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화
[2466호] 2017.07.17
관련 연재물

[내 인생의 소울푸드] 펜화가 김영택의 채식 불구이 덮밥

채식으로 바꾸니 작품도 달라져

김영택  펜화가  

2004년 6월, 첫 펜화 전시를 서울 인사동 학고재 3개 층 전관에서 열었다. 작품을 돌아보고 “작가 생활 중에 일반인과 다른 것이 있습니까?”라고 묻는 사람이 있었다. “채식을 합니다만 왜 물어보십니까?” 하니 “그림에서 무언가 다른 기운이 느껴진다” “맑은 기운이 느껴진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기를 연구하신다는 분들은 그림 속의 절, 바위, 산에서 강한 기가 나온다고 했다. 합천 영암사 그림에서는 배경인 황매산 기가 강하게 나오니 팔지 말고 공부하는 자녀의 방에 걸어주면 좋은 학교에 진학할 것이라는 황당한 말도 들었다. 반신반의하면서 중학교에 다니는 막내아들 방에 걸었다. 과학고를 거쳐 카이스트 생명공학과에 진학했으니 애비 그림 덕을 본 것일까.
   
   1994년 디자이너의 최고 영예인 ‘디자인 앰배서더’ 칭호를 한국 최초로 수여받고 제1회 세계로고디자인비엔날레에 초대받았다. ITC(국제상표센터)가 세계 정상의 그래픽디자이너 54명에게 수여한 ‘디자인 앰배서더’를 주축으로 한 일주일간의 국제적 행사였다. 행사가 개최되는 벨기에로 가는 길에 프랑스 파리를 일주일간 돌아보았다. 박물관, 미술관, 화랑에서 많은 펜화 작품을 만났다. 벽면 장식품, 관광상품, 관광엽서 등 도처에서 만난 펜화 복제품을 보고 펜화가로 전업을 결심했다. 궁궐 스케치를 자주 다니던 취미 생활도 영향을 주었다. 디자이너였기 때문에 펜화를 이용한 여러 가지 문화상품의 시장성을 염두에 두었다. 한국과 외국의 건축 문화재를 펜화에 담아 달력도 만들고, 엽서도 만들고, 책도 내는 꿈을 꾸었다. 그때 나이 50이었다.
   
   1993년 미국 정신과 의사 ‘브라이언 와이스’가 쓴 ‘나는 환생을 믿지 않았다’를 읽고부터 미친 듯이 유사한 책을 읽으며 ‘나는 누군가’라는 화두를 해결하려고 몸부림쳤다. 세계 정상의 디자이너 반열에 올랐으나 정신적 방황은 더 깊어졌다. 1994년 기적처럼 큰 스승을 만났다. ‘청해무상사’의 제자가 되면서 ‘5계(戒)’를 지키게 되었다.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하고, 남의 것을 탐하지 말아야 하며, 술을 마시지 않아야 하고, 배우자를 두고 외도를 하지 말며, 살생을 하지 말아야 하였다. 5계를 지키는 생활을 시작하고 보니 평소 작건 크건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하고 살았는가 알게 되었다. 미니스커트에 늘씬한 몸매를 드러낸 여인을 보고 음심을 품는 것도 죄임을 알게 되었다. 하루에 서너 갑씩 피우던 담배와 즐기던 술도 끊었다. 그러나 제일 힘든 것은 50년간 먹었던 육식을 끊는 것이었다.
   
   채식으로 바꾸고 보니 식당 메뉴에서 고기나 생선이 빠진 것을 찾기 힘들었다. 인간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것은 고기 구우며 술 마시는 일이 전부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과자에도 돼지기름인 쇼트닝이나 소기름으로 만든 정제가공유지를 사용한 것이 대다수였다. 주변의 따가운 눈총과 손가락질에도 굳건히 버티며 채식을 유지했다. 이렇게 펜화가로 전환과 동시에 채식가가 된 것이 작품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림은 화가의 눈으로 사물의 이미지가 들어와서 머릿속에서 그림 이미지로 전환되어 손으로 표현된다. 이런 과정에서 화가의 내면에 붉은색이 가득 들어 있다면 그림에 붉은색이 묻어날 것이고, 푸른색이 많으면 당연히 푸른색이 첨가될 것이다. 펜화의 대상이 되는 건축문화재와 명산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을 갖고 있다. 이런 기운들을 제대로 화폭에 담으려면 내 자신이 무색무취(無色無臭)해야 한다고 본다. 무색무취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에 채식도 한몫을 한다는 것을 전시회에서 알게 되었다.
   
   수행을 위하여 채식을 시작하였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동물의 입장을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동물이든 자신과 가족의 죽음에 저항을 한다. 지표면에 알을 낳는 새들은 포식자가 둥지에 가까이 오면 날개가 부러진 척 연기를 하며 뛰어간다. 포식자가 뒤따라가서 둥지와 멀어지면 연기를 끝내고 날아오른다. 많은 새들의 공통적 모성애다. 죽은 새끼를 오랫동안 끼고 사는 원숭이도 있다. 인간을 위해서 즐거이 죽어주는 동물은 없다. 동물도 인간처럼 그들만의 언어가 있다. 만약 인간과 동물이 소통이 된다면 동물을 잡아먹을 수 있을까. 사위를 위해 씨암탉을 잡으려는 장모에게 “아주머니, 남편과 새끼들을 두고 죽기 싫어요. 살려주세요”라고 애원하는데 “이것아 귀한 사위가 왔으니 죽어야겠다”며 칼을 내리칠 장모가 몇이나 될까. 마하트마 간디는 어릴 적에 잡히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달아나는 닭을 보고 육식을 끊었다고 한다. 입장을 바꾸어 보자. 인간보다 월등한 존재가 있어 인간을 잡아먹고, 산 채로 구워 먹는다고 상상을 해보면 답은 쉽게 나온다. 채식가였던 톨스토이는 “인간은 육식을 한 죄를 전쟁을 통하여 갚는다”고 했다. 동물들의 고기가 인체에 들어오면 몇 년에서 몇십 년간 인체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23년간 채식을 하고 있지만 50년간 먹었던 고기 맛은 쉽게 잊지 못한다. EBS-TV ‘남편은 요리사’에 출연하여 ‘감자탕’ 만드는 법을 연기했고, 큰처남댁이 만든 족발은 아직도 눈과 입에 삼삼하다. 그래서 ‘채식 불구이 덮밥’으로 맛의 추억을 위로해 본다. 콩단백을 소고기처럼 가미하고 야채에 쌈 싸 먹는 요리다. 불구이 덮밥에 반해 인사동 채식요리 전문식당인 ‘오세계향’을 자주 찾는다. 채 썬 파를 얹으면 오리지널 맛이 날 텐데 내오지 않는다. 오신채를 먹지 않는 수행단체에서 경영하는 식당이라 그렇다. 요즈음에는 기술이 발달해서 채식 냉면도 있고, 육개장맛 두개장도 있다. 식물성 재료로 만든 포를 안주 삼아 무알코올 맥주를 마시며 오랜 습관을 재현해 본다. 단골 중화식당을 만들어놓고 ‘채식 자장면’을 배달시켜 먹는 것이 집안 행사가 되었다. 더운 여름 냉콩국수를 시키면 꼭 삶은 달걀 반쪽을 올려놓아 당황하게 한다. 수행이 더 깊어지면 육식의 습에서 완전히 벗어날까 모르겠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LG V30

맨위로

2483호

2483호 표지

지난호보기 정기구독
유료안내 잡지구매

로그인 회원가입   아이디·비번찾기
호르반
경북도청
삼성전자 갤럭시 s8
부산엑스포
경기안전 대동여지도
조선토크 브로슈어 보기

주간조선 영상 more

이어령의 창조이력서 연재를 마치며