에 통영 연안에서 산란을 한다. 보통 2~5월까지 잡는데 가장 맛있을 때는 3~4월. 무엇보다 5월 초를 넘기면 해쑥이 쇠고 써서 먹을 수 없게 된다. 한산도, 비진도, 욕지도 등 통영 앞바다 섬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란 해쑥은 유난히 부드럽고 향이 짙어 도다리와 궁합이 잘 맞는다.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 것이나 냉동 보관한 쑥은 질기고 향이 금방 날아가기에 쑥국으로 적당하지 않다.

도다리쑥국은 봄 한철 메뉴이지만 이 집엔 일 년 내내 잘나가는 메뉴가 그득하다. 겨울엔 개운한 물메기탕이 제맛이고 5월부터는 장어탕, 멍게비빔밥 등이 많이 나간다. 특히 이 집 복국은 애주가들의 해장 메뉴로 인기가 높다. 졸복에 콩나물과 미나리만 넣고 소금 간 맞추는 것뿐인데 들이켤수록 목을 시원하게 타고 넘어가며 뒷맛이 산뜻하다. 술을 주문하면 안주가 계속 리필되는 통영의 독특한 술 문화, ‘다찌집’에서 지난 밤 취했던 속을 풀어주기에 제격이다. 오랜 단골들은 이 집 복국 맛이 남해안 제일이라며 엄지를 척 내민다.

대표 이옥용·김혜숙씨 부부
대표 이옥용·김혜숙씨 부부

단골만 주는 전어밤젓도 별미

분소식당의 밥상엔 안주인의 손맛과 정성이 듬뿍 담겨 있다.

“최고의 재료로 집에서 먹는 반찬이랑 똑같이 만들어요.”

좋은 쌀에 찹쌀을 섞어 윤기 자르르하게 지은 밥부터 김치, 깍두기, 멸치볶음, 파래무침, 데친 파무침까지 얌전하고 정갈한 반찬이 일반 식당 음식 같지가 않다. 가을에 담가 지금쯤은 아껴두고 단골들이나 일부러 찾는 손님에게만 주는 전어밤젓도 별미다. 대개 전어 밤(위·胃)에 붙은 검은 내장까지 함께 담가 거무스름하지만 이 집은 내장을 일일이 발라내 밝은 황갈색을 띠며 맛도 아주 깊고 깔끔하다.

분소식당은 양을 만만치 않게 주면서도 가격은 통영 시내의 다른 곳보다 1000~2000원 정도 싸게 받는다. 이는 창업주 조봉씨(작고)의 유지를 받들고 있는 까닭이다. 조씨는 예전부터 수협 직원들을 가족처럼 여기며 값싸고 푸짐하게 상을 차려줘 인심을 얻었다. 돈보다는 내 집에 오는 손님들을 맛있고 푸짐하게 대접해야 한다는 그 마음을 이옥용(59)·김혜숙(58)씨 부부가 그대로 잇고 있다. 원래는 조씨와 함께 분소식당을 꾸리던 조씨의 딸이 이어받으려 했지만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자꾸 나서 5년 전 이들 부부에게 운영을 넘기며 비법을 전수했다. 이옥용씨는 분소식당 바로 옆에서 오팔수산을 운영하면서 25년간 도다리, 물메기 등 자연산 활어를 거의 공급했었다. 조씨의 사위와는 30년 지기 친구이기도 하다. 수산물 전문가 옥용씨가 제일 좋은 생선을 공급하고 오랫동안 다른 곳에서 주방 일을 해오던 아내 혜숙씨가 분소식당의 주방을 책임지니 맛이 더 좋아졌다는 평도 듣는다. 혜숙씨는 고향인 한산도의 지인들에게 쑥을 비롯해 무농약 시금치, 톳나물 등 좋은 재료를 공급받는다.

“배추, 무, 고춧가루까지 전부 국산이지요!”

김치나 젓갈 등 필요한 모든 음식은 직접 만들고 있다. 음식에 정성을 많이 쏟다 보니 힘에 부칠 때도 있지만 맛있다는 손님들 한마디에 힘이 난다. 손님이 많아 가게를 넓힐 만도 한데 그럴 욕심은 전혀 없다. 운영시간도 여전히 아침 6시부터 오후 4시까지이다.

“먼 곳에서 오시는 분들께 죄송할 때가 많아요.”

이 집 도다리쑥국을 먹으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주말 오후에는 가게 문이 닫혀 실망하고 돌아가는 손님들이 부지기수다. 손님이 많아 준비한 재료가 떨어지면 일찍 문을 닫기 때문이다. 일요일에도 영업하는 대신 둘째·넷째 화요일에는 쉰다.

정수정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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