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화
[2458호] 2017.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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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음을 찾아 떠나는 고전 여행] 소크라테스의 변명

소크라테스는 왜 죽음을 선택했을까?

박종선  인문학칼럼니스트 pcsun21@daum.net 

▲ (왼쪽부터) 소크라테스.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명’(필사본)
오늘날 서구문명은 두 사람이 비극적으로 죽은 자리에서 태어났다. 그들은 바로 소크라테스와 예수이다. 예수는 인성(人性)과 신성(神性)을 겸비한 매우 특별한 존재이다. 그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기꺼이 죽음을 선택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한낱 인간일 따름이다. 그는 왜 구명을 거부하고 한사코 죽음을 선택했을까.
   
   기원전 399년 어느 날 노(老)철학자가 피고의 신분으로 고대 아테네 법정에 소환된다. 20대 후반의 젊은 제자가 사형으로 결말이 나는 스승의 재판을 비통하게 지켜본다. 나중에 그는 스승이 법정에서 배심원들을 상대로 행한 격정적인 자기 변호의 연설을 생생하게 재구성해 놓는다. 그는 이 기록을 ‘소크라테스의 변명(Apologia Sokratous)’이라고 명명한다. 그가 바로 플라톤(BC 427~BC 347)이다. 스승은 물론 소크라테스(BC 470~BC 399)이다.
   
   하지만 소위 ‘변명’을 자세히 읽어 보면 그것은 변명도 아니고 변호도 아니다. 소크라테스는 그가 광장에서 누군가와 1 대 1로 대화하던 방식 그대로 배심원들을 향해 자신의 철학적 견해를 거침없이 피력한다. 때로는 질타도 하고, 때로는 훈계도 한다. 그는 자신이 피고라는 현실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에게 법정은 또다른 철학의 장(場)일 따름이다. 당시 재판은 1·2차로 나뉘어 진행된다. 1차 재판에서 유·무죄를 결정하고, 유죄일 경우 2차 재판에서 형량을 결정한다. 판결은 500명(또는 501명)의 배심원이 담당한다. 그는 1차 판결 전, 2차 판결 전, 2차 판결 후 각각 자신의 입장을 밝힌다. 처음 두 연설은 재판의 공식적 절차이고, 마지막 연설은 비공식적 발언이다. 첫 번째 연설이 가장 길고 또한 중요하다.
   
   그는 먼저 그에 대한 아테네 시민들의 뿌리 깊은 반감에 대해 언급한다. 실제로 기원전 323년 아리스토파네스는 그의 희극 ‘구름’을 통해 소크라테스를 허황된 인물로 풍자한 적이 있다. 무려 24년 전의 일이다. 그때 이미 수많은 아테네 시민들이 그 희극을 보며 박수를 쳤다. 이를 통해 그에 대한 부정적 세평이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알 수 있다. 도대체 그가 이처럼 악평을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일찍이 그는 ‘소크라테스보다 지혜로운 자가 없다’는 신탁을 받는다. 그는 유명한 정치가, 시인, 장인(匠人)을 찾아다니며 신탁을 ‘검토’해 본다. 이러한 ‘검토’야말로 그의 철학적 방법의 핵심이다. 그들이나 자신이나 진리를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들은 모르면서도 안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생각한다는 점을 깨닫는다. 이때부터 그는 사람들에게 ‘무지(無知)의 지(知)’를 깨우쳐 주는 일에 발벗고 나선다.
   
   이러한 가차 없는 ‘검토’와 폭로를 달가워할 사회는 별로 없다. 건강하지 못한 사회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실제로 당시 아테네 민주주의는 점점 쇠락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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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박종선  ( 2017-05-22 )    수정   삭제 찬성 : 반대 :
필자입니다.
무엇보다 이런 딱딱한 글에도 관심과 격려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1)제목에 대해
내용상 변론 또는 반론이 적당합니다. 저도 망설였지만 워낙 변명으로 알려진 작품이라, 그냥 시류에 따랐습니다. 제목을 고치면 그것에 대해 설명을 해야 하고, 그러면 칼럼이 늘어질 것 같더군요.
(2)예수에 관해
현실적으로 기독교를 모르면 서양의 고전이나 예술을 제대로 이해하기 곤란하지요. 그래서 서양고전을 다룰 때 저는 가급적 기독교적인 관련성을 언급하려고 하는 편입니다. 그럼에도 선생님 지적을 들어보니 신중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관심과 질책에 거듭 감사드립니다.
  cshongmnstate  ( 2017-05-22 )    수정   삭제 찬성 : 반대 :
좋은 주제였습니다만, 한 두 가지 거슬리는 구절들이 있네요. 먼저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라는 오래된 번역보다는 변론이라는 말이 더 적절한 번역어가 아닐까요. 소크라테스의 논증은 자기변명이나 변호라기보다는 스스로의 주장을 펴는 논증이었으니 변론이 더 옳겠습니다.

한편 예수는 인성과 신성을 겸비한 매우 특별한 존재이다와 같은 단정적 문장은 비기독교인들의 저항을 초래하는 적절치 못한 주장입니다. 주간조선과 같이 모든 이를 대상으로 한 잡지에 어떻게 이렇게 특정 종교의 신앙을 바탕으로 한 주장을 마치 객관적인 사실인 듯 기술할 수 있습니까 이 세상에는 훌륭한 기독교인들이 많은데, 이와 같은 기술때문에 전체 기독교인들에 대해 혐오감을 갖지 않게 되도록 조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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